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데 한 아이가 나를 알아봤다. 사진 찍는 아저씨죠? 나는 아이에게 보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모모가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가게에 간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보보를 예전에 찍은 적이 있는데 아이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나는 보보를 개인적으로 크르르라고 부른다. 크르르와 나는 좋은 이웃으로 가끔씩 먼 도시를 함께 바라본다. 왼쪽이 보보이고 오른쪽이 모모이다. 나는 보보를 크르르라고 부르지만 보보가 저 표정을 지을 때 크르르 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보보와 모모는 단짝이다. 그런데 모모가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이는 자기 생각으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집에 가서 사진기를 가지고 나올 동안 나는 모모가 걱정됐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집 나가면 험난한 게 인생이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런지. 아이들은 아주 조그만 공원에서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진행된 공사가 끝나자 동네 사람들은 공원을 가지게 됐다. 적막한 시멘트 동산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큰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은 당연히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도 들어가도 되니, 하고 묻지 않고 냉큼 들어갔다. 사진 찍기 전에 찍어도 되니,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낼름 생깠다. ㅡ_ㅡ 나는 잠시 복잡한 어른 세상에서 발을 떼고 아이들 세계에 들어가 셔터를 눌렀다.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사진기도 게을러졌고 나도 무뎌졌다. 아래 사진을 보면 자신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상한 생각을 하거나 자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어머나, 하고 반응한 사람은 늙었다. 아이들은 놀고 나도 놀았다. 예전엔 내가 저 속에서 놀았는데 이제 나는 구경하며 논다. 아싸 표정 좋고. 아, 좋아요. 아이들은 정신없이 논다. 아직은 기는 게 편해 보이는 아기. 직립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자세히 보면 침도 흘리고 있다. 한 가족이 애완견을 데리고 입장했다. 나는 아이에게 보보를 왜 데리고 오지 않았니, 하고 물었는데 아이는 공원에 보보를 데리고 오면 혼나서 보보는 집에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저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똥개는 안 돼. 애완동물은 되지! 나는 보보를 위해 속으로 끄응, 하고 신음했다. 공원에 애완견 출입을 막는 이유는 똥개라서가 아니라 배설하는 문제 때문일 것이다. 모모는 집을 나가고, 공원엔 놀러 나올 수도 없어 집에만 있는 보보가 좀 거시기했다. 어떻게 개가 이렇게 동네 규범을 착실히 지킬 수가 있지? 애완-개들은 인기가 좋았다. 이 사진의 오른쪽을 잘 보면 사람 한 명이 사진의 왼쪽에 서 있는 무술인이 쏜 장풍에 맞고 화면 밖으로 튕겨 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신음하듯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하고 중얼거리며 개에게 다가가 만지려 했다. 마치 손에 닿기만 해도 병이 치료된다고 믿는 것처럼. 개는 차분히 아이들 손길을 기다렸다. 나는 아이에게 보보가 이 개들보다 더 귀엽다고 추켜세우면서 데리고 나올 것을 은근히 부추겼는데 아이는 혼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자기보다는 보보가 혼난다고 했다. 나는 보보를 찍고 싶었다. 짜식. 이 아이는 찍히는 걸 좋아했다. 멀리 먼지 자욱한 도시가 보인다. 이곳은 고지가 좀 높은 편이다. 아이는 더 높이 날고 싶었나 보다. 하늘은 무척 맑았다. 아이는 윗니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교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잘 감췄다. 가장 잘 나왔다. 나는 이제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수십 개의 바이스가 내 얼굴 가죽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어서 그냥 편하게 웃기도 힘들다. 개도 저렇게 잘 웃는데. 이 사진은 2004년에 찍은 것 중 최고이다. 보보가 귀를 뒤로 젖힐 땐 크르르 하는 표정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모모하고 보보가 낮잠을 즐기고 가볍게 장난을 치고 나서 우연히 내 앞에서 자세를 취한 사진인데 모모가 어디에 있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저 때 두 개는 무척 행복해 보였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싱글들의 암흑기.
젠장 봄이 와버렸군.
집에 가는데 한 아이가 나를 알아봤다.
사진 찍는 아저씨죠?
나는 아이에게 보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모모가 집을 나갔다고 말했다.
가게에 간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보보를 예전에 찍은 적이 있는데
아이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나는 보보를 개인적으로 크르르라고 부른다.
크르르와 나는 좋은 이웃으로 가끔씩 먼 도시를 함께 바라본다.
왼쪽이 보보이고 오른쪽이 모모이다.
나는 보보를 크르르라고 부르지만
보보가 저 표정을 지을 때 크르르 소리를 내는 건 아니다.
보보와 모모는 단짝이다.
그런데 모모가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이는 자기 생각으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집에 가서 사진기를 가지고 나올 동안 나는 모모가 걱정됐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집 나가면 험난한 게 인생이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런지.
아이들은 아주 조그만 공원에서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진행된 공사가 끝나자
동네 사람들은 공원을 가지게 됐다.
적막한 시멘트 동산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얼굴이 큰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은
당연히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도 들어가도 되니, 하고 묻지 않고
냉큼 들어갔다.
사진 찍기 전에 찍어도 되니,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낼름 생깠다. ㅡ_ㅡ
나는 잠시
복잡한 어른 세상에서 발을 떼고
아이들 세계에 들어가 셔터를 눌렀다.
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사진기도 게을러졌고
나도 무뎌졌다.
아래 사진을 보면
자신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상한 생각을 하거나
자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어머나, 하고 반응한 사람은
늙었다.
아이들은 놀고
나도 놀았다.
예전엔 내가 저 속에서 놀았는데
이제 나는 구경하며 논다.
아싸 표정 좋고.
아, 좋아요.
아이들은 정신없이 논다.
아직은 기는 게 편해 보이는 아기.
직립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자세히 보면 침도 흘리고 있다.
한 가족이 애완견을 데리고 입장했다.
나는 아이에게 보보를 왜 데리고 오지 않았니, 하고 물었는데
아이는 공원에 보보를 데리고 오면 혼나서
보보는 집에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저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똥개는 안 돼. 애완동물은 되지!
나는 보보를 위해 속으로 끄응, 하고 신음했다.
공원에 애완견 출입을 막는 이유는
똥개라서가 아니라
배설하는 문제 때문일 것이다.
모모는 집을 나가고, 공원엔 놀러 나올 수도 없어
집에만 있는 보보가 좀 거시기했다.
어떻게 개가 이렇게 동네 규범을 착실히 지킬 수가 있지?
애완-개들은 인기가 좋았다.
이 사진의 오른쪽을 잘 보면 사람 한 명이
사진의 왼쪽에 서 있는 무술인이 쏜 장풍에 맞고
화면 밖으로 튕겨 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신음하듯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하고 중얼거리며
개에게 다가가 만지려 했다.
마치 손에 닿기만 해도 병이 치료된다고 믿는 것처럼.
개는 차분히 아이들 손길을 기다렸다.
나는 아이에게
보보가 이 개들보다 더 귀엽다고 추켜세우면서
데리고 나올 것을 은근히 부추겼는데
아이는 혼난다는 말만 반복했다.
자기보다는 보보가 혼난다고 했다.
나는 보보를 찍고 싶었다.
짜식.
이 아이는 찍히는 걸 좋아했다.
멀리
먼지 자욱한 도시가 보인다.
이곳은 고지가 좀 높은 편이다.
아이는 더 높이 날고 싶었나 보다.
하늘은 무척 맑았다.
아이는 윗니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교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잘 감췄다.
가장 잘 나왔다.
나는 이제 저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수십 개의 바이스가 내 얼굴 가죽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어서
그냥 편하게 웃기도 힘들다.
개도 저렇게 잘 웃는데.
이 사진은 2004년에 찍은 것 중 최고이다.
보보가 귀를 뒤로 젖힐 땐 크르르 하는 표정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모모하고 보보가 낮잠을 즐기고 가볍게 장난을 치고 나서
우연히 내 앞에서 자세를 취한 사진인데
모모가 어디에 있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
저 때
두 개는 무척 행복해 보였었다.
바야흐로
봄이다.
싱글들의 암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