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과 사람들 장사꾼들이 엉켜 있는 포장이 되지 않은 거리에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다른 여자들은 세준에게 호감의 눈길을 보냈고 자신들과 다르게 고급 양복을 입고 길을 활보하는 세준을 남자들은 호감과 거리가 먼 눈빛을 보냈지만, 세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태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윤수는 태림이 미순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던 일을 말해 주었고, 세준 역시 태림의 심성으로 분명 미순의 가족을 도왔을 거라는 생각에 미순의 가족을 추적했지만 그들은 누군가 그대로 가지고 간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고, 세준은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드디어 태림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오늘도 일이 많았지만, 집을 나오면서 가지고 나온 세준의 사진이 들어 있는 그가 준 지갑을 들여다 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태림은 힘들었지만 광주로 내려와 미숙 언니네 식구들과 함께 여관과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관과 식당이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 구했지만 가끔은 그 일손도 부족했기 때문에 때때로 태림도 객실 청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소 좀 하겠습니다.”
“하~암. 음 그라쇼.”
103호 손님은 언제나 같은 차림의 파란색 츄리링을 입고 방안에서 이상스러운 잡지나 만화를 보면서 있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들도 꺼려하는 방이었다.
역시나 꼬질 꼬질 한 모습을 한 남자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보기 민망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만화책을 능글맞은 미소를 띄우며 보고 있었다.
“잠시 나가 주시면 안될까요?”
남자의 눈이 번뜩 이었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방바닥에 눈길을 띄지 않았던 태림은 그걸 미쳐 보지 못했다.
“그냥 치 것이제. 나가라 마라 하는구먼, 아이고 어쩔 수 없제이.”
남자는 굼뜬 동작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방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남자는 나가는 척 문고리를 잠시 잡았을 뿐 방문을 잠가 버리고 놀라 얼굴을 든 태림을 만화 속의 음탕한 남녀를 보듯이 바라보더니 그녀와의 간격을 점점 좁혀 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소리 지르겠어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강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남자는 잠시 발을 주춤거렸지만 다시 이상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태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으로는 자신의 부풀어 오른 물건을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난 분명히 멈추라고 경고했어요.”
“헤헤. 싫다면 어쩔 건데.”
그녀는 그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 항복할 의사로 비추어 졌는지 남자는 더더욱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태림은 그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한치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방 빗자루를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여 더 이상 부풀어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그의 물건을 단 한번의 지체 없이 팔을 돌려 아래서 위로 걷어 올렸고, 남자는 다른 매질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온 방을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남자의 목소리는 정말 고통스럽게 들렸지만 태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나왔다. 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가지려는 남자에게 그 정도의 벌은 작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여관 손님들과 식당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식구들까지 몽땅 여관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고, 태림은 일이 조용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끙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애기 사장. 이것이 뭔 소리당가?”
다른 객실을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손에 쥔 채로 태림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림아 괜찮니? 무슨 일이야?”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까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게 저.....”
태림이 주저하고 있을 때 103호 남자는 이때다 싶었는지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방에서 엉거주춤 걸어 나와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아니에요. 저 남자가 먼저....”
“퍽.”
103호 남자가 갑자기 땅으로 널브러지자 사람들의 시선은 한방에 사내를 바닥에 뻗게 만든 남자에게로 시선이 향했고, 태림은 남자의 얼굴을 보자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어....떻게... 여길 알고.......”
“나중에 이야기해. 저놈 먼저 죽여 놓고.”
세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103호 남자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세준을 피해 사람들 뒤로 피해 다녔지만 사람들은 살기 어린 세준의 눈빛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피하느라 103호 남자를 피했다.
“오메. 뭔일이당가. 저리로 가쇼오.”
103호 남자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태림의 뒤로 와서 숨었고, 태림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기까지 이르렀다.
“야. 너 어딜 만져. 빨리 손 내려놓지 못해.”
세준은 태림의 팔을 꼭 잡고 있는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그녀가 다칠세라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경찰을 불러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남자한테서 멀어지게 해주세요.”
103호 남자의 애원에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임에도 키득 거리 시작했고, 마침 경찰들이 들어와 남자를 연행해 갔다.
“조서를 써주셔야 되겠는데요. 우선 신분을 좀...”
경찰들도 세준에게 위압감을 느꼈는지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세준이 내민 명함을 보더니 언제든지 편할 때 오라는 인사까지 남기고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장모님 그동안 별거 없으셨습니까?”
“응... 그럼. 정서방 자네도 잘 지냈지.”
엄마는 태림의 눈치를 보느라 세준의 인사를 불편하게 받았다.
사람들은 세준이 태림의 엄마에게 하는 호칭과 엄마가 세준에게 하는 호칭에 술렁거렸고, 새로운 볼거리에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 그럼 애기 사장이 결혼한 상태라는 거네.”
“그러게. 이일을 어쩌나. 쌀집 사장이 애기 사장 자기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다면서.”
“그 뿐이야. 사진기사 장군도 애기 사장한테 반해 가지고 거의 매일 밥 먹으로 식당에 오잖아.”
세준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들었고, 누군가 태림을 마음에 담았다는 사실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잠깐 나가서 태림이 와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엄만 아버지의 모습이 세준의 위로 겹쳤는지 몸을 떨었다.
“태림이가 좋다고 해야지.”
“나갔다가 올게요. 걱정하실 것 없어요. 엄마.”
세준은 자신을 마치 불한당 취급하는 태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명하게도 속에 있는 말을 내 뱉지는 않았다.
태림이 세준을 데리고 간 곳은 음악 홀이었고, 머리를 긴 촌스러운 DJ가 머리를 넘기면서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커피 두 잔 주세요.”
“전 우유주세요.”
“아직도 우유 좋아하는 구나.”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커피를 보면 가끔 공장장이 생각이 나서 피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윤수가 내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어.”
윤수에게 미순 언니 가족의 일을 부탁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그때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로 내려오셨어요.”
“같이 올라가자.”
꿈에서도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가 이 말을 해주기를 바랬다는 걸 태림은 깨달았다.
“왜요?”
“넌 내 아내니까.”
하지만 이건 그녀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기에 태림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상상하던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그저 서류 상으로 꾸며진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말은 없었다.
“왜?”
역시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많은 용기가 생겨났지만 아직 세준이라는 대상은 제외인지 그녀의 마음 속에 말들이 밖으로 흘러나오지는 못했다.
“어차피 우리 결혼은 우리들의 의사는 배제한 체로 이루어 진 거잖아요.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태림의 말이 끝나자 세준은 양복 상의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들었다. 태림은 그것이 본능 적으로 이혼서류라는 걸 알았다.
“거기에 써진 데로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까지 해준 걸로도 부족하지 않아요.”
쫙쫙
태림은 자신의 눈앞에서 갈가리 찢어지는 이혼서류 조각을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무...무슨 짓이에요. 난 다시 쓰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것을 작성 할 때의 처참하고 쓸쓸한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세준이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럼 다시 쓰지 않으면 되잖아.”
“부모님도 우리의 재결합을 원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아니. 널 찾는데 가장 앞서신 분들이야. 네가 돌아오기를 바라셔.”
태림은 그 말을 믿고 싶었고, 희망이 생기려고 했지만 꾹꾹 눌러버렸다.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아요. 우리 더 이상 할 이야기 없는 것 같군요.”
태림은 흐르는 눈물을 겨우 감추며 여관으로 돌아왔고, 일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한나절을 방에서 보내고 저녁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 갔죠.”
“아니. 방 하나 빌렸다.”
“엄마! 방을 빌려주면 어떻게 해요.”
태림의 비난에 엄마는 어깨만 잠깐 들썩일 뿐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바깥일을 살피지 않는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세준은 태림이 엄마의 옆에 없는 사이에 마음 약한 엄마를 꾀인 것이리라.
“그럼 어떻게 하니 돈주고 있겠다는 데 손님을 내보낼 수도 없잖니.”
태림은 엄마의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손님’이라는 말에 세준을 그냥 손님으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태림은 만 하루가 지나지 않고서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조금 야윈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본 남자들 중에 가장 건장한 세준이 하루 종일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걸 그냥 넘기기에는 태림은 아직도 그를 사랑했다.
“올라가지 않을 거예요?”
“난 너랑 올라간다니까.”
세준은 손님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아령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난 가지 않는 다니까요.”
“난 너랑 갈 꺼야.”
“마음대로 해요. 고집불통 같으니.”
그를 외면하기로 한 태림의 결심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은 세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서기 시작했고, 세준은 그걸 십분 발휘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 속에 순진한 엄마까지 끼여 있다는 것이었다.
태림은 엄마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말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세준 때문에 엄마하고 싸우기까지 했다.
“미워요.”
세준은 태림이 쀼루퉁한 얼굴을 하고 내뱉은 말에 가슴에서 뭔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래?”
“몰라요.”
세준은 이러다 태림이 정말 자신을 영영 돌아봐 주지 않을 까봐 무서웠다.
그의 그런 두려움에 무게를 더하려는 듯이 태림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말했던 쌀집 아들과 사진기사가 얼쩡거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저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남자가 뭐가 좋아?”
태림은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사진기사를 보고 평을 하는 세준을 흘겨보았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난 저 남자 좋다고 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장 기사는 다른 사람 기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세준은 휭 하니 바람을 일으키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곰탕하나 주쇼.”
세준은 식 당일을 거들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쌀집 아들을 꼽았다.
세준은 쌀집 남자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려는 태림에게서 쟁반을 빼앗아 들고 직접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남자가 남우세스럽게 시리 어찌 음식을 나른다요.”
“남이야. 뭘 하던 상관없지 않습니까.”
세준은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릇을 놓았는데, 그 소리에 태림이 쫓아왔다.
“그릇을 그렇게 소리나게 놓으면 어떻게 해요. 죄송해요. 아직 일이 서툴러서요.”
“내가 태림씨가 사과하니까 그냥 넘어 갈라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시요이.”
세준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일하기 싫으면 그냥 방에 가있던가요. 누가 도와달라고 했어요.”
“저렇게 구식인 남자가 어디가 좋아.”
“난 좋다고 한적 없다니 까요. 그리고 구식이어도, 내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에요.”
이제 목록이 만리장성처럼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세준은 서울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나서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자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정서방.”
할 말이 있는지 장모님은 밤이 늦은 시간에 세준을 찾아 나왔다.
“네. 장모님.”
세준은 장모님의 청을 들어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태림이가 싫어할텐데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태림이를 데리고 올라갈 생각이라면 뭐든지 해야지.”
세준은 장모의 든든한 후원을 업고 태림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태림은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불빛을 받으며 자고 있었고, 태림의 옆자리에는 세준의 잠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세준은 태림과 장모님이 잔다는 방을 둘러보다가 서랍이 있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태림이 만졌을 상을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그러다가 책 사이에 그가 선물 한 것이 분명한 지갑이 기어 있었고, 그걸 본 세준의 가슴이 희망으로 두근거렸다.
놀랍게도 지갑 안에는 그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가 막 군대에서 제대해 길지 않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태림 역시 그를 마음에 담아 두었다는 희망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심장소리에 태림이 깰까 걱정스러워 유난히도 쿵쿵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감싸 앉았다.
천하의 정세준이 아내의 잠든 모습에 이렇게 설레어 할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세준은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겉옷만을 벗고 태림의 옆자리로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가 태림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무언 가를 가진 그녀만을 얼굴이었다.
태림은 따뜻한 품안에 안기어 있는 게 너무 좋아 얼굴을 비비다 엄마의 부드러운 가슴이 아닌 단단한 가슴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두웠지만 당연히 모든 감각이 세준이라는 걸 알아챘고,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태림은 자신을 꼭 안은 세준의 팔에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고, 천천히 내려오는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맞아 들였다.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부드럽고 감각적인 것들이 울고 갈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와 그리움으로 하나가 되었다.
세준은 태림의 입술에서 귀 목 그리고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까지 여행을 멈추지 않았고, 태림이 환희의 소리를 낼 때까지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안...안돼요.”
하지만 세준의 입술과 손길은 이미 단단해진 태림의 유두를 머금고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여긴 방음이 되지 않아요.”
태림의 숨찬 소리에 세준은 자신의 입으로 태림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았다. 세준은 여관에서 몇 일 지내면서 적날하게 들리는 옆방의 소리에 잠을 깬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태림이 그의 애무에 내는 신음소리가 그 무슨 소리 보다 더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가 아침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건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의 여파로 가슴을 들썩일 때도, 진정이 되었을 때도 세준은 태림의 안에 머물러 있었다.
“같이 가자.”
태림은 평생 기억할 만한 사랑을 나누어 놓고 흥을 깨어버리는 세준의 행동에도 올라가지 않겠다면서 그의 눈길에 휩쓸려 사랑을 나눈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의 말뜻을 이해한 태림의 얼굴이 붉어졌고, 그 변화가 세준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비켜줘요. 일하러 나가야 되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걸.”
“숨쉬기 힘들어요.”
태림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세준은 태림의 양쪽에 팔을 괴고 가슴을 조금 들어올렸을 뿐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잖아. 우린 부부 관계를 맺었어.”
태림은 그의 어휘에 고개를 돌렸다.
“부부가 아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세준은 그 말에 잠시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굳어버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세상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부부가 아니어도, 이... 이런 관계를 맺잖아요.”
태림은 뭐라고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어 그와 자신의 밀착된 모습을 한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몸짓에 그녀의 몸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누가 가르쳐 준거야.”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여관을 하면서 찾아오는 남녀가 부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처음에 그 깨달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안다면 세준은 그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거다.
“뭐라고요? 정말이지 말하고 싶지 않아요.”
태림은 움직이려다가 그의 표정처럼 성나있는 그의 남성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눈빛을 보니, 아직 배울게 많구나.”
아무런 전희도 없이 거칠게 움직이는 그의 몸짓과 하나가 된 태림은 잠깐 생각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일어났을 때 세준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들어냈다는 걸 알았고, 그 깨달음에 더 흥분됨을 느꼈다.
그의 행위가 좀 전과는 다르게 얼마나 거칠고, 맹목적이었는지 태림은 금새 잠이 들었고, 세준은 그런 태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준이 옆에 있으리라 생각한 그녀는 그가 없자 실망을 했다. 그건 자신의 결심과 다른 감정이란 걸 알았지만 뻐근한 몸은 그녀의 결심은 언제든지 허물어 질 수 있는 모래성이라는 걸 여실히 가르쳐 주었다.
“나 서울 간다.”
태림은 그가 포기했다는 것에 왜 기쁘지 않고 슬픈지 알았지만 억지로 웃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일 마무리되면 내려올게.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올라가자.”
태림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날아 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녀는 깨닫지 못했지만 세준은 그녀의 배웅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의 마음은 세준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입으로 그녀의 감정을 내 비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준이 떠난 자리가 이토록 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태림은 다른 사람에게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그가 빨리 내려와 주기를 기다리며 그를 떠올렸다. 그가 광주에 내려오기 전에는 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한 반면 그가 이번에 올라간 뒤로는 그의 얼굴, 몸짓, 말투를 잊어버릴 새라 거의 하루 종일 그의 생각을 했다.
세준은 약속대로 내려왔지만 태림과 신체적인 접촉은 가능한 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우선은 태림이가 그녀의 인생에서 그가 필요하다는 걸 확실히 깨닫길 원했다.
“어이 거기? 히물끼리하게 생긴 총각 삐루 한잔 가지고 와보소.”
세준은 히물끼리하다는게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에 괜히 시비를 붙어 태림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나 삐루는 문제가 달랐다.
“예?”
도대체 삐루가 뭐야?
세준은 도움의 눈길을 사방으로 보냈지만 다들 자신들의 일에 바빠 아무도 그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메. 울화통 터지 것는 그. 삐루 하나 가지고 오란지가 언젠디 그라고 서있는가, 어여 가지고 오소잉.”
이상스럽게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 중에 느긋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세준은 자신에게 삐루라는 것을 시킨 남자를 식당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겁나게 짜증 나불구만. 저그 우게 있는 삐루 좀 가지고 오라는디 장승처럼 서있단가.”
우게?
“삐루가 뭐야? 우게는 뭐지?”
세준은 무거운 쟁반을 들고 다가오는 태림에게 쟁반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무거운걸 들고 다닌단 말이야.”
세준의 놀람에도 태림은 그저 어깨만 씰룩거렸다.
“근데 뭐 물어봤어요.”
“삐루하고 우게.”
그의 목소리 리는 심통 난 어린 아이 같았다.
처음으로 태림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입가가 씰룩이자 세준은 삐루를 시킨 남자를 안아 주고 싶어졌다.
“맥주요.”
“뭐?”
세준은 절대 그 문제의 삐루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다시 한번 태림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
“맥주라니까요. 저기 냉장고에 있어요. 잔도 잊지 말고 가져다 주세요.”
태림은 당황한 세준의 얼굴이 너무 재미있어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식당 일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얼마나 가랴 싶어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식당 안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그를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준은 우게라는 뜻을 맥주를 찾고서야 알 수 있었다. 맥주는 냉장고의 맨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는 사투리에 적응하는 게 태림을 설득하는 일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고,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세준이 식당 일을 잘 해내리라 믿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의 걱정을 무시하듯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고 있었지만, 태림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삐루에는 단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고,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까 저 아저씨가 나보고 히물끼리하게 생겼다는데, 그건 무슨 뜻이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태림이 자신의 질문에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의 말을 듣고 웃기 시작하자 세준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태림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자 그의 피는 다른 곳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해결을 못하더라도 식당에서 더 이상 동물원 원숭이가 되기 싫어 아직도 웃고 있는 태림의 손목을 잡고 뒷문을 통해 식당에서 나왔다.
“왜?”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이유를 전혀 모르는 세준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세준의 골난 모습에 태림은 겨우 숨을 고르고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얼굴이 너무 희어서 그렇기도 하고 여기 사람들에 비해서 키도 좀 크고 약해 보여서 그런 말을 하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녀의 기준에서는 그의 골격이 절대 약골이 아니었지만 농사일과 노동을 주로 하는 식당 손님들에게는 세준이 약해 보였을 것이었다.
“그건 나보고 약골이라는 소리잖아.”
남자의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아니고 태림의 앞에서, 그런데 태림은 그 말을 듣고도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신경 쓰지 말라면서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약과예요. 나보고는 먹다 남은 멸치 쪽아 리라고도 했는 걸요.”
“뭐!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하던 상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태림을 모욕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왔을 때 제가 너무 약해 보여서 걱정해서 한 소리예요. 여기 말이 투박하기는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정이 많은데요.”
태림은 세준의 분노하는 얼굴에서 뭔가를 보았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그와 처음 만난 날부터 그의 눈에서 보고 싶던 빛. 그 빛이 이제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할 말 있어요?”
혼자 살아보면서 갖은 풍파를 겪어 보면서 태림은 많이 성숙했고, 세상에 조금은 당당해진 자신의 모습이 뿌듯했지만 그의 앞에서는 언제나 떨렸다.
“같이 올라가자.”
그건 들었던 말이었다.
“왜요?”
그 질문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었다. 할 수만 있다면 국어사전에서 영구히 지어 버리고 싶은 단어였다.
그들은 같은 결론이었지만 단 시간에 가는 방법은 아직 많이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널.... 널 사랑하니까.”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상처가 되어 누런 고름이 흐를망정 그녀를 포기 할 수는 없었다.
태림은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지기 전까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뒤돌아보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할게.
너한테 강요하지 않을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줘,
내가 참기 힘들면 때려도 화를 내어도 괜찮아.
미워해도 좋아.
하지만 내 옆에만 있어 줘.
네가 너무... 너무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 할 것이 남아 있었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그... 여자! 혜란씨를 사랑하잖아요.”
태림은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입은 태림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눈으로는 다른 말을 할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그녀를 다시금 겁쟁이로 만들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래 그 시절에는 그녀를 사랑했을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지만 그래서 그때 날 더 밀어 낸 거 아닌가요. 제가 아버지에게 사진을 준건 잘못한 일이었지만.... 그 디자인은 어차피 구형이었다는 거 알아요.”
세준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난 그때도 널 사랑했어. 하지만 그때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나봐. 그래서 그랬던 거야. 날 용서해. 혜란이 때문이 아니었어. 그녀는 사랑이고 정인 이었다는 말보다는 그냥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다는 말이 더 맞아.”
“...”
세준은 아무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고 있는 태림이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진심을 말했다.
“널 사랑해. 나와 같이 가자.”
세준의 눈에도 눈물 차 오르더니 그의 광대뼈 위로 흘러 내렸다. 태림은 그의 눈물에 안타까움과 고마움의 물결이 밀려들어옴을 깨닫고 그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그녀도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럴 수 없어요.”
세준의 눈빛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태림은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이미 사랑하는 걸요.”
그녀를 잡고 있던 세준의 손길이 다시 세차지더니 그의 품안으로 그녀를 끌어 당겼다.
“고마워. 나 같은 놈한테 기회를 줘서. 날 사랑해 줘서. 이제는 절대 널 놓지 않을 게.”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꼭 데리고 가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사랑은 기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멋없고 냉정하고 재미없는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은 모든 과거를 묻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들의 남은 인생을 위해 서로를 사랑하면서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결혼식을 하고 약속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은 아주 조촐하면서도 스피드 하게 치러 졌지만 태림은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소박했지만 웨딩드레스도 입었고, 세준과 즐거운 사진 촬영도 했기 때문에 만족했다.
윤수에게서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태림을 괴롭히고 다른 여공들의 인생을 망치던 공장장을 세준의 손을 써 퇴사 시켰다고 했다. 가능하면 구속시켜 버리고 싶어했지만 그에게 당한 여자들이 비밀을 원했기에 그런 방법을 취했다고 했다.
그런 세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 날 밤 여관에서 보냈을 때 생겼는지, 허니문 베이비인지는 모르지만 첫째 딸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 가족들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언제나 태림을 사랑하는 세준의 일 순위 관심사는 항상 태림이었다.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요. 아기가 젖을 잘 먹어서 다행이에요.”
세준은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엄마의 젖을 맛있게 빨아먹는 딸아이의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그런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태림을 바라보았다.
그와 돌아온 그 날부터 태림의 입가에는 언제나 그런 부드러운 미소가 거의 떠나지 않았고, 그런 그녀의 얼굴은 세준의 삶의 의미였다.
세준은 참을 수 없는 욕구로 태림과 아이의 앞에 꿇어앉아 남아 있는 그녀의 한쪽 가슴을 입안에 머금고 마치 아이처럼 생명을 위해서 인 것처럼 유두를 빨았다.
그런 세준을 태림은 거부하지 않고 남은 팔로 세준을 안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워낙에 어릴 적부터 독립적으로 자라온 세준이 외로움을 많이 탔었다는 걸 많은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태림은 가끔 자신에게만은 아이처럼 행동하는 세준을 아무런 말없이 받아주었다.
“아이가 다 먹었나봐.”
“많이 먹었어요. 어머니께 데려다 주고 올게요.”
첫 손주가 여자아이였지만 시부모님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고, 틈만 있으면 아이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태림이 지치는 일은 없었다.
“괜찮다. 다음에 또 나으면 되잖니. 사실 나도 딸 하나 낳고 싶었는데, 생기지가 않아서 얼마나 서운했다고.”
아기를 어머니에게 부탁하고 오자 세준이 욕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답답하니? 집안에만 있어서.”
세준은 태림이 잘 묻지 않는 말을 하자 걱정이 앞섰다. 그녀가 너무 놀란 일도 많았지만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는 욕심에 태림이 집에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녀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요. 현이가 시간만 나면 놀러 오는 걸요.”
아직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광주에 있을 때에는 엄마와 미순언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없었거니와, 적어도 아이가 클 때까지는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큰 후에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식구들 역시 반대하지 않고 좋아했다.
태림의 밝은 얼굴에 세준은 마음을 놓았다.
“나름대로 잘 보낸 하루였어. 너에게 즐거움을 주는 현이가 나한테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지만.”
“왜요?”
태림은 현이 윤수의 흉을 잔뜩 보자 그들 사이에 뭔가 있을 것 같아 세준이 혹시 아는 게 있는가 싶어 넌지시 물어 본 것이었다.
“요즘 이상한 사람이 붙어서 걱정스러워서 윤수를 붙여 줬더니 경호원이 못생겼다는 둥, 운동도 못하게 생겼다는 둥, 별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는 요즘 날 달달 볶는 중이야. 네가 말해서 좀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래. 현이 얼마나 요리 저리 잘 도망 다니는지 윤수가 대머리가 될 지경이라니까.”
태림은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와 킥킥 웃고 말았다.
“왜? 현이가 무슨 말하고 갔어.”
웃음소리는 세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현이가 윤수씨 좋아하나 봐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와서 윤수씨 욕을 한 바가지나 하고 갔거든요.”
“현이가?”
“네.”
“윤수씨도 그다지 싫은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머리가 될 것 같이 힘들어도 일을 그만둔다는 소리를 안 하지요.”
세준은 또 다른 시각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착실한 윤수라면 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태림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가 임자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애들이 우리처럼 서로 이해하고 행복해 지는데 얼마나 걸릴까?”
“필요한 만큼이요. 하지만 너무 길지는 않을 거예요. 이렇게 같이 살아가는 시간도 너무 짧으니까요.”
애 련{그 마지막 이야기}
여러분 드디어 애련이 마지막에 접어 들었어요.

사실 애련이 끝나자 마자 라이언의 하늘과 다른 작품을 들어가려고 맘 먹고 있었는데, 밤 근무할 때 쉬는 시간이어도 일할 때 써서 인지 다 날아가고 말았어요.
어찌나 성질이 나던지......
한 몇 일 잠수를 타야 할것 같아요. 빨리 써서 돌아올께요.
저도 네이트 작가에 작가 신청을 해도 무난 할까요. 여러분의 답변 부탁드려요. 마지막이니 추천 팍팍 눌러주시구요. 리플도 마니마니 달아주셔야 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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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들과 사람들 장사꾼들이 엉켜 있는 포장이 되지 않은 거리에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나가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다른 여자들은 세준에게 호감의 눈길을 보냈고 자신들과 다르게 고급 양복을 입고 길을 활보하는 세준을 남자들은 호감과 거리가 먼 눈빛을 보냈지만, 세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태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윤수는 태림이 미순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했던 일을 말해 주었고, 세준 역시 태림의 심성으로 분명 미순의 가족을 도왔을 거라는 생각에 미순의 가족을 추적했지만 그들은 누군가 그대로 가지고 간 것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고, 세준은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드디어 태림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오늘도 일이 많았지만, 집을 나오면서 가지고 나온 세준의 사진이 들어 있는 그가 준 지갑을 들여다 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태림은 힘들었지만 광주로 내려와 미숙 언니네 식구들과 함께 여관과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관과 식당이 차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일하는 아주머니들까지 구했지만 가끔은 그 일손도 부족했기 때문에 때때로 태림도 객실 청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소 좀 하겠습니다.”
“하~암. 음 그라쇼.”
103호 손님은 언제나 같은 차림의 파란색 츄리링을 입고 방안에서 이상스러운 잡지나 만화를 보면서 있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들도 꺼려하는 방이었다.
역시나 꼬질 꼬질 한 모습을 한 남자는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보기 민망한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만화책을 능글맞은 미소를 띄우며 보고 있었다.
“잠시 나가 주시면 안될까요?”
남자의 눈이 번뜩 이었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방바닥에 눈길을 띄지 않았던 태림은 그걸 미쳐 보지 못했다.
“그냥 치 것이제. 나가라 마라 하는구먼, 아이고 어쩔 수 없제이.”
남자는 굼뜬 동작으로 기지개를 펴면서 방문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남자는 나가는 척 문고리를 잠시 잡았을 뿐 방문을 잠가 버리고 놀라 얼굴을 든 태림을 만화 속의 음탕한 남녀를 보듯이 바라보더니 그녀와의 간격을 점점 좁혀 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거기서 멈추지 않으면 소리 지르겠어요.”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강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남자는 잠시 발을 주춤거렸지만 다시 이상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태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으로는 자신의 부풀어 오른 물건을 만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난 분명히 멈추라고 경고했어요.”
“헤헤. 싫다면 어쩔 건데.”
그녀는 그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 항복할 의사로 비추어 졌는지 남자는 더더욱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태림은 그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한치도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방 빗자루를 아주 효율적으로 움직여 더 이상 부풀어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그의 물건을 단 한번의 지체 없이 팔을 돌려 아래서 위로 걷어 올렸고, 남자는 다른 매질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온 방을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남자의 목소리는 정말 고통스럽게 들렸지만 태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문을 나왔다. 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가지려는 남자에게 그 정도의 벌은 작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여관 손님들과 식당에서 점심 준비를 하던 식구들까지 몽땅 여관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고, 태림은 일이 조용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끙하는 신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애기 사장. 이것이 뭔 소리당가?”
다른 객실을 청소하던 아주머니가 빗자루를 손에 쥔 채로 태림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태림아 괜찮니? 무슨 일이야?”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까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그게 저.....”
태림이 주저하고 있을 때 103호 남자는 이때다 싶었는지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방에서 엉거주춤 걸어 나와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아니에요. 저 남자가 먼저....”
“퍽.”
103호 남자가 갑자기 땅으로 널브러지자 사람들의 시선은 한방에 사내를 바닥에 뻗게 만든 남자에게로 시선이 향했고, 태림은 남자의 얼굴을 보자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어....떻게... 여길 알고.......”
“나중에 이야기해. 저놈 먼저 죽여 놓고.”
세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103호 남자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세준을 피해 사람들 뒤로 피해 다녔지만 사람들은 살기 어린 세준의 눈빛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피하느라 103호 남자를 피했다.
“오메. 뭔일이당가. 저리로 가쇼오.”
103호 남자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태림의 뒤로 와서 숨었고, 태림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기까지 이르렀다.
“야. 너 어딜 만져. 빨리 손 내려놓지 못해.”
세준은 태림의 팔을 꼭 잡고 있는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그녀가 다칠세라 뛰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경찰을 불러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남자한테서 멀어지게 해주세요.”
103호 남자의 애원에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임에도 키득 거리 시작했고, 마침 경찰들이 들어와 남자를 연행해 갔다.
“조서를 써주셔야 되겠는데요. 우선 신분을 좀...”
경찰들도 세준에게 위압감을 느꼈는지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세준이 내민 명함을 보더니 언제든지 편할 때 오라는 인사까지 남기고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장모님 그동안 별거 없으셨습니까?”
“응... 그럼. 정서방 자네도 잘 지냈지.”
엄마는 태림의 눈치를 보느라 세준의 인사를 불편하게 받았다.
사람들은 세준이 태림의 엄마에게 하는 호칭과 엄마가 세준에게 하는 호칭에 술렁거렸고, 새로운 볼거리에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 그럼 애기 사장이 결혼한 상태라는 거네.”
“그러게. 이일을 어쩌나. 쌀집 사장이 애기 사장 자기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다면서.”
“그 뿐이야. 사진기사 장군도 애기 사장한테 반해 가지고 거의 매일 밥 먹으로 식당에 오잖아.”
세준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하나도 빼지 않고 들었고, 누군가 태림을 마음에 담았다는 사실에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잠깐 나가서 태림이 와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엄만 아버지의 모습이 세준의 위로 겹쳤는지 몸을 떨었다.
“태림이가 좋다고 해야지.”
“나갔다가 올게요. 걱정하실 것 없어요. 엄마.”
세준은 자신을 마치 불한당 취급하는 태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명하게도 속에 있는 말을 내 뱉지는 않았다.
태림이 세준을 데리고 간 곳은 음악 홀이었고, 머리를 긴 촌스러운 DJ가 머리를 넘기면서 사연과 함께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커피 두 잔 주세요.”
“전 우유주세요.”
“아직도 우유 좋아하는 구나.”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커피를 보면 가끔 공장장이 생각이 나서 피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윤수가 내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어.”
윤수에게 미순 언니 가족의 일을 부탁했던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그때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로 내려오셨어요.”
“같이 올라가자.”
꿈에서도 그리고 일상에서도 그가 이 말을 해주기를 바랬다는 걸 태림은 깨달았다.
“왜요?”
“넌 내 아내니까.”
하지만 이건 그녀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기에 태림은 좌우로 고개를 흔들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상상하던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그저 서류 상으로 꾸며진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말은 없었다.
“왜?”
역시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는 건지도 몰랐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많은 용기가 생겨났지만 아직 세준이라는 대상은 제외인지 그녀의 마음 속에 말들이 밖으로 흘러나오지는 못했다.
“어차피 우리 결혼은 우리들의 의사는 배제한 체로 이루어 진 거잖아요.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태림의 말이 끝나자 세준은 양복 상의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들었다. 태림은 그것이 본능 적으로 이혼서류라는 걸 알았다.
“거기에 써진 데로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까지 해준 걸로도 부족하지 않아요.”
쫙쫙
태림은 자신의 눈앞에서 갈가리 찢어지는 이혼서류 조각을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무...무슨 짓이에요. 난 다시 쓰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것을 작성 할 때의 처참하고 쓸쓸한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세준이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그럼 다시 쓰지 않으면 되잖아.”
“부모님도 우리의 재결합을 원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아니. 널 찾는데 가장 앞서신 분들이야. 네가 돌아오기를 바라셔.”
태림은 그 말을 믿고 싶었고, 희망이 생기려고 했지만 꾹꾹 눌러버렸다.
“하지만 네가 원하지 않아요. 우리 더 이상 할 이야기 없는 것 같군요.”
태림은 흐르는 눈물을 겨우 감추며 여관으로 돌아왔고, 일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한나절을 방에서 보내고 저녁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 갔죠.”
“아니. 방 하나 빌렸다.”
“엄마! 방을 빌려주면 어떻게 해요.”
태림의 비난에 엄마는 어깨만 잠깐 들썩일 뿐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바깥일을 살피지 않는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세준은 태림이 엄마의 옆에 없는 사이에 마음 약한 엄마를 꾀인 것이리라.
“그럼 어떻게 하니 돈주고 있겠다는 데 손님을 내보낼 수도 없잖니.”
태림은 엄마의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손님’이라는 말에 세준을 그냥 손님으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태림은 만 하루가 지나지 않고서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는 조금 야윈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본 남자들 중에 가장 건장한 세준이 하루 종일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걸 그냥 넘기기에는 태림은 아직도 그를 사랑했다.
“올라가지 않을 거예요?”
“난 너랑 올라간다니까.”
세준은 손님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아령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난 가지 않는 다니까요.”
“난 너랑 갈 꺼야.”
“마음대로 해요. 고집불통 같으니.”
그를 외면하기로 한 태림의 결심과는 관계없이 사람들은 세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다가서기 시작했고, 세준은 그걸 십분 발휘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람들 속에 순진한 엄마까지 끼여 있다는 것이었다.
태림은 엄마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결심을 말했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급기야는 세준 때문에 엄마하고 싸우기까지 했다.
“미워요.”
세준은 태림이 쀼루퉁한 얼굴을 하고 내뱉은 말에 가슴에서 뭔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래?”
“몰라요.”
세준은 이러다 태림이 정말 자신을 영영 돌아봐 주지 않을 까봐 무서웠다.
그의 그런 두려움에 무게를 더하려는 듯이 태림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말했던 쌀집 아들과 사진기사가 얼쩡거려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저런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남자가 뭐가 좋아?”
태림은 자신을 보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사진기사를 보고 평을 하는 세준을 흘겨보았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난 저 남자 좋다고 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장 기사는 다른 사람 기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세준은 휭 하니 바람을 일으키고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곰탕하나 주쇼.”
세준은 식 당일을 거들면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쌀집 아들을 꼽았다.
세준은 쌀집 남자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려는 태림에게서 쟁반을 빼앗아 들고 직접 음식을 가져다 날랐다.
“남자가 남우세스럽게 시리 어찌 음식을 나른다요.”
“남이야. 뭘 하던 상관없지 않습니까.”
세준은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릇을 놓았는데, 그 소리에 태림이 쫓아왔다.
“그릇을 그렇게 소리나게 놓으면 어떻게 해요. 죄송해요. 아직 일이 서툴러서요.”
“내가 태림씨가 사과하니까 그냥 넘어 갈라요. 다음부터는 조심하시요이.”
세준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일하기 싫으면 그냥 방에 가있던가요. 누가 도와달라고 했어요.”
“저렇게 구식인 남자가 어디가 좋아.”
“난 좋다고 한적 없다니 까요. 그리고 구식이어도, 내가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 사람이에요.”
이제 목록이 만리장성처럼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세준은 서울에 있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나서도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자 하늘을 보며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정서방.”
할 말이 있는지 장모님은 밤이 늦은 시간에 세준을 찾아 나왔다.
“네. 장모님.”
세준은 장모님의 청을 들어 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태림이가 싫어할텐데요.”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태림이를 데리고 올라갈 생각이라면 뭐든지 해야지.”
세준은 장모의 든든한 후원을 업고 태림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태림은 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불빛을 받으며 자고 있었고, 태림의 옆자리에는 세준의 잠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세준은 태림과 장모님이 잔다는 방을 둘러보다가 서랍이 있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태림이 만졌을 상을 조심스레 쓸어보았다. 그러다가 책 사이에 그가 선물 한 것이 분명한 지갑이 기어 있었고, 그걸 본 세준의 가슴이 희망으로 두근거렸다.
놀랍게도 지갑 안에는 그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가 막 군대에서 제대해 길지 않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태림 역시 그를 마음에 담아 두었다는 희망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심장소리에 태림이 깰까 걱정스러워 유난히도 쿵쿵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감싸 앉았다.
천하의 정세준이 아내의 잠든 모습에 이렇게 설레어 할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세준은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겉옷만을 벗고 태림의 옆자리로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가 태림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무언 가를 가진 그녀만을 얼굴이었다.
태림은 따뜻한 품안에 안기어 있는 게 너무 좋아 얼굴을 비비다 엄마의 부드러운 가슴이 아닌 단단한 가슴을 느끼고 눈을 떴다. 어두웠지만 당연히 모든 감각이 세준이라는 걸 알아챘고, 그녀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태림은 자신을 꼭 안은 세준의 팔에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고, 천천히 내려오는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맞아 들였다.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모든 부드럽고 감각적인 것들이 울고 갈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와 그리움으로 하나가 되었다.
세준은 태림의 입술에서 귀 목 그리고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까지 여행을 멈추지 않았고, 태림이 환희의 소리를 낼 때까지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안...안돼요.”
하지만 세준의 입술과 손길은 이미 단단해진 태림의 유두를 머금고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여긴 방음이 되지 않아요.”
태림의 숨찬 소리에 세준은 자신의 입으로 태림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줄 알았다. 세준은 여관에서 몇 일 지내면서 적날하게 들리는 옆방의 소리에 잠을 깬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태림이 그의 애무에 내는 신음소리가 그 무슨 소리 보다 더 마음에 들었지만 그녀가 아침에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건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의 여파로 가슴을 들썩일 때도, 진정이 되었을 때도 세준은 태림의 안에 머물러 있었다.
“같이 가자.”
태림은 평생 기억할 만한 사랑을 나누어 놓고 흥을 깨어버리는 세준의 행동에도 올라가지 않겠다면서 그의 눈길에 휩쓸려 사랑을 나눈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에게서 벗어나려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의 말뜻을 이해한 태림의 얼굴이 붉어졌고, 그 변화가 세준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비켜줘요. 일하러 나가야 되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는걸.”
“숨쉬기 힘들어요.”
태림은 포기하지 않았지만 세준은 태림의 양쪽에 팔을 괴고 가슴을 조금 들어올렸을 뿐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잖아. 우린 부부 관계를 맺었어.”
태림은 그의 어휘에 고개를 돌렸다.
“부부가 아니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세준은 그 말에 잠시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굳어버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세상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부부가 아니어도, 이... 이런 관계를 맺잖아요.”
태림은 뭐라고 단어로 표현하기 힘들어 그와 자신의 밀착된 모습을 한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몸짓에 그녀의 몸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누가 가르쳐 준거야.”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었다. 여관을 하면서 찾아오는 남녀가 부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처음에 그 깨달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안다면 세준은 그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 거다.
“뭐라고요? 정말이지 말하고 싶지 않아요.”
태림은 움직이려다가 그의 표정처럼 성나있는 그의 남성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눈빛을 보니, 아직 배울게 많구나.”
아무런 전희도 없이 거칠게 움직이는 그의 몸짓과 하나가 된 태림은 잠깐 생각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일어났을 때 세준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들어냈다는 걸 알았고, 그 깨달음에 더 흥분됨을 느꼈다.
그의 행위가 좀 전과는 다르게 얼마나 거칠고, 맹목적이었는지 태림은 금새 잠이 들었고, 세준은 그런 태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준이 옆에 있으리라 생각한 그녀는 그가 없자 실망을 했다. 그건 자신의 결심과 다른 감정이란 걸 알았지만 뻐근한 몸은 그녀의 결심은 언제든지 허물어 질 수 있는 모래성이라는 걸 여실히 가르쳐 주었다.
“나 서울 간다.”
태림은 그가 포기했다는 것에 왜 기쁘지 않고 슬픈지 알았지만 억지로 웃었다.
“그래요. 잘 생각했어요.”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어. 일 마무리되면 내려올게.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올라가자.”
태림은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영원히 떠나지 않는 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날아 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녀는 깨닫지 못했지만 세준은 그녀의 배웅에 미소로 화답했다. 그녀의 마음은 세준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입으로 그녀의 감정을 내 비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준이 떠난 자리가 이토록 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태림은 다른 사람에게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그가 빨리 내려와 주기를 기다리며 그를 떠올렸다. 그가 광주에 내려오기 전에는 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한 반면 그가 이번에 올라간 뒤로는 그의 얼굴, 몸짓, 말투를 잊어버릴 새라 거의 하루 종일 그의 생각을 했다.
세준은 약속대로 내려왔지만 태림과 신체적인 접촉은 가능한 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우선은 태림이가 그녀의 인생에서 그가 필요하다는 걸 확실히 깨닫길 원했다.
“어이 거기? 히물끼리하게 생긴 총각 삐루 한잔 가지고 와보소.”
세준은 히물끼리하다는게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에 괜히 시비를 붙어 태림에게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나 삐루는 문제가 달랐다.
“예?”
도대체 삐루가 뭐야?
세준은 도움의 눈길을 사방으로 보냈지만 다들 자신들의 일에 바빠 아무도 그를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메. 울화통 터지 것는 그. 삐루 하나 가지고 오란지가 언젠디 그라고 서있는가, 어여 가지고 오소잉.”
이상스럽게 식당에서 밥 먹는 사람 중에 느긋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보였다. 세준은 자신에게 삐루라는 것을 시킨 남자를 식당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기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겁나게 짜증 나불구만. 저그 우게 있는 삐루 좀 가지고 오라는디 장승처럼 서있단가.”
우게?
“삐루가 뭐야? 우게는 뭐지?”
세준은 무거운 쟁반을 들고 다가오는 태림에게 쟁반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무거운걸 들고 다닌단 말이야.”
세준의 놀람에도 태림은 그저 어깨만 씰룩거렸다.
“근데 뭐 물어봤어요.”
“삐루하고 우게.”
그의 목소리 리는 심통 난 어린 아이 같았다.
처음으로 태림의 얼굴에서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입가가 씰룩이자 세준은 삐루를 시킨 남자를 안아 주고 싶어졌다.
“맥주요.”
“뭐?”
세준은 절대 그 문제의 삐루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다시 한번 태림에게 물었지만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한결 같았다.
“맥주라니까요. 저기 냉장고에 있어요. 잔도 잊지 말고 가져다 주세요.”
태림은 당황한 세준의 얼굴이 너무 재미있어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식당 일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얼마나 가랴 싶어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식당 안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그를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준은 우게라는 뜻을 맥주를 찾고서야 알 수 있었다. 맥주는 냉장고의 맨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는 사투리에 적응하는 게 태림을 설득하는 일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고,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세준이 식당 일을 잘 해내리라 믿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의 걱정을 무시하듯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고 있었지만, 태림이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삐루에는 단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고,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아까 저 아저씨가 나보고 히물끼리하게 생겼다는데, 그건 무슨 뜻이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태림이 자신의 질문에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의 말을 듣고 웃기 시작하자 세준의 얼굴을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태림의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자 그의 피는 다른 곳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해결을 못하더라도 식당에서 더 이상 동물원 원숭이가 되기 싫어 아직도 웃고 있는 태림의 손목을 잡고 뒷문을 통해 식당에서 나왔다.
“왜?”
웃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이유를 전혀 모르는 세준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세준의 골난 모습에 태림은 겨우 숨을 고르고 눈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얼굴이 너무 희어서 그렇기도 하고 여기 사람들에 비해서 키도 좀 크고 약해 보여서 그런 말을 하신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녀의 기준에서는 그의 골격이 절대 약골이 아니었지만 농사일과 노동을 주로 하는 식당 손님들에게는 세준이 약해 보였을 것이었다.
“그건 나보고 약골이라는 소리잖아.”
남자의 자존심이 상하는 소리였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아니고 태림의 앞에서, 그런데 태림은 그 말을 듣고도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신경 쓰지 말라면서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약과예요. 나보고는 먹다 남은 멸치 쪽아 리라고도 했는 걸요.”
“뭐! 누가?”
그에게 뭐라고 하던 상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태림을 모욕한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왔을 때 제가 너무 약해 보여서 걱정해서 한 소리예요. 여기 말이 투박하기는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정이 많은데요.”
태림은 세준의 분노하는 얼굴에서 뭔가를 보았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그와 처음 만난 날부터 그의 눈에서 보고 싶던 빛. 그 빛이 이제 그녀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나한테 할 말 있어요?”
혼자 살아보면서 갖은 풍파를 겪어 보면서 태림은 많이 성숙했고, 세상에 조금은 당당해진 자신의 모습이 뿌듯했지만 그의 앞에서는 언제나 떨렸다.
“같이 올라가자.”
그건 들었던 말이었다.
“왜요?”
그 질문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었다. 할 수만 있다면 국어사전에서 영구히 지어 버리고 싶은 단어였다.
그들은 같은 결론이었지만 단 시간에 가는 방법은 아직 많이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널.... 널 사랑하니까.”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상처가 되어 누런 고름이 흐를망정 그녀를 포기 할 수는 없었다.
태림은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만지기 전까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뒤돌아보지 않아도 돼.
내가 다 할게.
너한테 강요하지 않을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줘,
내가 참기 힘들면 때려도 화를 내어도 괜찮아.
미워해도 좋아.
하지만 내 옆에만 있어 줘.
네가 너무... 너무 그리워서 보고 싶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걸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확인 할 것이 남아 있었고, 그 말을 하는 그녀의 가슴은 찢어지고 있었다.
“그... 여자! 혜란씨를 사랑하잖아요.”
태림은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입은 태림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눈으로는 다른 말을 할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그녀를 다시금 겁쟁이로 만들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래 그 시절에는 그녀를 사랑했을 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하지만 그래서 그때 날 더 밀어 낸 거 아닌가요. 제가 아버지에게 사진을 준건 잘못한 일이었지만.... 그 디자인은 어차피 구형이었다는 거 알아요.”
세준은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난 그때도 널 사랑했어. 하지만 그때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나봐. 그래서 그랬던 거야. 날 용서해. 혜란이 때문이 아니었어. 그녀는 사랑이고 정인 이었다는 말보다는 그냥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다는 말이 더 맞아.”
“...”
세준은 아무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눈을 감고 있는 태림이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진심을 말했다.
“널 사랑해. 나와 같이 가자.”
세준의 눈에도 눈물 차 오르더니 그의 광대뼈 위로 흘러 내렸다. 태림은 그의 눈물에 안타까움과 고마움의 물결이 밀려들어옴을 깨닫고 그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그녀도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럴 수 없어요.”
세준의 눈빛은 죽어 가고 있었다. 그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태림은 재빨리 뒷말을 이었다.
“이미 사랑하는 걸요.”
그녀를 잡고 있던 세준의 손길이 다시 세차지더니 그의 품안으로 그녀를 끌어 당겼다.
“고마워. 나 같은 놈한테 기회를 줘서. 날 사랑해 줘서. 이제는 절대 널 놓지 않을 게.”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꼭 데리고 가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사랑은 기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 멋없고 냉정하고 재미없는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은 모든 과거를 묻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들의 남은 인생을 위해 서로를 사랑하면서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결혼식을 하고 약속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결혼식은 아주 조촐하면서도 스피드 하게 치러 졌지만 태림은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소박했지만 웨딩드레스도 입었고, 세준과 즐거운 사진 촬영도 했기 때문에 만족했다.
윤수에게서 들어서 알게 되었는데, 태림을 괴롭히고 다른 여공들의 인생을 망치던 공장장을 세준의 손을 써 퇴사 시켰다고 했다. 가능하면 구속시켜 버리고 싶어했지만 그에게 당한 여자들이 비밀을 원했기에 그런 방법을 취했다고 했다.
그런 세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 날 밤 여관에서 보냈을 때 생겼는지, 허니문 베이비인지는 모르지만 첫째 딸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나 가족들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언제나 태림을 사랑하는 세준의 일 순위 관심사는 항상 태림이었다.
“피곤하지 않아?”
“괜찮아요. 아기가 젖을 잘 먹어서 다행이에요.”
세준은 쌕쌕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엄마의 젖을 맛있게 빨아먹는 딸아이의 작은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그런 아이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태림을 바라보았다.
그와 돌아온 그 날부터 태림의 입가에는 언제나 그런 부드러운 미소가 거의 떠나지 않았고, 그런 그녀의 얼굴은 세준의 삶의 의미였다.
세준은 참을 수 없는 욕구로 태림과 아이의 앞에 꿇어앉아 남아 있는 그녀의 한쪽 가슴을 입안에 머금고 마치 아이처럼 생명을 위해서 인 것처럼 유두를 빨았다.
그런 세준을 태림은 거부하지 않고 남은 팔로 세준을 안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지만 워낙에 어릴 적부터 독립적으로 자라온 세준이 외로움을 많이 탔었다는 걸 많은 대화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태림은 가끔 자신에게만은 아이처럼 행동하는 세준을 아무런 말없이 받아주었다.
“아이가 다 먹었나봐.”
“많이 먹었어요. 어머니께 데려다 주고 올게요.”
첫 손주가 여자아이였지만 시부모님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았고, 틈만 있으면 아이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태림이 지치는 일은 없었다.
“괜찮다. 다음에 또 나으면 되잖니. 사실 나도 딸 하나 낳고 싶었는데, 생기지가 않아서 얼마나 서운했다고.”
아기를 어머니에게 부탁하고 오자 세준이 욕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답답하니? 집안에만 있어서.”
세준은 태림이 잘 묻지 않는 말을 하자 걱정이 앞섰다. 그녀가 너무 놀란 일도 많았지만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는 욕심에 태림이 집에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 그녀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요. 현이가 시간만 나면 놀러 오는 걸요.”
아직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광주에 있을 때에는 엄마와 미순언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없었거니와, 적어도 아이가 클 때까지는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큰 후에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식구들 역시 반대하지 않고 좋아했다.
태림의 밝은 얼굴에 세준은 마음을 놓았다.
“나름대로 잘 보낸 하루였어. 너에게 즐거움을 주는 현이가 나한테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지만.”
“왜요?”
태림은 현이 윤수의 흉을 잔뜩 보자 그들 사이에 뭔가 있을 것 같아 세준이 혹시 아는 게 있는가 싶어 넌지시 물어 본 것이었다.
“요즘 이상한 사람이 붙어서 걱정스러워서 윤수를 붙여 줬더니 경호원이 못생겼다는 둥, 운동도 못하게 생겼다는 둥, 별 이상한 트집을 잡아서는 요즘 날 달달 볶는 중이야. 네가 말해서 좀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래. 현이 얼마나 요리 저리 잘 도망 다니는지 윤수가 대머리가 될 지경이라니까.”
태림은 그의 말에 웃음이 나와 킥킥 웃고 말았다.
“왜? 현이가 무슨 말하고 갔어.”
웃음소리는 세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현이가 윤수씨 좋아하나 봐요. 그렇지 않아도 아까 와서 윤수씨 욕을 한 바가지나 하고 갔거든요.”
“현이가?”
“네.”
“윤수씨도 그다지 싫은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머리가 될 것 같이 힘들어도 일을 그만둔다는 소리를 안 하지요.”
세준은 또 다른 시각에 동의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착실한 윤수라면 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태림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그가 임자가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애들이 우리처럼 서로 이해하고 행복해 지는데 얼마나 걸릴까?”
“필요한 만큼이요. 하지만 너무 길지는 않을 거예요. 이렇게 같이 살아가는 시간도 너무 짧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