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2000년 3월, 결혼을 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으나 서로 집안끼리 왕래가 깊은 것은 아니었고, 단지 저의 친언니와 시누이가 고등학교 동창이어서 아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소개를 받았을 때는 언니 친구의 오빠가 몸이 약해서 혼기를 놓쳤을 뿐이지, 매우 괜찮은 사람이고, 참한 여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점(9세), 정해진 직장이 없는 점, 현재 큰 병을 앓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도 건강이 썩 좋지는 않은 점, 저는 천주교인데 반해 그는 불교인 점 등 걸리는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님은 현재 남편이 현재 정해진 직장은 없지만 프리랜서로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넉넉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웬만한 직장인보다는 괜찮은 수준으로 집안에서 보조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이해가 안 되지만 그저 그러려니, 좋게만 생각했었던 게 저의 실수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미술을 전공했고, 또 학업에 아직 미련이 있다고 하자 결혼하면 계속해서 공부도 하게 해 주고, 해외 유학도 갈 수 있도록 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종교도 천주교로 개종하겠노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만나보니 차차 호감도 생겼고, 어차피 사랑만 갖고 결혼하는 연애 결혼이 아닌 이상 조건도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정도 조건이라면 그렇게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결혼 승낙 의사를 밝히니,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습니다. 혼수도 해 올 필요도 없고, 결혼 비용도 모두 부담할 테니, 당장 결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만난지 3개월 만에, 일이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저도 혼기를 꽉 채운 20대 후반이었고, 앞으로 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생각들은 점점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신혼여행을 갔다 오니, 남편은 자기가 친가에서 운영하는 하숙집 골목에 자판기를 하나 세워 놓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동전이 한달에 약 30만 원 정도이고, 거기다가 원래 자신의 방으로 썼던 방을 하숙 놓으면 40만 원 정도 나올 터이니 총 70만원으로 생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70만 원으로 생활할 수도 있고, 그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도 많으리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저의 생활 수준은 그렇지 않았고, 그런 생활을 감수하고 시작한 결혼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70만원으로는 살기 어렵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시어머님한테 얘기를 했는지, 곧 시어머님이 자판기고 방값이고 뭐고 자신이 다 관리하고 당신이 매달 100만 원씩 보조해 주겠노라고 저한테 말씀하시더군요. 아파트 24평 짜리 사줬겠다, 돈 백만 원이면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기가 차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똑똑하고 건강하지 못한 당신 아들을 무시해서인지, 같이 사는 것은 싫다시며 당신 사시는 근교 15분 거리에 아파트를 얻어주시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아들을 필요할 때마다 불러냈습니다. 예컨대, 내가 여행을 가니 집을 지켜라, 공항까지 운전해라, 나 없을 때 개 밥 좀 챙겨줘라,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부모이고, 결혼 전 마흔 살 가까이까지 해왔던 일이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무직자인 남편이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공간과 최소한의 먹을 것을 던져주고 사육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조건 상관 없이 사랑만으로 시작한 사이라면 이 정도는 어려움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려움이 있더라도 둘이 힘을 합쳐 이겨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결혼 전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나 다름 없었습니다. 결혼 전 이야기를 꺼내면 물질만 밝히는 속물로 몰아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천주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이야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면 좋기야 하겠지만 남의 종교도 소중한 법이니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이 점점 저를 기운빠지게 했습니다.
처음 결혼해서 제가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침에 출근해도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남편, 제가 퇴근해서는 움직인 대로 그대로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보는 것은 저를 매번 맥빠지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얼마간 버는 것을 생각해서인지 처음 말했던 시어머님의 생활비 보조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처음에 100만원씩 주던 생활비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어느 달에는 80만 원, 어느 달에는 50만 원으로 들쭉날쭉했습니다. 생활비 주는 당신도 어려우니 참으라는 데야 할 수 없었습니다(오히려 저의 통장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달 프랑스에 유학하는 아들에게 몇 백씩 부쳐주고(이건 시부모님이 말씀), 또 결혼한 딸한테 용돈조로 200만 원씩 준다는 걸 알면서도(이건 건너건너 소문으로 앎) 그것을 참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신 사정(실제로는 마음)에 따라 저는 최저 생활에서 더 줄이기도 하고, 더더 줄이기도 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굶고 헐벗는 것은 아니니, 또는 더 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데에야 말대꾸를 할 힘도 잃었구요.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남편이 좀 책임감이 생길까, 또 시부모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실까, 또 제 건강도 과히 좋지 않아서 사표를 냈습니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저의 생활만 궁핍해졌습니다. 지금도 지금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절망감이 저를 끔찍하게 했습니다. 언니 친구였던 시누이는 곧 현재 매매가 진행 중인 집만 팔리면 재산 분배를 해 줄 테니 참아보라고 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또 남편의 수동적이고 게으른 생활 습관도 고쳐질 줄 몰랐지만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다시 한 번 참아보자고 결심도 수없이 했습니다. 그러다 둘째가 들어섰습니다. 대책 없음에 스스로 절망했지만 새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볼 궁리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중매결혼을 하면서 최소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저는 생활비를 위해 결혼 전 나가던 직장에 다시 나가기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양육이랑 생활은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친정 엄마가 사시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최소한의 우윳값만 드리고 키워달라고 청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고 있던 서울의 아파트 24평을 처분하고 친정인 안산으로 전세를 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명의만 남편 이름이지 부동산을 계약하는 데는 남편은 아무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집값은 오를지도 모르니 아파트는 전세로 얻느니, 융자를 끼워서라도 사야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어차피 전세나 자가나 아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시어머님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도 가치를 두시는지라 51평 아파트를 계약하셨습니다. 싯가의 70% 이상을 융자를 받아서 산, 말로만 제(남편) 집이었죠. 서울 아파트를 처분한 돈만 다시 들어갔어도 융자를 그렇게 받지 않아도 될 터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침묵하기로 했습니다.
융자를 많이 받았으니 융자 상환금으로 매달 많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렇게 되자, 너희 집 사주느라고 이렇게 돈을 쓰게 되었으니, 생활비는 더 이상 보조해 줄 수 없다더군요. 제가 직장에 나가서 버니까 그걸로 충당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이가 얼만데 생활비까지 부모가 책임져야 하냐고, 남편이 아니고 아내라도 번다면 된 거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졸지에 남편은 집에서 쉬고(?) 제가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친정에 얹혀서 출퇴근하고, 아이들은 친정 어머니가 키워 주시고, 남편은 옆 동 51평 큰 아파트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다가 어머님이 부르시면 '집 보러 가는' 그런 삶이 2년 여 계속되었습니다. 집에 있더라도 살림을 돕는다든지, 아이들을 보살피면 좋을 터인데, 그런 일도 없었고, 스스로 식사하는 것조차 친정 어머니가 챙겨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님이나 누구든 이런 삶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아니, 가만히나 있으면 다행일 텐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 가뜩이나 몸도 의지도 약한 남편한테 '자립'하라며, 생전 해보지도 않던 세차일을 하라고 종용해서 고생만 죽어라 하고 그만 둔 적도 있었습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이었죠.
지난 2004년 12월 말, 길게 끌던 시부모님 집 처분이 마무리되고 재산을 분할해 주셨습니다. 일산 주상복합 아파트 1채, 월세 160만원이 나오는 가게 한 채. 그것도 아들이 못미더워 아파트만 주고, 가게 명의는 아버님으로 해 두시겠다는 걸 제가 겨우 설득해서 남편 명의로 해 두었습니다. 2남 1녀 중 장남의 몫으로서 특별히 감안된 바는 없었지만 그렇게 만족하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아직 월세는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사정사정해야 그것도 일부를 생활비로 내놓겠지요. 이렇게 당연한 일도 설득과 투쟁의 연속이랍니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재롱을 부리고 하니, 시부모님이 아이 욕심이 나셨나 봅니다. 이제 안산 집을 팔고 일산 당신 집 아랫층으로 이사오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놀이방에 보내면 반나절 이상 어른 손을 타지 않으니 아이들 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의만 남편 이름인 아파트... 어쨌든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주일 전 안산 집이 팔렸습니다. 어차피 생활은 저의 친정에서 거주하다시피 해서 생활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쨌든 빨리 일산 집으로 이사를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첫째 아이는 유아원에 갈 나이이기는 하지만 둘째 아이는 놀이방에 보내기는 너무 어린 나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친정 어머니 품에서 잘 자라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놀이방에 맡겨 두라는 데에는 기가 막혔습니다. 더구나 그 곳에 가면 남편은 그 큰 집에서 지금과 동일하게 빈둥빈둥하는 생활을 할 것이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생활비를 벌러 가는 생활을 계속할 테지요.
지금까지는 뭔가 모르는 막연한 희망으로 살았지만 이젠 더 이상 바뀔 것도, 바랄 것도 없는 삶을 그렇게 또다시 시작하기는 싫었습니다. 어차피 당장 그 큰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던 것도 아니니 지금처럼 몇 년간 친정 부모님의 집에서 살면서 보조를 받고, (정말 그 집을 정말 남편과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잠시 전세를 놓고 그 돈을 은행에 맡겨 미래를 위한 종잣돈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얘기가 시부모님께 들어가니 당장 호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무조건 이사와라. 니가 도대체 뭐가 부족하냐. 너는 지금처럼 직장 생활하며 돈만 벌어오면 된다. 너에 대해서는 아예 포기했다. 밤 늦게 다니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손주니까 안 된다. 아이들은 네 친정 부모처럼 무조건 품에 안고 키우는 것보다는 대범(?)하게 키울 필요가 있다. 내가 유아원이나 놀이방은 알아보겠다. 내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남들에게 처가살이를 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느냐. 내 아들이 불쌍하다. 내가 집도 얻어줬는데 나는 싫다. 너 처음에는 말도 없고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분명 친정에서 누군가 너를 꼬드기는 모양이다. 이제 절대 친정과 왕래를 끊어라(아니면 이혼도 불사하겠다, 거의 협박으로). 이것이 시부모님의 요지입니다.
남편은 더 가관이라,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저를 상대로 퍼부어댈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내 아들이 불쌍하다"는 시어머님 말씀에 말문이 틔여 "그 동안 내가 처가에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느냐" "너랑 나랑은 부모님께 이렇게 혼이 나도 싸다"며 익히 보던 전형적인 '마마보이' 기질을 다시 보이는 데에야 만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러게 오라고 할 때 가만히 이사 왔으면 큰 소리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저를 쓸데 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더군요.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시부모님 말씀대로 굶거나 헐벗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희망이 없는, 내 기대가 무너진,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상실된 삶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빈곤이나 폭력과 구타 등 극한 이혼의 조건이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은 형편 또는 배부른 고민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무의미한 삶의 연장입니다. 아이들까지 보기 싫어질 정도이니까요... 여러분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마마보이.. 말만 들었지, 실제로 겪어보니..
저는 지난 2000년 3월, 결혼을 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으나 서로 집안끼리 왕래가 깊은 것은 아니었고, 단지 저의 친언니와 시누이가 고등학교 동창이어서 아는 정도였습니다.
제가 소개를 받았을 때는 언니 친구의 오빠가 몸이 약해서 혼기를 놓쳤을 뿐이지, 매우 괜찮은 사람이고, 참한 여자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점(9세), 정해진 직장이 없는 점, 현재 큰 병을 앓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고, 지금도 건강이 썩 좋지는 않은 점, 저는 천주교인데 반해 그는 불교인 점 등 걸리는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님은 현재 남편이 현재 정해진 직장은 없지만 프리랜서로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넉넉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웬만한 직장인보다는 괜찮은 수준으로 집안에서 보조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이해가 안 되지만 그저 그러려니, 좋게만 생각했었던 게 저의 실수였습니다. 더구나 제가 미술을 전공했고, 또 학업에 아직 미련이 있다고 하자 결혼하면 계속해서 공부도 하게 해 주고, 해외 유학도 갈 수 있도록 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종교도 천주교로 개종하겠노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만나보니 차차 호감도 생겼고, 어차피 사랑만 갖고 결혼하는 연애 결혼이 아닌 이상 조건도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정도 조건이라면 그렇게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결혼 승낙 의사를 밝히니, 일은 일사천리로 흘러갔습니다. 혼수도 해 올 필요도 없고, 결혼 비용도 모두 부담할 테니, 당장 결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만난지 3개월 만에, 일이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지만 저도 혼기를 꽉 채운 20대 후반이었고, 앞으로 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생각들은 점점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신혼여행을 갔다 오니, 남편은 자기가 친가에서 운영하는 하숙집 골목에 자판기를 하나 세워 놓았는데. 거기서 나오는 동전이 한달에 약 30만 원 정도이고, 거기다가 원래 자신의 방으로 썼던 방을 하숙 놓으면 40만 원 정도 나올 터이니 총 70만원으로 생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물론 70만 원으로 생활할 수도 있고, 그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도 많으리라는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최소한 저의 생활 수준은 그렇지 않았고, 그런 생활을 감수하고 시작한 결혼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는 70만원으로는 살기 어렵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시어머님한테 얘기를 했는지, 곧 시어머님이 자판기고 방값이고 뭐고 자신이 다 관리하고 당신이 매달 100만 원씩 보조해 주겠노라고 저한테 말씀하시더군요. 아파트 24평 짜리 사줬겠다, 돈 백만 원이면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기가 차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똑똑하고 건강하지 못한 당신 아들을 무시해서인지, 같이 사는 것은 싫다시며 당신 사시는 근교 15분 거리에 아파트를 얻어주시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아들을 필요할 때마다 불러냈습니다. 예컨대, 내가 여행을 가니 집을 지켜라, 공항까지 운전해라, 나 없을 때 개 밥 좀 챙겨줘라, 뭐 이런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부모이고, 결혼 전 마흔 살 가까이까지 해왔던 일이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무직자인 남편이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공간과 최소한의 먹을 것을 던져주고 사육당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조건 상관 없이 사랑만으로 시작한 사이라면 이 정도는 어려움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려움이 있더라도 둘이 힘을 합쳐 이겨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결혼 전 이야기는 없었던 이야기나 다름 없었습니다. 결혼 전 이야기를 꺼내면 물질만 밝히는 속물로 몰아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천주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이야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면 좋기야 하겠지만 남의 종교도 소중한 법이니까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이 점점 저를 기운빠지게 했습니다.
처음 결혼해서 제가 직장을 바로 그만두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침에 출근해도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남편, 제가 퇴근해서는 움직인 대로 그대로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보는 것은 저를 매번 맥빠지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얼마간 버는 것을 생각해서인지 처음 말했던 시어머님의 생활비 보조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처음에 100만원씩 주던 생활비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어느 달에는 80만 원, 어느 달에는 50만 원으로 들쭉날쭉했습니다. 생활비 주는 당신도 어려우니 참으라는 데야 할 수 없었습니다(오히려 저의 통장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달 프랑스에 유학하는 아들에게 몇 백씩 부쳐주고(이건 시부모님이 말씀), 또 결혼한 딸한테 용돈조로 200만 원씩 준다는 걸 알면서도(이건 건너건너 소문으로 앎) 그것을 참아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신 사정(실제로는 마음)에 따라 저는 최저 생활에서 더 줄이기도 하고, 더더 줄이기도 해야 한다니 기가 막혔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굶고 헐벗는 것은 아니니, 또는 더 심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 데에야 말대꾸를 할 힘도 잃었구요.
제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남편이 좀 책임감이 생길까, 또 시부모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실까, 또 제 건강도 과히 좋지 않아서 사표를 냈습니다. 그래도 변화는 없었고, 오히려 저의 생활만 궁핍해졌습니다. 지금도 지금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는 절망감이 저를 끔찍하게 했습니다. 언니 친구였던 시누이는 곧 현재 매매가 진행 중인 집만 팔리면 재산 분배를 해 줄 테니 참아보라고 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또 남편의 수동적이고 게으른 생활 습관도 고쳐질 줄 몰랐지만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결혼이니 다시 한 번 참아보자고 결심도 수없이 했습니다. 그러다 둘째가 들어섰습니다. 대책 없음에 스스로 절망했지만 새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볼 궁리를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중매결혼을 하면서 최소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저는 생활비를 위해 결혼 전 나가던 직장에 다시 나가기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양육이랑 생활은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친정 엄마가 사시는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최소한의 우윳값만 드리고 키워달라고 청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고 있던 서울의 아파트 24평을 처분하고 친정인 안산으로 전세를 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명의만 남편 이름이지 부동산을 계약하는 데는 남편은 아무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님은 집값은 오를지도 모르니 아파트는 전세로 얻느니, 융자를 끼워서라도 사야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어차피 전세나 자가나 아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시어머님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도 가치를 두시는지라 51평 아파트를 계약하셨습니다. 싯가의 70% 이상을 융자를 받아서 산, 말로만 제(남편) 집이었죠. 서울 아파트를 처분한 돈만 다시 들어갔어도 융자를 그렇게 받지 않아도 될 터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침묵하기로 했습니다.
융자를 많이 받았으니 융자 상환금으로 매달 많은 돈이 빠져나가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렇게 되자, 너희 집 사주느라고 이렇게 돈을 쓰게 되었으니, 생활비는 더 이상 보조해 줄 수 없다더군요. 제가 직장에 나가서 버니까 그걸로 충당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이가 얼만데 생활비까지 부모가 책임져야 하냐고, 남편이 아니고 아내라도 번다면 된 거 아니냐고 하셨습니다. 졸지에 남편은 집에서 쉬고(?) 제가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친정에 얹혀서 출퇴근하고, 아이들은 친정 어머니가 키워 주시고, 남편은 옆 동 51평 큰 아파트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다가 어머님이 부르시면 '집 보러 가는' 그런 삶이 2년 여 계속되었습니다. 집에 있더라도 살림을 돕는다든지, 아이들을 보살피면 좋을 터인데, 그런 일도 없었고, 스스로 식사하는 것조차 친정 어머니가 챙겨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님이나 누구든 이런 삶에 대해 문제를 느끼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아니, 가만히나 있으면 다행일 텐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 가뜩이나 몸도 의지도 약한 남편한테 '자립'하라며, 생전 해보지도 않던 세차일을 하라고 종용해서 고생만 죽어라 하고 그만 둔 적도 있었습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삶이었죠.
지난 2004년 12월 말, 길게 끌던 시부모님 집 처분이 마무리되고 재산을 분할해 주셨습니다. 일산 주상복합 아파트 1채, 월세 160만원이 나오는 가게 한 채. 그것도 아들이 못미더워 아파트만 주고, 가게 명의는 아버님으로 해 두시겠다는 걸 제가 겨우 설득해서 남편 명의로 해 두었습니다. 2남 1녀 중 장남의 몫으로서 특별히 감안된 바는 없었지만 그렇게 만족하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아직 월세는 구경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사정사정해야 그것도 일부를 생활비로 내놓겠지요. 이렇게 당연한 일도 설득과 투쟁의 연속이랍니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재롱을 부리고 하니, 시부모님이 아이 욕심이 나셨나 봅니다. 이제 안산 집을 팔고 일산 당신 집 아랫층으로 이사오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놀이방에 보내면 반나절 이상 어른 손을 타지 않으니 아이들 보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의만 남편 이름인 아파트... 어쨌든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일주일 전 안산 집이 팔렸습니다. 어차피 생활은 저의 친정에서 거주하다시피 해서 생활은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쨌든 빨리 일산 집으로 이사를 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첫째 아이는 유아원에 갈 나이이기는 하지만 둘째 아이는 놀이방에 보내기는 너무 어린 나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친정 어머니 품에서 잘 자라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놀이방에 맡겨 두라는 데에는 기가 막혔습니다. 더구나 그 곳에 가면 남편은 그 큰 집에서 지금과 동일하게 빈둥빈둥하는 생활을 할 것이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생활비를 벌러 가는 생활을 계속할 테지요.
지금까지는 뭔가 모르는 막연한 희망으로 살았지만 이젠 더 이상 바뀔 것도, 바랄 것도 없는 삶을 그렇게 또다시 시작하기는 싫었습니다. 어차피 당장 그 큰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던 것도 아니니 지금처럼 몇 년간 친정 부모님의 집에서 살면서 보조를 받고, (정말 그 집을 정말 남편과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잠시 전세를 놓고 그 돈을 은행에 맡겨 미래를 위한 종잣돈이라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얘기가 시부모님께 들어가니 당장 호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무조건 이사와라. 니가 도대체 뭐가 부족하냐. 너는 지금처럼 직장 생활하며 돈만 벌어오면 된다. 너에 대해서는 아예 포기했다. 밤 늦게 다니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 손주니까 안 된다. 아이들은 네 친정 부모처럼 무조건 품에 안고 키우는 것보다는 대범(?)하게 키울 필요가 있다. 내가 유아원이나 놀이방은 알아보겠다. 내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남들에게 처가살이를 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느냐. 내 아들이 불쌍하다. 내가 집도 얻어줬는데 나는 싫다. 너 처음에는 말도 없고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분명 친정에서 누군가 너를 꼬드기는 모양이다. 이제 절대 친정과 왕래를 끊어라(아니면 이혼도 불사하겠다, 거의 협박으로). 이것이 시부모님의 요지입니다.
남편은 더 가관이라, 시부모님과 시누이가 저를 상대로 퍼부어댈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내 아들이 불쌍하다"는 시어머님 말씀에 말문이 틔여 "그 동안 내가 처가에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느냐" "너랑 나랑은 부모님께 이렇게 혼이 나도 싸다"며 익히 보던 전형적인 '마마보이' 기질을 다시 보이는 데에야 만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러게 오라고 할 때 가만히 이사 왔으면 큰 소리도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저를 쓸데 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더군요.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시부모님 말씀대로 굶거나 헐벗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희망이 없는, 내 기대가 무너진,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상실된 삶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빈곤이나 폭력과 구타 등 극한 이혼의 조건이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은 형편 또는 배부른 고민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무의미한 삶의 연장입니다. 아이들까지 보기 싫어질 정도이니까요... 여러분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악플이나 장난 글은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