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부터 1970년말까지 이모저모

가시나무새200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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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앨범] 포토 앨범
조선말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이모저모

조선말기부터 1970년말까지 이모저모
순종황제 (융희)
1875년 세자 책봉 1897년 황태자에 책봉 일제의 앞잡이 이완용의 강요로 1907년 헤이거 밀사사건에 책임을지고 고종이 양위 하자 황제에 즉위했다, 서양식 황제 복장을 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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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와 순종황제

자적용포 입은 임금모습은 전통적인 의관차림을 보여준다, 경복궁 뜰에 나와 바닥에 카페트를 깔고 뒷배경은 지금의 사진관처럼 천으로 스튜디오를 만들어 퍼시벌 로엘 이촬영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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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

자는 시백, 호는 석파, 남영군 구의 아들 고종의 아버지, 안동김씨 세도정치 밑에서 불우하게 지내다가 고종의 즉위로 1863년 대원군에 책봉, 10년간 집권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시 청으로 납치되어 3년간 유패 생활을 보내다가 1885년에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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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아시아 함대 선상의 장병 1871

미국 아시아 함대는 군함5척 총병력 1,230명 함재 대포 85문을 장비하고 조선원정 (5월16일 ~ 7월3일) 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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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장례식 1897년

상복차림에 인산을 들고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모두가 침통한 표정들 이다, 장례행렬에 동원된 초롱등은 5천개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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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1936년 8월9일 베르린올림픽 경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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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년 형장으로 끌려가는 안중근 의사 (당32세)
여순(만주)감옥에 서 형장으로 가는 마자막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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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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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거하는 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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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방해죄로 처형 (1905년)

처형되는 세사람은 김성남 이춘근 안순서 이다, 1904년 9월 오전에 용산 마포간 철도부근 야산에서 처형되고 있는 현장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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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하는 농민 처형 (1905년)

당시 일본통치하에 있는 한국인을 재판없이 체포되어 일본 관헌들에의해 즉석에서 처형되었다, 입은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있어도 볼 수 없는 민족의 애환은 국권이 없는 무능정부로만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중앙에있는 일본관헌은 복부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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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일전쟁 당시의 의병처형 (1904년)

이와같은 장면은 일본 통치후 3.1 일운동 에도 재현되어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 손을 뒤로묶고 철사줄로 목을 매어 치명적으로 처형시켰다. 비참한 이광경을 볼 때마다 탄압이 주는 일본의 만행은 무엇을 위한 선택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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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좌측이 이승만씨(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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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마지막 유언(1910)

일본 헌병대에게 가혹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지만 사형그날까지 애국 충정으로 더욱 당당했다, 사형 2일 앞두고 여순감옥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사람은 프랑스 신부 홍석구씨와 두동생이 형님의 유언을 들으며 침묵을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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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항일 학생교화시간

일장기 좌.우 충효가 무엇을 강요하는 것일까? 모두 죄수복장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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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들의 작업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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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자 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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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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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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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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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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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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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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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 (나무 홍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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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미질 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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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며느리 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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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부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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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배달꾼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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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틀기

동학혁명 으로 체포되어 수모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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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옷입은 아녀자 1930년

채색된 컬러를 통해 당시 장옷 색상을 알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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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물동이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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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수

동학 죄수들의 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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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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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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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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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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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관 활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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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 활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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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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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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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무희연구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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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널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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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허된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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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박물관 으로 운반하는 에밀래종(봉황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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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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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물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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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물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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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아기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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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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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사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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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부산 영도 해안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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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선발대회(195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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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중립국가 휴전선 감시위원단 탈퇴요구 시위(195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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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코리아 결선대회 출전자들의 수영복 심사광경(195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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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아기들(1957-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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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장면(1957-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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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을 방문한 로마교황사절 환영 플래카드(195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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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영화배우 최은희씨(195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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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희생자 49제(196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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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여사를 접견중인 윤보선 대통령 내외(196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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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씨 귀국 의상 발표회(196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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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출범 경축식(196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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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서 군인위문공연(1961-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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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입은 박정희(6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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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농촌문맹퇴치계몽 활동(1962-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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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전신인 서울방송국 위문단 제주도 위문공연(1962-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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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교환 및 극빈자 쌀 배급(1962-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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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교환하는 시민(196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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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낙선재 입궁(1962-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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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 직포 광경(196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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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사 취항식(1962-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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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77주년 기념 5월의 여왕 대관식(196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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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사진(1963-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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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대통령 취임식(196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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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거리(1907)
칼을 찬 순경이 죄인을 감시하고 있고, 오른쪽 이발소 간판 밑에 가로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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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1905)
앞의 종탑은 명동성당이며, 뒤의 흰 3층건물은 샬트 수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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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호텔 앞 거리(1900)
일본에 의해 황근우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건축하기 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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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 중심가(1903)
당시 충무로와 소공동은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중앙의 누각은 현 조선호텔에 남아있는 황궁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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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나루터(1904)
이곳은 나룻배를 건조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줄무늬 상의를 입은 소년과 목판에 엿을 담은 어린 엿장수가 엿을 팔고 있다. 소년의 옷차림이 당시 유행에 민감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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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나루터(1900)
왼쪽에 밤섬이 보이고, 이곳 마포 나루터는 화물 선착장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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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진고개 (1904)
진고개는 현재 충무로 2가의 고갯길로서 흙이 몹시 질어 진고개라는 지명이 생겼다. 명동성당과 북악산이 보인다. 1906년 8척 가량 파내어 길을 닦고 높이 5척의 방주형 수멍을 묻었다. 이것이 서울시내 수멍도랑의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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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전경(1907)
당시 이거리는 도성에서 제일 넓은 거리였다. 왼쪽에는 통감부 통신관리국이 있고, 오른쪽 건물엔 일본관리인과 군부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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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 거리(1907)
소공동 주변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약방이 많았는데 일흥노약방 뒤로 원구단 누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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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밖 곡물창고
당시 이곳에는 곡물창고가 있었고 왼편의 건물은 전차수리소이다. 멀리 보이는산은 인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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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천(1907)
뒤의 누각은 경복궁 동십자각이며 백악산 밑에서 경복궁을 거쳐 청계천과 합류하였다. 하천 주변에 주민들은 이곳을 빨래터나 목욕터로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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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1904)
청계천은 서울 중심을 흐르는 하천이며 말그대로 물이 맑아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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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 앞 전경(1931)
각종 채소들이 집산되어 시내로 유입된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의주통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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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입구(1903)
충무로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성당이다. 당시 충무로는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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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역 부근(1907)
이곳은 저지대라 비가오면 진흙땅이 된다. 멀리보이는 건물은 약현성당이다


육영수 여사님..생전..그리고 박정희대통령의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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