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하지만 젊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 상식이 정말로상식적인지에 대하여 반문하고 저항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비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수많은 난관을 거쳐 상식에 안착한 사례는얼마든지 있으니까.기득권들의 손가락질에 순응하며 팔자좋게 세상에 안주하려다가는 결국삶은 꼭두각시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피가 뜨거움을 느낀다면한번쯤 혁명과 봉기의 불꽃에 한몸 내던지는 것도 역사의 일부를 장식하는멋진 경험이자 젊음의 의무가 되지 않을까 싶다.1968년, 파리는 불타고 있었다.the dreamers영화를 '좋아함'을 넘어서 스크린에 미치고 환장한 젊음들. 대사와 장면은 물론리뷰까지 섭렵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그들 가운데 파리로 유학 온 메튜가있었고 그를 '우리'로 받아들인 테오와 이사벨이 있었다.문화적 억압과 정치권에 맞서 거리의 불길이 가시지 않을 그때 무리에 섞여 극장을줄곧 찾던 그들은 이사벨에 반한 메튜와 그녀의 진한 연인같은 테오의 동의로보수적인 부모가 집을 떠난 틈을 타 한달여간의 동거를 펼친다.진한 키스와 스킨쉽이 낯설지 않아보이는 테오와 이사벨이 남매였다는 것을 확인하게된 메튜는 경악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상과 해박한 영화적 지식등 자신과많은 코드를 공유할 수 있다는데에서 매력을 느낀 테오는 곧 그들의 일원이 되고누구도 허락치 않은 그들만의 기이한 생활에 동참하게 된다.대사와 장면을 흉내내고 그걸 맞춰야만 하는 영화퀴즈게임이 무르 익어가고벌칙에는 루브루 박물관 통로를 질주하는 자유분방함에서부터 일반인의사고로는민망하기까지한 행위들로 가득하다. '카사블랑카' 의 총격살인 장면을 맞추지 못한매튜. 출제자 테오의 요구는 다름아닌 쌍둥이 여동생 이사벨과의 동침이었다.시간과 나이를 잊은 듯한 남매의 행위들 속에서 매튜는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고그들을 아끼기에 그들을 사랑하기에 어느새 연인이 된 이사벨과 테오에게 따끔한경종을 울리는 충고를 쏟아붓는다. 그들 남매는 충분히 저항적인 사고를 가짐에도집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 안전한 공간에머무른 채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테오와 이사벨은 쌍둥이였음에도 첫사랑이었고 다 자란 청년이었음에도 유아기적감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섹스, 마약, 로큰롤, 씨네마. 그들은 향유하며 즐기기만 했을 뿐 진정한 투쟁의 물결에는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세상의 이성은 단둘뿐이었고 그들은 어른의 몸임에도발가벗고 같이 잤으며 혼욕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가지 않았고 자라지 않았던것이었다. 오빠 테오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된 이사벨은 울음을 터뜨리며한없는 낯설움을 표한다. 메튜는 그녀의 연인임에도 더이상 범접할 수 없는 선이있음을 깨닫는다. 몸은 사랑을 나누지만 끝내 공유할 수 없었던 마음의 공간이 있었던것.기성세대의 눈에 그들만의 세계가 발각되었을때 전에 다짐했던 것처럼 기꺼이 죽으려했지만 거리의 불꽃은 다시 한번 그들을 깨우고 그들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않는다. 그제서야 폭력은 심장을 벗어나 젊음피를 달음박질 시킨다. 이제 꿈만 꾸고사는 시기는 지났음을 알기에.2년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거장의 솜씨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시대의 물결과그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그들만의 몸동작과 진지한 성찰들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감독은 어떤 제한도 긋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시킨다. 나체와 행위는 만 18세 이상의정신연령이라면 더이상 야하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놀라운 것이 있었다면 또다른 사랑의 발견이랄까. 이상을 공유하는 셋중에서 일치되지못한 점이 있었다면 미숙한 사랑의 벗어남에 대한 논쟁이었다. 매튜는 자신의 연인이된 이사벨이 더이상 쌍둥이 오빠 테오의 품에서 벗어나기를 바랬지만 둘만의 감성과언어로 스무살을 지나온 두남매에게 사랑은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손을 놓는다면감당키 어려울 두려움이었을테니 말이다. 성장을 거부한 그들. 어른을 영원히 미워하고싶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라있었다. 마음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을 뿐.영화는 정치와 문화의 소용돌이를 비추며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초점은세명의 어울림에 두고 있었다. 한없이 좁지만 무한한 몽상의 공간, 그들은 끝내 벗어났지만 그것은 몽상과 자유로부터의 도피가아닌 더 넓은 곳을 향한 영역의 확장이었으리라.갓신인임에도 불구, 열정과 매력을 마력처럼 뿜어 낸 세 배우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주연 마이클 피트, 루이스 가렐, 에바 그린//덧붙이자면 최근 미디어를 타고 있는 장동건 정지현 정우성이 출연한지오다노 CF의 설정은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모티브를 따왔음이다.세명이 같이 있는 욕조신이나 삼각관계의 갈등에서 볼때 이 영화와 거의흡사하다는 점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영화와는 개별적인 편집과 스타성을잘 배합한 지오다노 같은 CF는 시작적인 측면으로는 꽤 수작이다.회사가 스타마케팅에 너무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광고가자주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몽상가들the dreamers
상식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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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젊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그 상식이 정말로
상식적인지에 대하여 반문하고 저항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비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수많은 난관을 거쳐 상식에 안착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기득권들의 손가락질에 순응하며 팔자좋게 세상에 안주하려다가는 결국
삶은 꼭두각시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피가 뜨거움을 느낀다면
한번쯤 혁명과 봉기의 불꽃에 한몸 내던지는 것도 역사의 일부를 장식하는
멋진 경험이자 젊음의 의무가 되지 않을까 싶다.
1968년, 파리는 불타고 있었다.
the dreamers
영화를 '좋아함'을 넘어서 스크린에 미치고 환장한 젊음들. 대사와 장면은 물론
리뷰까지 섭렵하고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그들 가운데 파리로 유학 온 메튜가
있었고 그를 '우리'로 받아들인 테오와 이사벨이 있었다.
문화적 억압과 정치권에 맞서 거리의 불길이 가시지 않을 그때 무리에 섞여 극장을
줄곧 찾던 그들은 이사벨에 반한 메튜와 그녀의 진한 연인같은 테오의 동의로
보수적인 부모가 집을 떠난 틈을 타 한달여간의 동거를 펼친다.
진한 키스와 스킨쉽이 낯설지 않아보이는 테오와 이사벨이 남매였다는 것을 확인
하게된 메튜는 경악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상과 해박한 영화적 지식등 자신과
많은 코드를 공유할 수 있다는데에서 매력을 느낀 테오는 곧 그들의 일원이 되고
누구도 허락치 않은 그들만의 기이한 생활에 동참하게 된다.
대사와 장면을 흉내내고 그걸 맞춰야만 하는 영화퀴즈게임이 무르 익어가고
벌칙에는 루브루 박물관 통로를 질주하는 자유분방함에서부터 일반인의사고로는
민망하기까지한 행위들로 가득하다. '카사블랑카' 의 총격살인 장면을 맞추지 못한
매튜. 출제자 테오의 요구는 다름아닌 쌍둥이 여동생 이사벨과의 동침이었다.
시간과 나이를 잊은 듯한 남매의 행위들 속에서 매튜는 혼란과 갈등을 경험하고
그들을 아끼기에 그들을 사랑하기에 어느새 연인이 된 이사벨과 테오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리는 충고를 쏟아붓는다. 그들 남매는 충분히 저항적인 사고를 가짐에도
집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 안전한 공간에머무른 채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
테오와 이사벨은 쌍둥이였음에도 첫사랑이었고 다 자란 청년이었음에도 유아기적
감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섹스, 마약, 로큰롤, 씨네마. 그들은 향유하며 즐기기만 했을 뿐 진정한 투쟁의 물결
에는 문을 닫아놓고 있었다.세상의 이성은 단둘뿐이었고 그들은 어른의 몸임에도
발가벗고 같이 잤으며 혼욕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가지 않았고 자라지 않았던
것이었다. 오빠 테오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된 이사벨은 울음을 터뜨리며
한없는 낯설움을 표한다. 메튜는 그녀의 연인임에도 더이상 범접할 수 없는 선이
있음을 깨닫는다. 몸은 사랑을 나누지만 끝내 공유할 수 없었던 마음의 공간이 있었던
것.
기성세대의 눈에 그들만의 세계가 발각되었을때 전에 다짐했던 것처럼 기꺼이 죽으려
했지만 거리의 불꽃은 다시 한번 그들을 깨우고 그들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지
않는다. 그제서야 폭력은 심장을 벗어나 젊음피를 달음박질 시킨다. 이제 꿈만 꾸고
사는 시기는 지났음을 알기에.
2년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거장의 솜씨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시대의 물결과
그에 휩쓸리기를 거부하는 그들만의 몸동작과 진지한 성찰들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은 어떤 제한도 긋지 않고 매끄럽게 연결시킨다. 나체와 행위는 만 18세 이상의
정신연령이라면 더이상 야하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놀라운 것이 있었다면 또다른 사랑의 발견이랄까. 이상을 공유하는 셋중에서 일치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미숙한 사랑의 벗어남에 대한 논쟁이었다. 매튜는 자신의 연인이
된 이사벨이 더이상 쌍둥이 오빠 테오의 품에서 벗어나기를 바랬지만 둘만의 감성과
언어로 스무살을 지나온 두남매에게 사랑은 아직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손을 놓는다면
감당키 어려울 두려움이었을테니 말이다. 성장을 거부한 그들. 어른을 영원히 미워하고
싶었겠지만 그들은 이미 자라있었다. 마음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었을 뿐.
영화는 정치와 문화의 소용돌이를 비추며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모든 초점은
세명의 어울림에 두고 있었다. 한없이 좁지만 무한한 몽상의 공간, 그들은 끝내 벗어났
지만 그것은 몽상과 자유로부터의 도피가아닌 더 넓은 곳을 향한 영역의 확장이었으리라.
갓신인임에도 불구, 열정과 매력을 마력처럼 뿜어 낸 세 배우들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주연 마이클 피트, 루이스 가렐, 에바 그린
//덧붙이자면 최근 미디어를 타고 있는 장동건 정지현 정우성이 출연한
지오다노 CF의 설정은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모티브를 따왔음이다.
세명이 같이 있는 욕조신이나 삼각관계의 갈등에서 볼때 이 영화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영화와는 개별적인 편집과 스타성을
잘 배합한 지오다노 같은 CF는 시작적인 측면으로는 꽤 수작이다.
회사가 스타마케팅에 너무 기대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광고가
자주 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