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하늘 #2==재회. 그 설레임==

이야기 상자2005.03.16
조회668

 하늘은 5년 만에 고국과 같은 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한국을 사랑했다.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곳이라 적응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기에 힘든 점도 많았었다.


 그녀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제이슨이 안치되어 있는 가족 묘지로 향했다.

 한동안 제이슨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지냈던 하늘은 늦은 그의 부고에 목을 놓아 통곡했지만 찾아오지는 못했었다.

 그의 묘는 그의 인생처럼 참 쓸쓸해 보여 하늘은 한동안 그의 무덤 앞에 서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어요. 내가 힘들 때, 내가 기쁠 때 항상 옆에 계셔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들이지 못했는데... 제이슨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늘은 친구에게 부탁한 아파트로 바로 입주를 했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단 한곳이 하늘의 눈에 들어왔다.

 

 면접을 보러 온지 십 여분이 지났지만 면접관은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비서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좀더 기다려 줄 것을 요구했다.

 "갑자기 급한 전화가 와서 시간이 조금 지체 될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니요. 이대로가 좋아요."

 하늘은 창 밖으로 보이는 레이니어 산과 시애틀의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구름에게 포근히 안겨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레이니어 산은 마치 제우스가 살고 있는 착각을 불어 일으킬 만큼 신비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만나려는 사람 역시 레이니어 산처럼 신비스러운 사람이었다.
 
 라이언은 보좌관인 맥의 전화에 약속 시간에 늦자 기분이 별로 좋지만은 않았다. 그 덕에 면접자의 신상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체로 만나야 했고, 라이언은 그런 조건을 매우 싫어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평가를 내리는 걸 좋아하는 그는 항상 자신이 직접 면접 할때는 서류를 꼼꼼히 살피는 성격이었다.
 

"늦어서... 당신은?"

 "오랫만에 만나는 군요. 그동안 잘 지냈겠죠."

 그녀는 분명 이 곳이 라이언의 호텔인 것을 알고 제발로 들어왔다. 자신의 잘못은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비서를 뽑은 지 별로 되지 않았지만 이번에 인사과에서 뽑은 금발머리의 여자는 노골적으로 라이언에게 관심을 보였고, 집착적이었으며 그의 여자 관계에 깊은 관여를 했기에 해고했었고, 라이언은 그런 절차를 다시는 밟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하지만 그녀를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낯짝도 좋게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어떻게 5년전에 그런 짓을 하고서도 그의 앞에 나타날 생각을 했는지 그녀의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야 할지 아님 무모함을 욕해야 할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그의 앞에서 당당했다.

 "왜 이 자리에 지원했소."

 "직장이 필요하게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도요.'

 

 라이언은 자신의 손에 있는 서류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녀를 비서로 채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조건은 그가 원하던 조건과 일치했다.

 "4개 국어를 하는군. 그만 나가봐요."

 하늘은 너무도 간단한 면접에 놀라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뿐인가요?"

 "그렇소."

 "그럼 불합격인가요?"

 "결과는 추후에 통보할거요."

 라이언은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작은 엉덩이를 흔들며 나가는 하늘을 잡아 틀어 올린 머리를 흘러 내리게 한 뒤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를 가지고 싶었지만 5년 전 일을 생각했다.

 절대 그녀를 용서 할 수 없었다. 제이슨의 은혜를 그의 죽음으로 갚은 그녀를 어찌 용서 할 수 있겠는가?

 라이언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늘은 차가운 라이언의 반응에 실망했다. 그가 그녀를 잊어 버렸다는 것과 그들의 키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처럼 모든 것을 가진 남자에게 그 동안 많은 여자가 꼬여들었을 것은 당연했고, 하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 지도 모른 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이고 있을 때 합격을 알리는 전화가 와서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정말 제가 합격이 된 건가요?"

 -네.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신 가요?-

 "내일 당장 이요."

 하늘의 쾌활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맥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목소리에서 웃음이 묻어났다.

 전화를 끝고 난 하늘은 그 자리를 한바퀴 돌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감사했다. 제이슨이 아니었다면 라이언을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고, 그를 그리며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던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하늘은 라이언을 운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 강요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가 5년 전 잠깐의 폭발적이었던 키스를 떠올리고 그 떠올림이 자연적인 감정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마저도 하늘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