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창녀의 봄

김명수200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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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창녀의 봄       

 
 

                                                늙은 창녀의 봄

 

고향과 봄이라는 명제가 닿으면 가슴 아리게 하는 글, 송기원의 <늙은 창녀의 노래>만큼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운이 남는 글은 없다.

나는 봄기운이 일어나 여기저기서 꽃소식 들려오면 습관적으로 서가에서 이 책을 뽑아든다.

이제는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버릇이다.

 

또래의 처녀들이 도회의 방직공장에서, 신발공장에서, 돈을 벌면서 공부도 한다는 소리에 몰래 가출을 결행하였지만 서울 가는 기차도 타기 전에 푼짱 네다바이(인신매매꾼)에게 걸려 거꾸로 남행열차를 타고 남녘 항구도시 역전 뒤 힛빠리골목에서 하루저녁 꽃값 5000원에 몸을 파는 창녀의 길로 접어든지 20여년이지만 가슴속 깊이 지워버릴 수없어 화석처럼 굳어진 것이 고향의 봄이다.

그녀는 고향의 봄을 못잊어 꽃피는 고향의 봄을 다시 한번 가고 싶다며 한잔 술에 혀끝에서 구르는 고향말로 넋두리를 한다.

 

"손님모양 맘이 허해서 떠도는 사람을 보면 한잔 술에 스무 해 전 내 열여덟을 담아 주고 싶어라우" 하며 부끄러워한다.

 

"꿈에, 참 많이도 고향을 봤지라우. 그저 꿈만 꾸먼 꼭 고향은 봄이어라우. 아매도 나가 고향을 떠날 때 봄이어서 그랑 모냥이요. 참꽃은 참꽃대로 온 산에 발갛게 타고, 논에는 자운영이 무신 공단이불모냥 질펀하게 깔레서 분홍빛으로 피어나는디, 저 아래 바다 쪽으로는 유채꽃들이 덩달아 피어서, 오메, 밤에도 마치 횃불을 킨 것맨키롬 환했어라우. 글다가 꽃들이 한끄번에 벙글어져서, 살구나무, 앵두나무, 복송나무, 배나무, 사꾸라나무, 그렇게 나무란 나무에 모다 꽃이 피어 갖고 마침내 꽃사태가 나먼, 오메, 가심이여, 멀리서 색깔만 봐도 가심부터 우선 벌렁벌렁 뛰놀던 그 환한 꽃들이 시방도 눈에 선하요.

 

그라먼 해종일 동무들끼리 대소쿠리 한나씩 들고 산에 들어 나가 살았지라우. 오메, 캐도 캐도 지천으로 깔레 있던 그 야들야들한 것들, 아이고, 야들야들한 것들이 어디 나물뿐이었간디요?  말만한 큰애기들이 부끄러운지 몰르고 아그들모냥 삐비도 뽑아 묵고, 찔레순도 꺾어 묵음시롱 공연시 그놈의 환한 꽃색깔에 가심에 바람이 들어 갖고 밤낮없이 몰려 댕김시롱 총각들 숭을 봤는디, 그때 그 가이내들, 영임이, 끝순이, 양순이, 막례, 순자....... 지끔 생각하면 그 가이내들이 바로 나무보다 더 야들야들했지라우.-

                                   

                                     송기원   <늙은 창녀의 노래> 중에서

 

꽃값 5000원에 몸 파는 여자. 영육이 피폐해져 망신창이지만 그녀의 봄은 마음한구석에 지울 수없는 아름다운 향수의 바다로 남아있다.

세월만큼 겪었을 봄이지만 열여덟 적 봄은 정녕 그녀를 지탱해 주는 고향의 바다다.

 

나는 송기원의 <늙은 창녀의 노래>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찬탄한다.

짧은 몇 줄의 글속에 만가지 봄이 다 녹아있다.

그 봄 속에는 소년적 겪었던 나의 봄도 늙은 창녀의 봄 속에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취미가 글쓰기이다보니 나름대로 봄에 관한 글을 끄적거려보지만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너절한 낙서가 될 뿐이어서 재주 없음을 한탄한다.

다행히 취미로 하는 글쓰기니 천만다행지만, 시간 넉넉하여 짧은글 한번 써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절하기만 하다.

 

소년시절 나 역시 늙은 창녀와 같은 봄동산, 꽃동산에서 꽃비 맞으며 입술에 꽃물들도록 참꽃따먹고 찔레순도 꺾어먹고 삐비도 뽑아먹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은 그 꽃으로 보이건만, 사람은 해마다 그 사람이 아니네'라는 옛사람의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요 며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한바탕 성깔을 부렸다. 

꽃샘추위속에서도 버들강아지 눈을 뜨고 하품을 하고 있다. 남녘에서 불어오는 남실바람에 꽃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살포시 내려앉은 봄기운에 아지랑이감기는 노곤한 하오,

봄을 구경하랴 산으로 스며드니 늘씬한 붉은소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동산의 묏자리에 장끼 한마리가 봄볕을 모으고 있다.

 

새봄을 맞으러 가자.

꽃동산이 아니라 해도 푸른 새싹 움트는 촉아 만 보아도 묵은 심상이 파릇해 질 것이다.

어두운 겨울기상 훨훨 털어내고 봄마당으로 나가서 봄을 새겨두자.

들녘으로 달려오는 봄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탄실탄실 마음도 상쾌해질 것이다.

 

가벼운 차림에 가벼운 음식 준비하여 아이들이랑 봄맞이가자.

소란스럽게 흐르는 개울이 있으면 듣기에도 좋다.

돌돌 흐르는 물속에 가재가 없다하여도 가재 잡는 방법이나 가리켜주자.

흐르는 물속에 듬성듬성 돌을 뒤집어며 

"이 돌 아래 가재가 살고 있었는데 어디로 이사 갔나?"

능청떨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켜 주자.

 미끌어져 퐁당 맑은물에 발목도 적시고 버들강아지 눈떴다. 노래도 합창으로 불러보자.

아이들의 마음속에 생동하는 봄의 움직임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자라면 가족과 함께한 봄맞이가 마음속 풍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추억이라는 향수로 닮겨 있을 것이다.

 

봄날을 어디서 사겠나?

아래 글도 참으로 공감이 가는 간결한 글이라 한번 옮겨 보았다.

 

 

비매품 목록

 

남대문, 무령왕릉, 다보탑, 첫사랑, 우정, 추억,

피, 땀, 눈물, 가족, 친구, 전우, 햇볕, 공기, 바람.....

 

정말 귀한 것들은

아무데서도 팔지 않습니다.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봄날을 어디서 사겠습니까.

청춘을 어디서 사겠습니까.

시간을 파는 가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중한 것들은 한결같이 비매품입니다.

 

               새로운 대한민국 이야기    -예순다섯번째-

                                  

                                                   2005  03  15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