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문득 내 나이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과거를 가만히 회상해 본다. 때로는 정말 미칠듯이 사랑도 했으며 때로는 베낭하나 울러 메고 전국 팔도를 좁다는 듯이 헤메고 다니기도 했지만 지금에 나는 떡장수로 살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잊혀져 가는 지난 삶에 대한 회상이나 문득 bar에 앉아 마시는 몇잔의 술속에 녹아나는 그리운 이가 있을 것이다. 얼마전 자주 들르는 술집에 앉아 위스키 몇잔을 털어 넣으며 첫사랑을 이야기 하다 문득 잊혀졌던 어느 여인의 이름이 생각이 났다. 정말 까맣게 잊고 지내왔던 이름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기에 술마시던 와중에 PDA메모창에 "최혜경" 이라는 세자를 적어 넣었다. 경춘선 열차안에서 우연히 마추친 것이 마지막 만남이던가?... 기억마져 가물거리던 그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고 먼 옛날 여행하던 그곳이 기억이 날때 나는 내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행여 앞으로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같은 심정으로 과거를 추억해 보기 바란다. 그냥 잊고 살기에는 지나온 삶의 한 부분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몇년도인지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군시절...눈이 오늘처럼 많이 내리던 어느날.. 그 눈속에 외출이라고 춘천으로 나와 전화박스에서 집에 전화를 하려고 기다리다 우연히 만난 벙거지 모자의 그녀.. 전화를 오래 쓰기에 짧게 좀 하자고 하다가 커피까지 마시게 되었던 그녀... 벙거지모양의 가죽 모자가 유난히도 잘 어울렸고 입술의 빨간 립스틱 색깔이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던 그 사람은 그렇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주소 하나 달랑 받아 가지고 복귀한 부대에서 나는 그날 바로 편지를 썼다. 몇일 후 주말.. 오라는 답장은 올 생각도 않고 추운 화천의 겨울은 더 깊어만 가는데 부대 스케이트 장에서 훈련중에 누군가 면회를 왔다는 전령의 말에 면회올 사람이 없음에 장난 말라며 웃었는데 오라는 편지는 아니오고 그녀가 직접 나에게 면회를 온것이다. 역시나 모양이 약간 다른 벙거지 모자를 쓰고.... 그 후 그녀는 줄없는 하얀 백지에 꼭꼭 눌러 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안부로 시작한 편지는 아지랑이 피는 봄과 함께 사랑의 편지로 발전을 했다. 제대 8개월을 남기고 나간 휴가에서 난 그녀에게 모자를 그만 쓸것을 부탁했고 그녀는 나에게 모자를 벗어 보여 주었다. 머리카락 하나 없이 살만 있는 머리에 귀뒤부터 주변만 나있는 머리카락.... 나는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술한잔 하지 못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술을 마시며 그녀의 지난 아픈삶을 가슴으로 들어야 했고 나보다 나이도 3살이 많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수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가본 그녀의 집에는 그녀의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었으며 술취한 내 눈에는 온통 모자와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만이 그녀 방에 가득했다. 그녀는 뇌수막종인가 하는 병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당시에도 병원을 다니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수술부위에 머리가 안나는 까닭도 그 방사선 치료 탓이며 아이도 가질수 없다고 했다. 당시 나는 다 이해할수 있다고 그녀를 안아 줬으며 그녀는 내 품에서 울었었다. 그렇게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하기 전까지 춘천에서 원룸을 얻어 알바를 하며 학비를 벌고 시간이 나면 그녀를 만나는 일에 몰두를 했다. 그러다 나는 서울로 가야 했으며 서울로 올라 오면서 그녀와의 연락도 본의 아니게 한 3개월 정도 끊어지고 말았는데 고향 집에서 언락이 왔다. 내려와 보라고... 내려가 본 고향집에는 그녀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 있었다. 나를 본 아버지는 대뜸 고민하지 말라며 아이가 없으면 어떠냐고 당신은 다 이해할수 있다라고 하신다.. 나는 뭔소리냐고 했고 어머니는 몇일전 다녀간 그녀의 이야기를 소상히 하시며 처자가 참 고운데 어쩔 참이냐고...우리가 품자고 하신다. 참으로 긴 고민을 했고 고민끝에 춘천을 찾았다. 그녀를 만난 나는 모질게도 나는 아직 학생이며 장래도 불투명하며.....등등 이런 저런 야비한 이유를 대며 그녀의 생각속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머리속에는 항상 써야 하는 모자와 나중에 있어야할 내 아이의 웃음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이야기를 차마 할수가 없어 마지막 웃음조차 보이지 못하고 등을 보여야 했다. 등을 돌리고 나오는 나는 울고 있었으며 그렇게 서울로 올라 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잊혀 졌으면 차라리 좋았으련만.... 몇년 후 무슨일이 있어서인가 나는 춘천에 볼일이 있어 갔었고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그것도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그녀를 보아야 했다. 약간은 초췌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내가 앉아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는데 내 가슴에는 돌덩이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고 얼굴만 붉게 달아 올랐다. 잘 지내요?..라는 존칭의 물음에 나는 어찌 지내냐고 물어야 했고 춘천 외각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둘이 있는 사별한 분과..... 나는 더이상 서울로 올라 갈수가, 아니 그 자리에 차마 앉아 있을수가 없어 슬그머니 일어나 가평역에서 혼자 내려야 했다. 떠나가는 기차 뒷꽁무니를 보며 정말 나는 아무 생각도 할수가 없었고 그날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리고 나는 잊으려고 노력을 했고 또 시간이 흐름으로 해서 잊혀져 갔다. 술을 마시면 언듯 언듯 떠오르는 환영에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그렇게 잊어 갔는데 몇일전 갑자기 떠오른 그녀의 이름 세자가 요즘 내 머리속을 채우고 있다. 흘러간 시간을 돌릴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지금 찾아가 볼 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머리속에 채워진 그 이름과 그 사연을 지울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그런 연유로 나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내 가슴에 남긴다.. 욕들 하시라.....나쁜 시키라고....
나이 서른아홉에 떠오르는 추억....
정말 문득 내 나이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과거를 가만히 회상해 본다.
때로는 정말 미칠듯이 사랑도 했으며 때로는 베낭하나 울러 메고 전국 팔도를
좁다는 듯이 헤메고 다니기도 했지만 지금에 나는 떡장수로 살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잊혀져 가는 지난 삶에 대한 회상이나 문득 bar에 앉아
마시는 몇잔의 술속에 녹아나는 그리운 이가 있을 것이다.
얼마전 자주 들르는 술집에 앉아 위스키 몇잔을 털어 넣으며 첫사랑을 이야기
하다 문득 잊혀졌던 어느 여인의 이름이 생각이 났다.
정말 까맣게 잊고 지내왔던 이름인데 갑자기 생각이 나기에 술마시던 와중에
PDA메모창에 "최혜경" 이라는 세자를 적어 넣었다.
경춘선 열차안에서 우연히 마추친 것이 마지막 만남이던가?...
기억마져 가물거리던 그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나고 먼 옛날 여행하던
그곳이 기억이 날때 나는 내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행여 앞으로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같은 심정으로 과거를 추억해 보기 바란다.
그냥 잊고 살기에는 지나온 삶의 한 부분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몇년도인지도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군시절...눈이 오늘처럼 많이 내리던 어느날..
그 눈속에 외출이라고 춘천으로 나와 전화박스에서 집에 전화를 하려고 기다리다
우연히 만난 벙거지 모자의 그녀..
전화를 오래 쓰기에 짧게 좀 하자고 하다가 커피까지 마시게 되었던 그녀...
벙거지모양의 가죽 모자가 유난히도 잘 어울렸고 입술의 빨간 립스틱 색깔이 유난히도
도드라져 보였던 그 사람은 그렇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주소 하나 달랑 받아 가지고 복귀한 부대에서 나는 그날 바로 편지를 썼다.
몇일 후 주말..
오라는 답장은 올 생각도 않고 추운 화천의 겨울은 더 깊어만 가는데 부대 스케이트
장에서 훈련중에 누군가 면회를 왔다는 전령의 말에 면회올 사람이 없음에 장난 말라며
웃었는데 오라는 편지는 아니오고 그녀가 직접 나에게 면회를 온것이다.
역시나 모양이 약간 다른 벙거지 모자를 쓰고....
그 후 그녀는 줄없는 하얀 백지에 꼭꼭 눌러 쓴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안부로 시작한
편지는 아지랑이 피는 봄과 함께 사랑의 편지로 발전을 했다.
제대 8개월을 남기고 나간 휴가에서 난 그녀에게 모자를 그만 쓸것을 부탁했고 그녀는
나에게 모자를 벗어 보여 주었다.
머리카락 하나 없이 살만 있는 머리에 귀뒤부터 주변만 나있는 머리카락....
나는 정말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술한잔 하지 못하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술을 마시며 그녀의 지난 아픈삶을 가슴으로
들어야 했고 나보다 나이도 3살이 많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수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가본 그녀의 집에는 그녀의 아빠와 단 둘이 살고 있었으며 술취한
내 눈에는 온통 모자와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만이 그녀 방에 가득했다.
그녀는 뇌수막종인가 하는 병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당시에도 병원을 다니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수술부위에 머리가 안나는 까닭도 그 방사선 치료 탓이며 아이도 가질수 없다고 했다.
당시 나는 다 이해할수 있다고 그녀를 안아 줬으며 그녀는 내 품에서 울었었다.
그렇게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하기 전까지 춘천에서 원룸을 얻어 알바를 하며 학비를
벌고 시간이 나면 그녀를 만나는 일에 몰두를 했다.
그러다 나는 서울로 가야 했으며 서울로 올라 오면서 그녀와의 연락도 본의 아니게
한 3개월 정도 끊어지고 말았는데 고향 집에서 언락이 왔다.
내려와 보라고...
내려가 본 고향집에는 그녀의 흔적이 여기 저기에 남아 있었다.
나를 본 아버지는 대뜸 고민하지 말라며 아이가 없으면 어떠냐고 당신은 다 이해할수
있다라고 하신다..
나는 뭔소리냐고 했고 어머니는 몇일전 다녀간 그녀의 이야기를 소상히 하시며
처자가 참 고운데 어쩔 참이냐고...우리가 품자고 하신다.
참으로 긴 고민을 했고 고민끝에 춘천을 찾았다.
그녀를 만난 나는 모질게도 나는 아직 학생이며 장래도 불투명하며.....등등
이런 저런 야비한 이유를 대며 그녀의 생각속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머리속에는 항상 써야 하는 모자와 나중에 있어야할 내 아이의 웃음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이야기를 차마 할수가 없어 마지막 웃음조차 보이지 못하고 등을 보여야 했다.
등을 돌리고 나오는 나는 울고 있었으며 그렇게 서울로 올라 오고야 말았다.
그렇게 잊혀 졌으면 차라리 좋았으련만....
몇년 후 무슨일이 있어서인가 나는 춘천에 볼일이 있어 갔었고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안에서 그것도 바로 내 앞자리에 앉은 그녀를 보아야 했다.
약간은 초췌해 보이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내가 앉아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목례를 하는데 내 가슴에는 돌덩이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고 얼굴만 붉게 달아 올랐다.
잘 지내요?..라는 존칭의 물음에 나는 어찌 지내냐고 물어야 했고 춘천 외각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분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이가 둘이 있는 사별한 분과.....
나는 더이상 서울로 올라 갈수가, 아니 그 자리에 차마 앉아 있을수가 없어 슬그머니
일어나 가평역에서 혼자 내려야 했다.
떠나가는 기차 뒷꽁무니를 보며 정말 나는 아무 생각도 할수가 없었고 그날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리고 나는 잊으려고 노력을 했고 또 시간이 흐름으로 해서 잊혀져 갔다.
술을 마시면 언듯 언듯 떠오르는 환영에 힘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그렇게 잊어 갔는데
몇일전 갑자기 떠오른 그녀의 이름 세자가 요즘 내 머리속을 채우고 있다.
흘러간 시간을 돌릴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지금 찾아가 볼 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머리속에 채워진 그 이름과 그 사연을 지울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그런 연유로 나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내 가슴에 남긴다..
욕들 하시라.....나쁜 시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