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그 남자 - (22) 회색도시의 사람들

아랑2005.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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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그 남자 - (22) 회색도시의 사람들

 




모든 게 그녀의 뜻데로 되어 가는 게 한눈에 보였다.  주엽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그를 동정해서 다시 수연에게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주엽을 업고 힘들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형준의 뒤를 그녀는 조용히 따라 갔다.


“그만 집에 가시죠?  메니저님!”


형준은 주엽의 주위에서 자꾸만 얼쩡거리는 여자를 못마땅하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그런 차가운 시선과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주엽과 형준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를 차분히 기다렸다.


딩~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춰 서자  은미가 서둘러 앞서 나갔다. 그리고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던 건지 주엽의 오피스텔현관에 열쇠를 꽂아 문을 열었다.


형준은 스스럼 없이 행동하는 은미를 보자 화가 나서 주엽을 침대에 내동댕이 친 다음 은미를 붙잡고, 주엽의 오피스텔을 씩씩거리며 빠져 나왔다. 


“이봐!  당신이 뭔데 왜 주엽이 오피스텔열쇠를 가지고 있는 거지?”


“... 그거야 난 당신들 메니저니까 당연히 관리 차원에서.....”


“시끄러 당신의 속을 누가 모를줄 알아?  하지만 당신이 쉽게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니까 오바 하지 마라구.  그리고 그 열쇠 이리 내놔. 당장!”


은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형준은  흡사 성난 범과도 같았다. 자신의 친구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지 잘 아는 형준은 여우같은 은미의 행동에 나쁜 느낌이 전해지는걸 알 수 있었다.


‘쳇, 니가 아무리 그래봐야 주엽인 눈썹하나 꿈쩍도 안할걸?  너처럼 여우는 금방 탈로 난다고....’


형준의 사나운 음성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은미를 보며, 형준은 속을 태워야 했다.  그녀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저 열쇠만 없다면,  아마도 조금 안심이 될 터인데 왠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웃음이 그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형준씨가 무얼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그렇게 어리석은 짓은 하기 싫답니다. 다만 그가 성공을 하기 위해 수연씨 보단 내가 그의 옆에 어울린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럼 오늘은 그만 갈게요.  형준씨가 주엽씨 좀 잘 돌봐 주세요.”



주엽을 잘 돌봐달라는 말을 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남긴 말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성공,  성공’,  그 성공이란 놈이 왜 저 여잘 사악하게 보이도록 만드는지 형준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정작 그 성공이란 놈을 형준과 맴버들이 절실히 원하는 목표였다. 그 성공을 위해 잘나가던 친구를 궁지에 몰아 버린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으음....... 아우씨  머리 아퍼.....”


“아프겠지.  그렇게 마셔댔는데 안 아프면 사람이냐 니가?”


유리컵에 차가운 얼음물을 담아 주엽에게 건 내 주던 형준이 그를 나무랬다.  근심 가득한 형준의 얼굴을 보자니 또다시 두통이 생겨나려 했다.



“얼마나 마신 거냐?  내가...”


“몰라 물어 임마,  카페 술 혼자다 퍼마신 주제에 그렇게 술이 먹고 싶어서 여태 어떻게 참았냐?”


“아우..  그만좀 해라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까.”


“밤새 지 수발들어 줬더니 한다는 소리하고는 나가자 그만,”



“어?  어딜  너나 나가 난 더 누워 있고 싶으니까...”


주엽은 수연과 헤어지진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그녀를 떠올리는 자신이 싫어 졌다. 그런 주엽의 생각을 잘아는 형준은 주엽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임마, 너 이런다고 간 사람이 너 생각할 줄 알아?  난 아니라고 본다.  이런 말하기 싫지만, 정말 하기 싫지만, 우린 큰일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그런데 그깟 여자 하나에 니가 이렇게 약하게 굴면 우린 어쩌란 거냐?”


형준의 ‘그깟 여자‘란 말에 화가나서 주엽은 그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날려 버렸다.


“그 따위 말 하려면 나가. 당장 너한테 조차 수연이 말 듣고 싶지 않으니까...”


“쿡... 하하하하  성질하곤,  내말은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사람을 그것도 친구를 치냐?  나쁜 놈,  그 기운이면 밥 안먹고도 일 잘하겠네.  잔소리 그만하고 나와 어서!!”


형준은 자신의 욕심만 앞세워 친구를 나무란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엽에게 윗옷을 던져 주며, 주엽의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잠시 후 주엽이 그의 뒤를 따라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왔다.


“자식, 진작 그럴것이지...  나 때린 벌로 니가 밥 사라”


형준은 주엽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주엽은 자신을 걱정하는 형준의 무거워 보이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정답게 늦은 아침을 먹으러 길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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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J리모델링건이 오늘 부로 끝이 났다. CCJ별관에 위치한 건물은 분수대가 오후의 따뜻한 기운을 밀어 내고 이젠 완연한 봄을 지나 여름의 향기가 물씬 묻어났다. 수연은 얼마 전 부득이 하게 결혼식이 연기된 은별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은별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너도 그렇지만, 형준씨가 너무 바빠서 그런 걸 어떻하니  네가 이해해야지..."


"아무리 내가 이해를 하려고 해도 그렇지 요즘은 바쁘다고 맨날 전화만 하고 어제도 무슨일인지 나보러 와놓고도 부리나케 가버린다구. 아휴 속상해...“


“그래도 형준씨는 너만 생각하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너만 보면 행복해 보이더라”


“치, 기집에 딴사람 이야기 하냐 넌 어떻고 주엽씨도 너만 보면 좋아서 입이 벌어 지두만,  어?  너 왜 그래?”


은별이 주엽의 이야기를 꺼내자 금새 어두워지는 수연을 표정을 보며 의아해 했다.


“어, 일은 아무일도 없어....  ”


“아무일 없다는 얘치곤 너무 어둡잖아,  혹시..”


은별의 걱정을 뒤로 차가운 음성이 그녀들을 움추러 들게 만들었다.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재황이 다가왔다.


“일하는 데 와서 연애 이야기나 하고 여자들은 공과 사도 구분 못하는 건가?”


그의 말에 발끈한 은별이 뭐라고 하려 하자 수연은 그녀를 재빨리 말렸다. 재황과 오랜시간 말싸움을 해서 별로 이겨본 일이 없는 은별이 또다시 화를 낼까 그래서 뱃속 아이에게 안좋을 것 같아서 그녀를 말렸다.


“그만 가봐 은별아 너도 마감하러 가야 하잖아.”


“어?  그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



말 일이 아니 여서 마감은 아직 이른 시간이 였지만, 수연이 눈짓으로 그녀를 말린 다는걸 알고는 은별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재황에게 고개만 까닥인 후 그를 지나쳐 갔다.


“오늘로써 일이 끝났다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그가 담배를 입에 물며, 그녀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뇨, 일을 쉽게 생각하는 오지랖은 넓은 당신이지요.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으니까요. 그럼 전 당신이 원하는 마무리를 하러 들어가겠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녀의 당당한 말투에 그가 큰소리로 웃었다. 휴식을 취하던 직원들이 그와 그녀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


“내가 정말 오지랖이 넓은걸 알긴 아는 모양이군. 너처럼 차가운 여자를 누가 데려 갈지 걱정을 하는 거 보면 말이야..”


“........!!!!!! 여긴 회사입니다. 유이사님 쓸데없는 말로 오해 사게 만들지 말아 주시죠.”


그녀는 그의 말에 화를 내며 그를 지나쳐 막바지 공사현장으로 들어섰다. 막 작업 인부에게 틀린 곳을 지적하던 그녀를 어느새 쫓아 온 재황이 막무가내로 끌로 나왔다.


“아니 왜이래요? 미쳤어요?  이거 놔요!!!  당장!!!”


“닥쳐!!! 가만 안 있음 나도 널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큰소리로 그녀에게 윽박지르던 재황은 회사 사람들이 보던 말 던 상관없다는 듯 그녀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탓다. 엘리베이터 안엔 두 사람만 타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게 잡힌 아픈 팔목을 힘껏 잡아 뺏다. 그리곤 그가 눌러 논 지하1층의 층수를 확인 한 후 1층의 버튼을 마구 눌러 댔다.


“이딴 식으로 무례하게 굴 거면,  지금 당장 공사고 뭐고 그만 두겠어요.!!”



그녀는 버튼을 계속 누르며, 화를 냈다. 그러자 그녀의 행동을 간단히 제지 시키며, 그가 더 없이 험악한 얼굴로 그녀에게 윽박질렀다.


“무례하게 구는 건 너야!!!!!  내가 너 때문에 미치는 걸 넌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 너무도 무례하게....”


무섭도록 인상을 쓰던 그가 그녀를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몰아 세웠다. 더 이상 공간을 벗어 날수 없게 된 그녀는 그에게 최대한 떨어지려는 듯 몸을 움 추렸다. 그녀의 그런 행동이 그를 자꾸만 자극해서 일까 그는 그녀에게 손을 올렸다. 그의 행동에 놀란 그녀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행동에 그는 조금 멈칫 하더니 이네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의 입술을 갑작스레 탐했다.  그녀는 갑작스런 재황의 행동에 당황해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다 그의 발을 힘껏 밟아 버렸다. 발을 밝힌 그가 소리를 지르며, 그녀에게 멀어 졌고, 다행이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가 나올 수 있었다.


“다신 내 앞에 나타 나지마. 이 미친놈!!!”


“크흐흐 그래 난 너 때문에 미친 건 확실하니까....”


그가 멀어지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조소를 날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히며,  일층을 지나 그의 사무실이 있는 고층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회사에서 이사라는 사람이 고작 한다는 짓이 자신의 감정 따위 다스리지도 못하고 여자를 범하려 하다니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따뜻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다은 순간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로지 그녀만 안을 수 있다면 이란 생각으로 그녀에게 집요하게 굴었다.


“크크크흐하하하하”


그의 사무실이 웃음소리로 인해 더욱 음산해 져 갔다.


삐.......


“누구야?”


“네, 이사님 약혼녀께서 오셨는데요?”


“......... 들어오라고 하세요.”


아무런 감정조차 베이지 않은 음성으로 그의 약혼녀를 맞았다.  그의 약혼녀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그의 앞으로 다가 오더니 다짜고짜 그의 빰을 때렸다. 그녀의 손이 매섭게 그를 때리자 그는 그녀를 의아해 하며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누군가 말한 게 로군... 젠장 할.’


“무슨 일 이지?”


그녀에게 맞은 빰은 상관없다는 듯 그가 담배를 입에 물며,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  당신이 어떻게 그렇 수 있죠?  약혼녀를 두고도 어떻게 여자랑 놀아 나 냐 구요!!”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손톱만큼의 감정조차 보이지 않으려는 듯 그는 더없이 차갑게 그녀에게 말했다.


“하,  바  방금 난 당신이 다른 여자랑 있던 걸 봤 다구요?  그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죠?”


재황은 더 이상 징징거리는 여자의 말을 들어 줄 수 없다는 듯 그의 책상을 힘껏 내리 쳤다.


쾅!


그 소리에 놀란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재  재황씨.....흐흑”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당신이든 누구는 나를 마음데로 휘두르려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고!!!!”


그의 약혼녀는 그의 이런 사나운 모습에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어 버렸다.



“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난 당신밖에 없다는 거 잘 알잖아요?  다시는 나한테 그따위 허접한 거 보이지 마  말아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 그녀가 그에게 아프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너야 말로 그러지마, 내 앞에서 다신 징징거리지 말라고, 난 딱 질색이니까.”


약혼녀에게 차갑게 말한 재황은 자신의 방에 약혼녀를 내버려 둔 채  회사를 나와 버렸다. 저 멀리 노을이 회색빛 도시를 물들이는 시간 그 모습이 그의 마음처럼 한없이 우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