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파동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동북아에 포연이 멎은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일본과 인접 국가들의 마찰을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배타적사상에서 찾아 보고자 한다.
일본의 근현대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세계사’에 편입되던 1850년대 이후.. 일본이 세계질서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된 후 구미(歐美) 중심 세계의 재편성을 요구하게 되는 1930년대 이후.. 그리고 파시즘과 냉전이 지배하던 제국주의 세계사가 끝나고 ‘지구사’가 시작되는 1980년대를 돌아선 이후이다. 그러나 세계가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 번째 시기에도 여전히 동북아가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첫 번째, 두 번째 시기에 일본이 인접 국가들에 대해 가졌던 ‘오리엔탈리즘’을 청산하지 못한 데서 기인 한다.
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근대 사회를 건설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사상사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는 관점이다. 헤겔의 Oriental Despotism이나 막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모두 동양을 세계사 밖의 반(反)서양으로 규정하며, 일본 근대 정신의 초석을 놓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은 이런 헤겔적 관점을 일본과 중국·한국 등 인접국과의 관계에 적용한 것이다. 즉 일본은 신흥 문명국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비(非)문명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맹주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세계 열강의 반열에 들어감에 따라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배타적 지위를 구미 국가들에 요구하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동아(東亞)협동체론’과 이를 동남아까지 확대한 ‘대동아(大東亞)공영론’, 그리고 구미 중심의 근대를 넘어서자는 ‘근대초극론(近代超克論)’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우익 파시스트부터 사회과학자까지 광범위한 지식인이 동참한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일본 중심의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며 일본과 동아시아의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이 이런 잘못을 청산하지 않은 채 다시 경제강국으로 부활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국가적 판단을 정지한 채 지나쳤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없는것인가? 답은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넓은 의미의 문화적 공통성 위에 선 지역 개념으로 보고, 경제에서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층다중(多層多重)으로 교류하는 ‘관계틀’이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바로 한류열풍이었다. 일본 우익의 반한 기류의 정점이 독도와 더불어 한류열풍 찬물 끼얹기에 집착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ORIENTALISM
독도 파동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다시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동북아에 포연이 멎은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일본과 인접 국가들의 마찰을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배타적사상에서 찾아 보고자 한다.
일본의 근현대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세계사’에 편입되던 1850년대 이후..
일본이 세계질서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된 후 구미(歐美) 중심 세계의 재편성을 요구하게 되는 1930년대 이후..
그리고 파시즘과 냉전이 지배하던 제국주의 세계사가 끝나고 ‘지구사’가 시작되는 1980년대를 돌아선 이후이다.
그러나 세계가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 번째 시기에도 여전히 동북아가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첫 번째, 두 번째 시기에 일본이 인접 국가들에 대해 가졌던 ‘오리엔탈리즘’을 청산하지 못한 데서 기인 한다.
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근대 사회를 건설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사상사에서 좌·우파를 막론하고 공유하고 있는 관점이다.
헤겔의 Oriental Despotism이나 막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모두 동양을 세계사 밖의 반(反)서양으로 규정하며, 일본 근대 정신의 초석을 놓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脫亞論)’은 이런 헤겔적 관점을 일본과 중국·한국 등 인접국과의 관계에 적용한 것이다. 즉 일본은 신흥 문명국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비(非)문명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맹주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세계 열강의 반열에 들어감에 따라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배타적 지위를 구미 국가들에 요구하고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동아(東亞)협동체론’과 이를 동남아까지 확대한 ‘대동아(大東亞)공영론’, 그리고 구미 중심의 근대를 넘어서자는 ‘근대초극론(近代超克論)’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우익 파시스트부터 사회과학자까지 광범위한 지식인이 동참한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일본 중심의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며 일본과 동아시아의 비극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이 이런 잘못을 청산하지 않은 채 다시 경제강국으로 부활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국가적 판단을 정지한 채 지나쳤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과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길은 없는것인가? 답은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이른바 동아시아라는 넓은 의미의 문화적 공통성 위에 선 지역 개념으로 보고, 경제에서 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층다중(多層多重)으로 교류하는 ‘관계틀’이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바로 한류열풍이었다. 일본 우익의 반한 기류의 정점이 독도와 더불어 한류열풍 찬물 끼얹기에 집착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