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잊혀진왈츠2005.03.10
조회1,280

혼자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혼자 즐길 취미를 찾게 된다.

나의 취미는 영화감상과 음악감상 그리고 글쓰기, 독서, 요리, 피아노연습, 잠자면서 꿈꾸기, 산책 등이다. 그 중에서도 자주 즐기는 것이 혼자서 영화감상을 하는 것이다. DVD를 하나씩 소장하는 재미도 참 쏠쏠하다. 경제적으로 비록 어렵지만 나를 위한 유일한 사치가 DVD와 음반을 구입하는 것이다.

새로 구입한 DVD나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로딩을 기다릴 때의 짧은 떨림과 흥분을 나는 즐긴다. 아래에 소개하는 영화는 예전에 본 것인데 혼자사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한다.

 

* 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영화 `La Pianiste`(피아노 선생)......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이 영화에는 시종일관 슈베르트의 음악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감상해 보세요~
Schubert: Impromptu in A flat major D899 No 4 [6'24]
Nikolai Demidenko piano
http://www.hyperion-records.co.uk:8080/ramgen/22024b-12.rm
(음악듣기~클릭!)

지난 1월말에 비디오로 출시되길 기다리고 기다렸던(영화관에 갈 형편이 못되어서...흑흑~) 이자벨 위페르와 부느와 마지멜(줄리엣 비노쉬의 부군) 주연,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피아노 선생'(La Pianiste)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프랑스 영화가 모호하고 이상하고 어렵다고 하지만, 난 그런 느낌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근데 영화를 보는 순간, 점점 더 나를 이상한 궁지로 몰아넣는 그 느낌을 거부할 수 없었다.
마지막 엔딩장면도 왜 그게 엔딩장면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자막이 다 없어지고 화면에서 지지직 소리가 날 때까지도 난 전원을 끌 수 없었다. 급기야 '혹시 이거 편집이 잘못된 불법 비디오 아닌가?' 하는 그런 극단적이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귀에 익숙한 슈베르트의 음악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그녀의 행동에, 역겹기까지 했지만, 나중에는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사실 그 영화보고 이해도 다 못했지만, 충격이 너무 커서 두 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볼 생각이다.
사랑에는 아름다운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면 치정극이 되는 것이다.
미하일 하네케 감독이 영화를 참 잘 만든 것 같다.
한 여름 더위에 또한 사람에, 또한 사랑에 충격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권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레슨받으면서(아주 잔잔한 2악장) 클레메가 선생님에게 "선생님 목에 키스해도 되나요? " 했을 때였다. 갑자기 내 온몸이 떨렸왔다..

* 피아니스트 La Pianiste/The piano teacher (2001)의 감상포인트~

감독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주연
이자벨 위페르....에리카 코후트
Isabelle Huppert....Erika Kohut
아니 지라르도....어머니
Annie Girardot....The Mother
브느와 마지멜....발터 클레머
Benoit Magimel....Walter Klemmer
수잔네 로타르....쇼베르 부인
Susanne Lothar....Mrs. Schober
안나 시갈레비치....안나 쇼베르
Anna Sigalevitch....Anna Schober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에리카는 빈에서 활동하는 피아노 교수입니다. 이 사람은 40줄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간섭 많은 엄마랑 같은 아파트의 같은 방을 쓰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간섭많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틴에이저와 비슷한 위치지요. 성적 공상의 기회는 많지만 정작 실제 경험의 기회는 많지 않은 거죠.
틴에이저들은 어른이 되면 부모를 떠나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가지만 에리카에겐 그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은 그런 제한된 조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법들을 고안해냈어요. 에리카의 성생활은 평범한 사람들이 '변태'라고 여길만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비디오 가게의 밀실에서 포르노를 보며 쓰레기통에 든 휴지에 말라붙은 정액의 냄새를 맡는다든지, 음료수를 잔뜩 마시고 드라이브 인 시어터로 들어가 섹스하는 커플들을 엿보면서 방뇨를 한다든지, 면도날로 신체 일부를 자해한다든지 말이에요.
이런 사람에게 발터 클레머라는 젊고 잘생긴 학생이 접근해옵니다. 클레머에겐 별다른 숨은 의도는 없죠. 연상의 여자한테 수줍은 연정을 느끼는 수많은 젊은 남자들 중 하나랄까. 하지만 에리카에게 클레머의 접근은 조금 까다로운 처리를 요하는 현상입니다. 어떻게든 자기 라이프 스타일에 이 새로운 일탈 현상을 끼워맞추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잖아요? 에리카는 클레머를 상대로 극단적으로 킹키한 게임을 제안하는데, 당연히 클레머는 그 게임을 에리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결과는 상당히 폭력적이고요.
에리카 코후트의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 사람이 아주 지적이고 냉정한 중년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모든 '변태적' 행위들은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선택되고 검증된 것입니다. 전 이 사람이 그런 행위들에 대해 어떠한 가치 평가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단지 여러 실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것 뿐이죠.
에리카의 이야기는 피아노 교수라는 직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이 사람은 엄격한 독일어권의 음악가입니다. 잘못 교육 받은 미국 음악가들이 [월광 소나타]에 달빛을 담으려는 헛수작을 하는 동안, 음악에 맞는 정확한 템포를 찾을 사람이죠. 하지만 피아노와는 달리 인간 관계에서는 이런 접근법이 잘 먹히지 않아요. 인간은 피아노처럼 얌전하게 입력된 명령에 반응만 하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클레머와의 레슨이 틀어지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런데, 도대체 에리카의 문제점은 뭘까요? 영화는 그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말해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에리카의 욕망과 그 충족을 위한 행동뿐이에요. 맘만 먹으면 온갖 이유를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꼭 주인공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와 같은 배우가 그런 캐릭터의 주연을 맡는다면, 이해불가능함 자체가 강한 매력이 됩니다.
영화는 슈베르트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위페르의 연기나 미카엘 하네케의 연출은 오히려 안톤 베베른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영화에 극단적인 민주주의를 도입합니다. 베베른의 무조음악에서 그렇듯, 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평등합니다. 포르노 감상에서부터 모녀간의 근친상간적인 몸싸움에 이르기까지요. 덕택에 오히려 내용은 더 풍부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의 해석 가능성이 더 넓어졌으니까요.
결과는 두 사람에게 모두 기대할만한 어떤 것입니다. 관객들은 위페르한테서 이해불가능하고 정의할 수 없는, 강렬하고 거의 불쾌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극장을 떠날 것이고, 하네케의 이름이 엔드 크레딧에 다시 나오면 '이 사람, 정말 인간들을 싫어하는구나'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올테니 말이에요.(출처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