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림은 소파에 그에게 거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찍 들어오셨네요." 그녀가 집을 나가고 나서 처음으로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김기사를 닦달해 집으로 돌아왔다. "자." 태림은 세준이 내민 검은 봉투을 받아 들었다. 태림은 책 위로 내밀어진 검은 봉투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예요?" "과일." 태림은 봉투 안을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안 먹어?" "왜 갑자기 나에게 신경을 쓰는 거죠. 아이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걱정 할 것 없어요. 언제나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했어요." 세준은 차가워진 태림이 안쓰러워 손을 내밀었지만 태림은 그의 손길을 피했다. "날 그냥 내버려둬요." 태림은 갑작스런 세준의 변화보다는 미순이 당한 일이 생각이나 남자의 손길이 아직은 무서웠다. 병원에서도 만약 엄마나 태림을 살려준 윤수와 엄마가 없었더라면 의사의 손길조차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세준은 자신의 손길이 닫지도 않았는데 몸을 사리고 놀라는 태림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주먹을 꾹 쥔 채로 참았다. "방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아주머니는 세준이 들어오자 마자 그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간 걸 확인하고 나서 태림이 밥 먹는 시간말고는 나오지 않는 다는 것과 잘 먹지 않는 다는 걸 걱정스러운 어조로 알려주었다. "여기에 필요한 게 다 있어요." "좀 나가봐. 집 밖에 나가고 싶지 않으면 정원이라도 둘러보고, 나하고 같이 바깥 구경나가지 않을래?" 태림은 그의 제안이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준은 태림의 상처 입은 눈에서 모든 아픔을 지워주고 싶었다. "아직은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들의 대화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세준은 그 날은 아예 점심 시간이 지나자 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이른 귀가에 그의 어머니는 거의 거품을 물 정도였고, 아주머니는 귀가 입에까지 걸릴 정도였지만 태림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과일을 사오는 걸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사온걸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가 직접 깎아 오기 시작하자 태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먹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어?" 태림은 책을 정리하는 지 상자에 책을 담고 있었다. 어쩐지 책상이 너무 허전해 보여 세준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태림이 하는 걸 잠자코 보고 있었다. "필요 없어서 버리려고요." "검정고시 본다면서 책을 버리면 어떻게 봐?" 태림은 그의 얼굴을 바라볼 시도도 하지 않고 계속 책을 정리해나갔다. "노트 정리되어 있어서 괜찮아요." "좀 도와줄까?" "아니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세준은 태림이 정리하는 걸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가 무거운 상자를 들려고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런 건 내가 들게." 태림은 그것만을 말리지 않았지만 손끝이 세준의 손이 닿자 얼른 손을 뒤로 뺐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부모님하고 좀더 잘 지내려고 노력해봐." 세준은 상자를 밖에 내놓고 들어오면서도 태림에게 줄 우유를 잊지 않고 아주머니에게 받아왔다. "..." 태림은 그저 말없이 두 번째 상자를 정리했다.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지낼 수는 없잖아." "곧 달라지겠죠." 세준은 그 뜻을 잘 못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큰 실수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태림은 미순 언니네 가족이 어디에 있는 지 엄마의 연락을 받았고, 다시 집을 떠나기 위해 모든 걸 정리했다. 아웃사이더는 자신만으로도 족했다. 아이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원하지 않는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자신의 경험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와 같이 서울을 떠나 미순 언니의 가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을 엄마와 짰다. 엄마 역시 이번에는 용기를 냈어 태림의 의견에 동참했고, 스스로 움직였다. 그 날은 무슨 일로 태림의 분위기가 많이 풀려 있었다. 항상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늘만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더 부드러워 보였다. "장모님 우리가 모시고 살까?" 태림은 이외의 말에 세준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신경 쓰실 것 없어요." 세준은 태림의 차가움에 점점 힘들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도 처음에 이렇게 힘들었을까? 무신경한 그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나 목욕 좀 하고 올게." 세준은 괜히 불편해 핑계를 댄 것이 목욕이었고, 그래서 인지 갈아입을 옷가지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탕 속에 들어가서야 기억해 냈다. "태림아!" "네." "나 옷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 태림이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 지금 탕 속에 있어." "잠깐만 기다리세요." 태림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세준의 옷가지를 챙겨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세준의 알몸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세준이 들어가 있는 물이 가득한 욕탕은 태림이 당했던 숨이 끊어 질 듯한 고문을 떠오르게 했고, 그 자리에서 태림을 단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태림아!" 세준은 자신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태림이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태림의 몸이 흔들리자 물을 뚝뚝 떨어트린 채로 욕실 밖으로 나와 태림의 어깨를 잡았다. "아악." 태림을 물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던 남자들의 손길이 떠올랐고, 그 기억은 즉시 물 속에서의 숨막힘을 떠오르게 했다. 태림의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에 세준은 태림이 무엇을 기억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윤수는 태림이 무슨 고문을 당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태림이 물을 보고 일으키는 반응은 그녀가 물 고문을 당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태림에게 고통을 준 그 모든 사람을 다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우선은 두려움에 질린 태림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태림은 세준의 손길에 거칠게 반항했고, 세준은 태림이 미끄러질까 봐 손을 놓지 못했고, 급기야는 태림을 잡은 채로 탕으로 빠지고 말았다. "살려줘. 싫어." "태림아! 진정해 내가 있잖아 다시는, 다시는 물에 빠지는 일 없을 거야." 세준은 몸부림치는 태림을 꼭 끓어 않았다. 그래도 태림이 진정이 되지 않자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에 태림의 환각에서 빠져나왔고, 그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그의 입술에 매달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곧 그를 떠나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만, 단 하루만 그의 품안에 안겨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었다. 잠시 미순의 처참하게 당하던 순간이 떠올라 그녀를 힘들게 했지만 태림은 세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그들이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세준은 젖어 버려 벗기기 힘들었지만 태림의 옷을 천천히 벗겨나갔다. 아이를 가져서 인지 태림의 가슴은 그가 기억했던 것 보다 더 풍만해져 있었다. 세준은 떨리는 손으로 태림의 얼굴과 목 어깨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태림은 그런 그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그의 강인한 목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가 싫어하진 않을까?" "잘은 몰라요.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세준은 조금 부풀어 오른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배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었다. "남자아이일까?" "오빠는 남자아이를 원하나요?" "아니. 건강하기만 하다면 상관하지 않아." 태림은 그에게 미안했다. 그는 절대 이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없을 거였다. 태림이 다시 그의 곁에서 떠날 거였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미안함과 그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을 담아 처음으로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추었고, 세준은 태림의 적극적인 행동에 놀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을 받아 들였다. 세준은 태림이 미순의 일을 잃어버리기를 바랬다. 그와의 사랑으로 태림이 그동안 겪었던 나쁜 일들을 잃어버리길 바랬다. 그녀의 가슴은 예전보다 더 예민해져 있어 그의 작은 입 놀림에도 몸이 들썩였고, 그녀의 몸부림에 욕조에 있는 물도 같이 출렁거렸다. 세준은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태림의 몸을 수건으로 감싼 다음 침대로 향했다. 그녀는 세준이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에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의 목을 감은 손을 풀지 않았다. 세준 역시 태림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녀를 안은 채로 겨우 수건을 그녀의 몸에서 치웠다. "어!..." "긴장하지마." 세준은 태림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가 주는 쾌락에 빠져들기 바랬다. 태림은 그의 얼굴이 가슴을 떠나 점점 아래로 내려가 급기야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그가 얼굴을 묻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그의 손길에 다시 눕고 말았고, 고스란히 그의 손과 입, 혀의 놀림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긴장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태림은 점점 그녀의 돌기를 자극하는 그의 입술과 혀에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고,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태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이 느끼는 데로 손길이 가는 데로 움직여 그의 머리를 붙잡아 키스를 원했고, 세준은 태림의 소원대로 그녀의 입술을 차지했고,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녀의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의 모든 걸 그녀에게 주었다.
세준은 항상 태림을 안으면 자제력을 금세 잃어버리고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번엔 아이 때문인지 최대한 자제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식은땀까지 흘리며 태림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태림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미순 언니에 대한 기억도 잊어버릴 수 있어 태림은 그의 손과 입이 주는 감각에 모든 걸 맡겼다.
세준은 밝은 햇살에 이끌려 눈을 떴고 그녀가 곁에 없을 때처럼 그녀를 찾아 손을 내밀어 침대를 더듬었고, 오늘도 여지없이 그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있어야 했다. 그녀와 나눈 사랑의 기억은 그녀가 그의 침대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침대에 있지 않았다. "어디 갔었어?" 태림은 이미 옷을 입고서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목이 말라서요." 태림은 침대로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컵을 상두대에 내려놓았다. "뭐야?" "주스요." 세준은 시트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지만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주스를 마셨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태림은 그의 목소리에 심통 같은 투정이 묻어 있어 놀랐다. 그의 목소리는 태림에게 집에 나가기에 그와 아침에 침대에서 나누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세준은 붉어진 그녀의 얼굴의 의미를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뭐...해요?" 세준은 주스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당겨 얼굴을 그녀의 가슴 골짜기에 묻고 그녀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키스해 줘." 어제처럼 세준은 태림이 해주는 키스가 그렇듯 묘하면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자신에게서 끌어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태림은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남편이었고, 이제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는 걸 다 해주어도 아무것도 손해볼 것이 없었다. 그녀의 다칠 마음만 빼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시부모님의 태도도 처음과는 다르게 많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아이가 있어서 인지 그들은 태림을 위해 비싼 과일들만 골라 사오셨고, 구하기 힘들다는 아기 용품을 하나씩 사들이는 것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벌써부터 일층에 육아 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것도 늦은 거야. 내 친구 네는 애가 생긴 거 알자 마자. 육아 실을 만들었어." 태림은 가끔은 소녀 같은 시어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는 걸요." "뭐 어때 두 개 다 사다놓고 아니면 다음 번을 기다리던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 주면 되지 않겠니." 시어머니는 바쁘게 움직였지만 태림이가 일하는 건 참지 못했다. 완전히 세준과 똑같았다. "넌 일하지마라. 그냥 쉬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말만해." "그런데 아기 방이 일층에 있으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은데요." "걱정하지마라니까. 내가 있잖아 어떻게 하루종일 애를 보려고 그래. 나도 있는데, 아이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시부모님의 관심과 세준의 관심이 떠나려는 태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아버지가 나중에 무엇을 더 원할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태림은 마음을 바꿀 수가 없었다.
애 련{스무번째}
오늘도 제 글에 푹 빠져보세요.^o^
애련의 뜻은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저의 글의 애련의 뜻은 그리운 사랑이랍니다.
여러분 오늘도 웃어봐요.
제가 대학 시절에 있었던 내용인데요.
월요일은 원래 웃는 날이고. 화요일은 화통하게 웃는 날,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는날(?). 목요일은 목청 터져라 웃는 날이고,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는 날. 토요일은 토실토실 웃는 날(?) 일요일은 일없이 웃는 날.
다 맞나 모르겠네요. 사설이 넘 길었죠. 그래도 여러분 우리 오늘도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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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림은 소파에 그에게 거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찍 들어오셨네요."
그녀가 집을 나가고 나서 처음으로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김기사를 닦달해 집으로 돌아왔다.
"자."
태림은 세준이 내민 검은 봉투을 받아 들었다. 태림은 책 위로 내밀어진 검은 봉투와 그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예요?"
"과일."
태림은 봉투 안을 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안 먹어?"
"왜 갑자기 나에게 신경을 쓰는 거죠. 아이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걱정 할 것 없어요. 언제나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했어요."
세준은 차가워진 태림이 안쓰러워 손을 내밀었지만 태림은 그의 손길을 피했다.
"날 그냥 내버려둬요."
태림은 갑작스런 세준의 변화보다는 미순이 당한 일이 생각이나 남자의 손길이 아직은 무서웠다. 병원에서도 만약 엄마나 태림을 살려준 윤수와 엄마가 없었더라면 의사의 손길조차 참아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세준은 자신의 손길이 닫지도 않았는데 몸을 사리고 놀라는 태림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주먹을 꾹 쥔 채로 참았다.
"방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면서."
아주머니는 세준이 들어오자 마자 그의 어머니가 방에 들어간 걸 확인하고 나서 태림이 밥 먹는 시간말고는 나오지 않는 다는 것과 잘 먹지 않는 다는 걸 걱정스러운 어조로 알려주었다.
"여기에 필요한 게 다 있어요."
"좀 나가봐. 집 밖에 나가고 싶지 않으면 정원이라도 둘러보고, 나하고 같이 바깥 구경나가지 않을래?"
태림은 그의 제안이 좋은 의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준은 태림의 상처 입은 눈에서 모든 아픔을 지워주고 싶었다.
"아직은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들의 대화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세준은 그 날은 아예 점심 시간이 지나자 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이른 귀가에 그의 어머니는 거의 거품을 물 정도였고, 아주머니는 귀가 입에까지 걸릴 정도였지만 태림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역시 과일을 사오는 걸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사온걸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가 직접 깎아 오기 시작하자 태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먹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어?"
태림은 책을 정리하는 지 상자에 책을 담고 있었다. 어쩐지 책상이 너무 허전해 보여 세준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태림이 하는 걸 잠자코 보고 있었다.
"필요 없어서 버리려고요."
"검정고시 본다면서 책을 버리면 어떻게 봐?"
태림은 그의 얼굴을 바라볼 시도도 하지 않고 계속 책을 정리해나갔다.
"노트 정리되어 있어서 괜찮아요."
"좀 도와줄까?"
"아니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세준은 태림이 정리하는 걸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가 무거운 상자를 들려고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이런 건 내가 들게."
태림은 그것만을 말리지 않았지만 손끝이 세준의 손이 닿자 얼른 손을 뒤로 뺐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부모님하고 좀더 잘 지내려고 노력해봐."
세준은 상자를 밖에 내놓고 들어오면서도 태림에게 줄 우유를 잊지 않고 아주머니에게 받아왔다.
"..."
태림은 그저 말없이 두 번째 상자를 정리했다.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지낼 수는 없잖아."
"곧 달라지겠죠."
세준은 그 뜻을 잘 못 받아들였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또 다른 큰 실수가 되었다는 걸 그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드디어 태림은 미순 언니네 가족이 어디에 있는 지 엄마의 연락을 받았고, 다시 집을 떠나기 위해 모든 걸 정리했다.
아웃사이더는 자신만으로도 족했다. 아이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원하지 않는 아이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자신의 경험으로도 충분했다.
엄마와 같이 서울을 떠나 미순 언니의 가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을 엄마와 짰다.
엄마 역시 이번에는 용기를 냈어 태림의 의견에 동참했고, 스스로 움직였다.
그 날은 무슨 일로 태림의 분위기가 많이 풀려 있었다. 항상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늘만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 더 부드러워 보였다.
"장모님 우리가 모시고 살까?"
태림은 이외의 말에 세준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신경 쓰실 것 없어요."
세준은 태림의 차가움에 점점 힘들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도 처음에 이렇게 힘들었을까? 무신경한 그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나 목욕 좀 하고 올게."
세준은 괜히 불편해 핑계를 댄 것이 목욕이었고, 그래서 인지 갈아입을 옷가지를 잊어버렸다는 것을 탕 속에 들어가서야 기억해 냈다.
"태림아!"
"네."
"나 옷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
태림이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 지금 탕 속에 있어."
"잠깐만 기다리세요."
태림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세준의 옷가지를 챙겨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세준의 알몸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세준이 들어가 있는 물이 가득한 욕탕은 태림이 당했던 숨이 끊어 질 듯한 고문을 떠오르게 했고, 그 자리에서 태림을 단 한발작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태림아!"
세준은 자신의 부름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태림이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태림의 몸이 흔들리자 물을 뚝뚝 떨어트린 채로 욕실 밖으로 나와 태림의 어깨를 잡았다.
"아악."
태림을 물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던 남자들의 손길이 떠올랐고, 그 기억은 즉시 물 속에서의 숨막힘을 떠오르게 했다.
태림의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에 세준은 태림이 무엇을 기억해 냈는지 알 수 있었다. 윤수는 태림이 무슨 고문을 당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태림이 물을 보고 일으키는 반응은 그녀가 물 고문을 당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태림에게 고통을 준 그 모든 사람을 다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우선은 두려움에 질린 태림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태림은 세준의 손길에 거칠게 반항했고, 세준은 태림이 미끄러질까 봐 손을 놓지 못했고, 급기야는 태림을 잡은 채로 탕으로 빠지고 말았다.
"살려줘. 싫어."
"태림아! 진정해 내가 있잖아 다시는, 다시는 물에 빠지는 일 없을 거야."
세준은 몸부림치는 태림을 꼭 끓어 않았다. 그래도 태림이 진정이 되지 않자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에 태림의 환각에서 빠져나왔고, 그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그의 입술에 매달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곧 그를 떠나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만, 단 하루만 그의 품안에 안겨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었다.
잠시 미순의 처참하게 당하던 순간이 떠올라 그녀를 힘들게 했지만 태림은 세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그들이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세준은 젖어 버려 벗기기 힘들었지만 태림의 옷을 천천히 벗겨나갔다. 아이를 가져서 인지 태림의 가슴은 그가 기억했던 것 보다 더 풍만해져 있었다.
세준은 떨리는 손으로 태림의 얼굴과 목 어깨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태림은 그런 그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그의 강인한 목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가 싫어하진 않을까?"
"잘은 몰라요.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세준은 조금 부풀어 오른 자신의 아이가 들어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배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었다.
"남자아이일까?"
"오빠는 남자아이를 원하나요?"
"아니. 건강하기만 하다면 상관하지 않아."
태림은 그에게 미안했다. 그는 절대 이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없을 거였다. 태림이 다시 그의 곁에서 떠날 거였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미안함과 그에 대한 식지 않는 사랑을 담아 처음으로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추었고, 세준은 태림의 적극적인 행동에 놀랐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입술을 받아 들였다.
세준은 태림이 미순의 일을 잃어버리기를 바랬다. 그와의 사랑으로 태림이 그동안 겪었던 나쁜 일들을 잃어버리길 바랬다.
그녀의 가슴은 예전보다 더 예민해져 있어 그의 작은 입 놀림에도 몸이 들썩였고, 그녀의 몸부림에 욕조에 있는 물도 같이 출렁거렸다.
세준은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태림의 몸을 수건으로 감싼 다음 침대로 향했다.
그녀는 세준이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에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의 목을 감은 손을 풀지 않았다.
세준 역시 태림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녀를 안은 채로 겨우 수건을 그녀의 몸에서 치웠다.
"어!..."
"긴장하지마."
세준은 태림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가 주는 쾌락에 빠져들기 바랬다.
태림은 그의 얼굴이 가슴을 떠나 점점 아래로 내려가 급기야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 그가 얼굴을 묻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그의 손길에 다시 눕고 말았고, 고스란히 그의 손과 입, 혀의 놀림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긴장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태림은 점점 그녀의 돌기를 자극하는 그의 입술과 혀에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고,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태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이 느끼는 데로 손길이 가는 데로 움직여 그의 머리를 붙잡아 키스를 원했고, 세준은 태림의 소원대로 그녀의 입술을 차지했고,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녀의 모든 것을 차지했고, 그의 모든 걸 그녀에게 주었다.
세준은 항상 태림을 안으면 자제력을 금세 잃어버리고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번엔 아이 때문인지 최대한 자제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식은땀까지 흘리며 태림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태림을 황홀하게 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미순 언니에 대한 기억도 잊어버릴 수 있어 태림은 그의 손과 입이 주는 감각에 모든 걸 맡겼다.
세준은 밝은 햇살에 이끌려 눈을 떴고 그녀가 곁에 없을 때처럼 그녀를 찾아 손을 내밀어 침대를 더듬었고, 오늘도 여지없이 그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있어야 했다. 그녀와 나눈 사랑의 기억은 그녀가 그의 침대에 있어야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침대에 있지 않았다.
"어디 갔었어?"
태림은 이미 옷을 입고서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목이 말라서요."
태림은 침대로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컵을 상두대에 내려놓았다.
"뭐야?"
"주스요."
세준은 시트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지만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주스를 마셨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태림은 그의 목소리에 심통 같은 투정이 묻어 있어 놀랐다. 그의 목소리는 태림에게 집에 나가기에 그와 아침에 침대에서 나누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세준은 붉어진 그녀의 얼굴의 의미를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뭐...해요?"
세준은 주스잔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다른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아 당겨 얼굴을 그녀의 가슴 골짜기에 묻고 그녀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키스해 줘."
어제처럼
세준은 태림이 해주는 키스가 그렇듯 묘하면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자신에게서 끌어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태림은 못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남편이었고, 이제 어쩌면 영원히 보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는 걸 다 해주어도 아무것도 손해볼 것이 없었다.
그녀의 다칠 마음만 빼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시부모님의 태도도 처음과는 다르게 많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아이가 있어서 인지 그들은 태림을 위해 비싼 과일들만 골라 사오셨고, 구하기 힘들다는 아기 용품을 하나씩 사들이는 것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벌써부터 일층에 육아 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것도 늦은 거야. 내 친구 네는 애가 생긴 거 알자 마자. 육아 실을 만들었어."
태림은 가끔은 소녀 같은 시어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는 걸요."
"뭐 어때 두 개 다 사다놓고 아니면 다음 번을 기다리던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사람 주면 되지 않겠니."
시어머니는 바쁘게 움직였지만 태림이가 일하는 건 참지 못했다. 완전히 세준과 똑같았다.
"넌 일하지마라. 그냥 쉬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말만해."
"그런데 아기 방이 일층에 있으면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은데요."
"걱정하지마라니까. 내가 있잖아 어떻게 하루종일 애를 보려고 그래. 나도 있는데, 아이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시부모님의 관심과 세준의 관심이 떠나려는 태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아버지가 나중에 무엇을 더 원할지,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태림은 마음을 바꿀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