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여자, 어을우동 _ 38편 (역사 로맨스)

국화200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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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입니다.

하지만, 국화는 만우절 농담 사절합니다. ㅜ,.ㅜ왕의 여자, 어을우동 _ 38편 (역사 로맨스)

글이 형편없다느니, 등등 그런 농담 사절합니다.

그리하시면 소심한 국화 바로 삐짐 들어갑니다. 왕의 여자, 어을우동 _ 38편 (역사 로맨스)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왕의 여자, 어을우동 _ 38편 (역사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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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하늘에 몹시 빠른 빛이 번쩍였다. 번개가 치더니 천둥이 울렸다. 춘우(春雨)라 하기엔, 그 여파가 너무나 줄기찼다. 빗물이 어찌나 거세게 내리치는지, 성종의 갓이 찢어질 정도였다. 갓을 타고 내려온 빗물들이 도포를 적시고, 바지저고리를 뚫고 들어갔으며, 태사혜가 진흙탕으로 인해 물들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경이 흠칫 걸음을 하려다 물러섰다. 기왓장 사이로 떨어지는 낙숫물이 요란하였다. 방안에서 어우동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이 메어 쉬어있었다.

“돌아가시옵소서. 소첩을 독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옵소서. 부디, 부디 그만 돌아가시옵소서. 돌아가시란 말씀이옵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소첩을 이리도 독하게 만드시는 것이 옵니까. 어찌하여 소첩을 이리도 매정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옵니까. 돌아가시옵소서. 제발 돌아가시란 말씀이옵니다.”

어우동의 목소리가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보지는 않았으나, 울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어우동의 애통한 목소리 사이로, 비가 떨어지고 있질 않았던가. 내리는 비는 어우동의 눈물일 것이었다. 성종이 어우동을 향해 큰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면, 내리는 비가 방해를 할 것이었다. 제대로 어우동에게 전달시켜주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요, 아니요. 그대를 독하게 만들다니,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질 않소이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그대가 모를 리는 없을 터. 이러지 마시오. 부인! 청풍이요. 나란 말이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외다. 나는 청풍일 뿐이외다. 그대의 지아비일 뿐이외다. 부인! 나를 좀 봐주시구려. 기다릴 것이외다. 그대가 그, 고운 얼굴을 보여주지 전까지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소이다. 그리하지 않을 것이요. 내 진심을 알아주기 전까지는 예서,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외다. 부인! 제발, 제발 나를 용서해주시오. 내, 내, 그대가 그리워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아시오? 내, 내, 그대가 그리워, 내가 정녕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알고 있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소. 그대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기 위해, 허하고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 짐승이 되어야했소이다. 짐승이 말이요. 허나, 그대의 빈자리는 차지가 않더이다. 너무나 커, 너무나 커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더이다. 부인! 부인! 보시라 하지 않았소이까. 그대가 오장육부를 도려내는 고통 속에, 내가 얼마나 잘 자고, 잘 먹고, 잘 지냈는지 보라하지 않았소이까. 나를 좀 봐주시오. 부인!.....”

“아니 볼 것이옵니다. 다시는, 다시는 서방님을 아니 볼 것이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옵소서. 제발, 소첩을 그냥 두시옵소서. 전하께서 이러시면, 소첩! 차라리 혀를 깨물어 자진이라도 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옵소서.”

성종이 눈을 감았다. 세찬 비가 들이닥쳐 눈물을 씻겨주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비로 인하여, 눈물을 감출수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성종이 다시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방문을 향해 큰소리로 말을 건넸다.

“좋소이다. 그리하시오. 내, 내 손으로 직접 그대를 거두겠소이다. 기다릴 것이요. 예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요. 하오나, 부인! 그리하지 마시오. 제발 부탁이니 그리하지는 마시오. 나를 위하여, 이 못난 나를 위하여, 그대가 그리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사모하지 않았소? 그대도 나를 사모하지 않았더이까? 그리하지 마시오. 차라리 멍석말이를 당해 죽는다할지라도 그러지 마시오. 몰매를 맞아 죽는다할지라도 그러지 마시오. 죽는 것이 뭬 두렵겠소이까. 허나, 그대를 못 보는 것이 더, 그것이 더 무섭고 두렵소이다. 나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외다. 그대가 나를 보아주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외다. 이리 벼락을 맞아 죽는다할지라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외다.”

성종이 자세를 고치며 더욱 허리를 꼿꼿이 세워 앉았다. 또다시 천둥이 지나갔다. 어우동이 방문을 열고 뛰어나왔다. 저리 두면 아니 될 것이었다. 어우동이 버선발로 뛰어나가 성종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부짖었다.

“돌아가시옵소서. 제발, 돌아가시란 말씀이옵니다. 소첩을 그리도 사모하였다면, 왜 진정 소첩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모르시옵니까? 소첩 이대로 죽는 꼴을 보셔야 전하께서 시원하시겠사옵니까? 이러지 마시옵소서. 이러지 마시옵소서. 소첩이 어찌해야한단 말입니까....... 정녕, 소첩이 어찌해야한단 말입니까. 으흐흑!”

너무나 야위어있었다. 하얀 소복을 차려입은 어우동은, 낯빛과 의복색이 같아보였다. 어찌나 창백하던지,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발그스름하던 볼이 핏기하나 없었다. 붉었던 입술이 군데군데가 갈리어 딱지가 앉아 있었다. 자그맣고 가느린 손가락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 성종이 어우동의 볼을 감싸 쥐며 눈시울을 적혔다.

“이게 다, 이게 다 무엇이요?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리....... 어찌하여 이리 야위었소이까. 이 몹쓸 사람으로 인해, 이게 다 무엇이요?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이요. 어찌하여 이리 지내셨소이까. 보란 듯 살아야지요. 이 몹쓸 사람 생각은 잊고, 보란 듯, 잘 먹고, 잘 자고 했어야지요. 이게 다 무엇이요.......”

성종이 어우동을 껴안았다. 빗물에 젖어버린 어우동의 치마저고리가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앙상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었다. 성종이 품안에서 어우동을 다시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얼굴과 어깨와 머리를 정신없이 만지며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애틋함이 하늘에까지 동하였는지, 비는 계속하여 그칠 기미가 없어보였다.

“어디 보오. 어디 보오! 미안했소이다. 미안했소이다. 이리 살아주어, 이리 살아있어 주어 고맙습니다. 고맙소이다. 내, 내, 다시는 그대의 고운 두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할 것이외다. 꼭 그럴 것이외다. 나를 용서해주시오.”

어우동이 성종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아니 되옵니다. 두 번 다시 걸음을 하시지 마시옵소서. 소첩은, 소첩은 서방님을....... 전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무어라 하시었습니까? 제게 무어라 하시었습니까? 거짓은 고하지 않겠노라 그리 약조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제게 거짓은 고하지 않음아 라고 그리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소첩,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젠 전하를 뫼실 수가 없사옵니다. 그리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전하를 두 번 다시 뵙지 않을 것이옵니다. 전하를, 전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옵나이다. 돌아가시옵소서.”

성종이 어우동의 두 팔을 잡아채었다. 그리고는 어우동의 눈빛을 되찾기 위해 흔들어재꼈다.

“부인! 이러지 마시오. 이러지 마시오. 정녕, 내 마음을 그리도 모르시겠소이까? 이러지 마시오. 제발 부탁이니 이러지 마시오. 부인!”

“소첩은, 소첩은 이미 마음속에서 전하를 지웠나이다. 소첩에게 더 이상, 더 이상 전하는 없사옵니다.”

“아니요, 아니요. 그대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 내, 내, 다시는 그대를 아프게 하지 않으리다. 그러니 이러지 마시오.”

어우동이 성종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빛엔 비웃음이 반이었고, 절망이 반이었다. 어우동이 또다시 고개를 돌리며 살차게 말하였다.

“어찌 지키신단 말씀이옵니까? 어찌 소첩을 지키신단 말씀이옵니까? 서방님께서는 이 나라의 군왕이십니다. 소첩은 어떻습니까. 소첩은 왕실의 종친녀 이옵니다. 헌데, 어찌하여 전하께서 소첩을 지키신단 말씀이옵니까. 종친의 아녀자를 우롱하였으니, 이 죄를 어찌 받으시려 이러시는 것이 옵니까. 소첩이 관기(官妓)라도 되오리까? 그리하여 경기(京妓)가 되어, 궁중의 큰잔치에 나가 춤이라도 추오리까? 전하께서 사냥이나 온천을 다녀오시면 여가행렬 앞에서 노래라도 하오리까? 그리 라도 하여, 전하의 곁에 머무오리까?...... 어찌 전하께서 소첩을 지키신단 말씀이옵니까? 다 부질없습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일이었사옵니다. 소첩을 놓아주시옵소서. 소첩이 무슨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전하마저도 제게 이러시는 것이 옵니까. 소첩, 그저 한 지아비를 모시고, 그리 평탄케 살고자 했을 뿐이옵니다. 다 부질없었습니다. 부질없사옵니다. 소첩이, 소첩이 전하의 곁에 머문다면, 이는 짚더미를 껴안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옵니다. 돌아가시옵소서.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소첩을 찾지 마시옵소서. 그것이, 전하께서 마지막으로 제게 베풀어주실 유일한 것이옵니다.”

어우동이 진흙탕 바닥에서 일어섰다. 치맛자락이 온통 탁한 황토 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어우동이 온몸으로 비를 받아내며 싸늘히 입을 열었다.

“인연이라 하시었습니까? 전하께서 이리 끊어질 인연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전하와 소첩의 인연은, 제 서방님께서, 청풍서방님께서 마지막으로 다녀가신 날, 그날 이미 끊어지고 말았사옵니다. 전하와 소첩은 인연이 아니옵니다. 어찌하여, 전하와 소첩이 인연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와 소첩은....... 전하와 소첩은, 친족일 뿐이옵니다. 종친일 뿐이옵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와 신첩은 인륜(人倫)을 어기었사옵니다. 아무것도 가슴에 담아놓지 않을 것이옵니다. 전하께서 뱉은 모든 말들은 불경지설(不經之說)이라 새길 것이옵니다. 허망하고 간교하며, 미덥지 못하다 그리 새길 것이옵니다. 돌아가시옵소서.”

성종이 망부석마냥 그리 앉아만 있었다. 보다 못한 어우동이 집을 나섰다. 성종을 뒤로하며 입을 틀어막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리 걸어 나왔다. 갈라진 입술을 깨물며, 튀어나오려는 통곡을, 그리 참으며 걸어 나왔다. 입안이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을 하였다. 온몸을 망나니의 칼로부터 갈기갈기 찢긴 고통이었다. 죽을 만큼의 고통이었다. 안기고 싶었다. 안겨서 원망하며, 그리 풀고 싶었다.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돌봐 달라, 그리 말하고도 싶었다. 허나, 자신은 어찌 되었던 간에, 성종이 무사치 못할 일이었다. 그리 쫓겨나 화전이라도 살면 다행일지 몰라도, 성종은 나라의 임금이었다. 쫓겨난다하더라도 대신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역모를 운운하며 결국 사사될 것이었다. 그리 될 일도 없었다. 성종은 누가 봐도 군왕의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왕은 하늘이 내린다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성종의 곁에 머문다하면, 성종의 앞길에 걸림돌일 뿐이었다. 자신을 버려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버려야했다. 어우동의 등 뒤로 성종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나를 이리 두고 가지 마시오. 두렵다하지 않았소이까. 인륜을 져버렸다하시었소? 그대와 나는 각자, 가지고 있던 신분을 버리고, 그리 만났던 게 아니었소이까? 맞소이다. 인륜을 져버렸다하나, 그대를 사모하는 이내 마음은 어찌하란 말이더이까. 부인! 나를 이리 두고 가지 마시오. 이리 그대를 놓을 수는 없소이다. 부인! 부인!”

어우동이 귀를 틀어막고 빗길 속을 내달렸다. 반길 곳 하나 없는 길을,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모른 채, 방황하였다.
얼마나 그리 헤매었던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우동이 버드나무 기둥을 붙잡으며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였다.

“아씨!”

어깨위로 따스한 체온이 다가왔다. 어우동이 벌건 눈을 뜨며 올려다보았다. 갑상이었다. 갑상도 비에 흠뻑 젖은 채, 어우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러움이 더욱 복받쳤다. 갑상이 어우동을 감싸 안으며 일으켜 세웠다.

“고뿔드십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집으로 가십시오. 그리 가셔서 쉬도록 하십시오.”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갔다. 갑상이 이끄는 데로 걸음을 옮기긴 하였지만, 거의 안겨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걷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 집으로 들지는 못할 것이었다. 달리 갈 곳도 없지 않았던가. 어우동은 갑상과 같이 궂은 빗속을 걸었다. 미리 불을 지펴놓았었는지 방안에 훈기가 돌았다. 좁은 방에는 갑상이 글공부를 하는 작은 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삭막한 벽에는 갑상의 도포가 대나무에 잘 걸려져 있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자, 갑상이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는 듯, 무명천을 내밀었다. 어우동이 천을 건네받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고마울 것 없습니다. 그러니 편히 쉬세요! 아씨께서 불편해하실 테니 연이를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곧, 돌아갈 것입니다. 연이는, 연이는 지금 집에 있질 않습니다.”

갑상이 어우동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뛰기 시작하였다. 비로 인하여, 어두동이 의복이 윤곽을 따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갑상의 뜨거운 시선을 느끼자, 어우동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긴 하였으나, 몸을 감출 수는 없었다. 빗물이 떨어져 갑상의 이부자리를 모두 적시고 있었다. 어우동의 머릿속이 뒤엉키기 시작하였다. 버려야했다. 성종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버려야했다. 자신을 버려야했다. 어차피 온전해질 수없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성종의 말처럼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외로웠다. 미치도록 허망하였다. 어우동이 갑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를 품고 싶습니까? 나를 가지고 싶습니까? 이미 한 사내를 맞아들인 몸입니다. 그래도 품고 싶습니까. 나를 품으세요. 나를 좀 품어주세요!”

“아씨......! 그리하지 마십시오. 왜, 천길 낭떠러지로 걸어가시려는 것입니까. 이건 아씨의 모습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이러시는 것입니까. 그리 몸을 내던지지 마십시오. 잊혀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예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천길 낭떠러지라 하였습니까? 제게 더 이상 남은 길은 없습니다. 도련님도 마찬가지겠지요. 나를 위한답시고, 언젠가는 내 몸을, 이 껍데기를 탐하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틀립니까. 나를 품으세요. 나를 품으세요.”

“아씨......! 저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저도, 저도 한낱 욕정에 불타는 사내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더 이상 저를 시험하지 마십시오.”

어우동이 갑상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우동의 눈에서 강렬한 무언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섬뜩한 것이었다. 어우동이 갑상을 향해 소리쳤다.

“나를 품으라하지 않았더냐. 나를 품으란 말이다. 어서, 어서 나를 품으란 말이다.”

갑상이 어우동의 시선을 피하지 아니하고, 같이 응시했다. 갑상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갑상이 어우동을 힘껏 껴안았다. 갑상이 어우동을 부셔질세라 힘껏 껴안았다. 어우동이 눈을 감았다. 갑상이 어우동의 목덜미를 핥기 시작하였다. 메말라버린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 그것은 미안함이었다.
갑상이 어우동의 젖은 저고리를 풀어헤쳤다. 치마끈 사이로 어우동의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 오르기를 반복하였다. 갑상이 어우동의 치마를 걷어 올리며 속곳과 속속곳을 풀어 내렸다. 그리고는 어우동을 이부자리에 반듯하게 눕혔다. 갑상이 어우동의 몸을 샅샅이 훑고 나더니 동작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더니 이내 허벅지를 벌리고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어우동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갑상의 떨림이 전해졌다. 그것은 어우동도 마찬가지였다. 연신 허리를 움직이면서도 갑상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숫총각의 그것인 듯하였다. 이것 또한 쾌락이었다. 갑상과의 사랑행위도 어우동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어디서 분출되는 것인지 모를 묘한 기운이 두 사람을 칭칭 휘감고 있었다. 성종이 떠오르질 않았다. 성종과의 사랑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갑상과의 성교에서도 쾌락을 쫓고 있었다. 근본이 탕기(蕩妓)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근본이 음탕한 여인네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 여기고픈 어우동의 마음일지도 몰랐다. 갑상이 온힘을 다해 마지막을 가하는 듯하였다. 이윽고, 갑상의 몸이 바르르 떨리며 움직임이 멈추었다. 갑상이 어우동의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천정을 바라보았다. 어우동도 사타구니를 벌린 채, 천정만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새벽을 그리 보내고 있었다. 어우동이 일어나 옷을 여미었다. 갑상도 어우동을 따라 일어나 앉았다. 일어서려든 어우동이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며 말을 건네었다.

“내게 무책임하십시오. 나를 책임지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앞으로 이리 살 것입니다. 좋은 것이었습니다. 남녀간의 행위가 이리도 좋은 것이었습니다. 남정네의 노리개가 되어, 그리 살지 않을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이젠 내가 사내를 거느릴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새벽을 깡그리 잊으세요. 나를 가까이 하신다면, 다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일을 모두 잊으세요. 은혜를 갚았다 여길 것입니다. 나를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내가 도련님께 은혜를 갚았다 여길 것입니다. 마음 쓰지 마세요. 이젠, 내게 마음 쓰지 마세요. 영영 뵙지 아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되겠지요. 허나, 도련님과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남남일 뿐입니다. 돌아가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갑상이 일어나는 어우동을 향해 팔을 뻗었다. 하지만, 어우동을 잡지 못하였다. 뻗어지던 팔이 맥없이 내려앉고 말았다. 어우동이 방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싸리대문을 빠져나가는 듯하였다. 갑상이 두 팔을 바닥에 짚으며 자신을 원망하였다. 끝내, 지키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창하게 날이 밝았다. 성종은 벌써 궁으로 든 모양이었다. 성종이 앉아있던 마당에는 새벽 내, 내린 빗물로 인해, 말끔해져 있었다. 언제 들었냐는 듯, 흔적조차 남아있질 않았다. 방으로 들어선 어우동이 오열을 하였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오열하였다. 무슨 짓을 저지르고 돌아왔는지,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지난밤, 성종이 들었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이것이 다 무엇이란 말이더냐. 이것이 다 무엇이란 말이냐.......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년의 팔자, 이리도 박복할 수가 있단 말이더냐........ 으흐흑! 어찌하여....... 흠모하는 이를 품는 것이, 어찌하여, 이다지도 큰 죄를 짓는 일이란 말이더냐. 그것이 그리 큰 죄가 될지, 그 뉘가 알았단 말이더냐....... 서방님! 으흐흑....... 서방님! 서방님......! 저를 잊으셔요. 더러운 이년을 잊으셔야 합니다. 저를 잊으셔야 합니다. 꼭! 꼭, 그리하셔야 합니다. 이년, 이년 이리 살아, 사타구니가 닳고, 닳아도 괘념치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방님께서 소첩을 버릴 수만 있다면, 꼭 그리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릴 것입니다. 이년, 목숨이 지지리도 길지 않는 이상, 서방님을 꼭 기다릴 것이옵니다. 소첩, 소첩 먼저 가서, 꼭 서방님을 마중 나갈 것입니다. 서방님! 어찌하여, 어찌하여 소첩을 흠모하였나이까. 이게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정녕, 내가 무엇으로 태어났단 말입니까.......”

어우동의 통곡소리가 집안 가득 에워쌌다. 어우동은 자신의 또 다른 발목을 잡기위해 주문을 연신 걸었다. 연이가 마루에 걸터앉아 눈물을 훔치었다. 맑게 게인 하늘이 또다시 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어우동의 한탄과 함께 하늘마저 울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때 이른 소낙비마냥 우두둑 비가 떨어졌다. 내리는 비와 같이 어우동의 오열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여러 날이 지났다. 어우동의 결심은 마음뿐이었다. 다른 사내를 품을 수가 없었다.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약하지 그지없었다. 그날 후로, 성종에게선 이렇다할 연락도 없었다. 그마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지만, 내심 괴로웠다. 화냥질을 한 것처럼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