공공의적2

백승권200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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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그래서 더 우울했나. 모든 것을 회색렌즈로 보려는 이노무 몹쓸 버릇.

사실 강철중(설경구) 같은 인간은 없다. 있더라도 100만명의 한명쯤 되겠지.

그러나 한상우(정준호) 같은 인간은 지천이다. 쓰레기 같은 넘들이 더 많다고

뉴스가 그렇게 가르쳐 줬다.


웃기게도 설득될뻔 했다. 강철중 검사의 집념과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정의구현의

뜻이 아니라 한상우의 한마디 한마디에 무의식적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의 힘. 사람을 움직이고 흐름을 움직이며 모든 것을 거느린다. 사람을 거느리는

돈의 힘은 정말이지 감당이 안될정도로 많은 것들을 좌지우지한다. 목숨같은 것은

우습지도 않은 것이다. 대부분들 느끼겠지만 희망이란게 참.. 우스워진다.


이 돈 앞에서는. 훌륭한 사람으로 알려질려면 널리 좋은 일을 해야하고 널리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과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 물론 옳은 선택이지만 희생을

할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돈은 시간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아무리 달음박질해도

돈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희생이 시간을 소비하며 땀을 흘리는 동안 돈은 이미

희생이 해내려 했던 결과물 이상을 채우며 희죽거리고 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분명 허구인 것이다.


다수의 희망을 앗아가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은 이미 실감하다 못해 절감하고

있는 실정. 강철중 검사가 아무리 장가를 못가고 밤을 새워 바삐 움직인다 해도 결국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잔인한 대한민국인 것이다. 상대에게 부드러운 위압감을

심어주는 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악마앞에서는 금뱃지도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라이더들

도 다 소용없다. 폭력은 결코 돈의 수하를 벗어나지 못한다. 가슴을 칠 일이지만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그야말로 혼돈의 총합. 돈의 노예로 폭력을 수하로 두어가며 기름진 얼굴로 나름의

떳떳한 표정을 지어가며 죄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준다. 암튼 멀쩡한 사람도 개장에 들어

가면 개가 될 수 밖에 없나보다.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신구는 밧줄과 수갑인데. 설경구는

방아쇠를 당겼어야 했다. 그래서 광화문에 그를 매달아야 했다. 하지만 강철중은 검사니까

법으로 해결했다. 나보다 더 죽이고 싶었겠지만 그는 참는다. 그게 정의니까.


공공의적2는 돈이 아무리 도구라지만 그 도구가 주인을 잘못만나고 도구가 주인이 되버리면

이렇게 된다 아니 되야한다 라는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전편보다 덜하다는 평이 중론이

지만 내가 보기엔 설경구정도면 완벽할 정도로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했다. 나는 힘들겠지만

이 영화로 정의로운 법조인 지망생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것이 내가 티비를 안보고 이제는 신문까지 의심하고 있는

이유이다. 물론 본분에 충실한 이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택들도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정의

보다는 불의의 힘이 더 강한 나라다. 오죽하면 1/4밖에 안살아본 필자가 이렇게 말할정도니까.

제발 내가 무지한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밝혀져서 대한민국 명예훼손죄로 고발됬으면 좋겠다.


결론인 즉 공공의 적은 돈이라는 물질인것이다. 너무 단순한가. 이 물질 나부랭이는 절대반지

처럼 쥔 자의 뇌를 파고들어 욕심에 취해 눈과 귀를 멀게한다. 감각을 둔하게 하고 자신이 높다

는 착각을 심어주며 점점 조종하다가 심하면 살인도 납치도 범죄도 충동적이라는 본능을 핑계로

저지르게 한다. 점점 취하게 되면 돈은 사람을 도구로 보이게 하고 허리 굽힌 자들을 쓰레기로

보이게 한다.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며 사람은 물론 이거니와 사랑까지도

결제할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정의롭게 살려면 조금 가난해지는게 낫다. 전에 전유성이 그던가. 조금만 비겁하면 세상이 즐겁

다고. 나쁜 것은 쉽게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스스로를 용서하는 법만 늘어날 뿐이다.

이미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부자들이 존경받기엔 아직은 그늘이

많다. 많은 돈을 범에 있어서 정당성이 아직 다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건 컴플

렉스 가 아니라 부정한 현실의 지독한 단면일 뿐이다.


가끔 생각해본다. 마르크스가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공공의적3는 출연 안한다는 설경구의 인터뷰기사를 비보로 전하며. 마침.

공공의적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