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정말 오래간만에 한 친구를 만나 소주 한잔 기울였습니다. 밤송이 같은 까까머리에 진청색 교복을 입고 교실 뒤 쓰레기통 옆에 있는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여드름을 걱정하던 사춘기 고등학생시절에 처음 만났던 녀석. 녀석을 생각하면 유난히도 하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조용 말하던 모습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녀석도 많이 변했더군요. 시간이 녀석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 보다는 대한민국 군대가 준수를 검붉은 얼굴에 단단한 몸집 그리고 씩씩한 어투로 변화시켰다는 것이 더 맞겠네요. 집안 사정으로 남들보다 많은 나이에 군대에 가서 이제야 상병휴가를 나온 녀석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습니다. 반면에 군생활 꺾였다고 바지 주머니에 부자연스럽게 손을 넣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습니다.
준수와 친구가 되면서 저에게는 녀석을 알기전의 ‘나’와 그이후의 ‘나’를 구분하는 선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지우던 저에게 녀석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은 꿈이라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열정을 주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만나면 언제나 어렵사리 꺼내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묻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물어보게 되는 그런 말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 요즘은 어때? 잘 있지?” “…….”
말없이 소주 한잔을 들이키는 녀석을 보면서 괜히 물어봤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어찌 보면 준수와 이렇게 죽마고우가 되는 행운이 찾아온 계기가 바로 녀석의 여동생 때문이니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준수와 저는 처음에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끌벅적하게 뛰어놀며 사고만 저지는 저와 뒤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녀석과는 친해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비록 그때는 그 것이 바로 행운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지만.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얼마 전,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농구를 하던 저는 공을 들고 무식하게 돌파하다가 그만 쇠로된 농구대와 부딪쳐 왼쪽 종아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복합골절로 뼈에 쇠심까지 박는 큰 수술을 받게 된 저는 피 끓는 17살의 여름을 하는 수없이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 준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휠체어를 타야 겨우 움직일 수 있던 저에게 아는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의 여신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준수의 여동생이 조금 아파서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가 있다는 기쁨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좋아만 했답니다.
매일 병원에 오는 준수덕분에 병원에서 보내는 17살의 여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녀석이 빌려주는 책과 음악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의 차분하지만 열정이 담긴 모습은 저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은 그동안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사춘기 소년의 그 무엇을 서서히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목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저는 퇴원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녀석의 얼굴도 볼 겸해서 처음으로 준수의 동생이 입원해있는 병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본의 아니게 준수의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여보. 어쩌면 좋아? 수혈하는데 이번 달만 백만 원이야…….”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테니까.”
다시 봐도 분명 준수의 부모님이었습니다.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괜히 제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더군요. 겉모습은 얌전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했던 준수는 어린 마음에 동생과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수혈이 많이 필요한 큰 병에 걸린 동생을 그냥 조금 아파서 입원한 거라 둘러댔던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흘러 유난히도 더웠던 17살의 여름은 제 가슴에 선 하나를 그어놓고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교실은 심하게 들떠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러한 들뜸에 마음이 차분해 지더군요. 항상 조용하던 준수의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좋으니 아무리 작을 힘이라도 좋으니 준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한 TV방송이 저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국민의 헌혈의식을 조사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방송을 통해 16살이 되면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헌혈증이 수혈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바로 안양역 앞에 있는 헌혈차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헌혈을 했습니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손에 든 한 장의 헌혈증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종이 한 장이 과연 준수의 동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괜히 녀석의 커다란 자존심에 상처만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고민이 시작 되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저는 저다운 무식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 길로 바로 교장실에 달려갔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단둘이 있어본 것은 정말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저답지 않게 많이 긴장했지만 그래도 말을 꺼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준수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헌혈을 권유해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알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 한마디만을 해주시고는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도대체 뭘 알았다는 건지 저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실망감마저 들더군요. 하지만 며칠 뒤 월요일 조회시간에 드디어 교장선생님께서 특유의 짧을 어투로 한 말씀 하시더군요. 평소 훈시도 잘 안하시던 분인데 이날은 조금 길게 말씀하습니다.
“여러분 친구의 동생이 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오후에 헌혈차가 오면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임직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두 헌혈하세요.”
한마디로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빠지려고 하는 친구와 선배를 모두 헌혈차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준수의 얼굴을 봤습니다. 녀석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수줍게 웃더군요. 다음 주 월요일 방송조회시간 교장선생님에게 수많은 헌혈증이 담긴 나무통을 받아든 준수의 부모님께서는 연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존심 강한 준수도 카메라 앞에 서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군요.
지난 주말,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준수는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다시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저에게 말하더군요.
“고마워.”라고
하지만 제가 준수에게 주었던 도움은 녀석이 저에게 보여주었던 열정, 그리고 자신만 알던 이기적이 저에게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준 녀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알싸한 소주 한잔과 함께 가슴으로 이 말을 넘겼습니다.
작은 헌혈증이 내게 선사한 우정
지난 주말, 정말 오래간만에 한 친구를 만나 소주 한잔 기울였습니다. 밤송이 같은 까까머리에 진청색 교복을 입고 교실 뒤 쓰레기통 옆에 있는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여드름을 걱정하던 사춘기 고등학생시절에 처음 만났던 녀석. 녀석을 생각하면 유난히도 하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조용 말하던 모습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녀석도 많이 변했더군요. 시간이 녀석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 보다는 대한민국 군대가 준수를 검붉은 얼굴에 단단한 몸집 그리고 씩씩한 어투로 변화시켰다는 것이 더 맞겠네요. 집안 사정으로 남들보다 많은 나이에 군대에 가서 이제야 상병휴가를 나온 녀석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습니다. 반면에 군생활 꺾였다고 바지 주머니에 부자연스럽게 손을 넣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조금은 우습기도 했습니다.
준수와 친구가 되면서 저에게는 녀석을 알기전의 ‘나’와 그이후의 ‘나’를 구분하는 선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지우던 저에게 녀석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은 꿈이라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열정을 주었습니다. 그런 녀석을 만나면 언제나 어렵사리 꺼내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묻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물어보게 되는 그런 말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 요즘은 어때? 잘 있지?”
“…….”
말없이 소주 한잔을 들이키는 녀석을 보면서 괜히 물어봤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어찌 보면 준수와 이렇게 죽마고우가 되는 행운이 찾아온 계기가 바로 녀석의 여동생 때문이니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준수와 저는 처음에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아무런 생각 없이 시끌벅적하게 뛰어놀며 사고만 저지는 저와 뒤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던 녀석과는 친해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오더군요. 비록 그때는 그 것이 바로 행운이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지만.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얼마 전,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농구를 하던 저는 공을 들고 무식하게 돌파하다가 그만 쇠로된 농구대와 부딪쳐 왼쪽 종아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복합골절로 뼈에 쇠심까지 박는 큰 수술을 받게 된 저는 피 끓는 17살의 여름을 하는 수없이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 준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휠체어를 타야 겨우 움직일 수 있던 저에게 아는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의 여신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준수의 여동생이 조금 아파서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가 있다는 기쁨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좋아만 했답니다.
매일 병원에 오는 준수덕분에 병원에서 보내는 17살의 여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녀석이 빌려주는 책과 음악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의 차분하지만 열정이 담긴 모습은 저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은 그동안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사춘기 소년의 그 무엇을 서서히 녹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목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저는 퇴원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녀석의 얼굴도 볼 겸해서 처음으로 준수의 동생이 입원해있는 병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본의 아니게 준수의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여보. 어쩌면 좋아? 수혈하는데 이번 달만 백만 원이야…….”
“걱정 마…….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테니까.”
다시 봐도 분명 준수의 부모님이었습니다.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괜히 제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더군요. 겉모습은 얌전하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했던 준수는 어린 마음에 동생과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수혈이 많이 필요한 큰 병에 걸린 동생을 그냥 조금 아파서 입원한 거라 둘러댔던 것입니다.
시간이 더 흘러 유난히도 더웠던 17살의 여름은 제 가슴에 선 하나를 그어놓고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교실은 심하게 들떠있었지만 저는 오히려 그러한 들뜸에 마음이 차분해 지더군요. 항상 조용하던 준수의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좋으니 아무리 작을 힘이라도 좋으니 준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한 TV방송이 저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국민의 헌혈의식을 조사하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방송을 통해 16살이 되면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헌혈증이 수혈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바로 안양역 앞에 있는 헌혈차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헌혈을 했습니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손에 든 한 장의 헌혈증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종이 한 장이 과연 준수의 동생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과 함께 괜히 녀석의 커다란 자존심에 상처만 주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고민이 시작 되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저는 저다운 무식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 길로 바로 교장실에 달려갔습니다. 처음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과 단둘이 있어본 것은 정말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저답지 않게 많이 긴장했지만 그래도 말을 꺼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준수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헌혈을 권유해주실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알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 한마디만을 해주시고는 저를 돌려보냈습니다. 도대체 뭘 알았다는 건지 저는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실망감마저 들더군요. 하지만 며칠 뒤 월요일 조회시간에 드디어 교장선생님께서 특유의 짧을 어투로 한 말씀 하시더군요. 평소 훈시도 잘 안하시던 분인데 이날은 조금 길게 말씀하습니다.
“여러분 친구의 동생이 백혈병을 앓고 있습니다. 오후에 헌혈차가 오면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임직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모두 헌혈하세요.”
한마디로 감동이었습니다. 저는 빠지려고 하는 친구와 선배를 모두 헌혈차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준수의 얼굴을 봤습니다. 녀석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수줍게 웃더군요. 다음 주 월요일 방송조회시간 교장선생님에게 수많은 헌혈증이 담긴 나무통을 받아든 준수의 부모님께서는 연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자존심 강한 준수도 카메라 앞에 서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군요.
지난 주말,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준수는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다시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저에게 말하더군요.
“고마워.”라고
하지만 제가 준수에게 주었던 도움은 녀석이 저에게 보여주었던 열정, 그리고 자신만 알던 이기적이 저에게 남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준 녀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알싸한 소주 한잔과 함께 가슴으로 이 말을 넘겼습니다.
‘준수야! 내가 더 고마워. 그리고 남은 군생활 씩씩하게 잘 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