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밟는 고국의 땅이었다. 거창하게 웬 고국 피식!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연신 웃어대었다. 혼자 가방을 끌고 나오면서 하얀 이를 들어내면서 어찌나 많이 웃었는지 입국하는 관광을 하러 들어온 외국인들과 웃음에 박하다는 한국사람들 까지 요나을 바라보면 웃음을 되돌려 줄 정도였다. 그녀가 이렇듯 정신 나간 사람을 취급을 받아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녀를 마중 나와 있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모든 것을 공유했던 친구들이었다. 아무리 많은 전화통화와 메일로도 그 그리움은 말라버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우물처럼 항상 목이 바싹바싹 말라있었다. 요나는 카터를 밀고 가면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리웠던 고국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반갑다. 한국의 공기들아. 엄마야!" 쾅 하는 굉음 소리와 함께 요나의 카터 위에 실려 있던 방대한 양의 여행가방과 그녀가 친 카터의 짐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녀가 부딪힌 날카롭고 뭔가 마뜩치 않는 표정을 짖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짐들과 요나를 번갈아 보는 남자의 것과 같이 섞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미안합니다. 아후 정말 미안해요." 요나는 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연신 사과를 했다. 그녀는 당황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감정변화가 일어나면 항상 귀 뒤의 머리를 긁는 버릇이 있었다.
유신은 짐을 챙기면서 서도 긴 머리는 보글보글 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웃어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이 여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앞을 보면서 잘 가고 있는 그와 부딪친 것도 부족해 뭔가 떨어지지 않을 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손톱으로 긁어 대는 이 여자에게 오만 정이 떨어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요나은 짜증이 잔뜩 섞였지만 굵으면서도 낮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과도 했는데 이렇게 짜증을 내나? 하지만 요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고, 한국에 돌아온 기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꾹 참고 자신의 짐들은 그대로 놓아둔 채 본인의 짐들을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치우는 남자의 손길을 도와 주어 담았다. "서류 다 주어 담았지." 남자는 자신을 도와주는 요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네. 그런데 노트북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컴퓨터는 제가 직접 챙겼어야 했는데.." "어머! 노트북도 있었어요.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 제 실수니까요." 하지만 차가운 눈빛의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 자리를 떠났고, 비서는 그런 자신의 상사와 요나의 짐들을 번갈아 보면서 잠시 고민하면서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 괜찮아요. 이거 제 연락처거든요. 혹시 컴퓨터에 문제 생기면 연락주세요. 제가 꼭 변상해 드릴게요." "네. 죄송합니다. 도와드리지 못해서요." 자신의 상사와는 다르게 따뜻하게 생긴 남자는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고 상사를 따라 갔다. "부잣집 따님이라도 되나보지. 선뜻 변상해 준다는 것을 보면. 부모 잘 만나서 저 정도지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누가 저런 칠칠치 못한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겠어."
요나는 그녀와 나동그라진 짐을 남겨 놓고 가는 고급 양복을 입었지만 근육질의 몸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쪼잔하냐. 흥 짐 좀 떨어뜨렸다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와주지도 않고 가네. 인물이 아깝다. 하느님도 너무하시지 이왕에 주실 거 좋은 매너 좀 팍팍 좀 쏘시지 인물만 쏴 가지고 외로운 처녀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 구만." 하지만 남자의 날렵한 뒷모습에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요나는 짐을 챙기자 바로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갔다.
그녀가 출입국 문을 벗어나자 많은 사람들 틈에서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고, 요나는 그들을 위해 손을 높이 들어 크게 흔들었다. 그렇게 친구들을 찾으면서 요나는 아까 부딪친 남자의 모습을 찾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과의 연은 거기 까지었는지 그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쉽다. "요나야. 어서 와." 그런데 그녀들 마중 나온 친구 중에 곧 결혼한다던 은주가 보이지 않았고, 나와 있는 채원과 인경이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은주는? 너희들 무슨 일 있니?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선 여기서 나가자. 가면서 이야기 해줄게." 요나는 당장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공항에서 뭔가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없이 친구들과 짐을 나누어 들고 공항을 벗어났다. "무슨 일인데 그래? 빨리 말해봐." 그녀의 닦달에 인경은 운전하는 채원 대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은주가 병원에 입원했어 그게…." "뭐? 어디가 아파서 곧 결혼한다니까 스트레스가 심했구나. 심각하지는 않지?" 언제나처럼 요나는 상대방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 질문을 했다. 이것도 그때 생긴 그녀만의 상처 치유법이었다. "그게 있잖아…." "어휴 답답해 빨랑 좀 말해봐." "은주… 자살 기도했어." "뭐를 해?" 그렇게 상처받아 눈이 아파서 더 이상 울 수 없을 때까지도 울어보고 몇 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었던 요나 이었지만 그래도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요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은주가, 그 밝고 착한 은주가 죽을 생각을 했다면 그녀에게 보통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결론은 딱 하나 뿐이었다. "민수씨가 배신한 거구나." "응. 그 바보 같은 계집에가 배속에 애도 있는데 죽을 결심을 한 거 보면 상처를 많이 받았나봐. 사실 우리도 일이 이렇게 까지 된 줄 모르고 있었어." 그건 요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많은 통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은주의 어두운 마음의 그늘을 보지 못했다. 잘못이라면 한국에 있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요나에게도 있었다. "아이는." "아이는 죽었어. 차라리 잘됐지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미 결혼식을 올리는 남자 아기를 낳아서 뭐하겠어." 은주는 친구들 중에 그 누구보다도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는 게 꿈이었던 여자였다. 채원의 말에 눈을 든 요나는 거울을 통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은주를 놓아두고 결혼을 해. 그게 언제야." "오늘이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녀들은 유린당한 채 버려진 친구와 세상에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를 위해 한 곳으로 마음은 달리고 있었다.
요나는 잠시 살 물건이 있다면서 차를 세웠다. 그녀가 사들 고온 물건에 친구들은 침울한 분위기에서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널 누가 말리겠냐. 하지만 좋다. 우리 해볼 때까지 해보는 거야. 우리 소중한 은주를 위해서." 그녀들에게 누구누구와 더 친하고 덜 친하고는 없었다. 네 명 모두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면 그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작은 집단일 뿐이었다. 그러니 서로의 기쁨을 같이 했던 그녀들에게는 은주의 아픔도 그녀들의 아픔이었던 것이었다. "정말 완벽하다." 인경은 실소를 터트리면서 요나가 사온 물건들을 만져보았다. "자 출발 여자 등골 빨아먹는 것도 부족해 그 여자 뒤통수 갈기는 놈 잡으로." "아 자."
세 여자는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졌고, 복잡했지만 신의 도움인지 제 시간에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이 은주네 집에서 뒷바라지 해준 돈으로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더니 돈 많은 여자를 물어 이런 비싼데서 결혼식을 올린단 말이지." 그녀들은 아까 요나가 사가 지고 온 물건을 가지고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오는 여자들이 이상한 눈총을 보내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을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그럴싸한데." 채원와 인경은 완전히 변화된 요나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고, 요나 역시 임부복 안에 볼록하게 튀어 나와 있는 자신의 배가 만족스러워 한번 쓸어 내려보았고, 그런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곧 산달을 앞둔 여자처럼 보였다. "정말 임산부 같지. 자 준비 됐지." "응." "그럼." 요나의 질문에 두 친구는 동시에 대답을 했고, 그들은 결혼식장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신은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집으로 가지도 못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사무실에도 들리지 못하고 사촌여동생의 결혼식장에 온 것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지우를 사랑하기에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일이 지만 왠지 처음부터 동생의 신랑이 될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오고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가 등장하자 한쪽에서 뭘 무슨 주름이 있는 지 연신 웨딩드레스를 펼쳤다가 모았다가 하 던 웨딩 플래너 들이 유신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흥분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유신은 오직 동생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오빠! 날 보러 왔으면 와서 웃어주면서 축하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유신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공주처럼 앉아 있던 지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불만 어린 것 이 분명한 그녀의 목소리에 자신이 입구에 서서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동생의 눈빛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어설픈 미소를 띄우며 아름다움 자태를 자랑 하고 있는 동생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친구가 연신 찍어 대는 사진기 앞에 포즈를 잡았 다. "축하한다." "피이. 거짓말인 거 다 알아." 지우의 결혼은 집안 어른끼리 정한 약속이었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말이라면 죽을 각오 라도 되어 있는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그 남자와 약혼을 했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던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유신의 말에 지우는 처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오빠도 알잖아. 나도 이런 내가 싫지 만 이게 내 모습인걸 오빠라도 이런 날 이해해 줘. 그럼 힘이 날것 같아." 유신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하는 동생의 들어 난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려 어 깨를 쥐어주었다. "결혼식이 곧 시작되오니 모든 하객 분들은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그들의 교감은 사회자의 방송으로 끝나버렸다. "식장에 먼저 가있을게." 유신은 웨딩플레너의 도움으로 마무리 치장을 하는 동생을 놓아두고 호텔 예식장에 마련된 가족들만의 자리로 이동을 했다. 유신은 지우와 몇몇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왕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무척 어색해 보였다. 그들은 부유하면서도 유신의 집안이 어려움에 쳐했을 때 단 한번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어진 부도에 어머니는 쇠약해진 노모와 아들을 돌보기 위해 친척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들은 그런 어머니를 무시했고, 상처만 주었다. 옛날 일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프랑스로 여행을 가신 어머니의 당부 때문에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들어내지 않았다. 유신은 차라리 직원들이나 이웃들이 잘 어울리지 않는 친척들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능청스럽고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식장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신랑과 그 뒤를 이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아름다운 자태의 동생을 눈길을 때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수라는 남자에게는 지우가 아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유신은 동생의 부탁대로 그저 조용히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저 허우대만 멀쩡하게 생긴, 어디에 쓰려고 해도 쓸데가 없는 놈이 혹시라도 지우를 울리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었다. "이로써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잠∼깐∼만∼요∼." 갑자기 주례사의 말을 끊고 식장 안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여자의 목소리에 식장의 분위기는 찬물을 껴 얹은 것처럼 쫙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나타난 여자들의 등장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신 역시 소란의 근원지인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려 누가 결혼식을 중단시키는지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란을 피우고 있는 여자들 중에 배가 남산만큼 나와 임신한 것이 확연해 보이는 여자가 왠지 눈에 낯설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배도 나와 있고, 임부 복을 입고 있었지만 저 인상적인 보글보글한 머리를 한 그녀는... "저 여자는 ..... 맞아. 공항에서 촐랑거리던 여자." 그런데 언제 임신을 한 거야? 유신은 그녀가 가짜 임신을 한 걸 알았지만 그냥 앉아서 이 소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식장 안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되어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다시 앉았다. 이번 일이 동생에게 이롭게만 흘러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촐랑거리는 아가씨. 어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줘보라고. 여자들은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요나는 주책 맞도록 뛰는 심장을 내버려 둔 채 뻔뻔스럽게 턱시도를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신랑이 될 남자와 요나 일행을 지켜보는 신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친구들과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엎질러 저 버린 물이었다. 갈 때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 이러다가 우리 하객들한테 먼저 맞아 죽는 거 아니냐?"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글씨를 잘못보고 식장을 잘못 찾아 들어가 아차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망칠 뻔하고 나자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한번 죽지 두 번 죽지는 않으니까 용기를 내." 요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봐요? 무슨 짓입니까?" 민수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의 남자들과 가족들이 그녀들을 저지했지만 요나와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단 앞에까지 걸어나갔다. "요나씨. 언제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임신은 언제 한 거예요?" 민수라는 뻔뻔한 남자는 은주의 친구들인 그녀들이 무슨 일을 벌릴 줄 미리 짐작을 하고 먼저 선수를 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그녀들이었다. "그냥 조용히 가지 그래요. 내가 은주 약혼자라는 게 알려지면 손해 볼 사람은 은주아닌가요." 민수는 태연히 요나에게 나가와서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말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요나는 용기를 얻었다. 내 연기 실력을 확실히 보여줄 차례가 됐군. 요나는 어릴 적 연극을 했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실연 당하고 버림받은 여자의 역할을 연출해 냈고, 이미 한번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의 연기에 친구들은 감탄했고, 하객들은 경악했다.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애기 나면 나랑 결혼한다고 그렇게 철썩 같이 약속을 하더니 딴 여자하고 결혼을 해." 하지만 그녀의 연기에 민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부와 가족들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왜 이래요. 요나씨? 우리가 언제...." 이번엔 요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고! 여러분 이 남자 천하에 나쁜 놈 좀 보세요. 조강지처를 버리고 돈 많은 여자하고 결혼을 한데요.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요. 네가 날 버리고 잘 살 것 같아." 민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하객들과 신부의 가족들은 요나의 연기에 넘어오고 있었다. 민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 하겠 는지 자신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 대는 요나를 밀어 버렸다. 요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남자의 강한 힘에 버티기는 역부족 이였기에 연 회석이 마련되어 있던 테이블 쪽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지만 그녀를 도와주 기 위해 일어선 남자 덕분에-그 남자의 손이 그녀를 잡자 사람들의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 려왔다.- 스텐레이스로 된 양판을 배에 넣고 테이블에 부딪치는 건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요나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천하의 나쁜 놈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괜찮니?" 채원와 인경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응. 너 가만히 두나봐라. 이 나쁜 놈아 네가 감히 내 친구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요나는 더 이상 임산부의 역할을 포기하기로 하고 배에 잘 집어 넣어둔 그릇을 꺼내어 들 었고, 그것으로 사정없이 민수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배가 갑자기 홀쭉해 진데다가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데서 그릇이 뛰어나와 민수를 때리는 것을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이 요나를 막아섰다. "뭐야? 임신한 것도 아니잖아." 누군가의 목소리에 태미는 팔을 잡고 있는 남자들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 나 임신 안 했어요. 저런 상종 못할 인간 아이를 가지느니 차라리 독신으로 살고 말 지."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민수에게 다시 다가섰다. 그리고 민수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작 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민수는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넋이 나간 표정 과 곧 쓰러질 것 같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나는 그와 상대하고 싶지 않아 아직도 재단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은 신부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요나는 아무리 친구를 위해서 라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식을 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시 망설였지만 신부의 눈빛에서 민수에 대한 사랑이 한치도 없음을 발견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친구가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한 것이었다. 요나가 보기에는 이제 모든 결정권은 신부에게 있은 것 같았다. "그쪽이 무슨 마음으로 저 파렴치한과 결혼하려는지 모르지만 저 인간-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켰다-은 인간 말종이에요. 제 뒷바라지해준 여자도 그 집도 버리고 당신하고 결혼하는 거예요. 결혼만 안 했다 뿐인 조강지처를 말이에요. 날 믿어요. 저 인간하고 결혼해서 득이 될 건 발톱의 때만큼도 없어요." 그 말을 한 뒤 요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친구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신부의 부모 측은 경악을 했지만 펀드 매니저로 촉망받는 그와의 결혼을 암묵적으로 강요를 했고, 신랑 측 가족들은 남자들은 그 정도 실수쯤은 하는 거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우리 민수 정도면 정말 훌륭한 신랑감이죠. 어디서 이런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겠어요. 우리 민수랑 결혼하는 여자는 호박을 넝쿨째 가지고 가는 거라니까요."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는 은주 만한 신붓감이 어디 있냐며 그녀의 돈을 모기처럼 빨아먹던 인간들이 이제는 그런 은주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아니 한낮 한번의 실수로 취급하고 있었다. "전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어요." 신부의 선언에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조용해 졌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요나와 친구들의 박수 소리에 또 한번 하객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어 졌다. 하지만 민수 만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신부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도 듣지 못 했는지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가려는 요나를 쫓아왔다. "우리 은주는 어디에 있어요. 은주가 정말로 아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어디서 그 더러운 입에 은주 이름을 올리는 거예요. 그래요. 은주 아이가졌었어요. 하지만 다행이죠. 은주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게 나을 거니까. 다시는 은주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우리가 이 정도로 끝내고 간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자."
유신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촐랑거리기만 할 줄 알았던 여 자는 완전히 이미지를 깨고 친구를 위해 여전사가 되었다. 유신은 헨드폰에 담겨진 동영상에 미소를 지으면 주머니 속으로 다시 핸드폰을 넣었다. 무 슨 목적이 있어서 그녀의 모습을 담아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담아두 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그는 그 욕구에 지고 말았다.
떴다!!! 그녀 {1.사랑 그 흔한말}
라이언의 하늘 부터 올려야 하는데....
떴다!!! 그녀를 먼저 올리게 되었어요. 라이언의 하늘로 곧 찾아 뵐께요. 생각보다 빨리 쓰게 되서 다행이죠.........
여러분 올 하루도 파이팅 입니다. 아자자자자자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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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밟는 고국의 땅이었다.
거창하게 웬 고국 피식!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연신 웃어대었다. 혼자 가방을 끌고 나오면서 하얀 이를 들어내면서 어찌나 많이 웃었는지 입국하는 관광을 하러 들어온 외국인들과 웃음에 박하다는 한국사람들 까지 요나을 바라보면 웃음을 되돌려 줄 정도였다.
그녀가 이렇듯 정신 나간 사람을 취급을 받아도 웃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그녀를 마중 나와 있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운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모든 것을 공유했던 친구들이었다. 아무리 많은 전화통화와 메일로도 그 그리움은 말라버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우물처럼 항상 목이 바싹바싹 말라있었다.
요나는 카터를 밀고 가면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그리웠던 고국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반갑다. 한국의 공기들아. 엄마야!"
쾅 하는 굉음 소리와 함께 요나의 카터 위에 실려 있던 방대한 양의 여행가방과 그녀가 친 카터의 짐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녀가 부딪힌 날카롭고 뭔가 마뜩치 않는 표정을 짖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짐들과 요나를 번갈아 보는 남자의 것과 같이 섞여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미안합니다. 아후 정말 미안해요."
요나는 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면서 연신 사과를 했다. 그녀는 당황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는 감정변화가 일어나면 항상 귀 뒤의 머리를 긁는 버릇이 있었다.
유신은 짐을 챙기면서 서도 긴 머리는 보글보글 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웃어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이 여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앞을 보면서 잘 가고 있는 그와 부딪친 것도 부족해 뭔가 떨어지지 않을 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손톱으로 긁어 대는 이 여자에게 오만 정이 떨어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요나은 짜증이 잔뜩 섞였지만 굵으면서도 낮게 깔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과도 했는데 이렇게 짜증을 내나?
하지만 요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도 알았고, 한국에 돌아온 기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꾹 참고 자신의 짐들은 그대로 놓아둔 채 본인의 짐들을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 치우는 남자의 손길을 도와 주어 담았다.
"서류 다 주어 담았지."
남자는 자신을 도와주는 요나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네. 그런데 노트북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컴퓨터는 제가 직접 챙겼어야 했는데.."
"어머! 노트북도 있었어요. 제가 변상해 드릴게요. 제 실수니까요."
하지만 차가운 눈빛의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찬바람을 일으키며 그 자리를 떠났고, 비서는 그런 자신의 상사와 요나의 짐들을 번갈아 보면서 잠시 고민하면서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었다.
"전 괜찮아요. 이거 제 연락처거든요. 혹시 컴퓨터에 문제 생기면 연락주세요. 제가 꼭 변상해 드릴게요."
"네. 죄송합니다. 도와드리지 못해서요."
자신의 상사와는 다르게 따뜻하게 생긴 남자는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고 상사를 따라 갔다.
"부잣집 따님이라도 되나보지. 선뜻 변상해 준다는 것을 보면. 부모 잘 만나서 저 정도지 없는 집에서 태어났다면 누가 저런 칠칠치 못한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겠어."
요나는 그녀와 나동그라진 짐을 남겨 놓고 가는 고급 양복을 입었지만 근육질의 몸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쪼잔하냐. 흥 짐 좀 떨어뜨렸다고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고 도와주지도 않고 가네. 인물이 아깝다. 하느님도 너무하시지 이왕에 주실 거 좋은 매너 좀 팍팍 좀 쏘시지 인물만 쏴 가지고 외로운 처녀 마음을 아프게 하시는 구만."
하지만 남자의 날렵한 뒷모습에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요나는 짐을 챙기자 바로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나갔다.
그녀가 출입국 문을 벗어나자 많은 사람들 틈에서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고, 요나는 그들을 위해 손을 높이 들어 크게 흔들었다.
그렇게 친구들을 찾으면서 요나는 아까 부딪친 남자의 모습을 찾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과의 연은 거기 까지었는지 그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아쉽다.
"요나야. 어서 와."
그런데 그녀들 마중 나온 친구 중에 곧 결혼한다던 은주가 보이지 않았고, 나와 있는 채원과 인경이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은주는? 너희들 무슨 일 있니?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선 여기서 나가자. 가면서 이야기 해줄게."
요나는 당장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공항에서 뭔가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없이 친구들과 짐을 나누어 들고 공항을 벗어났다.
"무슨 일인데 그래? 빨리 말해봐."
그녀의 닦달에 인경은 운전하는 채원 대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은주가 병원에 입원했어 그게…."
"뭐? 어디가 아파서 곧 결혼한다니까 스트레스가 심했구나. 심각하지는 않지?"
언제나처럼 요나는 상대방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 질문을 했다.
이것도 그때 생긴 그녀만의 상처 치유법이었다.
"그게 있잖아…."
"어휴 답답해 빨랑 좀 말해봐."
"은주… 자살 기도했어."
"뭐를 해?"
그렇게 상처받아 눈이 아파서 더 이상 울 수 없을 때까지도 울어보고 몇 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었던 요나 이었지만 그래도 죽음만은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요나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은주가, 그 밝고 착한 은주가 죽을 생각을 했다면 그녀에게 보통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결론은 딱 하나 뿐이었다.
"민수씨가 배신한 거구나."
"응. 그 바보 같은 계집에가 배속에 애도 있는데 죽을 결심을 한 거 보면 상처를 많이 받았나봐. 사실 우리도 일이 이렇게 까지 된 줄 모르고 있었어."
그건 요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많은 통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도 은주의 어두운 마음의 그늘을 보지 못했다. 잘못이라면 한국에 있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요나에게도 있었다.
"아이는."
"아이는 죽었어. 차라리 잘됐지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미 결혼식을 올리는 남자 아기를 낳아서 뭐하겠어."
은주는 친구들 중에 그 누구보다도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낳는 게 꿈이었던 여자였다.
채원의 말에 눈을 든 요나는 거울을 통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은주를 놓아두고 결혼을 해. 그게 언제야."
"오늘이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녀들은 유린당한 채 버려진 친구와 세상에 태어나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를 위해 한 곳으로 마음은 달리고 있었다.
요나는 잠시 살 물건이 있다면서 차를 세웠다.
그녀가 사들 고온 물건에 친구들은 침울한 분위기에서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널 누가 말리겠냐. 하지만 좋다. 우리 해볼 때까지 해보는 거야. 우리 소중한 은주를 위해서."
그녀들에게 누구누구와 더 친하고 덜 친하고는 없었다. 네 명 모두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면 그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작은 집단일 뿐이었다. 그러니 서로의 기쁨을 같이 했던 그녀들에게는 은주의 아픔도 그녀들의 아픔이었던 것이었다.
"정말 완벽하다."
인경은 실소를 터트리면서 요나가 사온 물건들을 만져보았다.
"자 출발 여자 등골 빨아먹는 것도 부족해 그 여자 뒤통수 갈기는 놈 잡으로."
"아 자."
세 여자는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졌고, 복잡했지만 신의 도움인지 제 시간에 결혼식이 열리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싸가지 없는 놈이 은주네 집에서 뒷바라지 해준 돈으로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더니 돈 많은 여자를 물어 이런 비싼데서 결혼식을 올린단 말이지."
그녀들은 아까 요나가 사가 지고 온 물건을 가지고 먼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오는 여자들이 이상한 눈총을 보내도 그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을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그럴싸한데."
채원와 인경은 완전히 변화된 요나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웠고, 요나 역시 임부복 안에 볼록하게 튀어 나와 있는 자신의 배가 만족스러워 한번 쓸어 내려보았고, 그런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곧 산달을 앞둔 여자처럼 보였다.
"정말 임산부 같지. 자 준비 됐지."
"응."
"그럼."
요나의 질문에 두 친구는 동시에 대답을 했고, 그들은 결혼식장을 향해 씩씩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유신은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집으로 가지도 못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사무실에도 들리지 못하고 사촌여동생의 결혼식장에 온 것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지우를 사랑하기에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일이
지만 왠지 처음부터 동생의 신랑이 될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식장에 오고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가 등장하자 한쪽에서 뭘 무슨 주름이 있는 지 연신 웨딩드레스를 펼쳤다가 모았다가 하
던 웨딩 플래너 들이 유신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흥분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유신은 오직 동생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오빠! 날 보러 왔으면 와서 웃어주면서 축하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유신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공주처럼 앉아 있던 지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불만 어린 것
이 분명한 그녀의 목소리에 자신이 입구에 서서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동생의 눈빛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어설픈 미소를 띄우며 아름다움 자태를 자랑
하고 있는 동생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친구가 연신 찍어 대는 사진기 앞에 포즈를 잡았
다.
"축하한다."
"피이. 거짓말인 거 다 알아."
지우의 결혼은 집안 어른끼리 정한 약속이었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말이라면 죽을 각오
라도 되어 있는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그 남자와 약혼을 했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던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
유신의 말에 지우는 처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오빠도 알잖아. 나도 이런 내가 싫지
만 이게 내 모습인걸 오빠라도 이런 날 이해해 줘. 그럼 힘이 날것 같아."
유신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하는 동생의 들어 난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려 어
깨를 쥐어주었다.
"결혼식이 곧 시작되오니 모든 하객 분들은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그들의 교감은 사회자의 방송으로 끝나버렸다.
"식장에 먼저 가있을게."
유신은 웨딩플레너의 도움으로 마무리 치장을 하는 동생을 놓아두고 호텔 예식장에 마련된 가족들만의 자리로 이동을 했다. 유신은 지우와 몇몇 친척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왕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는 그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무척 어색해 보였다.
그들은 부유하면서도 유신의 집안이 어려움에 쳐했을 때 단 한번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어진 부도에 어머니는 쇠약해진 노모와 아들을 돌보기 위해 친척들을 찾아 나섰지만 그들은 그런 어머니를 무시했고, 상처만 주었다.
옛날 일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프랑스로 여행을 가신 어머니의 당부 때문에 얼굴에 어떤 감정도 들어내지 않았다.
유신은 차라리 직원들이나 이웃들이 잘 어울리지 않는 친척들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불편한 기색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능청스럽고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면 식장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신랑과 그 뒤를 이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아름다운 자태의 동생을 눈길을 때지 않고 지켜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수라는 남자에게는 지우가 아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유신은 동생의 부탁대로 그저 조용히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저 허우대만 멀쩡하게 생긴, 어디에 쓰려고 해도 쓸데가 없는 놈이 혹시라도 지우를 울리기라도 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는 상상을 하면서 마음을 달래었다.
"이로써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잠∼깐∼만∼요∼."
갑자기 주례사의 말을 끊고 식장 안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여자의 목소리에 식장의 분위기는 찬물을 껴 얹은 것처럼 쫙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나타난 여자들의 등장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유신 역시 소란의 근원지인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려 누가 결혼식을 중단시키는지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란을 피우고 있는 여자들 중에 배가 남산만큼 나와 임신한 것이 확연해 보이는 여자가 왠지 눈에 낯설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배도 나와 있고, 임부 복을 입고 있었지만 저 인상적인 보글보글한 머리를 한 그녀는...
"저 여자는 ..... 맞아. 공항에서 촐랑거리던 여자."
그런데 언제 임신을 한 거야?
유신은 그녀가 가짜 임신을 한 걸 알았지만 그냥 앉아서 이 소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로 하고 식장 안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이 되어 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다시 앉았다. 이번 일이 동생에게 이롭게만 흘러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촐랑거리는 아가씨. 어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줘보라고.
여자들은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요나는 주책 맞도록 뛰는 심장을 내버려 둔 채 뻔뻔스럽게 턱시도를 입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신랑이 될 남자와 요나 일행을 지켜보는 신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친구들과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엎질러 저 버린 물이었다. 갈 때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야! 이러다가 우리 하객들한테 먼저 맞아 죽는 거 아니냐?"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글씨를 잘못보고 식장을 잘못 찾아 들어가 아차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의 결혼식을 망칠 뻔하고 나자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한번 죽지 두 번 죽지는 않으니까 용기를 내."
요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두 다리는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봐요? 무슨 짓입니까?"
민수의 친구들로 보이는 몇몇의 남자들과 가족들이 그녀들을 저지했지만 요나와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단 앞에까지 걸어나갔다.
"요나씨. 언제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임신은 언제 한 거예요?"
민수라는 뻔뻔한 남자는 은주의 친구들인 그녀들이 무슨 일을 벌릴 줄 미리 짐작을 하고 먼저 선수를 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거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그녀들이었다.
"그냥 조용히 가지 그래요. 내가 은주 약혼자라는 게 알려지면 손해 볼 사람은 은주아닌가요."
민수는 태연히 요나에게 나가와서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말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요나는 용기를 얻었다.
내 연기 실력을 확실히 보여줄 차례가 됐군.
요나는 어릴 적 연극을 했던 경험을 살려 최대한 실연 당하고 버림받은 여자의 역할을 연출해 냈고, 이미 한번 경험이 있는 그녀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의 연기에 친구들은 감탄했고, 하객들은 경악했다.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 애기 나면 나랑 결혼한다고 그렇게 철썩 같이 약속을 하더니 딴 여자하고 결혼을 해."
하지만 그녀의 연기에 민수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부와 가족들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왜 이래요. 요나씨? 우리가 언제...."
이번엔 요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고! 여러분 이 남자 천하에 나쁜 놈 좀 보세요. 조강지처를 버리고 돈 많은 여자하고
결혼을 한데요. 세상에 이런 법은 없어요. 네가 날 버리고 잘 살 것 같아."
민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하객들과 신부의 가족들은 요나의
연기에 넘어오고 있었다.
민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자 더 이상 화를 참지 못 하겠
는지 자신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 대는 요나를 밀어 버렸다.
요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남자의 강한 힘에 버티기는 역부족 이였기에 연
회석이 마련되어 있던 테이블 쪽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지만 그녀를 도와주
기 위해 일어선 남자 덕분에-그 남자의 손이 그녀를 잡자 사람들의 안도의 한숨소리가 들
려왔다.- 스텐레이스로 된 양판을 배에 넣고 테이블에 부딪치는 건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요나는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천하의 나쁜 놈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괜찮니?"
채원와 인경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응. 너 가만히 두나봐라. 이 나쁜 놈아 네가 감히 내 친구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잘
살 거라고 생각했어?"
요나는 더 이상 임산부의 역할을 포기하기로 하고 배에 잘 집어 넣어둔 그릇을 꺼내어 들
었고, 그것으로 사정없이 민수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배가 갑자기 홀쭉해
진데다가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데서 그릇이 뛰어나와 민수를 때리는 것을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바라보던 사람들이 요나를 막아섰다.
"뭐야? 임신한 것도 아니잖아."
누군가의 목소리에 태미는 팔을 잡고 있는 남자들의 손을 뿌리쳤다.
"그래 나 임신 안 했어요. 저런 상종 못할 인간 아이를 가지느니 차라리 독신으로 살고 말
지."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민수에게 다시 다가섰다. 그리고 민수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할 작
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민수는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넋이 나간 표정
과 곧 쓰러질 것 같이 창백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나는 그와 상대하고 싶지 않아 아직도 재단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은 신부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요나는 아무리 친구를 위해서
라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결혼식을 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시 망설였지만 신부의 눈빛에서 민수에 대한 사랑이 한치도 없음을 발견하고 안심할 수
있었다. 친구가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감정도 소중한 것이었다.
요나가 보기에는 이제 모든 결정권은 신부에게 있은 것 같았다.
"그쪽이 무슨 마음으로 저 파렴치한과 결혼하려는지 모르지만 저 인간-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켰다-은 인간 말종이에요. 제 뒷바라지해준 여자도 그 집도 버리고 당신하고 결혼하는
거예요. 결혼만 안 했다 뿐인 조강지처를 말이에요. 날 믿어요. 저 인간하고 결혼해서 득이
될 건 발톱의 때만큼도 없어요."
그 말을 한 뒤 요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친구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신부의 부모
측은 경악을 했지만 펀드 매니저로 촉망받는 그와의 결혼을 암묵적으로 강요를 했고, 신랑
측 가족들은 남자들은 그 정도 실수쯤은 하는 거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우리 민수 정도면 정말 훌륭한 신랑감이죠. 어디서 이런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겠어요.
우리 민수랑 결혼하는 여자는 호박을 넝쿨째 가지고 가는 거라니까요."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언제는 은주 만한 신붓감이 어디 있냐며 그녀의 돈을
모기처럼 빨아먹던 인간들이 이제는 그런 은주는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아니 한낮
한번의 실수로 취급하고 있었다.
"전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어요."
신부의 선언에 결혼식장은 순식간에 조용해 졌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요나와 친구들의 박수
소리에 또 한번 하객들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어 졌다.
하지만 민수 만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신부가 자신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도 듣지 못
했는지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가려는 요나를 쫓아왔다.
"우리 은주는 어디에 있어요. 은주가 정말로 아이를 가지고 있었어요?"
"어디서 그 더러운 입에 은주 이름을 올리는 거예요. 그래요. 은주 아이가졌었어요. 하지만
다행이죠. 은주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게 나을 거니까. 다시는
은주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 우리가 이 정도로 끝내고 간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자."
유신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촐랑거리기만 할 줄 알았던 여
자는 완전히 이미지를 깨고 친구를 위해 여전사가 되었다.
유신은 헨드폰에 담겨진 동영상에 미소를 지으면 주머니 속으로 다시 핸드폰을 넣었다. 무
슨 목적이 있어서 그녀의 모습을 담아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담아두
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고, 그는 그 욕구에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