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중이 진서를 찬찬히 훑어보고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동준의 몸에 내려앉아 있던 그 무게가 하나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담지 않은 그 눈이 닮아 있었다. 결코 자신의 뜻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그 뜨거운 기운이 닮아 있었다. 동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그 말이 이유 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 그 아이 저한테는 여자 아닙니다.
“너만큼이나 당돌하고 겁이 없는 계집애구나.”
동준의 등 뒤에서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그 눈이 한순간 번뜩이며 다른 느낌을 전하고 있었다. 한필중이 진서의 그 눈빛으로 동준을 잡을 수 없을 거란 예감을 확신했다. 그 오지까지 한사람을 찾아온 어린 여자아이 속에 힘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는 투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동준이 모든 것을 걸고 지금을 버리려 하는 이유가 그 속에 있었다.
한필중의 뒤에 서 있던 태수가 어깨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멈칫거리며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자 태수가 그 특유의 너물그림으로 그들을 재촉했다. “새끼들아 뭐하고 있어. 손님도 오셨는데 안으로 모시지 않고.” 한필중이 눈치만 보고 선 어깨들에게 눈짓을 하자 더 이상 물러서 있지 못하던 어깨들이 동준과 진서를 둘러쌌다. 종두가 그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물러서라.”
한필중이 싸늘한 눈으로 종두를 노려보았다.
“지금 니 태도......상당한 수위에 올라있다. 더 이상 저 놈 싸고돌면 너도 온전히 걸어 나가기 힘들다.” “어차피 저 때문에 이곳에 발들인 아입니다. 사장님께서 보내지 않겠다면.....제가 보내겠습니다. 남은 건 제게 하십시오. 얼마든지 그 대가 치루겠습니다.”
묘한 자극이었다. 한필중이 자신이 왜 그토록 동준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준을 놓고 나면 결국 지윤을 곁에 두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라 하기엔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그 존재가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거쳐 업소를 차리고 번듯하게 문패를 단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입을 열면 간이라도 빼낼 듯이 혀처럼 굴어대는 그들에게서 사람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밑바닥을 거쳐 그기까지 올라와 앉았으나 누구에게도 자신을 풀고 어깨를 쉴 수 없다는 것이 한순간 그 삶을 공허하게 했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고독을 가져야 하는 그 삶에 어느 듯 한필중 자신도 지쳐가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번듯한 업소 몇 개쯤은 가지고도 남을 그가 늘 없는 존재처럼 소리없이 움직이는 그것이 한필중에겐 탐구하고픈 대상으로 낙점됐었다. 아무 것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 그 오만함이 더 끌렸고 가지지 않고도 소리 없이 흘려내는 당당함이 한필중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었기에 어느 듯 갈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의 향기에 취해 지윤의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구도 아닌 동준 그 존재여서 다른 모든 걸 접고 그것마저 용납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많은 기밀들이 동준에게 흘러가 있었고 결국 보내고 남을 것은 그 불안함들과 지윤의 분노와 자신의 공허함이 될 것이었다.
동준이 종두를 보며 작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보내고 남을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 안돼, 형. 그렇게는 안돼. 두고는 못 간다.
- 아니. 가라. 가야 돼. 너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못 벗어난다.
동준의 뒤에 서 있던 진서가 휘청거리며 그 눈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기를 내 보냈다. 잠시 그 몸으로 찾아들어 영혼과 뒤섞여 있던 그것들이 빠져나가고 있어 그 상황이 혼란스럽게 얽히고 있었다. 앞이마가 젖어들어 식은땀을 흘리며 하얗게 변하고 있는 진서의 얼굴을 돌아본 동준의 가슴이 더 조급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괜찮니? 서 있을 수 있겠니?”
“괜찮아요.”
동준이 손을 뻗어 진서가 들고 있던 목검을 받아들었다.
“진서야, 좀 있다 저기 있는 차 보이지. 그리로 바로 뛰어라.”
진서의 등줄기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핏기를 잃어있는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 보여 동준이 남은 손을 뒤로 내어 진서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만......조금만......그대로 참아라. 금방 끝난다.”
동준이 들고 있는 목검의 거리만큼 사이를 좁히지 못하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어깨들 사이로 종두가 들어왔다. 날쌔고 빈틈이 없는 그 주먹에 어깨들이 한발 치 뒤로 나가 떨어졌다. 종두가 들고 있던 열쇠를 동준의 손에 쥐어주며 작게 말을 보냈다.
“아이들은 내가 막을 테니까 좀 있다 빠져 나가라.”
“같이 나가.”
“내 걱정 마라.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일이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나 니가 가진 파일들이 한동안은 바람막이가 될 수 있다. 남은 일을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러니 다른 생각말고 가라.”
동준과 종두의 태도에서 다른 눈치를 읽은 태수가 속주머니에 있던 단도를 만지작거렸다. 질기고 끈질긴 연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 일로 시작된 악연이 십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수만 가지로 뿌리를 쳐 악의 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집안의 몰락이 동준이 농간으로 가속됐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된 태수의 심장에 퍼런 칼날이 붉은 피를 뿜으며 동준의 심장에 꽂힐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품었던 두 여자가 한순간 돌아선 이유조차도 그 선이 동준에게 닿아 있었던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치욕이 매 순간 영혼을 짓이기고 있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결코 한필중의 수하에 자신을 둘 필요가 없었다. 오직 동준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어내 그 육신을 갈가리 찢어낼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지금 자신의 앞에 그 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를 완전하게 매장시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영원히 참수할 기회가 자신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동준이 날아드는 어깨들을 목검으로 막아내고 잠시 몸을 돌린 사이 진서가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흘러내린 땀이 셔츠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종두가 눈짓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갈 것을 재촉하자 동준이 주저앉은 진서를 일으켜 세워 대문 쪽으로 뛰었다.
종두의 포진으로 어깨들이 동준을 따르지 못하자 마음이 급해진 태수가 다급히 달려들어 그들 앞을 막아섰다.
“이렇게 가면 써나. 아직 남은 일이 많은데...안 그러냐?”
“비켜라.”
“내가 오늘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이리 쉽게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지.”
단도를 꺼내들은 태수의 눈에 섬뜩한 한기가 고이고 있었다. 연이어 달려온 어깨 둘이 동준을 막아서며 칼을 든 태수를 제지했다.
“형님 그 칼 치우십시오. 모시고 들어가면 될 일입니다. 칼까지 빼들고 왜 이러십니까.”
그 말을 내 놓는 어깨의 뺨을 후려갈기며 꿈틀거리는 분노를 들어낸 태수가 한순간 그것을 동준에게 휘둘렀다.
“이 새끼는 내 손으로 보낸다. 더러운 시궁창 청소까지 해가면서 기다린 날이다.”
야비하게 웃음을 흘리며 이를 드러내든 태수가 그 단도를 진서에게 겨누었다. 재대로 서 있지 조차 못하던 창백한 얼굴이 호흡을 조절하지 못하고 떨려오고 있었다.
“그럼....이 계집부터 포를 떠줄까. 끼리끼리 논다고 이년 눈빛 제수없이 맘에 안들었는데...니가 내 앞에서 내 약혼녀를 호텔방으로 데려갔으니...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냐. 어디부터 손을 봐줄까?”
“친구라는 그 허울조차 없었다면 오래전에 내가 너 끝냈다. 니 아버지 유언만 아니었어도 너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더 이상 내 앞에서 얼쩡대지 마라.”
“개새끼...함부로 아버지 들먹이지 마라.”
“아버지 몰락이 나 때문이라 생각 하냐?”
“개소리 더 이상 널어놓지 마라.”
“니 아버지 평생 니 구린 뒤 청소하느라 같이 시궁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불쌍한 사람이다. 결국 나라는 씨앗도 너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병신새끼. 넌 죽었다 깨나도 그 모든 것이 너로 인해 비롯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겠지.”
단도를 들고 등을 진 채 서 있어 한필중이 태수가 동준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종두와 어깨들이 가로막고 있던 자리를 한 치 비켜내자 태수손에 들려있던 단도가 한필중의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 그 심장이 서늘해지며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 확인하게 해주었다. 한필중이 서둘러 대문 앞으로 발길을 옮기며 태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지 못해.”
그 말과 동시 태수가 휘두른 단도가 진서에게 날아들었고 동준이 진서를 안고 썰어졌다. 진서의 가슴위로 온기가 느껴지는 축축한 뭔가가 번지고 있었다. 손을 빼내 그것을 확인한 진서가 입술을 떨며 두려움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종두가 급하게 달려와 동준의 상채를 일으켰다. 피 묻은 손을 떨며 입 밖으로 말을 내놓지 못하던 진서가 창백한 얼굴로 한필중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 처음 자신을 노려보던 그 눈빛이 어느 듯 사라지고 놀란 눈 속에 두려움이 가득한 여자아이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무도 이사람한테 손대지 마..”
한필중이 태수의 뺨을 후려갈겼다.
“누가....너한테 이런 권한을 줬어. 이 새끼야. 어디서 함부로 칼을 빼들고 설쳐.”
동준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종두가 한필중에게 싸늘한 말을 던졌다.
“병원 데려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데려가라고 해라.”
“정말....죽이고 싶습니까?”
“더 이상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라. 내가 그 놈 어찌할지 아직 결정 못했으니.”
대문 안으로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급하게 차한대가 들어섰다. 문을 열고 나온 정재의 눈이 붉은 피로 물든 동준의 셔츠를 보고 그 한번으로 모든 것을 읽어내고 있었다. 종두가 옆에 서 있던 어깨를 주먹으로 날리고 급하게 동준을 정재의 차로 데려갔다. 정재에게 동준을 넘긴 후 뒤따라 뛰어오는 진서를 안아 올려 뒤 자석에 앉히고 차 문을 닫았다.
뒤따라오던 차들을 힘겹게 따돌린 정재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버티고 앉은 동준의 상처를 살펴 보았다. 깊게 관통한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진서가 온몸을 떨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쓸어져 버릴 듯 사색이 돼 있는 진서에게 마른 수건을 쥐어준 정재가 그 손을 동준의 상처위에 갖다 놓았다.
“누르고 있어요. 괜찮아요. 안 죽어요.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상처 누르고 있어요.”
애써 태연한척 진서의 눈을 보며 차갑게 말을 내놓는 정재의 심장이 뜨거운 화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동준에 대한 분노였다. 연락이 되지 않던 그 순간도 심장이 조이는 두려움과 또 다른 잔인한 생각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망부석처럼 앉은 진서의 고통을 보면서도 그 가슴속 심연의 다른 얼굴이 영원이 동준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삶속에 가까이 내려앉기도 전에 날개를 태워버릴 진서를 알아 그를 향한 심장이 열기와 냉기로 몸을 휘감으며 갈라지고 있었다. 버리고 싶은 싸늘한 잔인함과 놓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깊은 떨림이 정재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재가 다시 차를 출발하고 동준이 자신의 상처를 누르고 있는 진서의 떨리는 어깨를 한쪽으로 끌어않았다.
“울지 마라. 진서야. 괜찮아. 저 놈이 의사잖아. 의사선생이 괜찮다니까 믿어도 돼.”
동준이 진서의 눈가를 훔쳐내며 축축하게 젖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도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두 사람은.....”
동준이 말을 하다 통증으로 신음을 하며 끝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해 형. 나중에 해라.”
동준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진서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그 어깨가 동준의 심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도대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더 미안해야 하는건지...
이렇게 너를 곁에 둘 수 있을지...
자꾸 두려워 진다.
니 눈속에 담긴 그 붉은 두려움이 너를 향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가 너에게 가도 되는 걸까.
백미러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애써 외면한 채 차를 몰던 정재가 마을에 도착해 보건소 앞에 차를 세웠다. 동준을 부축해 보건소로 들어선 정재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보건의에게 급하게 말을 했다.
“칼에 찔린 환잡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기는.....그럴 만한.....”
“제가.....하겠습니다. 필요한 것만 준비해주십시오.”
“의사십니까?”
“........”
동준을 침대에 눕히고 소독을 하던 정재가 여전히 얼굴을 풀지 못하고 문 앞에 그대로 서 있는 진서에게 감정 없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가 있어요. 죽을 병 걸린 사람 아니니까 그렇게 병든 닭처럼 목 빼고 있지 말아요.”
다행히 안쪽 장기를 비켜가 봉합수술을 하고 안정제를 맞은 동준이 잠이 들었다. 대기실 의자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진서가 정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눈으로 동준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아요. 잠들었어요. 마취해서 깨면 통증은 좀 있어도 장기를 비켜가서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진서씨 해열제 한대 맞고 잠 좀 자요.”
“난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요. 진서씨 지금 정상 아니에요. 얼굴 어떤지 알아요”
- 너 그런 얼굴 그만 해.
심장 속에 다른 사람 담아 죽을 만큼 아파하는 그런 모습....
나는.....
나는 어떨 것 같니.
내 심장에도 너 담겨 있는데....
그런 나는 보이지도 않지.
그 사람 아픈 것만....
그 사람 통증만 느껴지지.
니가 그럴수록 잔인해지는 내 마음.....
나조차도 두렵다.
해열제를 맞은 진서가 잠들어 있는 동준의 손을 꼭 잡은 채 그 가슴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으로 조여들었다 육신이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 두려워요.
내가 당신 죽일까 두려워요.
차라리 느끼지 말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 삶속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취가 풀리면서 잠이 깬 동준이 자신의 손을 붙잡은 채 잠들어 있는 진서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조심스럽게 얼굴로 옮겨졌다. 불현듯 마당에 들어서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동준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서늘하게 떨려왔었다. 한순간 그 눈빛에 다른 사람이 담긴 듯 느껴졌는데도 그것이 낯설지 않아 이상했다.
- 늘 나를 기다렸던 사람이니...이번에는 내가 왔다.
이젠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내 앞을 막는 것도.....너를 힘들게 하는 것도...
그리고 또 다시 꿈속의 그것들이 되살아나 묘하게 선을 있고 있었다.
- 너를 기다렸다.
한번도 그 기다림을 놓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너를 기다렸다.....
너를.....
기다렸다.
동준이 앞이마를 덮고 있는 진서의 머리를 옆으로 썰어 올리며 자신을 찾아든 그 야릇한 혼란을 손끝에 담았다.
[도대체 너...누구니?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는 듯....
내가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심장 속에 불어든 너....
도대체 누구니.....?]
질료실로 들어서든 정재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넋을 놓은 듯 진서를 바라보고 있던 동준이 정재의 인기척에 그 얼굴을 마주했다.
“어떻게 된 거니? 니가 어떻게 ...?”
“형한테 전화했다가 진서씨가 많이 놀라 있어서 갔었어.”
“그랬어.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는데....”
“걱정 많이 한 사람이..... 그렇게 혼자 버려둬.”
그 말속에 알 수 없는 싸늘한 질책이 묻어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정재의 굳은 얼굴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그 일 때문이라 여기면서도 동준이 정재가 낯설었다. 왠지 자신의 시선을 일부러 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미안하다. 너까지 이런 일에 끼어들게 해서.”
“이제 어떡할 거야?”
“생각을 좀 해봐야 갰다. 근데 진서 몸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어디 아픈 거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 지금 화나 있는 거 알겠는데.....”
“형이.....뭘 알고 있는데.....도대체 형이 아는게 뭔데...?”
차갑게 변해있는 정재의 감정에 동준이 어리둥절했다. 뭔가 그 심장에 치명적인 것을 담아 자신에게 전하려는 듯 그 느낌이 두려움을 만들고 있었다.
“무슨.....말이야? 그 말 무슨 뜻으로 하는 거니?”
심장에 가득 차 숨쉬는 매 순간 통증으로 번지고 있는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다. 동준이 아파하며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폭풍우 속에서 날개가 갈가리 찢기는 진서를 보지 않으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그렇게 놓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정재가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사이 잠들어 있던 진서가 깨어났다. 일어나 앉은 동준을 보자 그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리며 비어있던 눈 속에 맑은 빛이 아른거렸다. 동준이 미안한 마음에 그 코끝을 툭 치며 농담을 했다.
“그렇게 아른 한 눈으로 보지마라. 유혹으로 간주한다.”
진서가 동준의 셔츠를 살짝 들어올려 붕대로 말아놓은 상처부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런 거 이번만 용서해요. 다시는.....그러지 말아요.”
동준이 또 다시 그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축축한 땀과 함께 열기가 식어있었다.
“열은 내린 거 같다.”
“시골집 갈래요? 전번에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진서가 동준에게 그 집을 말하자 정재의 심장의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편하게 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함이 깊어져 가슴이 답답해 올수록 진서에 대한 집착이 더 깊이 각인되어 그것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진통제를 챙겨 고성으로 길을 잡은 정재가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정재가 하려던 말이 계속 동준의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마취가 풀려 조금씩 생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 그 속에서도 계속 그것이 신경 쓰여 불편했다. 진서에게 들키지 않으려 통증을 그대로 삭히고 있던 동준의 몸이 조금씩 경직돼 그 얼굴에 들어나고 있었다. 정재가 갓길로 차를 세우고 생수병과 진통제를 동준에게 건넸다.
“두 사람 다 미련하게 살기로 작정했어. 통증 오면 말하라고 했잖아.”
“어.....응....”
동준이 어정쩡하게 대답을 하자 그제야 눈치를 챈 진서가 그 큰 눈을 더 크게 올려다보았다.
“왜 말을 안 해요?”
“저 놈 지금 무지하게 화나 있거든.....그래서 약 달라는 말도 못했다.”
진서가 백미러로 정재의 얼굴을 보았다. 애써 무심하게 느끼려 하고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 다 보여 마음이 쓰라렸다. 동준이 진통제로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가슴에 끌어않은 진서를 놓지 않은 채 잠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홀로 남겨두고 온 종두에 대한 걱정이 가슴밑바닥에 송곳처럼 깔려 있어 깊은 잠조차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더 달려 마을에 들어선 차가 골목어귀에 닿았다. 동준을 부축해 대문을 들어선 정재의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닿았던 그 떨리던 느낌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사람으로 믿었던 그 순간이 잠시나마 가졌던 유일한 안식이었다.
진서가 약상자를 마루에 내려놓고 불을 밝혔다. 동준이 온몸으로 퍼지는 통증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마루에 앉으려다 벽에 걸린 그림에 눈길을 주었다.
- 흐...흑~
그림에 꽂혀버린 시선이 혼을 빼앗겨 호흡이 목전에 걸려 멈추었다. 믿을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것이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환생....<16> 너는 내게 붉은 두려움이다.
한필중이 진서를 찬찬히 훑어보고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동준의 몸에 내려앉아 있던 그 무게가 하나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담지 않은 그 눈이 닮아 있었다. 결코 자신의 뜻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그 뜨거운 기운이 닮아 있었다. 동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그 말이 이유 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 그 아이 저한테는 여자 아닙니다.
“너만큼이나 당돌하고 겁이 없는 계집애구나.”
동준의 등 뒤에서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그 눈이 한순간 번뜩이며 다른 느낌을 전하고 있었다. 한필중이 진서의 그 눈빛으로 동준을 잡을 수 없을 거란 예감을 확신했다. 그 오지까지 한사람을 찾아온 어린 여자아이 속에 힘으로는 굴복시킬 수 없는 투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동준이 모든 것을 걸고 지금을 버리려 하는 이유가 그 속에 있었다.
한필중의 뒤에 서 있던 태수가 어깨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멈칫거리며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자 태수가 그 특유의 너물그림으로 그들을 재촉했다. “새끼들아 뭐하고 있어. 손님도 오셨는데 안으로 모시지 않고.” 한필중이 눈치만 보고 선 어깨들에게 눈짓을 하자 더 이상 물러서 있지 못하던 어깨들이 동준과 진서를 둘러쌌다. 종두가 그들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물러서라.”
한필중이 싸늘한 눈으로 종두를 노려보았다.
“지금 니 태도......상당한 수위에 올라있다. 더 이상 저 놈 싸고돌면 너도 온전히 걸어 나가기 힘들다.” “어차피 저 때문에 이곳에 발들인 아입니다. 사장님께서 보내지 않겠다면.....제가 보내겠습니다. 남은 건 제게 하십시오. 얼마든지 그 대가 치루겠습니다.”
묘한 자극이었다. 한필중이 자신이 왜 그토록 동준에게 집착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동준을 놓고 나면 결국 지윤을 곁에 두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라 하기엔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그 존재가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었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거쳐 업소를 차리고 번듯하게 문패를 단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입을 열면 간이라도 빼낼 듯이 혀처럼 굴어대는 그들에게서 사람에 대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밑바닥을 거쳐 그기까지 올라와 앉았으나 누구에게도 자신을 풀고 어깨를 쉴 수 없다는 것이 한순간 그 삶을 공허하게 했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고독을 가져야 하는 그 삶에 어느 듯 한필중 자신도 지쳐가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번듯한 업소 몇 개쯤은 가지고도 남을 그가 늘 없는 존재처럼 소리없이 움직이는 그것이 한필중에겐 탐구하고픈 대상으로 낙점됐었다. 아무 것에도 욕심을 내지 않는 그 오만함이 더 끌렸고 가지지 않고도 소리 없이 흘려내는 당당함이 한필중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이었기에 어느 듯 갈망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의 향기에 취해 지윤의 곁에 두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구도 아닌 동준 그 존재여서 다른 모든 걸 접고 그것마저 용납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많은 기밀들이 동준에게 흘러가 있었고 결국 보내고 남을 것은 그 불안함들과 지윤의 분노와 자신의 공허함이 될 것이었다.
동준이 종두를 보며 작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보내고 남을 생각을 하고 있는 그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 안돼, 형. 그렇게는 안돼. 두고는 못 간다.
- 아니. 가라. 가야 돼. 너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못 벗어난다.
동준의 뒤에 서 있던 진서가 휘청거리며 그 눈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기를 내 보냈다. 잠시 그 몸으로 찾아들어 영혼과 뒤섞여 있던 그것들이 빠져나가고 있어 그 상황이 혼란스럽게 얽히고 있었다. 앞이마가 젖어들어 식은땀을 흘리며 하얗게 변하고 있는 진서의 얼굴을 돌아본 동준의 가슴이 더 조급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괜찮니? 서 있을 수 있겠니?”
“괜찮아요.”
동준이 손을 뻗어 진서가 들고 있던 목검을 받아들었다.
“진서야, 좀 있다 저기 있는 차 보이지. 그리로 바로 뛰어라.”
진서의 등줄기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핏기를 잃어있는 그 얼굴이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 보여 동준이 남은 손을 뒤로 내어 진서의 손을 붙잡았다.
“조금만......조금만......그대로 참아라. 금방 끝난다.”
동준이 들고 있는 목검의 거리만큼 사이를 좁히지 못하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어깨들 사이로 종두가 들어왔다. 날쌔고 빈틈이 없는 그 주먹에 어깨들이 한발 치 뒤로 나가 떨어졌다. 종두가 들고 있던 열쇠를 동준의 손에 쥐어주며 작게 말을 보냈다.
“아이들은 내가 막을 테니까 좀 있다 빠져 나가라.”
“같이 나가.”
“내 걱정 마라.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일이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나 니가 가진 파일들이 한동안은 바람막이가 될 수 있다. 남은 일을 그때 생각해도 된다. 그러니 다른 생각말고 가라.”
동준과 종두의 태도에서 다른 눈치를 읽은 태수가 속주머니에 있던 단도를 만지작거렸다. 질기고 끈질긴 연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 일로 시작된 악연이 십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수만 가지로 뿌리를 쳐 악의 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집안의 몰락이 동준이 농간으로 가속됐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된 태수의 심장에 퍼런 칼날이 붉은 피를 뿜으며 동준의 심장에 꽂힐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품었던 두 여자가 한순간 돌아선 이유조차도 그 선이 동준에게 닿아 있었던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그 치욕이 매 순간 영혼을 짓이기고 있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결코 한필중의 수하에 자신을 둘 필요가 없었다. 오직 동준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어내 그 육신을 갈가리 찢어낼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지금 자신의 앞에 그 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를 완전하게 매장시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영원히 참수할 기회가 자신의 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동준이 날아드는 어깨들을 목검으로 막아내고 잠시 몸을 돌린 사이 진서가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흘러내린 땀이 셔츠의 앞섶을 적시고 있었다. 종두가 눈짓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갈 것을 재촉하자 동준이 주저앉은 진서를 일으켜 세워 대문 쪽으로 뛰었다.
종두의 포진으로 어깨들이 동준을 따르지 못하자 마음이 급해진 태수가 다급히 달려들어 그들 앞을 막아섰다.
“이렇게 가면 써나. 아직 남은 일이 많은데...안 그러냐?”
“비켜라.”
“내가 오늘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이리 쉽게 막을 내리게 할 수는 없지.”
단도를 꺼내들은 태수의 눈에 섬뜩한 한기가 고이고 있었다. 연이어 달려온 어깨 둘이 동준을 막아서며 칼을 든 태수를 제지했다.
“형님 그 칼 치우십시오. 모시고 들어가면 될 일입니다. 칼까지 빼들고 왜 이러십니까.”
그 말을 내 놓는 어깨의 뺨을 후려갈기며 꿈틀거리는 분노를 들어낸 태수가 한순간 그것을 동준에게 휘둘렀다.
“이 새끼는 내 손으로 보낸다. 더러운 시궁창 청소까지 해가면서 기다린 날이다.”
야비하게 웃음을 흘리며 이를 드러내든 태수가 그 단도를 진서에게 겨누었다. 재대로 서 있지 조차 못하던 창백한 얼굴이 호흡을 조절하지 못하고 떨려오고 있었다.
“그럼....이 계집부터 포를 떠줄까. 끼리끼리 논다고 이년 눈빛 제수없이 맘에 안들었는데...니가 내 앞에서 내 약혼녀를 호텔방으로 데려갔으니...나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냐. 어디부터 손을 봐줄까?”
“친구라는 그 허울조차 없었다면 오래전에 내가 너 끝냈다. 니 아버지 유언만 아니었어도 너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더 이상 내 앞에서 얼쩡대지 마라.”
“개새끼...함부로 아버지 들먹이지 마라.”
“아버지 몰락이 나 때문이라 생각 하냐?”
“개소리 더 이상 널어놓지 마라.”
“니 아버지 평생 니 구린 뒤 청소하느라 같이 시궁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불쌍한 사람이다. 결국 나라는 씨앗도 너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병신새끼. 넌 죽었다 깨나도 그 모든 것이 너로 인해 비롯됐다는 걸 인정하지 않겠지.”
단도를 들고 등을 진 채 서 있어 한필중이 태수가 동준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종두와 어깨들이 가로막고 있던 자리를 한 치 비켜내자 태수손에 들려있던 단도가 한필중의 눈에 들어왔다. 한순간 그 심장이 서늘해지며 자신의 뜻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 확인하게 해주었다. 한필중이 서둘러 대문 앞으로 발길을 옮기며 태수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지 못해.”
그 말과 동시 태수가 휘두른 단도가 진서에게 날아들었고 동준이 진서를 안고 썰어졌다. 진서의 가슴위로 온기가 느껴지는 축축한 뭔가가 번지고 있었다. 손을 빼내 그것을 확인한 진서가 입술을 떨며 두려움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종두가 급하게 달려와 동준의 상채를 일으켰다. 피 묻은 손을 떨며 입 밖으로 말을 내놓지 못하던 진서가 창백한 얼굴로 한필중을 올려다보며 울먹였다. 처음 자신을 노려보던 그 눈빛이 어느 듯 사라지고 놀란 눈 속에 두려움이 가득한 여자아이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무도 이사람한테 손대지 마..”
한필중이 태수의 뺨을 후려갈겼다.
“누가....너한테 이런 권한을 줬어. 이 새끼야. 어디서 함부로 칼을 빼들고 설쳐.”
동준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 종두가 한필중에게 싸늘한 말을 던졌다.
“병원 데려가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데려가라고 해라.”
“정말....죽이고 싶습니까?”
“더 이상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라. 내가 그 놈 어찌할지 아직 결정 못했으니.”
대문 안으로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급하게 차한대가 들어섰다. 문을 열고 나온 정재의 눈이 붉은 피로 물든 동준의 셔츠를 보고 그 한번으로 모든 것을 읽어내고 있었다. 종두가 옆에 서 있던 어깨를 주먹으로 날리고 급하게 동준을 정재의 차로 데려갔다. 정재에게 동준을 넘긴 후 뒤따라 뛰어오는 진서를 안아 올려 뒤 자석에 앉히고 차 문을 닫았다.
뒤따라오던 차들을 힘겹게 따돌린 정재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버티고 앉은 동준의 상처를 살펴 보았다. 깊게 관통한 상처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눈물로 뒤범벅이 된 진서가 온몸을 떨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쓸어져 버릴 듯 사색이 돼 있는 진서에게 마른 수건을 쥐어준 정재가 그 손을 동준의 상처위에 갖다 놓았다.
“누르고 있어요. 괜찮아요. 안 죽어요. 그러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상처 누르고 있어요.”
애써 태연한척 진서의 눈을 보며 차갑게 말을 내놓는 정재의 심장이 뜨거운 화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동준에 대한 분노였다. 연락이 되지 않던 그 순간도 심장이 조이는 두려움과 또 다른 잔인한 생각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망부석처럼 앉은 진서의 고통을 보면서도 그 가슴속 심연의 다른 얼굴이 영원이 동준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뜨거운 삶속에 가까이 내려앉기도 전에 날개를 태워버릴 진서를 알아 그를 향한 심장이 열기와 냉기로 몸을 휘감으며 갈라지고 있었다. 버리고 싶은 싸늘한 잔인함과 놓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깊은 떨림이 정재를 괴롭히고 있었다.
정재가 다시 차를 출발하고 동준이 자신의 상처를 누르고 있는 진서의 떨리는 어깨를 한쪽으로 끌어않았다.
“울지 마라. 진서야. 괜찮아. 저 놈이 의사잖아. 의사선생이 괜찮다니까 믿어도 돼.”
동준이 진서의 눈가를 훔쳐내며 축축하게 젖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도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두 사람은.....”
동준이 말을 하다 통증으로 신음을 하며 끝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해 형. 나중에 해라.”
동준이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진서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끌어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그 어깨가 동준의 심장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도대체 내가 너한테 얼마나 더 미안해야 하는건지...
이렇게 너를 곁에 둘 수 있을지...
자꾸 두려워 진다.
니 눈속에 담긴 그 붉은 두려움이 너를 향한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가 너에게 가도 되는 걸까.
백미러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애써 외면한 채 차를 몰던 정재가 마을에 도착해 보건소 앞에 차를 세웠다. 동준을 부축해 보건소로 들어선 정재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는 보건의에게 급하게 말을 했다.
“칼에 찔린 환잡니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합니다.”
“여기는.....그럴 만한.....”
“제가.....하겠습니다. 필요한 것만 준비해주십시오.”
“의사십니까?”
“........”
동준을 침대에 눕히고 소독을 하던 정재가 여전히 얼굴을 풀지 못하고 문 앞에 그대로 서 있는 진서에게 감정 없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가 있어요. 죽을 병 걸린 사람 아니니까 그렇게 병든 닭처럼 목 빼고 있지 말아요.”
다행히 안쪽 장기를 비켜가 봉합수술을 하고 안정제를 맞은 동준이 잠이 들었다. 대기실 의자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진서가 정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눈으로 동준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아요. 잠들었어요. 마취해서 깨면 통증은 좀 있어도 장기를 비켜가서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진서씨 해열제 한대 맞고 잠 좀 자요.”
“난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요. 진서씨 지금 정상 아니에요. 얼굴 어떤지 알아요”
- 너 그런 얼굴 그만 해.
심장 속에 다른 사람 담아 죽을 만큼 아파하는 그런 모습....
나는.....
나는 어떨 것 같니.
내 심장에도 너 담겨 있는데....
그런 나는 보이지도 않지.
그 사람 아픈 것만....
그 사람 통증만 느껴지지.
니가 그럴수록 잔인해지는 내 마음.....
나조차도 두렵다.
해열제를 맞은 진서가 잠들어 있는 동준의 손을 꼭 잡은 채 그 가슴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긴장으로 조여들었다 육신이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 두려워요.
내가 당신 죽일까 두려워요.
차라리 느끼지 말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신 삶속에 뛰어들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취가 풀리면서 잠이 깬 동준이 자신의 손을 붙잡은 채 잠들어 있는 진서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조심스럽게 얼굴로 옮겨졌다. 불현듯 마당에 들어서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그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동준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서늘하게 떨려왔었다. 한순간 그 눈빛에 다른 사람이 담긴 듯 느껴졌는데도 그것이 낯설지 않아 이상했다.
- 늘 나를 기다렸던 사람이니...이번에는 내가 왔다.
이젠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내 앞을 막는 것도.....너를 힘들게 하는 것도...
그리고 또 다시 꿈속의 그것들이 되살아나 묘하게 선을 있고 있었다.
- 너를 기다렸다.
한번도 그 기다림을 놓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너를 기다렸다.....
너를.....
기다렸다.
동준이 앞이마를 덮고 있는 진서의 머리를 옆으로 썰어 올리며 자신을 찾아든 그 야릇한 혼란을 손끝에 담았다.
[도대체 너...누구니?
처음부터 나를 알고 있는 듯....
내가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심장 속에 불어든 너....
도대체 누구니.....?]
질료실로 들어서든 정재가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넋을 놓은 듯 진서를 바라보고 있던 동준이 정재의 인기척에 그 얼굴을 마주했다.
“어떻게 된 거니? 니가 어떻게 ...?”
“형한테 전화했다가 진서씨가 많이 놀라 있어서 갔었어.”
“그랬어. 다행이다. 걱정 많이 했는데....”
“걱정 많이 한 사람이..... 그렇게 혼자 버려둬.”
그 말속에 알 수 없는 싸늘한 질책이 묻어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정재의 굳은 얼굴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그 일 때문이라 여기면서도 동준이 정재가 낯설었다. 왠지 자신의 시선을 일부러 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미안하다. 너까지 이런 일에 끼어들게 해서.”
“이제 어떡할 거야?”
“생각을 좀 해봐야 갰다. 근데 진서 몸이 좀 이상한 것 같다. 어디 아픈 거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 지금 화나 있는 거 알겠는데.....”
“형이.....뭘 알고 있는데.....도대체 형이 아는게 뭔데...?”
차갑게 변해있는 정재의 감정에 동준이 어리둥절했다. 뭔가 그 심장에 치명적인 것을 담아 자신에게 전하려는 듯 그 느낌이 두려움을 만들고 있었다.
“무슨.....말이야? 그 말 무슨 뜻으로 하는 거니?”
심장에 가득 차 숨쉬는 매 순간 통증으로 번지고 있는 그것을 토해내고 싶었다. 동준이 아파하며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폭풍우 속에서 날개가 갈가리 찢기는 진서를 보지 않으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그렇게 놓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정재가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사이 잠들어 있던 진서가 깨어났다. 일어나 앉은 동준을 보자 그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리며 비어있던 눈 속에 맑은 빛이 아른거렸다. 동준이 미안한 마음에 그 코끝을 툭 치며 농담을 했다.
“그렇게 아른 한 눈으로 보지마라. 유혹으로 간주한다.”
진서가 동준의 셔츠를 살짝 들어올려 붕대로 말아놓은 상처부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런 거 이번만 용서해요. 다시는.....그러지 말아요.”
동준이 또 다시 그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축축한 땀과 함께 열기가 식어있었다.
“열은 내린 거 같다.”
“시골집 갈래요? 전번에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진서가 동준에게 그 집을 말하자 정재의 심장의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편하게 걸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편함이 깊어져 가슴이 답답해 올수록 진서에 대한 집착이 더 깊이 각인되어 그것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진통제를 챙겨 고성으로 길을 잡은 정재가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정재가 하려던 말이 계속 동준의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마취가 풀려 조금씩 생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한 그 속에서도 계속 그것이 신경 쓰여 불편했다. 진서에게 들키지 않으려 통증을 그대로 삭히고 있던 동준의 몸이 조금씩 경직돼 그 얼굴에 들어나고 있었다. 정재가 갓길로 차를 세우고 생수병과 진통제를 동준에게 건넸다.
“두 사람 다 미련하게 살기로 작정했어. 통증 오면 말하라고 했잖아.”
“어.....응....”
동준이 어정쩡하게 대답을 하자 그제야 눈치를 챈 진서가 그 큰 눈을 더 크게 올려다보았다.
“왜 말을 안 해요?”
“저 놈 지금 무지하게 화나 있거든.....그래서 약 달라는 말도 못했다.”
진서가 백미러로 정재의 얼굴을 보았다. 애써 무심하게 느끼려 하고 있었지만 그 불편함이 다 보여 마음이 쓰라렸다. 동준이 진통제로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가슴에 끌어않은 진서를 놓지 않은 채 잠속으로 빠지고 있었다. 홀로 남겨두고 온 종두에 대한 걱정이 가슴밑바닥에 송곳처럼 깔려 있어 깊은 잠조차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을 더 달려 마을에 들어선 차가 골목어귀에 닿았다. 동준을 부축해 대문을 들어선 정재의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처음 그곳에 닿았던 그 떨리던 느낌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사람으로 믿었던 그 순간이 잠시나마 가졌던 유일한 안식이었다.
진서가 약상자를 마루에 내려놓고 불을 밝혔다. 동준이 온몸으로 퍼지는 통증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마루에 앉으려다 벽에 걸린 그림에 눈길을 주었다.
- 흐...흑~
그림에 꽂혀버린 시선이 혼을 빼앗겨 호흡이 목전에 걸려 멈추었다. 믿을 수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것이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말도 안돼.
이건 꿈이다.
내가 다시 그 꿈속에 빠진 것이다.
당신 알아요.
너무 좋은건...너무 기쁜건 차라리 가슴을 붉게 물들이는 두려움이라는 걸...
마주한 그 눈속에 내려앉은 내가 보여서....
내 심장이 다시 살아났어요.
당신이 나를 살려내...
붉은 피를 돌게 했어요.
내가 없는 곳에서 외롭지 말아요.
그 마음 서러운 것도 내게는 아까운 것이니....
내가 없는 그 어떤 곳에서도 한숨 한점마저도 흘려 보내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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