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97. 디자인 하기

무늬만여우공주200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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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은 무얼 전문으로 할지 정하지를 못해서 닥치는대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가게는 아줌마 옷부터 처녀들 옷까지 다 두루 팔게 되었다.

한국에서 들어온 어떤 사람이 자기가 부인용 블라우스가 많은데 팔아보라고 했다. 그 블라우스는 안이 많이 비치는 옷이었다.

배꼽티가 유행하기 전부터 브라쟈같은 거 하나만 입고 다니는 아르헨티나 여자들이기에 잘 팔릴 줄 알았다.
웬걸. 그들은 드러내놓고 다닐지언정 비치는 옷은 질색했다. 참으로 희한한 민족성이다. 아무래도 속옷이 비싼 나라라 제대로 못 갖춰 입어서 그랬나 혼자 추리를 해보곤 했다.

그 블라우스는 두고 두고 재고가 되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팔려나갔다.
그리고 주위에 누구 생일이거나 선물할 일이 있으면 그 블라우스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로 주곤했다. 그래도 한국꺼니까.(외국에서 사는 대부분의 교민들은 한국꺼라면 그저 껌벅 좋아한다.)

좋아하는 색도 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라마다 좋아하는 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잘 입지도 않는 꽃분홍 쫄바지에 하얀티를 그들은 참 잘 입고 다녔다.

다리가 길고 늘씬하니 잘 빠진 아르헨티나 여자들은 아무거나 입어도 참 잘 어울렸다. 한국인은 걸레로 밖에 안 쓸 옷도 그들이 입으면 파티복이 되었다. 몸매가 되니까 뭘 걸쳐도 이쁜거다.

팔다 남은 옷들은 한국 아줌마들이 줏어입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한국 아줌마들이 그 쫄바지에 커다란 박스티를 많이 입었다. 편하기 때문이다.

랑은 그거 입은 모습의 한국여자를 보며 질색했는데 도대체 교양없어 보이고 품위도 없으며 보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옷차림이라고 했다. 아니 편하라고 입는 옷에 뭔 교양 품위까지 들추냐고 그럼 내가 입는 게 싫어서 하는 소리랜다.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게 사람맘이다.
나도 팔던 걸 하나 줏어가지고 한 번 입어봤다. 역시 한국 여자에겐 안어울린다 싶었다. 짧은 다리에 통통한 넓적다리는 그 옷이 전혀 소화가 안되었다.

랑과 친한 지방 소매상들은 잘 팔리는 디자인의 옷을 주며 비슷하게 만들어오라고 주문도 했다.

잘 팔리는 물건은 새벽부터 줄을 서서 사와야했고, 거의 나눠가서 팔아야하기 때문에 수량도 많이씩 사지 못했다.
그리고 상도덕이란 것이 있어서 한 도시에서 두 집에 다 그 물건을 대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게를 크게 하는 집들은 덕을 많이 보았는데, 잘 나가는 물건을 대체적으로 큰 소매상에 넘겨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가게를 확장하고, 사거나 해서 지방 소매상들은 현찰이 말라있기 쉽상이었다. 그건 현찰로 물건을 못 산다는 뜻인데, 장사가 잘 되는 집은 수표도 짧게 끈거나 하면 현찰화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장사를 했다.

랑이 가져 온 옷은 디자이너에 의해서 다 분해된다. 그리고 변형된 옷이 탄생된다. 최초의 디자인보다 조금 더 이쁠 때가 많았다.

때때로 시행 착오도 생겼는데 그건 가는 골이 있는 골덴 원단을 구입해서 옷을 만들게 되었다. 랑은 디자인 감각이 있어서 예쁜 까미사(셔츠)를 만들기로 했다. 그 디자인은 세련되고 이뻤다.

하지만 고집이 센 랑은 재단사가 결이 있는 골덴은 위아래가 틀리면 안되고 같은 방향으로 재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무시하고 평상시대로 원단을 아끼기 위해서 원단위에 꽉 차게 방향을 무시하고 재단하게 되었다.

옷이 나왔지만 결이 다르니까 색이 달라보였다. 왼쪽과 오른쪽이 다르고 주머니 색이 또 달랐다. 랑은 그 옷을 지방으로 갖고 가서 언발란스 옷이라며 팔아먹었다. 특이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 그 옷도 팔리긴 했나부다.

때마침 진 종류가 유행하게 되었다.

진은 뗄라(원단) 자체가 비싸기 때문에 원가가 만만치않고, 한 로요(룰)당 가격도 쎄서 대들어서 하기 힘든 종목이었다.

처음엔 그냥 우리 갖고 있는 기본 디자인으로 긴 원피스, 엔떼리또(셔츠와 반바지가 붙은 형태), 까미사(셔츠, 일명 남방)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왼쪽 주머니엔 가게 상호도 수를 놓으니까 더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원가가 쎄니까 랑은 머리를 썼다. 언발란스도 팔아먹었으니 콤비나도(컴비네이션 된 것)도 팔 수 있을꺼같다며 흰색 무명 싼천을 샀다.

하얀 까미사(남방)에 목과 카라부분, 주머니 부분, 앞 단추부분만 진으로 해서 만들었다. 옷은 의외로 산뜻하게 나왔다. 반응도 괜찮았지만 문제는 빨면 청에서 약간 물이 빠져서 흰색천에 물이 든다는 거였다. 거기까지 예상 못했던 랑은 다시 청을 워싱처리 (물빠짐)해서 만들기로 했다.

원단 조각을 갖고가서 워싱 처리 한다는 것은 참 힘들었다. 그 들은 완제품만 워싱처리 해왔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옷이 완성되었다.

그 옷은 불티나게 팔렸다.

하는 공정은 참 힘들었지만 잘 팔리니 기분은 좋았다.

옷을 만들다 보면 꼭 잘 못 만들어지거나, 원단에 이상이 있거나 해서 못 파는 물건이 나온다. 그건 내가 줏어입었는데, 나중에 후회를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옷을 입다보니 몇 년 지나니까 제대로 된 옷이 하나도 없는거였다.
게다가 그런 옷은 랑이나 직원들이나 으례히 내가 입는 것 인지 안다는 거였다.

나도 정품! 정품이 입고 싶었다. 하지만 이거 팔면 얼만데.....하는 생각에 계속 하자가 있는 옷만 줏어입는 날 발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