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북(cell-book)은 생물의 세포나 기초조직을 말하는 세포(cell)와 책(book)의 합성어로, 책이라는 전체조직을 최초의 기초조직으로 분리하여도 책은 유용할 수 있다 는 책의 실용성과, 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삶과 책은 분리될 수 없다 라는 책의 유용성을 강조한 신조어입니다.
결국 셀북(cell-book)데이는 위의 의미와 <셀북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에 따라 <나의 존재를 깨닫게 해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책으로 보답하는 날>을 의미하며, 나를 되돌아보고 새삼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가정의 달 5월 중, 5월 13일을 셀북데이로 하며, 그 주를 셀북 주간으로 합니다.
특히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처럼 ‘나눔’ 정신을 강조하여 책을 통한 기부문화 정착에 큰 의의를 두고 있는 만큼 셀북 주간 동안 조성된 기금은 우리 이웃과 책이 쉽게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에 도서관 건립과 책 공급 운동의 실천을 목적으로 합니다.
결국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가 기부문화의 주역이 되어 나눔으로써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미래에는 보다 나은 책 세상에서 책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약속의 날이기도 합니다.
<5월 13일, 셀북(cell-book)데이와 만나면 우리 땅 독도에 한글이 자랍니다>
2005년 5월 13일은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희망의 그 날처럼
2005년 5월 13일은 책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독자들이 우리 땅 독도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가꾸어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2005년 5월 13일은 우리의 땅, 울릉도와 독도에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국어, 한글을 심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의 5월 13일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외로운 곳 어디라도 우리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모두 책으로 뒤덮을 것입니다.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독자들과 출판 종사자들과의 자율적 합의를 통해 2005년 5월 13일,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 도서관 건립과 책 보내기 운동을 시작으로 매년 5월 13일과 셀북 주간 동안에 조성된 기금(예:출판 수익금 일부)으로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산간 도서에 이르기까지 도서관 건립과 책 나눔 운동을 실천할 것입니다.
셀북(cell-book)데이는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는 나눔의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보다 희망으로 비추고, 우리의 아이들은 책과 함께 자라날 수 있는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대한민국을 온통 책으로 뒤덮을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모든 네티즌 여러분에게 고함!>
셀북(cell-book)데이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만든 우리들만의 책의 날입니다.
정말 셀북데이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네티즌이라면 셀북데이의 사회적 의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분명, 셀북데이는 순수 토종 신조어이며, 대한민국 어디라도 우리 땅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모두 우리 한글과 책으로 뒤덮을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셀북데이의 유래는 1993년 출가를 앞둔 한 행자승이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한 수녀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자신의 고백을 일부 옮겨놓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누구에게나 가슴 저미는 아픔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푸른 동산에 올라 그녀의 포근함에 무릎베개한 채 사랑의 시를 읽어주던 기억도, 누런 벌판을 자전거와 함께 내달리며 허리를 감싸던 그녀의 손과 연분홍빛 머리 향내를 기억하던 추억도,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노을이면 붉은 호숫가에 앉아 그리움보다 더 달콤한 키스로 짧은 이별을 기억해야 했을 때도 그때는 이렇게 긴 이별이 올 줄 몰랐다. 이제는 가녀린 바람만 불어도,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만 봐도 추억은 기억을 더듬어 울고 있는데 우리는 이별보다 더 먼 이별로 추억마저도 지워버려야 했다. 내가 살아있었음을 모두...’
인혁과 은주의 아버지는 절친한 고향 친구이자 대학동문이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서 자랐고 친남매처럼 지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까지 많았던 인혁은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은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인혁은 자신이 은주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글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 총총한 밤이면 밤마다 은주의 방 창가에 편지를 꽂아두었다.
봄이면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파란 내일을 함께 노래하고, 가을이면 낙엽 진 호숫가에서 발그레한 사랑을 속삭였고, 겨울이 오면 화롯가에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 인혁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인혁의 가족은 아버지의 조그만 사업을 이유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진 시내로 이사를 갔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학창시절과 바쁜 학업 때문에 당분간을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편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만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얼룩진 시간이 지나고 은주가 같은 학교의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그리워져만 갔다. 서로 다른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은 거의 마주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사진 동아리 활동까지 함께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서로 다른 생각까지도 공유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아버지들로부터 비롯된 인연이 그들로 인해 어긋나게 될 줄은...
인혁이 이사를 하고 일 년이 채 되기도 전, 인혁의 아버지는 계속되는 자금난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야 했다. 이번만 해결하면 잘 될 거야, 한번만, 한번만 더 하던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인혁의 아버지는 친구에게 통사정하여 연대보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힘들 거라는 주위의 예상대로 사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엔 하던 일은 고사하고 주위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인혁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친구의 묘연한 행방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은주의 아버지는 한 달, 두 달, 몇 달이 지나고, 그나마 있던 집까지 연대보증으로 넘어가게 되자 신뢰가 배신으로, 분노로 변해갔고 그 후유증으로 합병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뇌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은주의 아버지가 죽던 그 날, 인혁은 병원을 찾았지만 은주의 어머니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몸부림을 당하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친구가 아니라 웬수야! 웬수! 너는 웬수의 자식이란 말이야, 이눔아!”
은주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 말만을 되풀이하며 통곡을 하다가 그만 실신해버렸다. 인혁이라고 하면 제 자식보다 살갑게 맞아주던 그녀에게서 그 같은 말을 듣자 인혁은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인혁은 출상 나가는 날까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았지만 먼발치에서 은주의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은주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정말이지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너를 보고 있으면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아냐, 오빠. 오빠가 뭘 잘못했어, 오빠가...”
은주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거두고 실낱같은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인혁에게는 그것조차도 고통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인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컴컴한 지하방에서 몇날 며칠을 숨어 지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시간을 잃어가던 어느 날 은주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셀북(cell-book)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오빠! 지난 일로 너무 상심하거나 자책하지 말아요. 오빠가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나도, 나에 대한 추억도 모두 죽고 없을 테니까요. 우리의 삶은 마치 죽음과도 같아서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처럼 오빠가 생각하는 죽음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오빠의 삶이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요. 그건 지금까지 오빠와 내가 함께 한 시간들을 너무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오빠!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언젠가 오빠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영원히 함께 하자던 그 약속을 이젠 지키지 못할 것 같네요. 분명 제가 가는 길은 오빠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런 길이 될 것 같아요. 부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은주야, 은주야! 인혁은 목 놓아 고함을 질렀지만 오히려 방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해진지 삼년이 지날 무렵 인혁의 어머니는 여보! 여보!를 외치며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어머니의 존재마저 사라지게 되자 인혁은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OO도 어느 외딴 마을의 조그만 절로 숨어들어갔다. 지난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도,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는 따위가 하나같이 부질없는 짓이기에 인혁은 세월의 수레바퀴 밑에서 죽은 듯 깔려 지냈다. 큰 스님을 모시고, 때가 되면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기도하는 것 따위로 행자생활을 흉내 내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불가에도,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못하다고 믿고, 체념해가고 있었다.
산사(山寺)의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어느덧 봄물(초록빛)이 들고, 마을도 새롭게 시작되는 일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혜원(利慧院)이라는 곳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일종의 양로원과 고아원을 합쳐 운영하는 곳으로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늙을수록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것이 오히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마을 어른들의 한목소리를 담아 큰스님을 비롯한 신부님과 마을 대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뭉쳐 시작한 일이다.
이혜원은 늙은 부모에게는 어린 자식을, 어린 고아에게는 새 부모를 만나게 해줌으로써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도록 돕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늙은 부모나 일정 나이의 자식에게 마을의 농사일이나 특용작물재배 등을 품앗이하고 그 품삯으로 자식 교육이나 봉양을 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의미도 있었다. 게다가 마을로서도 새로운 인구의 유입으로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아이들이 없어 폐교를 했던 학교도 다시 손질하고, 마을회관이나 폐건물 등을 개량하여 마을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위한 개량도서관 공사도 거의 끝나갔다.
“얘야. 앞으로 네가 바빠지겠구나.” “큰스님. 그게 무슨...”
며칠 후 큰스님은 인혁에게 이혜원의 운영을 돕기 위해 사람이 온다며 손님 맞을 채비를 당부했다. 인혁이 도량청소며, 내놓을 차와 찻물 준비가 끝날 즈음 마을 신부님이 두 수녀를 대동하고 절을 찾았다. 순간, 인혁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두 눈만 휘둥그레졌다. 검은 드레스에 베일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인혁이 본 것은 은주, 아니 데레사 수녀였다. 세 사람이 큰스님의 방으로 들어가자 인혁은 방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그들의 오가는 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기울였다.
‘영원히 만날 수 없다더니 당신이 말한 이별이 이런 이별이었니...당신을 다시 만나서 이렇게 반가운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는데 달려가 안아보지도 못하고, 이름조차 부를 수도 없으니 이를 어찌 만났다고 할 수 있단 말이니, 만났다고...’
인혁은 한없이 자신을 원망하고, 원망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간 은주를 원망했다. 부처님! 제가 전생에 무슨 크나큰 죄를 지었기에 이 같은 업보를 주십니까. 인혁은 불상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되물었다. 108배, 1080배...의 오체투지를 계속하며 악업의 사슬을 끊어보려 했지만 불상 옆에는 베일을 쓴 수녀의 모습만이 아른거릴 뿐 그 옛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은주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일어서지도, 꿇어앉지도 못할 정도로 절을 하며 수녀의 모습을 지워가는 동안 점차 의식도 희미해져갔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인혁은 그날도, 그 다음날, 계속해서 같은 기도를 했다.
셀북(cell-book)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한 날은 큰스님이 인혁을 불러 이혜원의 운영을 맡고 있는 신부님을 도우라는 당부와 함께 기회가 되면 성당에 들러 예비 교리를 배워보라는 엉뚱한 부탁도 했다. 인혁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고 마음만 무거웠다.
다음날부터 인혁은 이혜원에 들러 신부님의 일의 보좌하면서 저녁이면 예비 교리 반에서 교리 교육을 받았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돌아가면서 가르치긴 했지만 데레사 수녀의 수업 때면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 지 곤혹스러웠다. 가끔 흘깃흘깃 쳐다보는 수녀의 얼굴에서 여린 웃음이라도 발견하게 될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마저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수녀의 모습에 익숙해지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따라 인혁도 점차 무심해지기 시작했다.
황금빛 들판도 가을걷이가 끝나자 쓸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을의 분주함이 수그러들자 산사의 하루는 목탁과 예불소리만 깊게 울렸다. 오후 무렵이 되어서는 신부님과 데레사 수녀가 찾아왔다. 큰스님을 비롯한 두 사람은 이혜원과 마을 일에 관해 상의했다. 얼마 후 방에서 수녀가 먼저 나왔다. 인혁은 둘만의 공간이 어색해 자리를 피하려는데 수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스님! 괜찮으시면 함께 산책이나 하시겠어요?” 인혁은 멈추어버린 듯한 발걸음을 되돌려 함께 절을 뒤돌아갔다.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자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둘은 바위 위에 앉아 서로 다른 곳을 주시하면서 한동안 말없이 마을만을 내려다보았다.
“이 마을로 오게 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녜?”
“마을 사람들 말이에요. 다른 외딴 시골마을 답지 않게 젊음이 넘치는 것 같아요. 마치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듯한...”
“녜...”
“아마도 이들은 죽는 그 순간이 되면 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았노라고 웃으면서 죽을 것 같아요.”
수녀는 자신의 표현이 우습다는 듯 발간 볼웃음을 지었다. 그런 수녀의 모습에서 인혁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수녀의 웃음이 포근하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인혁은 아득한 추억의 날개를 달고 푸른 동산을 맴돌았다.
황량한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수녀의 몸을 휘감자 수녀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달려가는 듯 했다. 인혁은 부르르 떨었다. 붉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은주야! 은주야! 마음속으로 수 번, 수십 번을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울릴 뿐이었다.
“스님!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예쁜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자식이 그 꽃밭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아버지는 자식을 꾸중해야 할까요, 아님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예! 그게 무슨...”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기 이전부터 해와 달, 산, 바다 심지어는 그 대상이 바위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기원하지 않았던가요. 모든 무속신앙을 다 긍정할 수는 없겠지만 천지창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을 하느님을 대신해 순수한 마음으로 경외(敬畏)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될까요.”
수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만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게 늘 고민입니다. 내년 축일이면 종신서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상의 모든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아주 오래전...그 분이라면...지금의 저를 구원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만나고, 종교와 종교가 손을 잡고, 예술이 영혼을 구원하는 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수녀님! 저녁노을이 세상을 뒤덮을 때쯤 인혁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이별을 마음으로 삼켜야 했다.
덩! 덩! 덩!...도량의 목탁소리에 이어 하늘의 도솔천을 따라 흐르는 범종(梵鐘)이 울자 인혁은 오랜 꿈에서 깨어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어왔던 범종소리가 오늘에서야 달리 들렸다. 오랜 세월의 무게로 장엄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그 비어있는 소리. 인혁은 자신의 어딘가로 부터 그 비어있는 소리를 보았다.
인혁은 그날 이후로 자신의 처소에서 오직 글만을 썼다. 그 글은 은주만을 위한 것도, 데레사 수녀만을 위한 것도 아닌 세상 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을이 지고, 눈 덮인 한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글은 완성되어갔다. 반면 인혁의 얼굴은 더욱 초췌해갔다. 마지막 문장이 완성되자 인혁은 새하얀 천으로 싼 책을 들고 주저할 것도 없이 절 밖을 빠져나갔다. 내일이면 비로소 불자로서의 길을 가는 수계식(受戒式)도 잊은 채 인혁은 허리까지 오는 눈밭을 헤치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몹쓸 눈보라 때문에 앞길을 분간할 수 없고 손발은 깨질듯 차가웠지만 책만큼은 가슴에 꼬옥 보듬었다.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결국 인혁은 선홍색의 피를 토하며 잠시, 아주 잠시 눈밭에 몸을 맡겼다.
‘그래요, 당신은 제가 태어난 이유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사랑을 가르치려 했군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을 땐 전 그게 당신만을 위한 자애(自愛)라고 생각했고 야속함에 질투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자타불이(自他不二)였다는 것을. 진정한 자신의 발견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인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처럼 당신은 당신을 향한 사랑의 완성을 통해 또 다른 당신인 저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 행복합니다...아마도 당신이 구원받고자 하는 세상은 사랑을 넘어서는 이해의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나와 당신이 둘이 아닌 것처럼...’
초록빛이 짙어가는 오월, 책이 발견된 곳은 수녀원의 창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새하얀 천 위로 붉게 물든 책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러 권으로 만들어졌고 학교와 마을 도서관, 이웃 마을들에까지 전해졌다.
산사에도, 마을 어디에서도 그의 존재를 발견할 순 없었지만 그 책만은 사람들의 마음을 타고 책이 쉽게 미치지 못하는 산간벽지며 외딴마을의 아이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5월 13일, 셀북(cell-book)데이와 만나면 우리 땅 독도에 한글이 자랍니다
<5월 13일, 셀북(cell-book)데이와 만나면 우리 땅 독도에 한글이 자랍니다>
<셀북(cell-book)데이의 의미와 의의>
셀북(cell-book)은 생물의 세포나 기초조직을 말하는 세포(cell)와 책(book)의 합성어로, 책이라는 전체조직을 최초의 기초조직으로 분리하여도 책은 유용할 수 있다 는 책의 실용성과, 세포로 구성된 인간의 삶과 책은 분리될 수 없다 라는 책의 유용성을 강조한 신조어입니다.
결국 셀북(cell-book)데이는 위의 의미와 <셀북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에 따라 <나의 존재를 깨닫게 해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책으로 보답하는 날>을 의미하며, 나를 되돌아보고 새삼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가정의 달 5월 중, 5월 13일을 셀북데이로 하며, 그 주를 셀북 주간으로 합니다.
특히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처럼 ‘나눔’ 정신을 강조하여 책을 통한 기부문화 정착에 큰 의의를 두고 있는 만큼 셀북 주간 동안 조성된 기금은 우리 이웃과 책이 쉽게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에 도서관 건립과 책 공급 운동의 실천을 목적으로 합니다.
결국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가 기부문화의 주역이 되어 나눔으로써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미래에는 보다 나은 책 세상에서 책과 함께 성장하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약속의 날이기도 합니다.
<5월 13일, 셀북(cell-book)데이와 만나면 우리 땅 독도에 한글이 자랍니다>
2005년 5월 13일은 우리 모두에게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희망의 그 날처럼
2005년 5월 13일은 책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독자들이 우리 땅 독도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가꾸어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2005년 5월 13일은 우리의 땅, 울릉도와 독도에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국어, 한글을 심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의 5월 13일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외로운 곳 어디라도 우리 땅임을 증명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모두 책으로 뒤덮을 것입니다.
셀북(cell-book)데이는 책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독자들과 출판 종사자들과의 자율적 합의를 통해 2005년 5월 13일, 우리 땅 울릉도와 독도에 도서관 건립과 책 보내기 운동을 시작으로 매년 5월 13일과 셀북 주간 동안에 조성된 기금(예:출판 수익금 일부)으로 가까운 이웃에서부터 산간 도서에 이르기까지 도서관 건립과 책 나눔 운동을 실천할 것입니다.
셀북(cell-book)데이는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는 나눔의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보다 희망으로 비추고, 우리의 아이들은 책과 함께 자라날 수 있는 풍요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대한민국을 온통 책으로 뒤덮을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모든 네티즌 여러분에게 고함!>
셀북(cell-book)데이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만든 우리들만의 책의 날입니다.
정말 셀북데이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네티즌이라면 셀북데이의 사회적 의의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분명, 셀북데이는 순수 토종 신조어이며, 대한민국 어디라도 우리 땅임을 증명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모두 우리 한글과 책으로 뒤덮을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서 대한민국을 디자인해야 할 기회입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셀북데이> http://blog.naver.com/cell_book
셀북(cell-book)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셀북데이의 유래는 1993년 출가를 앞둔 한 행자승이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한 수녀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자신의 고백을 일부 옮겨놓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누구에게나 가슴 저미는 아픔의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푸른 동산에 올라 그녀의 포근함에 무릎베개한 채 사랑의 시를 읽어주던 기억도, 누런 벌판을 자전거와 함께 내달리며 허리를 감싸던 그녀의 손과 연분홍빛 머리 향내를 기억하던 추억도,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노을이면 붉은 호숫가에 앉아 그리움보다 더 달콤한 키스로 짧은 이별을 기억해야 했을 때도 그때는 이렇게 긴 이별이 올 줄 몰랐다. 이제는 가녀린 바람만 불어도, 나뭇가지에 걸린 석양만 봐도 추억은 기억을 더듬어 울고 있는데 우리는 이별보다 더 먼 이별로 추억마저도 지워버려야 했다. 내가 살아있었음을 모두...’
인혁과 은주의 아버지는 절친한 고향 친구이자 대학동문이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서 자랐고 친남매처럼 지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까지 많았던 인혁은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은주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인혁은 자신이 은주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글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 총총한 밤이면 밤마다 은주의 방 창가에 편지를 꽂아두었다.
봄이면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파란 내일을 함께 노래하고, 가을이면 낙엽 진 호숫가에서 발그레한 사랑을 속삭였고, 겨울이 오면 화롯가에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 인혁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인혁의 가족은 아버지의 조그만 사업을 이유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진 시내로 이사를 갔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학창시절과 바쁜 학업 때문에 당분간을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편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만은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리움으로 얼룩진 시간이 지나고 은주가 같은 학교의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그리워져만 갔다. 서로 다른 수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은 거의 마주보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사진 동아리 활동까지 함께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과 서로 다른 생각까지도 공유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아버지들로부터 비롯된 인연이 그들로 인해 어긋나게 될 줄은...
인혁이 이사를 하고 일 년이 채 되기도 전, 인혁의 아버지는 계속되는 자금난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야 했다. 이번만 해결하면 잘 될 거야, 한번만, 한번만 더 하던 것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인혁의 아버지는 친구에게 통사정하여 연대보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애초부터 힘들 거라는 주위의 예상대로 사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엔 하던 일은 고사하고 주위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한 인혁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친구의 묘연한 행방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은주의 아버지는 한 달, 두 달, 몇 달이 지나고, 그나마 있던 집까지 연대보증으로 넘어가게 되자 신뢰가 배신으로, 분노로 변해갔고 그 후유증으로 합병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뇌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은주의 아버지가 죽던 그 날, 인혁은 병원을 찾았지만 은주의 어머니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몸부림을 당하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친구가 아니라 웬수야! 웬수! 너는 웬수의 자식이란 말이야, 이눔아!”
은주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 말만을 되풀이하며 통곡을 하다가 그만 실신해버렸다. 인혁이라고 하면 제 자식보다 살갑게 맞아주던 그녀에게서 그 같은 말을 듣자 인혁은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인혁은 출상 나가는 날까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았지만 먼발치에서 은주의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은주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정말이지 너를 볼 면목이 없구나. 너를 보고 있으면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아냐, 오빠. 오빠가 뭘 잘못했어, 오빠가...”
은주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거두고 실낱같은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인혁에게는 그것조차도 고통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인혁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컴컴한 지하방에서 몇날 며칠을 숨어 지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시간을 잃어가던 어느 날 은주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셀북(cell-book)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오빠! 지난 일로 너무 상심하거나 자책하지 말아요. 오빠가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나도, 나에 대한 추억도 모두 죽고 없을 테니까요. 우리의 삶은 마치 죽음과도 같아서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했다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처럼 오빠가 생각하는 죽음이 아름답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오빠의 삶이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 아닌가요. 그건 지금까지 오빠와 내가 함께 한 시간들을 너무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
오빠!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언젠가 오빠가 내게 말했던 것처럼 영원히 함께 하자던 그 약속을 이젠 지키지 못할 것 같네요. 분명 제가 가는 길은 오빠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런 길이 될 것 같아요. 부디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게요.
은주야, 은주야! 인혁은 목 놓아 고함을 질렀지만 오히려 방안은 적막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행방이 묘연해진지 삼년이 지날 무렵 인혁의 어머니는 여보! 여보!를 외치며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의지했던 어머니의 존재마저 사라지게 되자 인혁은 주변을 모두 정리하고 OO도 어느 외딴 마을의 조그만 절로 숨어들어갔다. 지난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도,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는 따위가 하나같이 부질없는 짓이기에 인혁은 세월의 수레바퀴 밑에서 죽은 듯 깔려 지냈다. 큰 스님을 모시고, 때가 되면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기도하는 것 따위로 행자생활을 흉내 내긴 했지만 정작 자신은 불가에도, 세상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못하다고 믿고, 체념해가고 있었다.
산사(山寺)의 메마른 나뭇가지에도 어느덧 봄물(초록빛)이 들고, 마을도 새롭게 시작되는 일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혜원(利慧院)이라는 곳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일종의 양로원과 고아원을 합쳐 운영하는 곳으로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늙을수록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죽는 날까지 일하는 것이 오히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마을 어른들의 한목소리를 담아 큰스님을 비롯한 신부님과 마을 대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뭉쳐 시작한 일이다.
이혜원은 늙은 부모에게는 어린 자식을, 어린 고아에게는 새 부모를 만나게 해줌으로써 새로운 가족을 형성하도록 돕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늙은 부모나 일정 나이의 자식에게 마을의 농사일이나 특용작물재배 등을 품앗이하고 그 품삯으로 자식 교육이나 봉양을 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유도하는 의미도 있었다. 게다가 마을로서도 새로운 인구의 유입으로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아이들이 없어 폐교를 했던 학교도 다시 손질하고, 마을회관이나 폐건물 등을 개량하여 마을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위한 개량도서관 공사도 거의 끝나갔다.
“얘야. 앞으로 네가 바빠지겠구나.”
“큰스님. 그게 무슨...”
며칠 후 큰스님은 인혁에게 이혜원의 운영을 돕기 위해 사람이 온다며 손님 맞을 채비를 당부했다. 인혁이 도량청소며, 내놓을 차와 찻물 준비가 끝날 즈음 마을 신부님이 두 수녀를 대동하고 절을 찾았다. 순간, 인혁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 두 눈만 휘둥그레졌다. 검은 드레스에 베일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 인혁이 본 것은 은주, 아니 데레사 수녀였다. 세 사람이 큰스님의 방으로 들어가자 인혁은 방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그들의 오가는 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기울였다.
‘영원히 만날 수 없다더니 당신이 말한 이별이 이런 이별이었니...당신을 다시 만나서 이렇게 반가운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나는데 달려가 안아보지도 못하고, 이름조차 부를 수도 없으니 이를 어찌 만났다고 할 수 있단 말이니, 만났다고...’
인혁은 한없이 자신을 원망하고, 원망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간 은주를 원망했다. 부처님! 제가 전생에 무슨 크나큰 죄를 지었기에 이 같은 업보를 주십니까. 인혁은 불상 앞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되물었다. 108배, 1080배...의 오체투지를 계속하며 악업의 사슬을 끊어보려 했지만 불상 옆에는 베일을 쓴 수녀의 모습만이 아른거릴 뿐 그 옛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은주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일어서지도, 꿇어앉지도 못할 정도로 절을 하며 수녀의 모습을 지워가는 동안 점차 의식도 희미해져갔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인혁은 그날도, 그 다음날, 계속해서 같은 기도를 했다.
셀북(cell-book)데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한 날은 큰스님이 인혁을 불러 이혜원의 운영을 맡고 있는 신부님을 도우라는 당부와 함께 기회가 되면 성당에 들러 예비 교리를 배워보라는 엉뚱한 부탁도 했다. 인혁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대하지도 않았고 마음만 무거웠다.
다음날부터 인혁은 이혜원에 들러 신부님의 일의 보좌하면서 저녁이면 예비 교리 반에서 교리 교육을 받았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돌아가면서 가르치긴 했지만 데레사 수녀의 수업 때면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 지 곤혹스러웠다. 가끔 흘깃흘깃 쳐다보는 수녀의 얼굴에서 여린 웃음이라도 발견하게 될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마저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수녀의 모습에 익숙해지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따라 인혁도 점차 무심해지기 시작했다.
황금빛 들판도 가을걷이가 끝나자 쓸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을의 분주함이 수그러들자 산사의 하루는 목탁과 예불소리만 깊게 울렸다. 오후 무렵이 되어서는 신부님과 데레사 수녀가 찾아왔다. 큰스님을 비롯한 두 사람은 이혜원과 마을 일에 관해 상의했다. 얼마 후 방에서 수녀가 먼저 나왔다. 인혁은 둘만의 공간이 어색해 자리를 피하려는데 수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스님! 괜찮으시면 함께 산책이나 하시겠어요?”
인혁은 멈추어버린 듯한 발걸음을 되돌려 함께 절을 뒤돌아갔다.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자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다. 둘은 바위 위에 앉아 서로 다른 곳을 주시하면서 한동안 말없이 마을만을 내려다보았다.
“이 마을로 오게 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녜?”
“마을 사람들 말이에요. 다른 외딴 시골마을 답지 않게 젊음이 넘치는 것 같아요. 마치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듯한...”
“녜...”
“아마도 이들은 죽는 그 순간이 되면 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았노라고 웃으면서 죽을 것 같아요.”
수녀는 자신의 표현이 우습다는 듯 발간 볼웃음을 지었다. 그런 수녀의 모습에서 인혁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수녀의 웃음이 포근하게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인혁은 아득한 추억의 날개를 달고 푸른 동산을 맴돌았다.
황량한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수녀의 몸을 휘감자 수녀는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시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달려가는 듯 했다. 인혁은 부르르 떨었다. 붉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은주야! 은주야! 마음속으로 수 번, 수십 번을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울릴 뿐이었다.
“스님!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예쁜 꽃밭을 만들어 놓았는데 자식이 그 꽃밭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면 아버지는 자식을 꾸중해야 할까요, 아님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예! 그게 무슨...”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기 이전부터 해와 달, 산, 바다 심지어는 그 대상이 바위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마을의 안녕을 위해 기원하지 않았던가요. 모든 무속신앙을 다 긍정할 수는 없겠지만 천지창조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을 하느님을 대신해 순수한 마음으로 경외(敬畏)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될까요.”
수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만을 바라보았다.
“저는 그게 늘 고민입니다. 내년 축일이면 종신서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세상의 모든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에요...아주 오래전...그 분이라면...지금의 저를 구원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만나고, 종교와 종교가 손을 잡고, 예술이 영혼을 구원하는 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수녀님! 저녁노을이 세상을 뒤덮을 때쯤 인혁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이별을 마음으로 삼켜야 했다.
덩! 덩! 덩!...도량의 목탁소리에 이어 하늘의 도솔천을 따라 흐르는 범종(梵鐘)이 울자 인혁은 오랜 꿈에서 깨어났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어왔던 범종소리가 오늘에서야 달리 들렸다. 오랜 세월의 무게로 장엄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그 비어있는 소리. 인혁은 자신의 어딘가로 부터 그 비어있는 소리를 보았다.
인혁은 그날 이후로 자신의 처소에서 오직 글만을 썼다. 그 글은 은주만을 위한 것도, 데레사 수녀만을 위한 것도 아닌 세상 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을이 지고, 눈 덮인 한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글은 완성되어갔다. 반면 인혁의 얼굴은 더욱 초췌해갔다. 마지막 문장이 완성되자 인혁은 새하얀 천으로 싼 책을 들고 주저할 것도 없이 절 밖을 빠져나갔다. 내일이면 비로소 불자로서의 길을 가는 수계식(受戒式)도 잊은 채 인혁은 허리까지 오는 눈밭을 헤치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몹쓸 눈보라 때문에 앞길을 분간할 수 없고 손발은 깨질듯 차가웠지만 책만큼은 가슴에 꼬옥 보듬었다. 점차 의식이 희미해져갔다. 결국 인혁은 선홍색의 피를 토하며 잠시, 아주 잠시 눈밭에 몸을 맡겼다.
‘그래요, 당신은 제가 태어난 이유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사랑을 가르치려 했군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을 땐 전 그게 당신만을 위한 자애(自愛)라고 생각했고 야속함에 질투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자타불이(自他不二)였다는 것을. 진정한 자신의 발견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인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처럼 당신은 당신을 향한 사랑의 완성을 통해 또 다른 당신인 저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 행복합니다...아마도 당신이 구원받고자 하는 세상은 사랑을 넘어서는 이해의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나와 당신이 둘이 아닌 것처럼...’
초록빛이 짙어가는 오월, 책이 발견된 곳은 수녀원의 창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다. 새하얀 천 위로 붉게 물든 책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러 권으로 만들어졌고 학교와 마을 도서관, 이웃 마을들에까지 전해졌다.
산사에도, 마을 어디에서도 그의 존재를 발견할 순 없었지만 그 책만은 사람들의 마음을 타고 책이 쉽게 미치지 못하는 산간벽지며 외딴마을의 아이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셀북데이> http://blog.naver.com/cell_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