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뜻밖에도 그가 그녀를 찾아 주어 수연은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간인 지금까지도 주엽에 대한 들뜬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들어났다.
점심 무렵 은행에 볼일을 보러 나온 은별을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도 어제완 사뭇 다른 수연의 태도와 얼굴표정에 은별은 그녀를 놀렸다.
“그렇게 좋으면 따로 살지 말고, 우리처럼 당장에 합치던가...”
“얜 누가 그러고 싶데니... ㅎㅎㅎ"
하지만, 은별의 말데로 그냥 이대로 자신을 좋다고 말해주는 남자에게 무작정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고 싶어 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엽의 일로인해 은미와 약속을 한터인지라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 거렸다.
“왜 그래?”
“어? 뭐....”
“좋아서 헤벌쭉 할 때는 언제고,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는데? 혹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은별) 그 넘이 뭐라던?”
“어? 누구?”
“누군(여전히 두리 번 거린다.) 재황인가 뭔가 재수 없는 넘 있잖아.”
은별의 말에 수연도 덩달아 주위를 살펴야 했다. 혹시라도 재황이 지나가다 그녀들의 은밀한? 수다를 또다시 듣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 졌다.
“야, 여긴 그 사람 회사야 괜한 말해서 사람 곤란하게 좀 하지 마, 그리고 오늘은 아직 못 봤어.”
“휴.. 다행이다. 그럼 아직 재황이 널 괴롭히는 건 아니겠네.”
은별의 말에 어제저녁 그가 준 선물이 떠올랐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명품 토드백이였다. 자신의 앞에 걱정스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귀엽고 앙증맞은 은별이 꺼 뻑 죽는 삐에르가르딩의 토드백이였다. 그에게 받은 선물조차 수연에겐 부담이나 마찬가지라서 그가 전혀 괴롭히지 않는 건 아니 였다.
“뭐야? 모라도 있는 그 표정은?”
“어? 아 아니야. 그나저나, 너 혼수품은 준비 다했냐?”
수연이 은별에게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아 은별은 자신의 결혼식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신혼살림은 우리 동네로 결정했다고?”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은별이 임신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홍차를 마시는 관계로 수연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주엽이 홍차를 좋아한다고 해서 더 좋아하게 됐음) 은별이 신접살림을 같은 동네로 결정했다는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 나 너랑 같은 동네서 사는 게 소원 아니 였냐? ㅋㅋㅋ 그리고 우리 형준씨도 주엽씨랑 같은 동네 살기를 원하고,”
“너는 그렇다 치더라도 형준씨까지... 암튼 두 사람 유별나다. 하지만 싸웠다고 우리 부르고 그러면 안 된다.”
“어우~야.... 니들이야 말로 우리 집에 매일 매일 놀러오면 싫오 할꼬 얌....ㅋㅋㅋㅋ”
“하하하하하”
“하하하 참!!, 나 이상한 소리 들었는데...”
은별이 수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내길 머뭇거렸다.
“어? 무슨 말”
“형준씨가 그러던데 주엽씨 이사한다며? 작업실 있는 오피스텔로 옮긴다던데...”
은별의 말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하은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라 새삼 더 놀라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넌, 알고 있었구나?”
은별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수연의 태도에 반신반의 했다.
“어. 하은미씨가 얘기 해 줬어.”
“어라. 너 은미 그 여우 만나거야? 왜? 언제!?”
은별은 수연이 여우같은 은미를 만난 걸 못마땅하다는 듯 물어 왔다.
“언제는 좀 됐다. 그리고, 너 내가 은미씨 만나 거 형준씨 통해서 주엽씨 한테 들어가면 너랑 친구 안한다.”
“허이구, 기집애 그걸 협박이라고, 암튼 뭐라 든 그 여우가?”
은별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은미와 약속 아닌 약속을 해버린 지금 은별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그녀를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 뭐라고 그러더냐 니까? 헤어지래 너더러?”
“.. 하하하 기집에 넘겨짚기는 우리 주엽씨 스타 만들어 준다고, 걱정 말라더라”
“칫, 정말 여우가 따로 없다니까. 진짜 그말만 한거 야 그 여우가? ”
수연은 재차 묻는 은별에게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하여튼 너 그 기집에 너무 믿지 마라 내가 형준씨한테 듣기론 주엽씨한테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목하 접근중이라니까.”
‘목하 접근 중이라......’
“그려, 그럼 할 수 없지 뭐. 주엽씨가 워낙에 인물이 좀 되 잔 야. 하하하”
그녀의 웃음에 은별은 어이없어 하며, 회사로 들어가야 겠 다고 했다.
“아무튼 조심하라면 조심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고, 그리고 너 일도 좋지만, 주엽씨 좀 챙겨라 어제도 형준씨 말 들어 보니까 은미 그 여우가 도시락까지 싸와서 주엽씨 옆에서 알랑 거리 더 라든데...”
수연에게 잔소리를 하는 은별이 가버리고 나서야 자신이 주엽에게 얼마나 소홀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늘 걱정하며, 지켜주고 싶다고 했거늘.... 몇일 전에도 그녀에게 ‘You know you're my world, 라고 그녀에게 고백하던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아련히 멤 돌았다.
“자....”
그녀의 생각을 깨우는 소리. 하루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재황이 어느새 다가와 그녀에게 커피를 건내 주었다. 재황이 건내준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그 김과 함께 커피향이 그녀의 생각을 모조리 날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서 받아, 팔 아프니까.”
웃으며, 그가 내민 유혹적인 커피의 향이 그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주엽의 일만 생각하면 그녀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보단 차라리 진한 커피의 향에 빠지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약간 망설이던 그녀가 그가 내민 커피를 받아 조금씩 조금씩 입안으로 흘러 보냈다. 그 진한 향기에 간신히 정리되고 있는 주엽의 생각이 모조리 나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커피의 달콤한 유혹에 모든 것을 견디고 있다.
“넌 언제나, 사람을 애태우는 버릇이 있더라.”
주엽이 CCJ홈쇼핑 별관 쪽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애태우다...’
“네가 아무리 관심없더라도 사람사는 일이 다 그런건 아니거든? 너무 헤픈 여자도 별로지만, 너처럼 남자건 여자건 간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바로 그 표정이 사람을 잡는 법이거든?”
그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듯 말을 했다.
“그래요? 난 진짜 관심 없었는데.....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변하게 되요. 모든 것에..”
“....... 뭐가 널 변하게 한거지?”
재황은 그녀가 변한 이유가 진짜로 궁금하다는 듯 그녀를 뚫어 져라 처다 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재황이 바라보던 CCJ홈쇼핑 별관에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CCJ홈쇼핑 별관은 아이들이 놀기 좋도록 인공잔디를 깔아 놀이터로 개방된 곳이다. 휴일이나 평일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글 쎄 요.... 아마도 재황씨가 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난 일이 겠죠....”
그녀는 씁씁하게 웃으며, 자신의 일터로 들어가 버렸다. 재황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다른 면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 왔다.
‘미친놈, 넌 수연이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냐?... 크크크.. 수연인 널 상대도 하지 않는데 말이야......ㅋㅋㅋㅋ’
재황은 곳 CCJ홍쇼핑의 총수격인 이사 진 대열에 들어설 것이다. 바로 그의 약혼녀 덕분이라도 과언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을 옭아매는 그녀의 성격이 그를 싫증나게 만들었다.
삐........ 삐....... 오랜 신호음을 내버려 둔체 결국 그가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디에요? 어디있어요?”
그의 약혼녀 진선미가 날카롭게 그를 찾았다.
“회사.”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벌써부터 두통이 일렁거렸다. 곳 몰려올 머리의 욱신거림을 감지라도 하듯 그의 손이 버릇처럼 이마를 문지른다.
“오늘 결혼예물 보러 가기로 한거 잊었어요!!!”
찌져질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선미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만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 잊었어.”
양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잊었다’ 말해 버렸다. 또 한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평소 조용한 성격의 그녀가 한번 히스테릭하게 변하면 주위사람 아무도 그녀를 말리 수 없다는 것쯤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성격을 그는 굳이 고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다. 자신을 꽁꽁 묶어 두려는 선미의 태도 하나하나가 귀찮고, 싫어 졌다. 다만 욕심스런 욕망이란 놈이 성공의 문 앞에서 무릎 꾾고자 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참고, 왔던 것일 뿐이다.
“후~ 그래서...”
“재황씨 아니 당신 정말 그러기에요?”
히스테릭하던 그녀 어느새 잠잠해지며 그에게 평소 보이던 다소곳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뭐가? 후......”
담배연기를 위로 날려 버리며, 선미와의 대화를 지루하게 받아 들였다. 마치 자신의 일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구 아무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런 모습이 였다.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와요.. 나 너무 오래 기다려서 힘드니까.”
조금씩 목소리를 낯추며 정말 힘들어 진 것처럼 그를 달래려 했다. 늘 같은 수법. 울다 지치면, 그에게 매달리는 수법. 정말 역겨웠다.
“그래? 그럼 더 기다려. 오늘은 안나갈테니....”
한모금의 담배연기를 더 뿜어 내며, 그는 차갑게 선미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그들이 약혼을 한지 한달여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이렇게 어긋나고 있었다.
.
.
.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수연이 봤다며? 짜식 어쩐지 네 얼굴이 활짝 폈다고 했더니만, 그래 너 새벽같이 찾아가니까 수연이가 뭐라던 ‘혹 쉬 뽀뽀라도 해주던?’ 어 어? 이 자식 좀 보게?”
“자식..... 뭐가. 넌 그럼 은별이랑 뽀뽀 같은 건 안하고 사는 놈처럼 왜 그렇게 보는 건데”
“나야.. 너랑 다르지.. 그런데 진짜 루 너 왔다고 수연이가 뽀뽀해줬단 말이야?”
말은 안하고 싱글 벙글 해서 고개만 끄덕이는 주엽의 모습에 형준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럼 너 어제 수연이한테 화난거 물어는 본거야? 그 남자가 누구인지?”
“..... 아니. 니말데로 무슨 남자가 있겠냐? 수연이가..”
주엽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수연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기로 했다. 한번본 장면으로 그녀에게 화를 낼 필요도 권리도 그에게는 아직 없으니까...
“은별이 말데로 너 은미에게 주의 해라. 내가 봐도 은미씨 좀 과하다 싶으니까.. 하여튼 여복도 많아요.... 아닌가? ”
레드&블렉의 음반작업이 마무리되어 일주일만 지나면 그들의 음반이 음반시장에 나돌 것이다. 그틈을 타 정식으로 수연에게 프로포즈하고, 자신이 3년전 그 사람임을 말해 주고싶었다. 일주일후 그녀에게 고백할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주엽은 오늘아침 그에게 조금 더 다가온 그녀의 모습을 행복하게 떠올렸다.
앞집 그 남자 - (19) 봄. 그림자를 드리우다.
앞집 그 남자 - (19) 봄. 그림자를 드리우다.
오늘 아침 뜻밖에도 그가 그녀를 찾아 주어 수연은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간인 지금까지도 주엽에 대한 들뜬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들어났다.
점심 무렵 은행에 볼일을 보러 나온 은별을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도 어제완 사뭇 다른 수연의 태도와 얼굴표정에 은별은 그녀를 놀렸다.
“그렇게 좋으면 따로 살지 말고, 우리처럼 당장에 합치던가...”
“얜 누가 그러고 싶데니... ㅎㅎㅎ"
하지만, 은별의 말데로 그냥 이대로 자신을 좋다고 말해주는 남자에게 무작정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고 싶어 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주엽의 일로인해 은미와 약속을 한터인지라 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 거렸다.
“왜 그래?”
“어? 뭐....”
“좋아서 헤벌쭉 할 때는 언제고,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는데? 혹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은별) 그 넘이 뭐라던?”
“어? 누구?”
“누군(여전히 두리 번 거린다.) 재황인가 뭔가 재수 없는 넘 있잖아.”
은별의 말에 수연도 덩달아 주위를 살펴야 했다. 혹시라도 재황이 지나가다 그녀들의 은밀한? 수다를 또다시 듣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 졌다.
“야, 여긴 그 사람 회사야 괜한 말해서 사람 곤란하게 좀 하지 마, 그리고 오늘은 아직 못 봤어.”
“휴.. 다행이다. 그럼 아직 재황이 널 괴롭히는 건 아니겠네.”
은별의 말에 어제저녁 그가 준 선물이 떠올랐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명품 토드백이였다. 자신의 앞에 걱정스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귀엽고 앙증맞은 은별이 꺼 뻑 죽는 삐에르가르딩의 토드백이였다. 그에게 받은 선물조차 수연에겐 부담이나 마찬가지라서 그가 전혀 괴롭히지 않는 건 아니 였다.
“뭐야? 모라도 있는 그 표정은?”
“어? 아 아니야. 그나저나, 너 혼수품은 준비 다했냐?”
수연이 은별에게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돌아 은별은 자신의 결혼식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신혼살림은 우리 동네로 결정했다고?”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은별이 임신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홍차를 마시는 관계로 수연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주엽이 홍차를 좋아한다고 해서 더 좋아하게 됐음) 은별이 신접살림을 같은 동네로 결정했다는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 나 너랑 같은 동네서 사는 게 소원 아니 였냐? ㅋㅋㅋ 그리고 우리 형준씨도 주엽씨랑 같은 동네 살기를 원하고,”
“너는 그렇다 치더라도 형준씨까지... 암튼 두 사람 유별나다. 하지만 싸웠다고 우리 부르고 그러면 안 된다.”
“어우~야.... 니들이야 말로 우리 집에 매일 매일 놀러오면 싫오 할꼬 얌....ㅋㅋㅋㅋ”
“하하하하하”
“하하하 참!!, 나 이상한 소리 들었는데...”
은별이 수연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꺼내길 머뭇거렸다.
“어? 무슨 말”
“형준씨가 그러던데 주엽씨 이사한다며? 작업실 있는 오피스텔로 옮긴다던데...”
은별의 말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하은미에게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라 새삼 더 놀라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넌, 알고 있었구나?”
은별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수연의 태도에 반신반의 했다.
“어. 하은미씨가 얘기 해 줬어.”
“어라. 너 은미 그 여우 만나거야? 왜? 언제!?”
은별은 수연이 여우같은 은미를 만난 걸 못마땅하다는 듯 물어 왔다.
“언제는 좀 됐다. 그리고, 너 내가 은미씨 만나 거 형준씨 통해서 주엽씨 한테 들어가면 너랑 친구 안한다.”
“허이구, 기집애 그걸 협박이라고, 암튼 뭐라 든 그 여우가?”
은별의 말에 잠시 망설였다. 은미와 약속 아닌 약속을 해버린 지금 은별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그녀를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 뭐라고 그러더냐 니까? 헤어지래 너더러?”
“.. 하하하 기집에 넘겨짚기는 우리 주엽씨 스타 만들어 준다고, 걱정 말라더라”
“칫, 정말 여우가 따로 없다니까. 진짜 그말만 한거 야 그 여우가? ”
수연은 재차 묻는 은별에게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하여튼 너 그 기집에 너무 믿지 마라 내가 형준씨한테 듣기론 주엽씨한테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목하 접근중이라니까.”
‘목하 접근 중이라......’
“그려, 그럼 할 수 없지 뭐. 주엽씨가 워낙에 인물이 좀 되 잔 야. 하하하”
그녀의 웃음에 은별은 어이없어 하며, 회사로 들어가야 겠 다고 했다.
“아무튼 조심하라면 조심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고, 그리고 너 일도 좋지만, 주엽씨 좀 챙겨라 어제도 형준씨 말 들어 보니까 은미 그 여우가 도시락까지 싸와서 주엽씨 옆에서 알랑 거리 더 라든데...”
수연에게 잔소리를 하는 은별이 가버리고 나서야 자신이 주엽에게 얼마나 소홀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늘 걱정하며, 지켜주고 싶다고 했거늘.... 몇일 전에도 그녀에게 ‘You know you're my world, 라고 그녀에게 고백하던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아련히 멤 돌았다.
“자....”
그녀의 생각을 깨우는 소리. 하루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재황이 어느새 다가와 그녀에게 커피를 건내 주었다. 재황이 건내준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그 김과 함께 커피향이 그녀의 생각을 모조리 날아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서 받아, 팔 아프니까.”
웃으며, 그가 내민 유혹적인 커피의 향이 그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주엽의 일만 생각하면 그녀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보단 차라리 진한 커피의 향에 빠지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약간 망설이던 그녀가 그가 내민 커피를 받아 조금씩 조금씩 입안으로 흘러 보냈다. 그 진한 향기에 간신히 정리되고 있는 주엽의 생각이 모조리 나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커피의 달콤한 유혹에 모든 것을 견디고 있다.
“넌 언제나, 사람을 애태우는 버릇이 있더라.”
주엽이 CCJ홈쇼핑 별관 쪽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애태우다...’
“네가 아무리 관심없더라도 사람사는 일이 다 그런건 아니거든? 너무 헤픈 여자도 별로지만, 너처럼 남자건 여자건 간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바로 그 표정이 사람을 잡는 법이거든?”
그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듯 말을 했다.
“그래요? 난 진짜 관심 없었는데..... 하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변하게 되요. 모든 것에..”
“....... 뭐가 널 변하게 한거지?”
재황은 그녀가 변한 이유가 진짜로 궁금하다는 듯 그녀를 뚫어 져라 처다 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재황이 바라보던 CCJ홈쇼핑 별관에 뛰어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CCJ홈쇼핑 별관은 아이들이 놀기 좋도록 인공잔디를 깔아 놀이터로 개방된 곳이다. 휴일이나 평일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글 쎄 요.... 아마도 재황씨가 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난 일이 겠죠....”
그녀는 씁씁하게 웃으며, 자신의 일터로 들어가 버렸다. 재황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그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다른 면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 왔다.
‘미친놈, 넌 수연이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은 거냐?... 크크크.. 수연인 널 상대도 하지 않는데 말이야......ㅋㅋㅋㅋ’
재황은 곳 CCJ홍쇼핑의 총수격인 이사 진 대열에 들어설 것이다. 바로 그의 약혼녀 덕분이라도 과언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을 옭아매는 그녀의 성격이 그를 싫증나게 만들었다.
삐........ 삐....... 오랜 신호음을 내버려 둔체 결국 그가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 전화를 받았다.
“네.”
“어디에요? 어디있어요?”
그의 약혼녀 진선미가 날카롭게 그를 찾았다.
“회사.”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에 벌써부터 두통이 일렁거렸다. 곳 몰려올 머리의 욱신거림을 감지라도 하듯 그의 손이 버릇처럼 이마를 문지른다.
“오늘 결혼예물 보러 가기로 한거 잊었어요!!!”
찌져질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선미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만 듣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 잊었어.”
양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잊었다’ 말해 버렸다. 또 한번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평소 조용한 성격의 그녀가 한번 히스테릭하게 변하면 주위사람 아무도 그녀를 말리 수 없다는 것쯤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성격을 그는 굳이 고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다. 자신을 꽁꽁 묶어 두려는 선미의 태도 하나하나가 귀찮고, 싫어 졌다. 다만 욕심스런 욕망이란 놈이 성공의 문 앞에서 무릎 꾾고자 하지 않아서 여기까지 참고, 왔던 것일 뿐이다.
“후~ 그래서...”
“재황씨 아니 당신 정말 그러기에요?”
히스테릭하던 그녀 어느새 잠잠해지며 그에게 평소 보이던 다소곳하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뭐가? 후......”
담배연기를 위로 날려 버리며, 선미와의 대화를 지루하게 받아 들였다. 마치 자신의 일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구 아무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런 모습이 였다.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와요.. 나 너무 오래 기다려서 힘드니까.”
조금씩 목소리를 낯추며 정말 힘들어 진 것처럼 그를 달래려 했다. 늘 같은 수법. 울다 지치면, 그에게 매달리는 수법. 정말 역겨웠다.
“그래? 그럼 더 기다려. 오늘은 안나갈테니....”
한모금의 담배연기를 더 뿜어 내며, 그는 차갑게 선미에게 선포하듯 말했다. 그들이 약혼을 한지 한달여 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이렇게 어긋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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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수연이 봤다며? 짜식 어쩐지 네 얼굴이 활짝 폈다고 했더니만, 그래 너 새벽같이 찾아가니까 수연이가 뭐라던 ‘혹 쉬 뽀뽀라도 해주던?’ 어 어? 이 자식 좀 보게?”
“자식..... 뭐가. 넌 그럼 은별이랑 뽀뽀 같은 건 안하고 사는 놈처럼 왜 그렇게 보는 건데”
“나야.. 너랑 다르지.. 그런데 진짜 루 너 왔다고 수연이가 뽀뽀해줬단 말이야?”
말은 안하고 싱글 벙글 해서 고개만 끄덕이는 주엽의 모습에 형준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럼 너 어제 수연이한테 화난거 물어는 본거야? 그 남자가 누구인지?”
“..... 아니. 니말데로 무슨 남자가 있겠냐? 수연이가..”
주엽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수연을 좋아하는 것만큼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기로 했다. 한번본 장면으로 그녀에게 화를 낼 필요도 권리도 그에게는 아직 없으니까...
“은별이 말데로 너 은미에게 주의 해라. 내가 봐도 은미씨 좀 과하다 싶으니까.. 하여튼 여복도 많아요.... 아닌가? ”
레드&블렉의 음반작업이 마무리되어 일주일만 지나면 그들의 음반이 음반시장에 나돌 것이다. 그틈을 타 정식으로 수연에게 프로포즈하고, 자신이 3년전 그 사람임을 말해 주고싶었다. 일주일후 그녀에게 고백할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주엽은 오늘아침 그에게 조금 더 다가온 그녀의 모습을 행복하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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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ng soon.......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