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개혁과 진보란 이런 것이다

초록나라2006.08.28
조회58
 

1960-1970년대 朴正熙 대통령이 추진하던 근대화 혁명의 구호는 "잘 살아보세" "새마을 운동-근면 자조 협동"이었다.

같은 시기 金日成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체사상'을 들고 나왔다.


朴正熙는 사람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데 반해 金日成은 인간改造를 선언한 것이다.


朴대통령은 주부나 家長 같은 이야기를 했고 金日成은 철학자나 성직자 같은 명분을 내세웠다.

결과는 어떤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朴대통령은 민주화, 즉 정치적 자유의 물질적 토대를 놓았고, 金日成은 자신의 주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주인이 되어 그들을 노예화하는 데 성공했다.


朴正熙의 위대성은 먹고 사는 문제를 개혁의 가장 큰 주제로 정직하게 내세워 가식 없이 밀고나갔다는 점이다.


박대통령이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도시와 농촌에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울려퍼질 때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뭐 저런 수준 낮은 구호를 들고나오나. 평등, 평화 같은 멋진 말들도 많은데"라고 우습게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세계 역사상 성공한 거의 모든 개혁은 그 지도자가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주제로 설정한 경우이다.

서기 7세기 전 전국 시대 管仲의 개혁에서 시작하여 鄧小平의 중국 현대화 노선, 대처의 영국병 개혁, 아데나워-에르하르트 콤비의 '라인강의 기적', 레이건의 미국 경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성공한 개혁은 예외 없이 경제와 안보를 주제로 삼았다.

그들은 정치의 本領(본령)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정치의 본질이란 '곳간이 차면 영욕을 안다'는 管仲의 명언 속에 있는 것이다.


毛澤東, 金日成, 盧武鉉式 개혁은 자주, 평등을 내세웠지만 인간말살, 부패, 事大, 가난의 확산, 위선으로 결말났다.

그들은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 데 무능한 것을 위장하기 위하여 인간개조를 명분으로 들고나와 국민 분열, 민족 분열의 정치를 자행했던 것이다.


朴正熙의 성공비결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일관된 정책을 밀고 나간 점이다.

그가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를 읽어보면 이 책에서 제시한 自助-自立-自主의 전략을 한번도 수정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알게 된다.

이 무서운 일관성은 단순성에서 나온 것이다.

철학과 전략이 복잡하면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은 '국민들이 편하게 먹고 사는 과제를 해결해주면 자유 민주는 저절로 온다'는 것이었다.


그의 전략은 인간은 스스로를 먼저 도와야 국가가 도와줄 수 있고, 그 自助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으로 自立해야 인간도 국가도 독립된 개체로서 존엄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전략과 철학을 깔고 그는 항상 구체적인 정책과 행동지침을 제시한 뒤 국민들을 설득했다.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그는 근대화 혁명의 행동강령으로 '경제 건설' '건설 우선' '노동 至高' '자주국방'을 내걸었다.



'국가와 혁명과 나'에는 이런 詩가 소개되어 있다.


땀을 흘려라!

돌아가는 기계소리를

노래로 듣고


이등객차에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야,


나는, 고운

손이 믿더라


朴대통령은 이 詩를 소개한 뒤 이런 논평을 붙였다.

<우리는 일을 하여야 한다. 고운 손으로는 살 수 없다. 고운 손아, 너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만큼 못살게 되었고, 빼앗기고 살아왔다. 고운 손은 우리의 敵이다>


朴正熙는 혁명을 일으키고 1962년 선거를 통해 집권하지 못했더라면 평생을 反骨(반골)로 살았을 것이다.

그는 무위도식, 위선, 명분론, 권위주의, 권력남용에 대해 본능적인 반발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의 반골의식은 권력과 결합되자 거대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그는 반항의 대상을 무능, 위선, 미신 같은 前근대적 가치, 즉 봉건적 잔재로 설정했다.

그는 한국의 후진적 요소들에 대해서 반골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67년 2월26일 서울대학교 졸업식 치사에서 朴대통령은 '생산하는 지도자'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은 국가발전에 대한 뚜렷한 정책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생산이란 용어를 외면했습니다. 식민지 생활의 잔재로서 남아 있는 관료근성과 낭비의 습성, 무조건 반항하는 부정적 생리, 혼란과 무질서를 틈타 안이한 요령만을 꾀하는 출세주의, 이는 이미 낡은 한국과 함께 사라져버린 '지도사像'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전적인 지도자의 유형은 한 마디로 '생산하는 지도자'인 것입니다"


'올해는 일하는 해' '올해는 더 일하는 해'식의 구호가 '조국 해방의 해'에 비교하면 작고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든 허위와 가식을 던져버리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적나라한 진실이 거기에 있었다.


朴正熙의 반골정신은 민주주의의 무오류성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말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그는 또 국민들을 향해서 아부하지 않은 유일한 정치인이다.

국민들을 겨냥하여 공개석상에서 '거지정신'이란 말을 쓰기도 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 여러분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국민은 확실히 못사는 국민이다. 뒤떨어져 있는 국민이다. 후진국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멀지 않는 장래에 다른 선진국가에 못지 않게끔 우리도 自力으로써 自立해서 남과 같이 떳떳하게 잘 살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되겠다는 그러한 꿈과 우리의 자신과 그러한 용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든지 '남한테 원조 받아야 되고, 남한테 동냥을 해야 되고, 남한테 얻어먹어어야 산다'는 그런 거지정신을 가진 국민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자립할 수 없을 것입니다"(1965년 5월2일 진해 제4비료공장 기공식 연설).


1960년대 말 朴대통령은 강원도청을 순시한 자리에서 지사를 상대로 약30분간 숨막히는 일문일답을 한다.

주제는 앙골라 토끼.

왜 이 토기에서 생산되는 털이 줄었는가, 왜 전번 보고와 다른가, 왜 120g이 아니고 130g이 되었나...

이처럼 집요하게 지사를 몰아세우는 대통령!


'우리도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야 인간대우를 받는다'는 절박한 꿈이 대통령의 짜증나고 안타까운 목소리에 담겨져 있었다.

朴대통령은 개혁의 참여층을 전국민으로 확대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냉소자와 방관자를 고립시켰기 때문에 성공했다.

모든 개혁의 성공은 구성원의 참여의식에 달려 있다.

'참여정부'라는 盧정권이 국민분열과 계급적 적대감으로 참여의식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朴대통령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잘 살아 보세'라는 불씨를 심었다.


"하나의 민족국가가 새로이 부흥할 때는 반드시 민족전체에 넘쳐 흐르는 자신과 용기와 긍지가 있어야 하고 적극성과 진취성이 충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근대화 작업을 좀먹는 가장 암적인 요소는 우리들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 그리고 퇴영적 소극주의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비생산적 사이비 행세, 이것들입니다. 또 있습니다. 속은 텅텅 비고도 겉치레만 번지레 꾸미려 하는 권위주의, 명분주의, 그리고 언행불일치주의자들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과감하게 씻어버려야 합니다"(1965년 6월23일 한일회담 타결에 즈음한 특별담화).


먹고 사는 문제를 가볍게 보는 정치인은 인간과 인생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존재의 본질이란 것을 겸허하게 직시하는 사람은 삶의 가치를 긍정하고 인간을 결국 고귀한 존재로 만든다.


朴正熙가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