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세종대왕님

아이아200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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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살게 되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야 시장에 가서 야채라도 살 수 있으니까. 

헌데 북경 어언 문화 대학에서 발행한 외국인 교육용의 초급 중국어 교본에 나오는 기초 단어를 여태까지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읽는 것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책에 나오는 단어들을  삼 십 번은 쓰며 외웠을 것 같은데 지금도 쓰지 못한다.  한 번 외우고 이 삼 일 후면 잊어버리는 것이다. 

내 학습능력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표의문자인 한자에 있는 것 같다.  똑같은 단음 하나에 글자는 여러 개다.  탕이라는 한 개의 음에 사전에 나오는 글자만 서른여섯 개이던가.  그 여러 개의 글자가 음이 같다고 해서 무슨 공통점이라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익히기가 힘들다.

 힘든 것은 외국인뿐만 아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장을 보아오기 위해 아는 중국 아가씨에게 사고 싶은 야채들의 단어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야채 파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쓰여 진 대로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학교를 나왔다는 이 아가씨가 오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했다.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벌이 높은 사람들도 쓰지 못하는 단어들이 종종 있다.  내가 중국어를 배우러 다니던 곳의 현직 대학교수인 강사들조차 쓰지 못하는 글자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한글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마저 느껴진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한글이 공기나 물처럼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진 것처럼 여겨졌었다.  한글날에도 세종대왕님께도 설악산이나 남산이 그 자리에 있어서 이름 붙여진 것처럼 덤덤했었다.  그러나 세종대왕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중국 사람들처럼 그 어려운 한자를 익히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을 것이고 아니면 일본처럼 한자를 적당히 변형시켜서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컴퓨터를 사용할 때 자판 두드리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한글 덕분이라고 생각 된다.  중국어를 알고 나서부터 세종대왕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왕손들은 세종대왕님의 후손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접을 받아야 할 분들이 아닐까?  유럽의 왕족들은 온갖 물의를 일으키면서도 지위와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왕손들처럼 점잖은 분들도 드물다.  친일파의 후손들도 선조의 매국으로 축재된 것이 분명한 재산을 되찾겠다고 재판을 벌이는데 그 분들은 부당하게 빼앗긴 왕실 재산을 돌려받겠다고 나선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 것이 전부 왕실의 잘못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어째서 왕이셨던 분들 만의 잘못이었을까. 

 지금의 국회의원들을 보자.  그들은 자신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소속된 곳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팔며 아전투구 한다.  어느 강연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국회의원이란 다른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취해 들이는 놀음이라던가. 

 옛날의 정치가인 벼슬아치들이 지금의 국회의원보다  나았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을 데리고 정치라는 것을 해야 했던 왕들께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인들 후대에 성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을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은 왕들의 잘못된 통치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 정치가들의 이기심,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나라를 이끌어 가도록 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백성들 모두의 잘못이었다.

 과거를 청산하자는 말이 자주 들린다.  과거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왕손들과의 화해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왕손은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유럽에서 왕실이 유지되는 것은 왕실이 그 나라 산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라고 그렇게 되지 못 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예인들이 아시아를 제패하고 세계를 향해 달려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왕손도 세계적인 가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우리가 외면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이라도 왕손에 대한 대접을 개선하면 어떨까?  더구나 그분들은 세종대왕님의 후손들이 아니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