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 달아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요즘 갠적인 일로 맘이 많이 상하거든요...친정도 내직장도 남동생일도....일일이 감사 리플은 못 달아드리지만 넘 감사드립니다... 바람같이 살다간 오빠를 한번 기억하고 하고싶었는데...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다들 내 일처럼 걱정해주시니 넘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넘감사해요~~~~~~~~ ===================================================================================== 날이 참 꾸물꾸물하네요...저야 오늘 제 한소연을 좀 하려고요... 그냥 읽어주세요... 오빠~~~~~~ 오빠에 대한 기억이 군대를 갈때로 거슬러 가네요 누구에게나 첫아들이 군대가는날 무지 힘들고 아픈것처럼 울 엄마에게도 그런 아픈 날 그때가 겨울이 시작되었어나 입대하는 오빠 옷이 두꺼웠던것 같은데 씩씩하게 잘 갔다오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훈련소에서 돌아온 옷을 잡고 얼마나 우시던지 그리고 몇달후 오빠가 다쳐다는 소식 면회 강원도 그 산골짜기 오지 차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그 눈길을 걸아가시던 엄마 자식을 둔 에미가 아니면 절대 걸어서 갈수 없었던 그 험한 길 춥고 멀었던 그길 그날 엄마에 뒷모습도 기억나고요 그리고 오빠에 의가사제대와 함께 시작된 길고 긴 투명생활 원인도 병명도 알지 못한채 시작된 병마와의 싸움 입원과 수술과 퇴원을 반복하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터널에 시작 그와중에도 나는 결혼을 했고 내 결혼을 계기로 서울 원자력 병원으로 오빠를 데리고 온 엄마는 병마와의 싸움 5년만에 병명을 들어수 있었고 암....................... 엄마에 절망과 오빠에 좌절 암세포 전의를 막기위해 전의를 막기위한 수술은 팔꿈치 절단 수술로 정해졌지만 엄마는 엄마는 조금이나마 절단부위를 줄이려고 의사선생님께 매달렸고 결국 손목과 팔꿈치 중간이 절단 위치로 정해지고 수술전날 한숨도 못주무신 엄마는 결국 수술날은 기절을 하시고 끝내 자식 불구 만든 죄인이라하시며 오열하셨죠 마취에서 깨어난 오빠는 없는 손이 아프다고 자꾸만 아프다고 절단환자들이 잘 보이는 환각증세라고 없는 다리가 없는 팔이 아프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오빠는 그 상처가 아물어 퇴원할때까지 그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올때까지 밤마다 손이 너무 아파 못잔다고 너무 아프다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치료가 끝나기 전에 오빠랑 엄마가 먼저 포기할것 같던 그 항암치료가 끝나고 귀향 그러나 다시쓰러진 오빠는 폐로 암세포가 전의된 상태 수술을 권하는 의사와 수술을 거부한 오빠 그 사이에서 좌절한 엄마 오빠는 결국 엄마에 마지막 소원인 수술도 하지 않고 죽음을 준비한 오빠는 남동생 제대 한달만에 중환자실 그곳에서 29살 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생말로는 유언한마디 하지 못하고 갔다고 동생손만 꼭 잡고 떠나다고 장례식장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죠 동생 기다린다고 못간모양이라고 엄마 아빠 부탁하고 가려고 기다린 모양이라고 결혼도하지 않은 총각에 죽음 이틀만에 치른 장례식 한줌에 재로 이름모를 호수에 뿌려진 오빠 결혼도 안하고 떠난 오빠가 그 오빠가 떠나면 남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아내도 아이도 없이 떠난 오빠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빠가 떠날때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나는 세상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수 없는 오빠의 흔적에 서글프고 아프고 후회스러운것은 왜인지 엄마가 놓치 못한 희망을 끈을 먼저 놓아버린 오빠가 원망스러워 장례식 내내 울지도 않았던 나쁜동생인 나는 이제 학부형이 되고 오빠가 그리 귀여워했던 조카 반드시 돌잔치에 참석하마 약속하고 한팔로도 거뜬하게 안아주던 그 조카가 2학년이 되고 큰외삼춘에 존재존차 모르는 둘째아이는 6살이 된 지금 세월이 흐리면 잊쳐지고 시간이 약이라고 상처가 아물어진다고 했는데 새록새록 기억나고 목구멍 저 끝에서 아파 오는것은 무엇인지 오빠에 기일 친정엄마와의 통화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부만 물어보고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죠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존재 그자체로만으로도 아픔이 되는 사람 슬픔이 되는 사람 우리에게 오빠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하시고 엄마는 저와 남동생이 있어 살아있다고 하시고 우리는 그렇게 29살 짧은 삶을 살다가 오빠를 아픔으로 기억합니다.. 오빠 미안해 사랑해 보고싶다 그곳에서는 이제 아프지마 정말 미안해 오빠 이제 2남1녀에 둘째가 아닌 1녀1남에 장녀로 살아가는 제 사연입니다........
2남1녀,,, 그리고,,, 1녀1남,,,,(오빠 보고싶다)
리플 달아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요즘 갠적인 일로 맘이 많이 상하거든요...친정도 내직장도 남동생일도....일일이 감사 리플은 못 달아드리지만 넘 감사드립니다...
바람같이 살다간 오빠를 한번 기억하고 하고싶었는데...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다들 내 일처럼 걱정해주시니 넘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납니다...
넘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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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참 꾸물꾸물하네요...저야 오늘 제 한소연을 좀 하려고요...
그냥 읽어주세요...
오빠~~~~~~
오빠에 대한 기억이 군대를 갈때로 거슬러 가네요
누구에게나 첫아들이 군대가는날 무지 힘들고
아픈것처럼 울 엄마에게도 그런 아픈 날
그때가 겨울이 시작되었어나
입대하는 오빠 옷이 두꺼웠던것 같은데
씩씩하게 잘 갔다오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훈련소에서 돌아온 옷을 잡고
얼마나 우시던지
그리고 몇달후
오빠가 다쳐다는 소식
면회
강원도 그 산골짜기 오지
차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그 눈길을 걸아가시던 엄마
자식을 둔 에미가 아니면 절대 걸어서 갈수
없었던 그 험한 길 춥고 멀었던 그길
그날 엄마에 뒷모습도 기억나고요
그리고
오빠에 의가사제대와 함께 시작된
길고 긴 투명생활
원인도 병명도 알지 못한채
시작된 병마와의 싸움
입원과 수술과 퇴원을 반복하던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어두운 터널에 시작
그와중에도
나는 결혼을 했고
내 결혼을 계기로 서울 원자력 병원으로 오빠를
데리고 온 엄마는 병마와의 싸움 5년만에
병명을 들어수 있었고
암.......................
엄마에 절망과 오빠에 좌절
암세포 전의를 막기위해
전의를 막기위한 수술은
팔꿈치 절단 수술로 정해졌지만
엄마는
엄마는
조금이나마 절단부위를 줄이려고
의사선생님께 매달렸고
결국 손목과 팔꿈치
중간이 절단 위치로 정해지고
수술전날 한숨도 못주무신 엄마는
결국 수술날은 기절을 하시고
끝내 자식 불구 만든 죄인이라하시며
오열하셨죠
마취에서 깨어난 오빠는
없는 손이 아프다고
자꾸만 아프다고
절단환자들이 잘 보이는 환각증세라고
없는 다리가 없는 팔이 아프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처럼
오빠는 그 상처가 아물어 퇴원할때까지
그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올때까지
밤마다 손이 너무 아파 못잔다고
너무 아프다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치료가 끝나기 전에 오빠랑 엄마가
먼저 포기할것 같던 그 항암치료가 끝나고
귀향
그러나
다시쓰러진 오빠는 폐로 암세포가
전의된 상태
수술을 권하는 의사와
수술을 거부한 오빠
그 사이에서 좌절한 엄마
오빠는 결국 엄마에 마지막 소원인
수술도 하지 않고 죽음을 준비한 오빠는
남동생 제대 한달만에
중환자실
그곳에서 29살 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생말로는 유언한마디 하지 못하고
갔다고 동생손만 꼭 잡고 떠나다고
장례식장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죠
동생 기다린다고 못간모양이라고
엄마 아빠 부탁하고 가려고
기다린 모양이라고
결혼도하지 않은 총각에 죽음
이틀만에 치른 장례식
한줌에 재로 이름모를 호수에
뿌려진 오빠
결혼도 안하고 떠난 오빠가
그 오빠가 떠나면
남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아내도 아이도 없이
떠난 오빠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오빠가 떠날때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된 지금나는
세상 그 어느곳에서도 찾을수 없는
오빠의 흔적에
서글프고 아프고 후회스러운것은
왜인지
엄마가 놓치 못한 희망을 끈을
먼저 놓아버린 오빠가
원망스러워
장례식 내내 울지도 않았던 나쁜동생인 나는
이제 학부형이 되고
오빠가 그리 귀여워했던 조카
반드시 돌잔치에 참석하마 약속하고
한팔로도 거뜬하게 안아주던 그 조카가
2학년이 되고
큰외삼춘에 존재존차 모르는
둘째아이는 6살이 된 지금
세월이 흐리면 잊쳐지고
시간이 약이라고
상처가 아물어진다고
했는데
새록새록 기억나고
목구멍 저 끝에서
아파 오는것은 무엇인지
오빠에 기일
친정엄마와의 통화
우리는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부만 물어보고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죠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존재
그자체로만으로도
아픔이 되는 사람
슬픔이 되는 사람
우리에게 오빠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하시고
엄마는 저와 남동생이 있어
살아있다고 하시고
우리는 그렇게 29살 짧은 삶을 살다가 오빠를 아픔으로
기억합니다..
오빠
미안해
사랑해
보고싶다
그곳에서는 이제 아프지마
정말 미안해 오빠
이제 2남1녀에 둘째가 아닌 1녀1남에 장녀로 살아가는 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