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경고(赤色警告) 부제:잔혹하게사랑하라 꼬박 이틀이 지났다. 한경은 그 날 이후, 이틀동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먹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도 채 비우지 못했던 음식들을 다 비워내곤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경에겐 단거리라도 죽어라 뛸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경은 몇일을 생으로 굶었기에 그냥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웠기에 무조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보기 안쓰러울정도로 창백했던 한경의 얼굴빛은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 시간은 왜 이렇게도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인지. 한경은 일초가 그저 일분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일초가 지날수록, 일분이 지날수록 그의 말이 혹시 거짓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한경은 그때마다 애써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이 사실이길 바랬다. 빠져나가고 싶었다. 이 검은곳에서. 빛이 그리웠다. 이 검은곳에서…. ** “형.” “학교 갔다 왔나 보군.” 은우의 눈빛이 분노에 찬듯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반면, 그는 익숙하다는 듯 인우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둘 사이에 오고가는 알수없는 정적. 하지만 이런 정적은 이미 그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인거야? 도대체 나 몰래 무슨 짓 하고 있는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인우는 태연하게 자신에게 되물어오는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알고 있음에도 모른척 하는것이 분명했다. 그 라면 지금 인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 알고 있을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우는 여유롭게 쇼파에 앉아있는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저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먹지 않아 다 식어빠진 커피 한잔을 그에게 들이부었다. 촤악. 그의 코끝에 진한 커피향이 진동했다. “우리 아버지가 너 형이라고 소개시켜준 날. 니가 나한테 말했잖아. 내 말이면 모두 다 들어주겠다고, 내 말이면 다 복종하겠다고!” “………” “그때 내가 너한테 물었지. 그럼 내 충실한 개가 되어야된다고. 그리고 넌 주저없이 대답했지. 죽어도 내 말만 듣는 충실한 개가 된다고.” “………” “하, 그런데 뭔가 지금 뒤틀리고 있단 생각 안들어? 저 누나가 왜 갑자기 먹지 않던 밥을 먹는건데! 니가 분명히 무슨 허튼 소리를 해둔거겠지!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굴어. 내 뒤에서 딴 생각 갖지마.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게 니가 죽을때까지 살아야할 인생이야.” 표독스런 인우의 말이 그가 잊고싶었던 과거를 들추어냈다. 잊고싶었지만, 잊을수 없었던 어렸을 적 그냥 흘러내리듯 내뱉었던 말. 그 말이 지금 이날 이때까지 빼낼수 없는 족쇄가 되어 목을 죄었다. '응! 니 말이라면 다 들어줄게. 하늘에 별을 따오라고 하면 정말 다 따다줄게!' 아직도 생생하게 재생되는 철없던 시절의 내뱉은 말. 그는 왼쪽 가슴이 참을 수 없게끔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는 새끼 줏어와서 이렇게까지 만들어 준게 누군데. 우리 아버지잖아.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잖아.” “………” “아, 그리고 지금 니 힘으로 모든걸 다 하고 있단 착각은 애초에 버려. 흙이란 밑바탕이 없다면 꽃이 피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 아버지가 깔아준 밑바탕이 아니었다면 너도 그냥 지하철역 많고 많던 그저그런 거지새끼가 아니였겠어.” “………” “정말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겠지? 그렇다면 예전처럼 눈에 띠지 않게 눈치껏 잘해. 지금껏 잘해오다 갑자기 딴 맘 품지 말라는 소리야.” 더이상 듣기 싫다는 듯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인우는 그런 그의 모습에 고의적인 비웃음을 자아내었다. “허튼 수작 부리지마. 그땐 내가 널 죽일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개새끼는 없어. 네가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굴어.” 쾅. 인우는 고의적으로 방문을 거칠게 닫으며 방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겐 또다시 반복되는 상처의 곪음을 남겨두곤…. “………” 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벌써 벌겋게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투명한 물기가 그의 시야를 뿌옇게 흐트러놓았다. 애써 잊은 척 살아왔는데, 어떻게든 잊으려 미친듯이 발버둥 쳤는데 너무도 허무하게 한순간에 그 상처가 다시 피를 내뿜으며 곪고 있었다. 또 아물기까지의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또 얼마나 울어야할지…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그렇게 죽어버렸던게 옮은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비가 추척추척 기분 나쁘게 내리는 그 날, 차라리 그 따뜻한 손을 잡지 말아야 했던게 옮은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아픔이 다시 되살아나 눈물을 쥐어주고 가네요. 슬픔이 다시 되살아나 고통을 쥐어주고 가네요. …이젠 주지 않아도 되는데…… ◆ 미리별 (d_dmino_o@hanmail.net) 비오는날의고양이 (cafe.daum.net/rainNcat) 짧다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의 능력이 따라주질 않아요.....T.T 정 짧으시다면 두편을 하루에 한꺼번에 올릴까도 생각중이랍니다. 긁적
<< 적색경고(赤色警告) 012
적색경고(赤色警告) 부제:잔혹하게사랑하라
꼬박 이틀이 지났다.
한경은 그 날 이후, 이틀동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먹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도 채 비우지 못했던 음식들을 다 비워내곤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경에겐 단거리라도 죽어라 뛸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경은 몇일을 생으로 굶었기에 그냥 서 있는 것 조차 힘겨웠기에 무조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보기 안쓰러울정도로 창백했던 한경의 얼굴빛은 제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
시간은 왜 이렇게도 더디게만 흘러가는 것인지.
한경은 일초가 그저 일분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일초가 지날수록, 일분이 지날수록
그의 말이 혹시 거짓은 아니었는지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한경은 그때마다 애써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이 사실이길 바랬다.
빠져나가고 싶었다. 이 검은곳에서.
빛이 그리웠다. 이 검은곳에서….
**
“형.”
“학교 갔다 왔나 보군.”
은우의 눈빛이 분노에 찬듯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반면, 그는 익숙하다는 듯 인우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둘 사이에 오고가는 알수없는 정적.
하지만 이런 정적은 이미 그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인거야?
도대체 나 몰래 무슨 짓 하고 있는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인우는 태연하게 자신에게 되물어오는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알고 있음에도 모른척 하는것이 분명했다.
그 라면 지금 인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 알고 있을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우는 여유롭게 쇼파에 앉아있는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저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먹지 않아 다 식어빠진 커피 한잔을 그에게 들이부었다.
촤악. 그의 코끝에 진한 커피향이 진동했다.
“우리 아버지가 너 형이라고 소개시켜준 날. 니가 나한테 말했잖아.
내 말이면 모두 다 들어주겠다고, 내 말이면 다 복종하겠다고!”
“………”
“그때 내가 너한테 물었지. 그럼 내 충실한 개가 되어야된다고.
그리고 넌 주저없이 대답했지. 죽어도 내 말만 듣는 충실한 개가 된다고.”
“………”
“하, 그런데 뭔가 지금 뒤틀리고 있단 생각 안들어?
저 누나가 왜 갑자기 먹지 않던 밥을 먹는건데! 니가 분명히 무슨 허튼 소리를 해둔거겠지!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굴어. 내 뒤에서 딴 생각 갖지마.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그게 니가 죽을때까지 살아야할 인생이야.”
표독스런 인우의 말이 그가 잊고싶었던 과거를 들추어냈다.
잊고싶었지만, 잊을수 없었던 어렸을 적 그냥 흘러내리듯 내뱉었던 말.
그 말이 지금 이날 이때까지 빼낼수 없는 족쇄가 되어 목을 죄었다.
'응! 니 말이라면 다 들어줄게. 하늘에 별을 따오라고 하면 정말 다 따다줄게!'
아직도 생생하게 재생되는 철없던 시절의 내뱉은 말.
그는 왼쪽 가슴이 참을 수 없게끔 답답해져 오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는 새끼 줏어와서 이렇게까지 만들어 준게 누군데.
우리 아버지잖아.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잖아.”
“………”
“아, 그리고 지금 니 힘으로 모든걸 다 하고 있단 착각은 애초에 버려.
흙이란 밑바탕이 없다면 꽃이 피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 아버지가 깔아준 밑바탕이 아니었다면
너도 그냥 지하철역 많고 많던 그저그런 거지새끼가 아니였겠어.”
“………”
“정말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겠지?
그렇다면 예전처럼 눈에 띠지 않게 눈치껏 잘해.
지금껏 잘해오다 갑자기 딴 맘 품지 말라는 소리야.”
더이상 듣기 싫다는 듯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인우는 그런 그의 모습에 고의적인 비웃음을 자아내었다.
“허튼 수작 부리지마. 그땐 내가 널 죽일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을 뛰어넘으려는 개새끼는 없어.
네가 개새끼면 개새끼답게 굴어.”
쾅. 인우는 고의적으로 방문을 거칠게 닫으며 방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겐 또다시 반복되는 상처의 곪음을 남겨두곤….
“………”
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 감았던 눈을 치켜떴다.
벌써 벌겋게 눈시울이 붉어져 있고, 투명한 물기가 그의 시야를 뿌옇게 흐트러놓았다.
애써 잊은 척 살아왔는데, 어떻게든 잊으려 미친듯이 발버둥 쳤는데
너무도 허무하게 한순간에 그 상처가 다시 피를 내뿜으며 곪고 있었다.
또 아물기까지의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또 얼마나 울어야할지…
그는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그렇게 죽어버렸던게 옮은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비가 추척추척 기분 나쁘게 내리는 그 날,
차라리 그 따뜻한 손을 잡지 말아야 했던게 옮은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아픔이 다시 되살아나 눈물을 쥐어주고 가네요.
슬픔이 다시 되살아나 고통을 쥐어주고 가네요.
…이젠 주지 않아도 되는데……
◆
미리별 (d_dmino_o@hanmail.net)
비오는날의고양이 (cafe.daum.net/rainNcat)
짧다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의 능력이 따라주질 않아요.....T.T
정 짧으시다면 두편을 하루에 한꺼번에 올릴까도 생각중이랍니다.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