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0월. 여름 여행에 대한 평가에 시시비비가 갈렸다.. 정말 친구들이 좋았다는 찬성파와 다시는 같이 몰려다니지 않겠다는 신당파(민주당 같이)로 갈렸다.. 물론 나는 찬성파로서 다시 겨울을 생각케 했다. 다가오는 이 겨울 어떤 사건으로 보낼 것인가???
찬성파는 뭔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그때 새로이 시작한 보링의 페펙트 도전, 승마를 경험해보자는 둥... 그러나 선견지명이 있던 저는 겨울 스포츠의 총아이며, 그때까지 남들이 별로 못해보는(지금이나 개나 소나 다하지만) 스키장에 다녀 올 것을 제안하여, 다시 알바를 준비 했다.. 물론 그때는 학생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알바가 거의 없으니까... 욕심에 친구 동생들 4명을 영수만 매일(돈 많이 받으려고, 실제 공부 잘하는 얘들이라서)했죠..
그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내는 용평스키장과 강원도 평창 두곳인데(지금이야 언덕만 비비면 스키장이지만) 평창은 군바리 아저씨와 선수들이 가는 곳이고 리프트도 시설 중이래요, 물론 교통도 문제고 그래서 용평을 조사했죠... 그때 무슨 인터넷이 있습니까, 여행사 정보가 있습니까? 미팔군 홍보실에 친구 누나로부터 영문 안내 책자를 받았어요.. 물론 번역 해 야죠... 기억나는 것은 국내 유일의 스키 리조트!!(그때 리조트는 사전에도 없었어요)
3개의 슬로프에 3개 리프트(엘로우, 핑크, 레드-코스별로 슬로프가 차이나요-레드는 못 가봤슴--무서워요)에 주원호텔 4층 짜리 규모에 주화호텔이 건설 중--주 내용이 이랬어요..
그런데 해결해야 할 건이 두 가지가 있어요- 교통과 주원호텔 숙박비(일인당 3만원), 1회당 리프트 8천원, 스키 렌트 12,000원.(그 당시는 너무 비싸서)
교통은 2번 갈아타는 요령을 알았고, 문제는 경비인데, 부자집 놈은 좋겠지만 가난한 난 어쩌란 말인가??? 이때 번뜩이는 idea는 장사하자...........입니다.
서울 이태원은 그 당시 미군들의 삶의 터전이고 생활의 장소였어요... 그래서 미군 아파트 앞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문제는 item이 뭐로 해야하나?
바로 Christmas candle입니다... 미군 교회 앞에서 초파는 걸 봤어요? 물론 다양한 색에 크기 모양은 요즈음과는 다르지만........ 1,000원에서 5,000원까지 다양하게 좌판을 벌였죠... 근데요 문제는 또 있데요,,, 그 당시가 11월초부터 12월초까지니까 학기말 시험이 걸리잖아요.. 서로 학교도 다르고, 심지어 여학생도 있는데....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제 친구의 넘 여자지만... 또 그 해는 왜 그리도 춥든지.... 우여곡절 끝에 12월 22일 장사를 마치고 나니 겨우 27만원인가가 번 돈이었죠... 허탈했죠..........
1976년12월26일에 마장동 시외 터미날에 남친3과 여친2명, 총 6명이 청바지 차림으로 잠바입고 모였는데.... 여름의 경험 삼아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 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버너, 코펠을 겨우 준비해서 절약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용평 읍내에서 또 갈아타고.... 그런데 문제는 용평스키장에 도착해서였죠.. 이시는지 모르지만 스키장은 간호사 아줌마들 교대 마냥 day와 night로 구분되거든요... 나이트는 보통 저녁 7,8시에서 10시까지인데 도착하니 9시여요... 한시간 스키 빌리고 리프트 값 내면 적자죠.. 그래서 오늘은 포기다 하고 호텔 후런트에 난생처음 서서 물어 봤더니 sweet room(4인용) 밖에는 없는데 그나마 지금 생각나지는 않지만 한 학기 등록금 수준입니다. 작전 변경해서 읍내로 방향을 잡았는데... 차가 떨어졌다나????????? 아이고 끔직 해라... 방법을 찾아 봐도 걸어가는 방법 외에는 없대요..
2-3시간이요... 그 눈길에 말입니다........ 스키장 눈송이는 왜 그렇게 커요???
한참을 가다보니 두덜대는 놈이 있어요... 왜냐면 3박4일에 무겁게 쌀은 왜이리 많이 갖고 와서 무겁냐고요.......... 깜깜한 밤에 길만 보이는 날리는 흰 점박이 눈길은 그 후 군대에서 다시 봤어요.....으으.. 달래고, 뛰고(내일 스키타려면 체력 훈련이 필요하다고)해서 겨우 읍내는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시골 읍내의 겨울밤은 왜 그리도 빨리들 자는지? 겨우 불켜진 집에 2만원 주기로하고 보니 신발이며. 바지는 넘의 것입니다.. 그래도 12시인데 라면은 먹어야죠.........
겨우 2시 넘어서 남녀가 한방에 감히 잤죠.... 다 큰 여자들도 잠버릇 남자와 다름 없음을 확인했어요.. 읍내 버스타고 아침 10시에 열리는 것도 잊고 스키장가니까 7시반... 밥 먹어야줘.. 집 떠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배는 왜 그리고픈지.... 별사고 없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강사가 하는 걸 어깨 넘어 터득해서 옐로우와 핑크 코스를 마스터 했어요.(운동신경이 되니까). 물론 매일 읍내로 출퇴근하면서 말이죠........ 하긴 그 당시 거의 외국인 밖에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요즘 마냥 스키복이 있어요? 고글(썬그라스)이 있나요? 청바지에 잠바가 전부고 목 장갑이면 OK죠, 스키 폴은 손시려워서... 오는 날은 일찍 서둘렀어요..
이대 앞에서 약속이 있어서요..(그 당시는 신촌, 종로가 주로 무대임) 오후 5시가 되어서 요즈음 말하는 스키장 방문기념 뒷 풀이를 했는데 돈이 남아서 그 당시 말로 고고장(참 오랫만에 쓰네)에 갔지요. 그런데 1차 후 여친들 보내고 그 날 할 수 없이 고고장 재탕했어요.. 왜냐면 학교 동기가 군대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땐 12시 지나면 당연히 새벽4시니까요.. 외박한 거죠. 제 동기는 3수생이 많았어요.. 늙어서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씩 갔죠... 이때 이야기 한번 할까요. 고고장 풍경???(종로, 명동, 청계천)
경제논리를 보면 최소의 자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해야 지요... 무슨 얘기냐면 그 당시 1급 호텔 외에 다른 고고장은 2가지 급으로 나눠요. 3급은 요즈음과 같은 콜라텍 수준(기본 저렴 만원정도), 2급은 싸구려 벤드에 적당히 춤추는 지저분한 테이블의 2만원대 수준 고고장... 보통 2급 수준에서 대학생 쌍쌍파티를 하죠...(나중에 100쌍 기념 쌍쌍파티를 글에 한번 올리겠음) 그런데 학생 신분에 4명의 정족수를 초과하면 테이블과 기본이 초과하는데 이를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새벽 4시까지 버티려면 대단히 어렵씀)
대처방안 첫째는 4명 이상인 경우는 초과인원을 축출 다른 테이블에서 1시간씩 버텨야 함. 방법은 다른 테이블에서 아는 사람 마냥 웨이터의 눈길을 피해야 함. 또 테이블 옮겨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안되면 스테이지에서 마냥 춤춰야 함. 또 화장실에서 시간도 못 보냄.. 칙칙이 아저씨가 지키고 있음. 이럴 때 선배라도 만나면 고생 끝입니다. 둘째는 모자라는 술과 안주 건입니다. 기본은 원래 3개2개입니다..(알죠? 맥주3개 안주2개) 그러나 장기전(11시에서 새벽 4시까지)에 돌입하려면 당연히 술이 모자라죠. 그 대처 방안은 입구 출입 시 특공대를 조직해서 4홉들이 소주2병(나중에 맥주 다 마시면 시끄러운 시간에 맥주병에 쏟아 붑니다)과 보조로 라벨(맥주 라벨)이 다 떨어진 맥주를 2병삽니다(그 당시는 얼음에 잠거 둔 맥주를 잘 팔아서 라벨이 잘 떨어 짐). 이것은 혹시 아가씨와 테이블에 앉는 경우 사용합니다.(메너 상 소주는?) 이때 가방은 가운데를 여는 70년대 대학생 가방입니다. 물론 고고장 가기 전에 소주로 무슨 안주든 해서 자신 주량에 80%정도 취해야 장기전에도 대비가 됩니다. 그 당시 춤은 주로 막춤이라서 에너지 소모가 많습니다... 이런 대비책이 없으면 주로 12시전에 버스표 밖에 없는 학생은 쫒겨 납니다.. 난감하지요.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고 다음날 7시반 학생증 보여주고 훈방으로 나오죠..(경험 있음)
스키장사건
스키장 사건 등장인물 남4명 여2명
1976년 10월. 여름 여행에 대한 평가에 시시비비가 갈렸다.. 정말 친구들이 좋았다는 찬성파와 다시는 같이 몰려다니지 않겠다는 신당파(민주당 같이)로 갈렸다.. 물론 나는 찬성파로서 다시 겨울을 생각케 했다. 다가오는 이 겨울 어떤 사건으로 보낼 것인가???
찬성파는 뭔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그때 새로이 시작한 보링의 페펙트 도전, 승마를 경험해보자는 둥... 그러나 선견지명이 있던 저는 겨울 스포츠의 총아이며, 그때까지 남들이 별로 못해보는(지금이나 개나 소나 다하지만) 스키장에 다녀 올 것을 제안하여, 다시 알바를 준비 했다.. 물론 그때는 학생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알바가 거의 없으니까... 욕심에 친구 동생들 4명을 영수만 매일(돈 많이 받으려고, 실제 공부 잘하는 얘들이라서)했죠..
그 당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내는 용평스키장과 강원도 평창 두곳인데(지금이야 언덕만 비비면 스키장이지만) 평창은 군바리 아저씨와 선수들이 가는 곳이고 리프트도 시설 중이래요, 물론 교통도 문제고 그래서 용평을 조사했죠... 그때 무슨 인터넷이 있습니까, 여행사 정보가 있습니까? 미팔군 홍보실에 친구 누나로부터 영문 안내 책자를 받았어요.. 물론 번역 해 야죠... 기억나는 것은 국내 유일의 스키 리조트!!(그때 리조트는 사전에도 없었어요)
3개의 슬로프에 3개 리프트(엘로우, 핑크, 레드-코스별로 슬로프가 차이나요-레드는 못 가봤슴--무서워요)에 주원호텔 4층 짜리 규모에 주화호텔이 건설 중--주 내용이 이랬어요..
그런데 해결해야 할 건이 두 가지가 있어요- 교통과 주원호텔 숙박비(일인당 3만원), 1회당 리프트 8천원, 스키 렌트 12,000원.(그 당시는 너무 비싸서)
교통은 2번 갈아타는 요령을 알았고, 문제는 경비인데, 부자집 놈은 좋겠지만 가난한 난 어쩌란 말인가??? 이때 번뜩이는 idea는 장사하자...........입니다.
서울 이태원은 그 당시 미군들의 삶의 터전이고 생활의 장소였어요... 그래서 미군 아파트 앞에서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문제는 item이 뭐로 해야하나?
바로 Christmas candle입니다... 미군 교회 앞에서 초파는 걸 봤어요? 물론 다양한 색에 크기 모양은 요즈음과는 다르지만........ 1,000원에서 5,000원까지 다양하게 좌판을 벌였죠... 근데요 문제는 또 있데요,,, 그 당시가 11월초부터 12월초까지니까 학기말 시험이 걸리잖아요.. 서로 학교도 다르고, 심지어 여학생도 있는데....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제 친구의 넘 여자지만... 또 그 해는 왜 그리도 춥든지.... 우여곡절 끝에 12월 22일 장사를 마치고 나니 겨우 27만원인가가 번 돈이었죠... 허탈했죠..........
1976년12월26일에 마장동 시외 터미날에 남친3과 여친2명, 총 6명이 청바지 차림으로 잠바입고 모였는데.... 여름의 경험 삼아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 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버너, 코펠을 겨우 준비해서 절약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용평 읍내에서 또 갈아타고.... 그런데 문제는 용평스키장에 도착해서였죠.. 이시는지 모르지만 스키장은 간호사 아줌마들 교대 마냥 day와 night로 구분되거든요... 나이트는 보통 저녁 7,8시에서 10시까지인데 도착하니 9시여요... 한시간 스키 빌리고 리프트 값 내면 적자죠.. 그래서 오늘은 포기다 하고 호텔 후런트에 난생처음 서서 물어 봤더니 sweet room(4인용) 밖에는 없는데 그나마 지금 생각나지는 않지만 한 학기 등록금 수준입니다. 작전 변경해서 읍내로 방향을 잡았는데... 차가 떨어졌다나????????? 아이고 끔직 해라... 방법을 찾아 봐도 걸어가는 방법 외에는 없대요..
2-3시간이요... 그 눈길에 말입니다........ 스키장 눈송이는 왜 그렇게 커요???
한참을 가다보니 두덜대는 놈이 있어요... 왜냐면 3박4일에 무겁게 쌀은 왜이리 많이 갖고 와서 무겁냐고요.......... 깜깜한 밤에 길만 보이는 날리는 흰 점박이 눈길은 그 후 군대에서 다시 봤어요.....으으.. 달래고, 뛰고(내일 스키타려면 체력 훈련이 필요하다고)해서 겨우 읍내는 왔는데 어디가 어딘지 시골 읍내의 겨울밤은 왜 그리도 빨리들 자는지? 겨우 불켜진 집에 2만원 주기로하고 보니 신발이며. 바지는 넘의 것입니다.. 그래도 12시인데 라면은 먹어야죠.........
겨우 2시 넘어서 남녀가 한방에 감히 잤죠.... 다 큰 여자들도 잠버릇 남자와 다름 없음을 확인했어요.. 읍내 버스타고 아침 10시에 열리는 것도 잊고 스키장가니까 7시반... 밥 먹어야줘.. 집 떠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배는 왜 그리고픈지.... 별사고 없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강사가 하는 걸 어깨 넘어 터득해서 옐로우와 핑크 코스를 마스터 했어요.(운동신경이 되니까). 물론 매일 읍내로 출퇴근하면서 말이죠........ 하긴 그 당시 거의 외국인 밖에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요즘 마냥 스키복이 있어요? 고글(썬그라스)이 있나요? 청바지에 잠바가 전부고 목 장갑이면 OK죠, 스키 폴은 손시려워서... 오는 날은 일찍 서둘렀어요..
이대 앞에서 약속이 있어서요..(그 당시는 신촌, 종로가 주로 무대임) 오후 5시가 되어서 요즈음 말하는 스키장 방문기념 뒷 풀이를 했는데 돈이 남아서 그 당시 말로 고고장(참 오랫만에 쓰네)에 갔지요. 그런데 1차 후 여친들 보내고 그 날 할 수 없이 고고장 재탕했어요.. 왜냐면 학교 동기가 군대간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그땐 12시 지나면 당연히 새벽4시니까요.. 외박한 거죠. 제 동기는 3수생이 많았어요.. 늙어서 나라의 부름을 받아서 하나씩 갔죠... 이때 이야기 한번 할까요. 고고장 풍경???(종로, 명동, 청계천)
경제논리를 보면 최소의 자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발휘해야 지요... 무슨 얘기냐면 그 당시 1급 호텔 외에 다른 고고장은 2가지 급으로 나눠요. 3급은 요즈음과 같은 콜라텍 수준(기본 저렴 만원정도), 2급은 싸구려 벤드에 적당히 춤추는 지저분한 테이블의 2만원대 수준 고고장... 보통 2급 수준에서 대학생 쌍쌍파티를 하죠...(나중에 100쌍 기념 쌍쌍파티를 글에 한번 올리겠음) 그런데 학생 신분에 4명의 정족수를 초과하면 테이블과 기본이 초과하는데 이를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새벽 4시까지 버티려면 대단히 어렵씀)
대처방안 첫째는 4명 이상인 경우는 초과인원을 축출 다른 테이블에서 1시간씩 버텨야 함. 방법은 다른 테이블에서 아는 사람 마냥 웨이터의 눈길을 피해야 함. 또 테이블 옮겨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안되면 스테이지에서 마냥 춤춰야 함. 또 화장실에서 시간도 못 보냄.. 칙칙이 아저씨가 지키고 있음. 이럴 때 선배라도 만나면 고생 끝입니다. 둘째는 모자라는 술과 안주 건입니다. 기본은 원래 3개2개입니다..(알죠? 맥주3개 안주2개) 그러나 장기전(11시에서 새벽 4시까지)에 돌입하려면 당연히 술이 모자라죠. 그 대처 방안은 입구 출입 시 특공대를 조직해서 4홉들이 소주2병
(나중에 맥주 다 마시면 시끄러운 시간에 맥주병에 쏟아 붑니다)과 보조로 라벨(맥주 라벨)이 다 떨어진 맥주를 2병삽니다(그 당시는 얼음에 잠거 둔 맥주를 잘 팔아서 라벨이 잘 떨어 짐). 이것은 혹시 아가씨와 테이블에 앉는 경우 사용합니다.(메너 상 소주는?) 이때 가방은 가운데를 여는 70년대 대학생 가방입니다. 물론 고고장 가기 전에 소주로 무슨 안주든 해서 자신 주량에 80%정도 취해야 장기전에도 대비가 됩니다. 그 당시 춤은 주로 막춤이라서 에너지 소모가 많습니다... 이런 대비책이 없으면 주로 12시전에 버스표 밖에 없는 학생은 쫒겨 납니다.. 난감하지요.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고 다음날 7시반 학생증 보여주고 훈방으로 나오죠..(경험 있음)
이상입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