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어라! 조선아! ] 제6장 태양검의 전설

임이록200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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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 태양검의 전설

 

인구 1000만이 넘는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
관서일본의 중심도시로 관동의 도쿄와 더불어 일본을 양분하는 항구도시이다.

16세기 말, 서민출신으로 일본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배출한 이 도시는, 오사카 문화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사카 안방이라고 불리던 다카라스카 중앙으로 흐르는 무코가와(武庫川)는
좌우로 온천과 요정을 만들어 냈고, 롯코산(大甲山) 동북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앉은 전통일본식 대저택은 오사카섬의 위용과 더불어 오사카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400여 년을 면면이 이어온 이 거대한 저택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더불어
오사카의 자부심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니니 유키나가의 대저택인 것이다.

그 저택은 1943년 지금의 고니시 히사요시가 원형대로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0여 명이 족히 앉아 여흥을 즐길만한 드넓은 대청, 그 대청마루 깊숙한
상좌에 칠순의 노인이 근엄하게 앉아 있다. 이름은 고니시 히사요시, 임진왜란
당시 조선침략에 선봉장이었던 대장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21대
후손이며 중의원을 지낸 일본정계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날선 검을 검집에서 조심스럽게 빼내고 있었다.
그의 앞으로 서너 걸음쯤 떨어진 자리에 단정히 무릎끓고 앉은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연다.

  “인사동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태양검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도
   마치지 않고 급히 귀국했습니다만….”

검을 뽑아든 히사요시는 짧은 신음을 토해낸다.

  “다이오겡(太陽刀)이다!”

순간 사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정말입니까? 정말입니까, 어르신?”

  “수고했다. 네가 큰 일을 해냈구나.”

― 아! 내가 고니시가문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태양검을 찾아내다니!
  사내는 뛸 듯이 기뻤다.

이 가문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사내를 감동으로 떨게 한다.

이 공적 하나만으로도 자신은 이제 대대손손 이 가문에서 집사직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히데오를 불러오라.”

대저택의 뒤뜰에는 벚꽃이 만연했다.
파릇한 봄바람이 벚꽃향에 취해 춤을 춘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뒤뜰의 정원이 화사하고 아름답다.
벚꽃나무 사이로 사내가 칼춤을 춘다.
날선 칼의 섬광이 시샘하듯 봄바람을 가른다.

  “히데오 도련님!”

우아하게 추고 있던 칼춤이 너무 아름다워 집사는 목구멍에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만 벌렸다.

칼춤을 추던 사내의 손동작이 멈춘다.
봄바람에 실려 날던 벚꽃잎이 네 잎으로 쪼개지며 허공에서 너울댄다.
고니시유키나가의 23대손 고니시히데오는 자신의 칼을 서서히 칼집에
밀어 넣으며 집사를 돌아본다.

  “할아버지께서 찾고 계십니다.”

집사는 히데오 앞에서 늘 움츠렸다.

이제 이십육 세의 젊은 히데오, 범상치 않은 풍모가 흘러 넘쳤다.
고니시히사요시 노인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살기마저 그는 느끼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본 미남자로 뭇여성의 마음을 들뜨게 한 고니시히데오는 검술의 달인이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조부의 손에서 자란 고니시가문의 종손이자 자랑이었다.
넓은 대청에 올라선 히데오는 할아버지 히데요시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드디어 태양검을 찾았다!”

히사요시의 두꺼운 일자 입에서 결연한 음성이 터졌다.
순간 히데오의 눈썹이 씰룩였다.
검은 눈동자가 경련하듯 떤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검은 나타나지 않는 게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랬다.
태양검이 나타났다는 것은 고니시가문의 선조인 고니시유키나가님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한반도 은밀한 혈맥(穴脈)에 숨겨놓은 고니시가문의 상징, 태양검이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 너는 오늘밤 선조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그 분께서
   밀봉하여 우물 속에 넣어 둔 유시(諭示)를 개봉하라!”
 
  “하잇.”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무거움이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조석의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산들부는 바람에도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벚꽃이 떨어진다.

대저택의 뒤뜰, 히데오는 우물 속에서 방금 꺼낸 옥으로 만든 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옥함 중앙에 새겨놓은 태양문양이 달빛을 받아 선명하다.

― 이 속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궁금한 생각에 당장이라도
   옥함을 깨고 싶지만 조상의 유지(遺志)를 받들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이 몸을 씻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집사는 우물 옆에 미리 준비한 나무로 된 전통목욕통 속에 우물물을 채워 넣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냉수욕을 하던 도련님이었기에 찬기만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온천물을
섞어가며 온도를 조절하는 듯 했다.

히데오는 벅찬 감동을 억누르며 기모노를 서서히 벗는다.

―우리 가문이 유키나가 할아버지 이후 21대에 이르도록 태양검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태양검은 전설로만 회자되지 않았던가! 나 히데오는 감히 선조이신
  유키나가 할아버지의 유시를 받들게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내용의 유지가 하명되더라도 목숨을 걸고 받들 것이다.
히데오는 결연한 모습으로 목욕통 속에 자신의 몸을 넣었다.

  “나오코를 불러주시오.”

  “알겠습니다, 도련님.”

집사는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저택의 모퉁이에서 기모노 차림의 이제 갓 스물이 넘은 여자가,
얼굴에 홍조를 띄며 총총이 걸어온다.

벚꽃향과 달빛에 어울리는 청초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히데오의 옆으로 다가와 큰절을 올리고는 이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통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근육으로 뭉친 돌처럼 탄탄한 사내의 몸을 씻기 시작했다.

― 아! 히데오님, 나오코는 꿈에 그리던 사내, 히데오의 몸이 자신의 손에 닿자
   전율하듯 떨며 탄성이 새어 나왔다.

심장이 요동을 쳐 손을 움직여 히데오의 몸을 닦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손을 살며시 잡아준 건 히데오의 억센 손이었다.
순간 나오코의 온몸은 전류가 흘렀다. 심장은 더욱 뛰어올랐다.

  “나오코, 더 예뻐졌구나.”

히데오의 굵은 목소리가 나오코의 가슴을 팠다.

  “도…련님은 더욱 늠름해 지셨어요.”

  “내가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줄곧 네 생각을 했지, 세라복을 입은 예쁘고
   발랄한 네 모습만을 떠올렸다.”
 
  “저…저두요.”

  “넌 단발머리 소녀였는데, 벌써 이렇게 여물어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가졌구나.”

히데오의 손끝이 나오코의 젖무덤을 스치고 지나간다.

― 아! 그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나오코도 사내를 느낄 때가 되었구나!

  “도…련님.”

나오코는 집사의 딸이었다.
어린 아이 때부터 히데오를 친오빠처럼 따랐고, 히데오도 나오코를 동생처럼 아껴주었다.

나오코가 사내를 느낄 무렵 히데오는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고,
그녀는 긴긴 밤을 히데오 생각으로 보내야 했다.

며칠 전 히데오가 영국에서 돌아왔지만, 나오코는 먼발치에서 히데오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히데오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기대하며…….

나오코는 떨리는 손으로 히데오의 몸을 씻어 내렸다.
― 히데오님이 나를 찾아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나오코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제인가 히데오가 운동을 마치고 이 우물가에서 등목을 했을 때, 히데오의 등에
물을 끼얹어 주고, 그 몸의 물방울 하나 하나를 정성스럽게 닦던 일이 생각났다.

― 그날 밤, 나는 행복에 젖어 한잠도 자지 못하고 날을 새우지 않았던가!

히데오의 손길이 나오코의 어깨 위에 얹혀졌다.
그리고 서서히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오코의 옹다문 작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며 벌어졌다.
히데오의 부드러운 손끝이 그녀의 옷깃을 밀어내며 터질 것 같은 젖무덤을 어루만진다.
나오코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요동치며 뜨겁게 타올랐다.

― 도련님……. 벌겋게 달아오른 감정을 애써 감추려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이대로…이대로 히데오의 넓은 가슴에 눕고 싶을 뿐이었다.

― 이제 나오코도 사내를 느낄 때가 되었구나. 히데오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성숙해진 몸을 느낀 대로 한 말일까, 아니면 나의 몸을 원한다는 말일까,
나오코는 히데오의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만큼 타오른
자신의 몸을, 억센 두 팔로 끌어안아주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제 됐다, 나오코!”

무심한 히데오는 애절한 나오코의 마음을 알지 못한 듯,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고는 이내 일어섰다.

나오코는 황급히 기모노를 챙겨 히데오에게 건네준다.
히데오는 걸어가면서 기모노를 걸쳐 입었다.

  “그 옥함을 들고 따라 오너라.”

부드럽던 그의 입에서 냉정함이 흘러나왔다.
나오코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에게만은 언제나 부드러웠던 그였기에 싸늘하게 뱉어낸 그의 한마디는
그녀를 한없이 서럽게 했다.

나오코는 후끈 달아올랐던 자신의 감정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흩어진 옷깃을 추스렸다.
그리고 우물 옆에 놓인 옥함을 가슴으로 안고 총총히 히데오의 뒤를 따랐다.

히데오의 서재. 양쪽 벽에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고 안벽 중앙에 일본도가 걸려 있다.
안벽의 우측으로 일본무사의 갑옷과 투구가 진열되어 있고 서재의 중앙에는 우물 속에서
꺼내 온 옥함이 놓여 있다.

상석에 앉은 히데오는 한 손에 망치를 쥔 채 지그시 눈을 감고 할아버지의 말을 묵상했다.

― 유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무른다. 그러나 우리 고니시 가문의 가솔들은
그 유시내용을 우리 가문의 명예를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히데오는 조용히 망치든 손을 올렸다.

― 나에게 닥쳐올 운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난 두려움 없이 맞이할 것입니다.
   히데오의 망치든 손이 허공을 가르며 옥함을 향했다.

  “퍼억―”

4백여 년, 진공상태로 밀봉됐던 함이 깨어졌다.
히데오는 긴장하며 깨어진 옥함 속을 내려본다. 그것은 대나무를 쪼개 끈으로 엮은 죽찰이었다.

― 저 죽찰에 유키나가 할아버지의 유지가 적혀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히데오는 한참동안 끈으로 묶여 있는 죽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죽찰을 집어든다.
   그리고 천천히 죽찰을 감고 있는 끈을 풀었다.
   죽찰 안쪽으로 또박또박 흘려 쓴 유지가 히데오의 눈으로 들어왔다.


  ‘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통한의 심정으로 고니시 가문의 후손들에게 이 글을 남긴다.
   각고의 칠 년 세월을 우린 그렇게도 소원이던 조선정벌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우리가 조선 정벌에 실패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군주님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조선반도 땅덩어리에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정기(情氣)가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전으로 단련된 오십만대군을 투입하고 무려 7년의 세월을 쉴 새 없이 난타했지만
   어째서 우린 조선을 정복하지 못했을까?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반도의 지세(地勢)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반도는 한마디로 하늘로 솟구치기 직전의 호랑이의 형세다. 만약 호랑이 형세의 조선반도가
   포효를 터뜨린다면 뒷발을 박차며 일본열도를 짓부수고 하늘로 차올라 중국을 앞발로 찍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조선반도의 이러한 지세를 누르지 못한다면 우린 영원히 조선을 장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난 훗날 조선반도 호랑이를 주저앉히는 방법으로
   혈맥(穴脈) 을 따라 옆구리에 두 개, 정강이에 두 개, 발목에 두 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명치에
   한 개씩 모두 일곱 개의 쇠말뚝을 조선 땅덩어리에 깊숙이 찔러 두었다.
 
   그리고 우리는 조선을 떠나가지만 이 혈맥을 눌러 정기를 잠재우는 것이 효과를 본다면 언젠가  
   우리는 조선을 정복하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조선반도의 삼십육 방위에 수백 개의 쇠말뚝을
   더 박아서 조선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조선반도에 박아둔 쇠말뚝이 누군가에 의해서 뽑혀진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뒷발에 우리 일본열도가 순식간에 무너질 운명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난 훗날 쇠말뚝이 뽑히는 것을 미리 감지하려고 무덤으로 위장하여 호랑이 옆구리에 해당되는
   지역에 찔러둔 쇠말뚝 옆에 태양검을 함께 놓아두기로 하였다.
  
   만약 태양검이 나타나면 누군가 내 의도를 알아차리고 쇠말뚝을 뽑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막아라!
  
   우리 가문의 힘을 모두 모아 쇠말뚝이 뽑히는 것을 결단코 막아야 한다!

선조의 유시 내용을 묵상하며 히데오는 떨고 있었다.
참으로 국운이 흔들릴, 엄청난 내용이 아닌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을 때 한국의 한 친구로부터 쇠말뚝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 본다.

그 친구는 일본이 삼십오 년의 조선지배 기간에 수많은 양민들을 탄광으로 끌고 갔으며,
어린 처녀들을 정신대로 끌고 갔고 조선의 기를 잠재우기 위해 삼십육 방위 혈맥마다 수백
개의 쇠말뚝을 박았다며 일본을 원망하지 않았던가.

지배당한 민족의 아픔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도 어이없고 기가 막힌 노릇이라고 했다.

이제 그 한국인의 말이 사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우리 고니시 가문의 위대했던 선조 고니시 유키나가 할아버지가 아닌가!
히데오의 심장은 천둥치듯 뛰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일곱 개의 혈맥에 박힌 쇠말뚝이 뽑히는 날 포효하며 뛰어오르는 호랑이의
뒷발에 일본열도가 차여서 바스러지는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 안돼! 히데오는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고 등줄기까지 젖어들었다.

― 지켜내겠습니다.
   이미 한 개의 쇠말뚝은 뽑혔지만 나머지 여섯 개는 이 히데오가 꼭 지켜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