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기와집과 초가집을 수도 없이 허물고 다시 지었다. 내가 선잠에 서 깨어난 것은 오줌이 마려워서였다. 음산하고 추운 날씨 탓에 이불을 사타구니에 끼고 두 손으로는 이불 끝자락을 턱까지 당겨 사다리꼴로 만들고 꼭 끌어안고 잠들어 섰다. 이빨로는 이불깃을 물고 뒤통수 절반쯤 이불밖에 내놓고 야 금 야금 아파 오는 아랫배는 참 을만 한데 기저귀에서 새어 나온 변 냄새는 도 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게는 刑罰(형벌)이요 잔인한 拷問(고 문)이었다. 마른침을 퇴퇴 거리며 이불을 얼굴에서 벗 끼려해도 몸이 이불에 요 상하게 똘똘 말려 있어 몸을 기를 쓰고 빼려해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나는 겨우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발버둥을 쳐 겨우 굼벵이처럼 일어 나 아랫배를 움켜잡고 고장 난 방문을 엉덩이로 열어 젖혔다. 내 엉덩이에 열 린 문은 벽에 부딪쳐 쾅쾅거리며 절반쯤 열 열려다 닫히기를 반복하더니 손잡이 사이에 겨우 붙어 있던 나사가 빠졌는지 방문이 와르르 얽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내 발등을 사정없이 내려 찍었 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유리마저 나를 덮쳐 발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반쯤 문밖으로 나가있던 몸이 방바닥에 나 맥없 이 쓰러져 버렸다. 유리에 찍힌 발등에서는 붉은 피가 샘물처럼 펑펑 쏟아 올랐다. 나는 문에 찍힌 발등의 아픔보다 아랫배가 더 아파 배를 움켜쥐고 새우처럼 구부리고 한참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새우처럼 구부린 체 수건으로 발을 동여매고 엉망진창 된 방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엌 쪽으로 나가다 아내의 팔을 밟고 누어 있는 아내 위에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육중한 내 몸이 아내를 덮쳐도 아내는 모기 만한 소리만 낼 뿐 아프다는 소리도 지르지도 못했다. 아내 위에 넘어진 육중한 내 몸 을 겨우 일으켜 "형주 어메야 미안하데이" 하고 부엌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얘들이 벗어 놓은 신발에 걸려 나는 고개 사처럼 공중 제비를 돌 며 또 꼬꾸라 엎어 졌다.
-21- 나는 넘어지면서 팔이 접히고 발톱도 갈라지고 무릎 팍도 깨지고 입 술까지 터져 피가 주르르 흘렀다. 머리가 이상하게 접힌 나는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딱딱 한 시멘트에 얼굴을 처박힌 체 로 십 여분이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에이 니기니 18 오늘 와 이래 재수 엄노"하며 내 몸을 일으키려 해도 몸뚱이가 마비되었는지 일으켜지지 않았다. 접힌 손을 겨우겨우 빼 얼굴에 묻은 티를 손바닥으로 대충 훌 터 내고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자란 풀을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기며 엉덩이를 누에처럼 치켜세우고 사력을 다해 일어났다. 접힌 팔을 들어 올려 보니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질질 끌고 팔로 기어 내 키보다 큰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무궁화 나무사이에 왼발은 접고 오른다리는 펴고 앉아다. 넘어지고 찢긴 내 발등은 퉁퉁 부어 피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굳어있었다. 나는 퉁퉁 부어 피 범벅된 다리를 보며 내 그것을 꺼내 소변 보려해도 다리가 아픈 탓인지 아니면 소변을 너무 오래 참은 탓인지 창자만 끈 어 질듯 배만 아프고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희한한 몰골로 한참을 하고서 바지를 제 되로 내리지 못하고 그것을 껴내 놓은 자세는 고문 아닌 고문이었다. 잠시 후 소변이 허리 와 바지 사이에 눌린 내 그것에서는 소변이 끊어 졌다 나오기를 반복 했다. 찔끔찔끔 나오지도 않던 소변은 바지 속까지 다 적시고서야 소변을 어깨 두서너 번 흔들 수 있었다. 시원함의 끝은 짜릿한 전율 마저 일 어났다. 내가 앉은자리에 흐른 소변이 무궁화 뿌리로 쓰며 드는 것을 보고 축축해진 바지에 거시기도 넣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또 어깨 두서 번 강하게 흔들고 팔로 엉덩이를 질질 끌고 문밖 시멘트 연자방아 쪽으로 팔로 기어갔다. 내 몸이 지나간 시멘트 길 위에 희한한 그림이 그려졌 다. 한발 크게 뛰면 닿을 3미터의 조금 넘는 넓이 길이 어찌 그리 넓 은지 두 번이나 번을 쉬고서야 겨우 연자방아 한 복판 구멍에 손을 넣 고 몸 을 당겨 연자방아 걸 터 앉았다.
-19- 그 옛날 소중하게 쓰여졌을 어른 두 아름이나 되는 연자방아에 네모 구멍에 그림자가 중앙 있는 것으로 보아 3시는 넘은 시간이다. 나는 퉁퉁 붓고 발톱까지 찢어져 굳어버린 발을 손으로 한참이나 주 물러 쭉 펴고 담배한대 피워 묻니 햇살은 겨울인데도 내 어깨를 따사 롭게 내려 감사 안아주었다. 담배 한 모금이 폐로 들어가더니 속을 발 칵 뒤집어 우우욱 우우욱 헛구역질을 밀어 올렸다. 나는 담배 몇 모금 더 빨지도 못하고 움푹 파진 연자방아에 담배 불 을 슥슥 비벼 꺼 버렸다. 나는 다시 담배를 피워 입에 가져가니 침까지 흘러나오고 허리까지 접히는 헛구역질이 자꾸 올라와 담배 불을 사타구니 사이로 연자방아 에 너 댓 번 문지르니 담배꽁초는 맥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내가 담배 불을 어설프게 끄는 바람에 손끝이 뜨거워 손을 재빠르게 흔들며 입으로 후--후 불었다. 손톱만큼은 남은 꽁초가 아까워 왼쪽밤 색 남방 주머니에 넣고 아픈 몸 을 질질 끌고 방에 들어오니 뱃속 회 충은 신물을 퍼 올리며 창자를 채 우라고 아우성을 친다. 대 못질을 하여 접히지도 않는 칠이 허옇게 벗 껴진 밥상에 먼지를 수북히 뒤집어 쓴 냄비는 어제 낮에 먹다 남은 라면이 젖 가락 굵기만 큼 퉁퉁 불어 식혜 밥알처럼 둥둥 떠 있었다. 고장 난지 오래된 낡고 붉은 색 밥통은 아직까지는 하루 정도는 밥 통 역 활을 하지만 이틀만 지나면 밥을 누렇게 만든다. 밥통을 열고 밥을 푸려니 밥이 딱딱한 누런 찐쌀이 되어 있었다. 밥통에 찐쌀이 되어버린 밥을 주걱으로 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퍼 어 제 먹다 남은 라면에 넣으려는데 주걱에서 밥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주걱으로 냄비를 툭툭 치니 주걱에 붙은 밥알 덩이가 풍덩 떨 어지는 바람에 라면 국물이 눈에 튀어 들어 한쪽 눈을 멀게 했다. 나는 따가운 눈을 꽉 감고 남은 밥알을 주걱으로 시커먼 냄비에 문 지르다 성한 눈에 마저 라면 국물이 튀어 들어가 잡고 있던 냄비를 그 만 놓치고 말았다. 라면 국물을 뒤집어 쓴 체 쓰라리고 따가운 눈을 꽉 감고 수건을 찾으려고 장님처럼 두 손을 허공을 휘저으며 싱크대를 더듬어 다른 집 걸레보다 더 더러운 행주로 라면 국물로 뒤 범된 얼굴을 닦고 삐딱한
-23- 싱크대 문짝에 기대 냄비를 주워들고 숟가락을 주먹 안에 움켜쥐고 딱딱한 밥덩이를 툭툭 꺼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안에 넣으니 어제 낮에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은 싸 근 하고 쉰 맛이 내 혀를 자극했다. 압사직 전의 회충들은 그래 마다하지 않고 받아 드렸다. 정말로 재수도 더럽게 없는 기묘년 정월 초하루 날 내 삶 현주소다. 나는 잠시 업 드려 쥐어 지지 않는 볼펜을 잡고 피 비린내나는 내 삶을 적어 내려가니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내게 밟힌 아내의 팔을 만져 주었다. 병든 아내가 원망스럽다가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하였다. 어쩌다가 나 같이 몹쓸 인간을 만나 이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자책에 눈물이 흘러 도저히 일기를 쓸 수 없다. 산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삶의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밀려온 다. 아내를 이제 그만 고생시키고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든다. 검정비닐 봉투를 아내의 얼굴에 슬며시 씌우려니 아내는 팔을 저으며 있는 힘을 다해 돌아눕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일기 쓰다 멈추고 한 발로 뛰어 밖에 나가 보았다. 큰 아이가 정종과 선물을 무거울 정도 들고 얼굴엔 웃음 가득 머금 고 "아빠"하며 절름거리는 내 품에 안겨왔다. 열기마저 사늘히 식어버 린 겨울 해는 서산에서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르던 구름까지 붉게 물들 이고 서산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어깨에 내 팔을 얹고 한 쪽 발을 치켜들고 절룩거리며 핏기도 어린 아들에게 어리광을 피웠다. 나는 아이에게 "오늘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 데이" 하니 아이는 어 른처럼 "이 아들이 왔지 않느냐" 며 아비보다 어른 어른스럽게 못난 아비를 위로했다. 어린 아들이 내미는 담배 한 보루 받아들고도 미안 해 하지도 할 줄도 모르는 철없고 못난 아비가 되었다. 아직 중학교 다녀야 할 어린 자식이 눈물을 흘리며 벌어서 싸온 담배 한 보루를 들 고 행복해야만 하는 현실이 복받쳐 올라 왔다.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 님의 기일이자 큰 아이의 생일이다. 큰 아이는 돌 때를 제외하고는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한번 먹여본 기억조차 없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지어미가 병 병들어 집안 일을 도 맡아 해야하는 부모 福(복)이 지지리도 없는 박복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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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복한 아이가 어찌 생일날 아침에 따뜻한 밥과 미역국을 얻어 먹었을 수 있었으랴. 운명처럼 내 어머니 세상 떠나시던 그 시간. 삼 년상 치르던 날 내 손으로 직접 탯줄을 끊어 받은 내 분신이다. 아마도 내 어머님이 내 업을 예견하시고 보내신 아들임이 틀림없다. 어머님 제사를 모시고 애들 고모님들이 다 떠나시고 어린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적은 놈은 히야 내는 히야가 디기 보고 싶 었는데 히야는 내가 안보고 싶 드나" 하며 부둥켜안고 우는 어린 자식 의 모습이 내 가슴을 저리고 아프게 한다. 내가 어쩌다가 저 어린것들을 생이별시킨 몹쓸 아비 가 되었나 싶어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르 흘려 내린다. 내 어머님이 명절날에도 잠 한번 편히 주무시지도 못하시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창고 붙이는 것도 아까워 헌옷을 찢어 손가락이 새파래 지도록 동여매시고 늘 사셨다.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 때마다 지문 이 다 닳은 손가락을 내미시면 면서기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지문이 안 찍힌 다고 어머님께 투 덜 거렸다. 내 어머님은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밝은 별빛이 너무 아깝다 시며 밭에 나가시어 김을 메셨다. 못난 자식이 혹시라도 당신이 돌아 가신 후 사는데 힘들게 고생 할까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려준 적잖 은 전답과 집 그리고 당신께서 잠들어 계신 선산까지 하나 남김 없이 다 팔아먹은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가 나다. 병든 아내도 모자라 젖비린내도 채 가시지 않은 어린것을 중학교도 졸업시키지도 못하고 돈 벌러 보내야 한 몹쓸 비정한 아 비비가 나다. 그런 몹쓸 아비임에도 보고싶어 하니 무서운 것이 천륜의 정이 아닌 가 싶다. 어린것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매질을 해대는 아비 자질도 없 는 인간이 나다. 하늘을 덮고도 남을 내 업은 자식 한데 많은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 기 위해 모질고 독한 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 현실이다. 내 업은 내 것이기에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대물림되어서는 아니 된 다. 눈에 초점 잃은 아내 눈을 바라보며 "형주 온거 아느냐"고 물어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우처럼 몸을 말아 머리로 쿵쿵 방아만 찧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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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형제는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잠도 자자않고 비좁은 두 평 방 에서 떨어지기 싫은지 초롱초롱한 눈알을 굴리며 못 다한 형제의 정을 나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설움이 복 받쳐. 깔고 있 던 베개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흐르는 내 눈물은 베개를 방바닥을 타고 부엌 쪽으로 쏟은 물처럼 흘러갔다. 애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깃을 슬며 시 당겨 방바닥에 흥건히 고인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없다. 저 철없는 아이들을 어이 할꼬? 살아 숨쉰다는 것이 참으로 잔인하 고 고통스럽다. 나는 어찌 하여 자식 노릇도 아비 짓도 남편 구실도 못하고 자 식의 교육의무마저 왜면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칠순이 다된 늙고 병든 늘고 병드신 누이 한데 부모님 제사 음식까지 맡 껴야 하는 불효자가 되었을꼬? 눈물이 하염없이 내 뺨을 타고 흐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를 악 물어도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춰지지 않는다. 병든 아내는 남편인 내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워했던 쌍봉은 어디로 갔는지 말라 비틀어져 쭈글쭈글한 마른 포도 알 같은 젖꼭지만 가족에 겨우 붙어 있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못해 저주스럽다. 나는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소 나무가 울창한 경덕 왕릉으로 달리고 달렸다. 나는 턱까지 차 오른 숨을 거칠게 몰아 쉬어도 눈물은 멈춰 지지 안 고 계속 흐르고 있다. 수도 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경 덕 왕릉 숲에 뿌리니 동녘 하늘이 붉 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의 구름도 하얀 띠를 두르고 내 업의 찬가에 따라 정 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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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아비 1998.3.12.
아이를 성남 중국 飯店(반점)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500백원씩 주고 헌옷을 여러 벌 싸왔다. 아이 몸집보다 큰 먼지가 수북히 쌍인 가방을 꺼내 대충 털고 옷을 담으니 자크가 고장나 옷을 몇 벌 넣지도 않았는데 가방은 아가리를 쫙 벌리며 헌옷도 좋으니 더 넣어 달라는 것 같다. 아이는 아가리 벌린 가방을 보며 "쾌안니더 아부지요 이래가 가 가머 되니더" 하며 아가리 벌린 가방 속을 옷을 발로 꾹꾹 밟아 넣었다. 가방을 발로 밟는 아이를 타일러 가방을 거꾸로 힘주어 흔들어도 아 이 발길질에 눌린 옷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이에 옷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차곡차곡 개어 다시 담이 붉은 나 이론 줄로 벌어진 가방을 무릎으로 꾹-욱 눌러 묶으니 아가리를 쩍 벌 리고 있던 가방은 그나마 가방모습을 되찾았다. 가방을 문 앞에 내놓은 아이는 어미의 정이 그리운지 지어미의 손을 잡고 엄마 "내가 성남 가서 돈 마이 벌어 오꾸마"하고는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 방울을 흘리다가 지어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하다 가 내 품에 파고들어 소리내어 엉엉 울어도 비정한 아비인 나는 울 수 조차 없었다. 우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니 아이는 그 제서야 울음을 그쳤다. 울 음을 멈춘 아이는 얼룩진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고 운동화 뒤꿈치에 손 을 넣고 운동 화 끝을 서너 번 툭툭 차고 문을 나섰다. 아이는 몇 걸 음 가다 신발을 신은 체로 방에 들어와 누워있는 지어미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어린것이 얼마나 어미 품이 떨어지기 싫어서 저 렇게 통곡을 하랴 싶어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가 통곡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 눈도 비오듯 내려 입술로 타고 스며들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아이에게 들킬까봐 눈물을 꿀꺽 삼키며 제 빨리 손바닥으로 세수하듯 눈물을 닦고 방에 들어가 아이의 어깨를 흔들며 "차시간 다 되 떼이" 하며 아이를 지어미 품에서 떼 내려하니
-27- 아이는 지어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지어미를 더 힘주어 끌어안 고 지어미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쏟아 부었다. "느그 엄마는 절대로 안 죽는다"며 아이를 지어미의 품에서 겨우 떼 어 내었다. 하루에도 너 댓 번밖에 다 다니 지 않는 버스를 타고 아이몸집 만한 가방 을 들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내렸다. 천하에 몹쓸 아비 한데서 태어난 죄로 아직은 지어미 품에서 어리광 피우며 자라야 할 저 어린것을 돈 벌러 다시 보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차표 자동 판매기에 돈을 넣고 서있으니 내 눈 에서는 구슬 같은 눈방울이 내 운동화가 젖도록 흘러 내렸다. 운동화 끈을 타고 쓰며든 눈물은 배꼽을 타고 올라 명치끝을 막아 내 숨을 잠시동안 멎게 했다. 나는 숨을 제 되로 쉴 수 없어서 무릎을 꺾고 그자 리에 폭삭 주저 앉고 말았다.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명치에 손을 얹고 컥컥 비음만 뱉어내었다. 한참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이가 아빠하고 부 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집에서 언제 울었냐는 듯이 토끼 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내게 다가와 "아빠 껌"하며 껌을 내밀었다. 나는 아이가 내미는 껌을 고개를 돌려 받아 큰누이가 생질 몰래 꾸 지람 들으며 몰래준 까만 얼룩 때가 묻은 오리 털 녹색잠바 주머니에 껌을 넣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훔쳤다. 개찰구의 서 있는 후배 검표 원이 우리 부자간 이별 정도 나누지 않 았는데 성남 가실 분 없어요. 하는 외침에 아 아이는 "아빠 가끼요"하 며 내가든 가방을 낚아채듯 받아들고 등을 보이는 아이를 돌려세워 만 원 짜리 석 장을 아이 손에 쥐어주니 아이는 "나 이 만원 나 있니더" 하며 한사코 받지 안으려 했다. 저 철없는 어린것이 아비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헤아린다는 것이 내 명치끝은 더 눌렀다. 아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돈을 아이의 윗 도리 주머니에 둘둘 말은 찔러 주며 "성남 가거든 막내고모 집에도 자 주 가고 열심히 해래이"하고 당부하니 아이는 "예 걱정하지 마시소" 하며 밝고 씩씩한 목소리 대답했다. 개찰구로 가려는 아이를 내 품에 꼭 안고 부자간의 천륜의 정을 잠깐 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
-27- 개찰구를 빠져나간 아이는 아비의 섭섭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 워 물고 성남행 버스로 힘차게 올라갔다. 아이가 올해 초부터 7-8차례를 가출하면서 내 속을 무던히도 태웠 다. 때론 나를 절망으로 몰아 부치기도 했고 천륜의 정마저도 피멍 들게 했으며 아내를 끌어안고 농약을 부어놓고 아내한테 먼저 먹이고 나 또한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 하게 했었다. 아내는 코를 찌르는 농약 냄새 때문에 한사코 농약을 먹지 않으려는 발버둥 을 쳤다. 발버둥치는 아내의 입을 내 억센 손아귀고 벌리고 강 제로 아내의 입에 부으려 하니 아내는 발악을 하며 농약 부은 사발을 뿌리 쳤다. 가출한 아이는 전쟁 고아 몰골로 새우처럼 몸을 접고 잠자 던 시외터미 널 긴 나무의자가 내 걸음을 한동안 묶으며 몇 달 전에 처절했던 악몽 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막노동 일을 다니면서 한시간 빨리 일어나 희미한 오토바이 라 이트 빛을 앞세우고 아이를 찾으려고 아이가 자고 있을 만한 곳을 찾 아 다녀다. 일을 마친 후에는 경주시내 있는 피시방. 오락실. 만화가 게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 잡듯 찾아다니기를 헤아릴 수 없다. 아이를 찾으면 모욕도 함께 하고 밥도 싸 먹이며 때론 타이르고 때 론 매로 다스려 집에 데려다 놓으면 아이는 일주일도 집에 있지 못하 고 가출했다. 그 철없던 아이가 저 딱딱 의자에서 추위를 견디며 거 지의 몰골로 새우잠을 잤었다. 한번은 새우잠을 자는 아이를 잡아 신발을 벗 끼고 양손을 고무밧줄 로 묶고 오토바이 뒤에 묶고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차를 타고 지나 가던 사람의 만류에도 나는 오토바이를 세우지 않고 아이를 계속 뛰게 했다. 아이가 맨발로 뛰다가 지쳐 숨을 몰아 쉬며 나뒹굴어도 나는 오 토바이에서 허연 연기가 나도록 아이를 개처럼 질질 끌었다. 아이의 몸무게에 오토바이가 앞으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해 오토바이 를 세우고 아이의 발을 보니 아이의 발바닥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벗 겨 졌다. 아이의 발바닥에서는 검붉은 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발바닥이 피범벅이 된 아이를 태우고 오능 주차장 앞에서 지나가는 경찰 차를 만났다. 고속도로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있는데 경찰 차 가 내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마 차 타고 가던 사람의 신고 받 고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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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두고 경찰 차 타고 황남 파출소에 가서 조사 를 받았다. 아이가 하도 가출해 아이를 길들이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을 했다. 경찰은 아무리 아이가 가출해도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 다며 내 주민 등록증을 내 놓으라고 했다. 내 주민등록 받아든 경찰은 내 인적사항을 적고 주민등록증을 서랍 에 넣고 아이의 발을 본 경찰은 치료 시켜야 한다며 우리 부자를 한성 병원으로 태워 다 주었다. 한성병원 의사는 거지꼴의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파출소에서 처럼 입 과 코를 막고 엉덩이를 쭉 뒤로 빼고는 팔을 쭉 뻗어 소독약 을 대충 발라주고 아이를 빨리 데리고 가라고 팔을 저으며 짜증스럽게 성화를 부렸다. 100원어치도 안 되는 소독약을 바르고 거금 3만원을 달라니 도적놈 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비를 주고 나니 내 지갑엔 천 원 짜리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 업고 2키로나 되는 황 남 파출소 쪽으로 걸어오 고 있는데 택시운전 하는 얘들 큰외삼촌이 아이 업고 가다 힘들어 쉬 고 있는 우리 부자를 보고 택시를 천천히 지나가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발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는 중이라 얘기하고 아이가 걷지를 못하니 황남 파출소까지만 좀 태워달라고 사정을 해도 애들 외삼촌은 바쁘다며 우리부자를 왜면 하고 그냥 가 버렸다. 황남 파출소에서 이상한 글에 사인을 하고 주민등록을 달라고 하니 어디론가 연락을 하더니 주민등록증은 놔두고 가라고 했다. 아이는 그런 곤 역을 치르고도 발이 다 아물지도 않고 또 가출을 했 었다. 한달 동안 내가 노동해서 겨우 벌어 쌀을 사려고 했던 돈을 내가 잠 든 사이에 지갑 통 체로 들고 가는 가출을 반복해 나를 절망에 빠트렸 다. 또래아이와 남의 집에 들어가 돼지 저금통까지 훔쳐 경찰관의 의해 집으로 돌아 왔다.
-30- 아이가 되지 저금통 훔친 집으로 찾아가 아이와 함께 꿇어앉아 아비 인 제가 잘못 가르쳐 다고 내 나이와 비슷한 젊은 사람 앞에 무릎 꿇 고 머리를 조아리며 몇 시간이나 빌고 빌어 섰다. 너무 무릎을 오래 꿇고 앉아 있어서 일어나다가 넘어 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아이는 느낀 점이 있었는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 었고 가출도 하지 않았다. 바로 몇 달 전 일이다. 아비의 가슴을 무던히 아프게 했던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긴 나 무 의자가 내 갈길 을 잠시 멎게 했다. 대합실을 빠져 나와 푸른 신호등이 켜진 십 미터는 족히 넘을 길 건 너 아이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이가 버스 안에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아이를 보고 손을 흔들려 하는데 적색 신호에 멈출 것 같은 버스 는 신호 위반하여 내 아이와 승객 셋 사람을 태우고 매정하게 내 시야 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뀌도록 아이가 타고 간 길을 멍하게 바라보 다가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비린내나는 내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차갑고 가파른 형산강 시멘트 뚝 에 앉아 김유신 장군 무덤을 바라보며 잘못 살아온 내 인생을 탄식하며 정신 놓고 울고 있는데 길가는 노인이 "젊 은 사람이 와 벌건 대낮에 그래 우노" 하 시며 지나 가셨다. 나는 정신이 들어 폭 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훌 터 내고 애기청수 깊은 물에 내 여린 마음을 떠내려보내고 양복점 친구 집으로 발걸음 떼었다.
하나님께 일러 주고 싶다. 제 1부. 쇠비름 업(20~3.페이지까지)
재수 옴 붙은 정월 초하루
1998년 1월 1일
밤새 기와집과 초가집을 수도 없이 허물고 다시 지었다. 내가 선잠에
서 깨어난 것은 오줌이 마려워서였다.
음산하고 추운 날씨 탓에 이불을 사타구니에 끼고 두 손으로는 이불
끝자락을 턱까지 당겨 사다리꼴로 만들고 꼭 끌어안고 잠들어 섰다.
이빨로는 이불깃을 물고 뒤통수 절반쯤 이불밖에 내놓고 야 금 야금
아파 오는 아랫배는 참 을만 한데 기저귀에서 새어 나온 변 냄새는 도
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내게는 刑罰(형벌)이요 잔인한 拷問(고
문)이었다.
마른침을 퇴퇴 거리며 이불을 얼굴에서 벗 끼려해도 몸이 이불에 요
상하게 똘똘 말려 있어 몸을 기를 쓰고 빼려해도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나는 겨우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발버둥을 쳐 겨우 굼벵이처럼 일어
나 아랫배를 움켜잡고 고장 난 방문을 엉덩이로 열어 젖혔다.
내 엉덩이에 열 린 문은 벽에 부딪쳐 쾅쾅거리며 절반쯤 열 열려다
닫히기를 반복하더니 손잡이 사이에 겨우 붙어 있던 나사가 빠졌는지
방문이 와르르 얽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내 발등을 사정없이 내려 찍었
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유리마저 나를 덮쳐 발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반쯤 문밖으로 나가있던 몸이 방바닥에 나 맥없
이 쓰러져 버렸다. 유리에 찍힌 발등에서는 붉은 피가 샘물처럼 펑펑
쏟아 올랐다.
나는 문에 찍힌 발등의 아픔보다 아랫배가 더 아파 배를 움켜쥐고
새우처럼 구부리고 한참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새우처럼 구부린
체 수건으로 발을 동여매고 엉망진창 된 방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엌
쪽으로 나가다 아내의 팔을 밟고 누어 있는 아내 위에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육중한 내 몸이 아내를 덮쳐도 아내는 모기 만한 소리만 낼
뿐 아프다는 소리도 지르지도 못했다. 아내 위에 넘어진 육중한 내 몸
을 겨우 일으켜 "형주 어메야 미안하데이" 하고 부엌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얘들이 벗어 놓은 신발에 걸려 나는 고개 사처럼 공중 제비를 돌
며 또 꼬꾸라 엎어 졌다.
-21-
나는 넘어지면서 팔이 접히고 발톱도 갈라지고 무릎 팍도 깨지고 입
술까지 터져 피가 주르르 흘렀다. 머리가 이상하게 접힌 나는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이나 딱딱 한 시멘트에 얼굴을 처박힌 체
로 십 여분이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에이 니기니 18 오늘 와 이래 재수
엄노"하며 내 몸을 일으키려 해도 몸뚱이가 마비되었는지 일으켜지지
않았다. 접힌 손을 겨우겨우 빼 얼굴에 묻은 티를 손바닥으로 대충 훌
터 내고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자란 풀을 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기며
엉덩이를 누에처럼 치켜세우고 사력을 다해 일어났다. 접힌 팔을 들어
올려 보니 팔은 부러지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질질 끌고 팔로 기어 내 키보다 큰 줄기만 앙상하게
남은 무궁화 나무사이에 왼발은 접고 오른다리는 펴고 앉아다.
넘어지고 찢긴 내 발등은 퉁퉁 부어 피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굳어있었다.
나는 퉁퉁 부어 피 범벅된 다리를 보며 내 그것을 꺼내 소변
보려해도 다리가 아픈 탓인지 아니면 소변을 너무 오래 참은 탓인지
창자만 끈 어 질듯 배만 아프고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희한한 몰골로 한참을 하고서 바지를 제 되로 내리지 못하고
그것을 껴내 놓은 자세는 고문 아닌 고문이었다. 잠시 후 소변이 허리
와 바지 사이에 눌린 내 그것에서는 소변이 끊어 졌다 나오기를 반복
했다.
찔끔찔끔 나오지도 않던 소변은 바지 속까지 다 적시고서야 소변을
어깨 두서너 번 흔들 수 있었다. 시원함의 끝은 짜릿한 전율 마저 일
어났다.
내가 앉은자리에 흐른 소변이 무궁화 뿌리로 쓰며 드는 것을 보고
축축해진 바지에 거시기도 넣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또 어깨 두서 번
강하게 흔들고 팔로 엉덩이를 질질 끌고 문밖 시멘트 연자방아 쪽으로
팔로 기어갔다. 내 몸이 지나간 시멘트 길 위에 희한한 그림이 그려졌
다. 한발 크게 뛰면 닿을 3미터의 조금 넘는 넓이 길이 어찌 그리 넓
은지 두 번이나 번을 쉬고서야 겨우 연자방아 한 복판 구멍에 손을 넣
고 몸 을 당겨 연자방아 걸 터 앉았다.
-19-
그 옛날 소중하게 쓰여졌을 어른 두 아름이나 되는 연자방아에 네모
구멍에 그림자가 중앙 있는 것으로 보아 3시는 넘은 시간이다.
나는 퉁퉁 붓고 발톱까지 찢어져 굳어버린 발을 손으로 한참이나 주
물러 쭉 펴고 담배한대 피워 묻니 햇살은 겨울인데도 내 어깨를 따사
롭게 내려 감사 안아주었다. 담배 한 모금이 폐로 들어가더니 속을 발
칵 뒤집어 우우욱 우우욱 헛구역질을 밀어 올렸다.
나는 담배 몇 모금 더 빨지도 못하고 움푹 파진 연자방아에 담배 불
을 슥슥 비벼 꺼 버렸다.
나는 다시 담배를 피워 입에 가져가니 침까지 흘러나오고 허리까지
접히는 헛구역질이 자꾸 올라와 담배 불을 사타구니 사이로 연자방아
에 너 댓 번 문지르니 담배꽁초는 맥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내가 담배 불을 어설프게 끄는 바람에 손끝이 뜨거워 손을 재빠르게
흔들며 입으로 후--후 불었다. 손톱만큼은 남은 꽁초가 아까워 왼쪽밤
색 남방 주머니에 넣고 아픈 몸 을 질질 끌고 방에 들어오니 뱃속 회
충은 신물을 퍼 올리며 창자를 채 우라고 아우성을 친다.
대 못질을 하여 접히지도 않는 칠이 허옇게 벗 껴진 밥상에 먼지를
수북히 뒤집어 쓴 냄비는 어제 낮에 먹다 남은 라면이 젖 가락 굵기만
큼 퉁퉁 불어 식혜 밥알처럼 둥둥 떠 있었다.
고장 난지 오래된 낡고 붉은 색 밥통은 아직까지는 하루 정도는 밥
통 역 활을 하지만 이틀만 지나면 밥을 누렇게 만든다. 밥통을 열고
밥을 푸려니 밥이 딱딱한 누런 찐쌀이 되어 있었다.
밥통에 찐쌀이 되어버린 밥을 주걱으로 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퍼 어
제 먹다 남은 라면에 넣으려는데 주걱에서 밥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주걱으로 냄비를 툭툭 치니 주걱에 붙은 밥알 덩이가 풍덩 떨
어지는 바람에 라면 국물이 눈에 튀어 들어 한쪽 눈을 멀게 했다.
나는 따가운 눈을 꽉 감고 남은 밥알을 주걱으로 시커먼 냄비에 문
지르다 성한 눈에 마저 라면 국물이 튀어 들어가 잡고 있던 냄비를 그
만 놓치고 말았다.
라면 국물을 뒤집어 쓴 체 쓰라리고 따가운 눈을 꽉 감고 수건을
찾으려고 장님처럼 두 손을 허공을 휘저으며 싱크대를 더듬어 다른 집
걸레보다 더 더러운 행주로 라면 국물로 뒤 범된 얼굴을 닦고 삐딱한
-23-
싱크대 문짝에 기대 냄비를 주워들고 숟가락을 주먹 안에 움켜쥐고
딱딱한 밥덩이를 툭툭 꺼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안에 넣으니 어제 낮에
먹다 남은 라면 국물은 싸 근 하고 쉰 맛이 내 혀를 자극했다. 압사직
전의 회충들은 그래 마다하지 않고 받아 드렸다.
정말로 재수도 더럽게 없는 기묘년 정월 초하루 날 내 삶 현주소다.
나는 잠시 업 드려 쥐어 지지 않는 볼펜을 잡고 피 비린내나는 내
삶을 적어 내려가니 자꾸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내게 밟힌 아내의 팔을
만져 주었다. 병든 아내가 원망스럽다가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하였다.
어쩌다가 나 같이 몹쓸 인간을 만나 이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자책에
눈물이 흘러 도저히 일기를 쓸 수 없다.
산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삶의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밀려온
다. 아내를 이제 그만 고생시키고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든다.
검정비닐 봉투를 아내의 얼굴에 슬며시 씌우려니 아내는 팔을 저으며
있는 힘을 다해 돌아눕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일기 쓰다 멈추고 한 발로 뛰어 밖에 나가
보았다.
큰 아이가 정종과 선물을 무거울 정도 들고 얼굴엔 웃음 가득 머금
고 "아빠"하며 절름거리는 내 품에 안겨왔다. 열기마저 사늘히 식어버
린 겨울 해는 서산에서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르던 구름까지 붉게 물들
이고 서산으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어깨에 내 팔을 얹고 한 쪽 발을 치켜들고 절룩거리며
핏기도 어린 아들에게 어리광을 피웠다.
나는 아이에게 "오늘 재수 더럽게 없는 날이 데이" 하니 아이는 어
른처럼 "이 아들이 왔지 않느냐" 며 아비보다 어른 어른스럽게 못난
아비를 위로했다. 어린 아들이 내미는 담배 한 보루 받아들고도 미안
해 하지도 할 줄도 모르는 철없고 못난 아비가 되었다. 아직 중학교
다녀야 할 어린 자식이 눈물을 흘리며 벌어서 싸온 담배 한 보루를 들
고 행복해야만 하는 현실이 복받쳐 올라 왔다. 오늘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 님의 기일이자 큰 아이의 생일이다.
큰 아이는 돌 때를 제외하고는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한번 먹여본
기억조차 없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지어미가 병 병들어 집안 일을 도
맡아 해야하는 부모 福(복)이 지지리도 없는 박복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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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복한 아이가 어찌 생일날 아침에 따뜻한 밥과 미역국을 얻어
먹었을 수 있었으랴. 운명처럼 내 어머니 세상 떠나시던 그 시간. 삼
년상 치르던 날 내 손으로 직접 탯줄을 끊어 받은 내 분신이다.
아마도 내 어머님이 내 업을 예견하시고 보내신 아들임이 틀림없다.
어머님 제사를 모시고 애들 고모님들이 다 떠나시고 어린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적은 놈은 히야 내는 히야가 디기 보고 싶
었는데 히야는 내가 안보고 싶 드나" 하며 부둥켜안고 우는 어린 자식
의 모습이 내 가슴을 저리고 아프게 한다.
내가 어쩌다가 저 어린것들을 생이별시킨 몹쓸 아비 가 되었나 싶어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르 흘려 내린다.
내 어머님이 명절날에도 잠 한번 편히 주무시지도 못하시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창고 붙이는 것도 아까워 헌옷을 찢어 손가락이 새파래
지도록 동여매시고 늘 사셨다.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 때마다 지문
이 다 닳은 손가락을 내미시면 면서기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지문이
안 찍힌 다고 어머님께 투 덜 거렸다.
내 어머님은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밝은 별빛이 너무 아깝다
시며 밭에 나가시어 김을 메셨다. 못난 자식이 혹시라도 당신이 돌아
가신 후 사는데 힘들게 고생 할까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려준 적잖
은 전답과 집 그리고 당신께서 잠들어 계신 선산까지 하나 남김 없이
다 팔아먹은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가 나다.
병든 아내도 모자라 젖비린내도 채 가시지 않은 어린것을 중학교도
졸업시키지도 못하고 돈 벌러 보내야 한 몹쓸 비정한 아 비비가 나다.
그런 몹쓸 아비임에도 보고싶어 하니 무서운 것이 천륜의 정이 아닌
가 싶다. 어린것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매질을 해대는 아비 자질도 없
는 인간이 나다.
하늘을 덮고도 남을 내 업은 자식 한데 많은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
기 위해 모질고 독한 아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 현실이다.
내 업은 내 것이기에 자식들에게는 절대로 대물림되어서는 아니 된
다. 눈에 초점 잃은 아내 눈을 바라보며 "형주 온거 아느냐"고 물어도
아내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우처럼 몸을 말아 머리로 쿵쿵 방아만 찧는
다.
-25-
어린 형제는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잠도 자자않고 비좁은 두 평
방 에서 떨어지기 싫은지 초롱초롱한 눈알을 굴리며 못 다한 형제의
정을 나눈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설움이 복 받쳐. 깔고 있
던 베개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흐르는 내 눈물은 베개를 방바닥을 타고 부엌 쪽으로 쏟은 물처럼
흘러갔다.
애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내가 덮고 있는 이불깃을 슬며
시 당겨 방바닥에 흥건히 고인 눈물을 닦지 않을 수 없다.
저 철없는 아이들을 어이 할꼬? 살아 숨쉰다는 것이 참으로 잔인하
고 고통스럽다.
나는 어찌 하여 자식 노릇도 아비 짓도 남편 구실도 못하고 자 식의
교육의무마저 왜면 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칠순이 다된 늙고 병든
늘고 병드신 누이 한데 부모님 제사 음식까지 맡 껴야 하는 불효자가
되었을꼬?
눈물이 하염없이 내 뺨을 타고 흐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를 악
물어도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춰지지 않는다.
병든 아내는 남편인 내게도 보여주기 부끄러워했던 쌍봉은 어디로
갔는지 말라 비틀어져 쭈글쭈글한 마른 포도 알 같은 젖꼭지만 가족에
겨우 붙어 있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못해 저주스럽다. 나는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소
나무가 울창한 경덕 왕릉으로 달리고 달렸다.
나는 턱까지 차 오른 숨을 거칠게 몰아 쉬어도 눈물은 멈춰 지지 안
고 계속 흐르고 있다.
수도 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경 덕 왕릉 숲에 뿌리니 동녘 하늘이 붉
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의 구름도 하얀 띠를 두르고 내 업의 찬가에 따라 정
처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26-
비정한 아비
1998.3.12.
아이를 성남 중국 飯店(반점)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500백원씩 주고
헌옷을 여러 벌 싸왔다.
아이 몸집보다 큰 먼지가 수북히 쌍인 가방을 꺼내 대충 털고 옷을
담으니 자크가 고장나 옷을 몇 벌 넣지도 않았는데 가방은 아가리를
쫙 벌리며 헌옷도 좋으니 더 넣어 달라는 것 같다.
아이는 아가리 벌린 가방을 보며 "쾌안니더 아부지요 이래가 가 가머
되니더" 하며 아가리 벌린 가방 속을 옷을 발로 꾹꾹 밟아 넣었다.
가방을 발로 밟는 아이를 타일러 가방을 거꾸로 힘주어 흔들어도 아
이 발길질에 눌린 옷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이에 옷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차곡차곡 개어 다시 담이 붉은 나
이론 줄로 벌어진 가방을 무릎으로 꾹-욱 눌러 묶으니 아가리를 쩍 벌
리고 있던 가방은 그나마 가방모습을 되찾았다.
가방을 문 앞에 내놓은 아이는 어미의 정이 그리운지 지어미의 손을
잡고 엄마 "내가 성남 가서 돈 마이 벌어 오꾸마"하고는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 방울을 흘리다가 지어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하다
가 내 품에 파고들어 소리내어 엉엉 울어도 비정한 아비인 나는 울 수
조차 없었다.
우는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니 아이는 그 제서야 울음을 그쳤다. 울
음을 멈춘 아이는 얼룩진 얼굴을 손등으로 훔치고 운동화 뒤꿈치에 손
을 넣고 운동 화 끝을 서너 번 툭툭 차고 문을 나섰다. 아이는 몇 걸
음 가다 신발을 신은 체로 방에 들어와 누워있는 지어미를 부둥켜안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어린것이 얼마나 어미 품이 떨어지기 싫어서 저
렇게 통곡을 하랴 싶어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가 통곡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내 눈도 비오듯 내려 입술로 타고
스며들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아이에게 들킬까봐 눈물을 꿀꺽 삼키며
제 빨리 손바닥으로 세수하듯 눈물을 닦고 방에 들어가 아이의 어깨를
흔들며 "차시간 다 되 떼이" 하며 아이를 지어미 품에서 떼 내려하니
-27-
아이는 지어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지어미를 더 힘주어 끌어안
고 지어미 얼굴에 눈물을 주르르 쏟아 부었다.
"느그 엄마는 절대로 안 죽는다"며 아이를 지어미의 품에서 겨우 떼
어 내었다.
하루에도 너 댓 번밖에 다 다니 지 않는 버스를 타고 아이몸집 만한
가방 을 들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내렸다.
천하에 몹쓸 아비 한데서 태어난 죄로 아직은 지어미 품에서 어리광
피우며 자라야 할 저 어린것을 돈 벌러 다시 보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차표 자동 판매기에 돈을 넣고 서있으니 내 눈
에서는 구슬 같은 눈방울이 내 운동화가 젖도록 흘러 내렸다.
운동화 끈을 타고 쓰며든 눈물은 배꼽을 타고 올라 명치끝을 막아
내 숨을 잠시동안 멎게 했다.
나는 숨을 제 되로 쉴 수 없어서 무릎을 꺾고 그자 리에 폭삭 주저
앉고 말았다.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명치에 손을 얹고 컥컥 비음만
뱉어내었다. 한참을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이가 아빠하고 부
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집에서 언제 울었냐는 듯이 토끼
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내게 다가와 "아빠 껌"하며 껌을 내밀었다.
나는 아이가 내미는 껌을 고개를 돌려 받아 큰누이가 생질 몰래 꾸
지람 들으며 몰래준 까만 얼룩 때가 묻은 오리 털 녹색잠바 주머니에
껌을 넣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훔쳤다.
개찰구의 서 있는 후배 검표 원이 우리 부자간 이별 정도 나누지 않
았는데 성남 가실 분 없어요. 하는 외침에 아 아이는 "아빠 가끼요"하
며 내가든 가방을 낚아채듯 받아들고 등을 보이는 아이를 돌려세워 만
원 짜리 석 장을 아이 손에 쥐어주니 아이는 "나 이 만원 나 있니더"
하며 한사코 받지 안으려 했다.
저 철없는 어린것이 아비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헤아린다는 것이
내 명치끝은 더 눌렀다. 아이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돈을 아이의 윗
도리 주머니에 둘둘 말은 찔러 주며 "성남 가거든 막내고모 집에도 자
주 가고 열심히 해래이"하고 당부하니 아이는 "예 걱정하지 마시소"
하며 밝고 씩씩한 목소리 대답했다. 개찰구로 가려는 아이를 내 품에
꼭 안고 부자간의 천륜의 정을 잠깐 이나마 나눌 수 있었다.
-27-
개찰구를 빠져나간 아이는 아비의 섭섭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피 워 물고 성남행 버스로 힘차게 올라갔다.
아이가 올해 초부터 7-8차례를 가출하면서 내 속을 무던히도 태웠
다. 때론 나를 절망으로 몰아 부치기도 했고 천륜의 정마저도 피멍
들게 했으며 아내를 끌어안고 농약을 부어놓고 아내한테 먼저 먹이고
나 또한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 하게 했었다.
아내는 코를 찌르는 농약 냄새 때문에 한사코 농약을 먹지 않으려는
발버둥 을 쳤다. 발버둥치는 아내의 입을 내 억센 손아귀고 벌리고 강
제로 아내의 입에 부으려 하니 아내는 발악을 하며 농약 부은 사발을
뿌리 쳤다. 가출한 아이는 전쟁 고아 몰골로 새우처럼 몸을 접고 잠자
던 시외터미 널 긴 나무의자가 내 걸음을 한동안 묶으며 몇 달 전에
처절했던 악몽 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막노동 일을 다니면서 한시간 빨리 일어나 희미한 오토바이 라
이트 빛을 앞세우고 아이를 찾으려고 아이가 자고 있을 만한 곳을 찾
아 다녀다. 일을 마친 후에는 경주시내 있는 피시방. 오락실. 만화가
게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 잡듯 찾아다니기를 헤아릴 수 없다.
아이를 찾으면 모욕도 함께 하고 밥도 싸 먹이며 때론 타이르고 때
론 매로 다스려 집에 데려다 놓으면 아이는 일주일도 집에 있지 못하
고 가출했다. 그 철없던 아이가 저 딱딱 의자에서 추위를 견디며 거
지의 몰골로 새우잠을 잤었다.
한번은 새우잠을 자는 아이를 잡아 신발을 벗 끼고 양손을 고무밧줄
로 묶고 오토바이 뒤에 묶고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차를 타고 지나
가던 사람의 만류에도 나는 오토바이를 세우지 않고 아이를 계속 뛰게
했다. 아이가 맨발로 뛰다가 지쳐 숨을 몰아 쉬며 나뒹굴어도 나는 오
토바이에서 허연 연기가 나도록 아이를 개처럼 질질 끌었다.
아이의 몸무게에 오토바이가 앞으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해 오토바이
를 세우고 아이의 발을 보니 아이의 발바닥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벗
겨 졌다. 아이의 발바닥에서는 검붉은 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발바닥이 피범벅이 된 아이를 태우고 오능 주차장 앞에서 지나가는
경찰 차를 만났다. 고속도로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있는데 경찰 차
가 내 오토바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마 차 타고 가던 사람의 신고 받
고 온 것 같았다.
-29-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두고 경찰 차 타고 황남 파출소에 가서 조사
를 받았다.
아이가 하도 가출해 아이를 길들이기 위해서 였다고 설명을 했다.
경찰은 아무리 아이가 가출해도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 다며 내 주민
등록증을 내 놓으라고 했다.
내 주민등록 받아든 경찰은 내 인적사항을 적고 주민등록증을 서랍
에 넣고 아이의 발을 본 경찰은 치료 시켜야 한다며 우리 부자를 한성
병원으로 태워 다 주었다.
한성병원 의사는 거지꼴의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파출소에서
처럼 입 과 코를 막고 엉덩이를 쭉 뒤로 빼고는 팔을 쭉 뻗어 소독약
을 대충 발라주고 아이를 빨리 데리고 가라고 팔을 저으며 짜증스럽게
성화를 부렸다.
100원어치도 안 되는 소독약을 바르고 거금 3만원을 달라니 도적놈
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비를 주고 나니 내 지갑엔 천 원 짜리 두 장밖에 남지 않았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 업고 2키로나 되는 황 남 파출소 쪽으로 걸어오
고 있는데 택시운전 하는 얘들 큰외삼촌이 아이 업고 가다 힘들어 쉬
고 있는 우리 부자를 보고 택시를 천천히 지나가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발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는 중이라 얘기하고 아이가 걷지를
못하니 황남 파출소까지만 좀 태워달라고 사정을 해도 애들 외삼촌은
바쁘다며 우리부자를 왜면 하고 그냥 가 버렸다.
황남 파출소에서 이상한 글에 사인을 하고 주민등록을 달라고 하니
어디론가 연락을 하더니 주민등록증은 놔두고 가라고 했다.
아이는 그런 곤 역을 치르고도 발이 다 아물지도 않고 또 가출을 했
었다.
한달 동안 내가 노동해서 겨우 벌어 쌀을 사려고 했던 돈을 내가 잠
든 사이에 지갑 통 체로 들고 가는 가출을 반복해 나를 절망에 빠트렸
다.
또래아이와 남의 집에 들어가 돼지 저금통까지 훔쳐 경찰관의 의해
집으로 돌아 왔다.
-30-
아이가 되지 저금통 훔친 집으로 찾아가 아이와 함께 꿇어앉아 아비
인 제가 잘못 가르쳐 다고 내 나이와 비슷한 젊은 사람 앞에 무릎 꿇
고 머리를 조아리며 몇 시간이나 빌고 빌어 섰다.
너무 무릎을 오래 꿇고 앉아 있어서 일어나다가 넘어 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아이는 느낀 점이 있었는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되
었고 가출도 하지 않았다.
바로 몇 달 전 일이다.
아비의 가슴을 무던히 아프게 했던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긴 나
무 의자가 내 갈길 을 잠시 멎게 했다.
대합실을 빠져 나와 푸른 신호등이 켜진 십 미터는 족히 넘을 길 건
너 아이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이가 버스 안에서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아이를 보고 손을 흔들려 하는데 적색 신호에 멈출 것 같은 버스
는 신호 위반하여 내 아이와 승객 셋 사람을 태우고 매정하게 내 시야
에서 사라져갔다.
나는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뀌도록 아이가 타고 간 길을 멍하게 바라보
다가 담배 하나 피워 물고 비린내나는 내 삶의 무게에 못 이겨 차갑고
가파른 형산강 시멘트 뚝 에 앉아 김유신 장군 무덤을 바라보며 잘못
살아온 내 인생을 탄식하며 정신 놓고 울고 있는데 길가는 노인이 "젊
은 사람이 와 벌건 대낮에 그래 우노" 하 시며 지나 가셨다.
나는 정신이 들어 폭 수처럼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훌 터 내고
애기청수 깊은 물에 내 여린 마음을 떠내려보내고 양복점 친구 집으로
발걸음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