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래 동안 동경해 온 일이 있었죠. 장기 여행이요! 사실 막내가 되어서(육남매 중 막내임) 그때까지 부모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모았죠. 그러나 그때는 학생이 매우 가난했죠. 그래서 4월 어느날 술집에서 작전계획을 짰어요. 방학은 7월이니 5,6,7월 3개월 간 저축 방법을 논의했죠. 주제는 동해안 속초(그때는 속초이상 잘 안 올라갔음, 그래서 고성의 전망대도 없었음)에서 포항까지 11박12일 여행..........
저는 별로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돈버는 재주도 없어서 친구 여동생들을 과외하기로 친구와 손을 잡고 그 다음주부터 시작했는데 선생과 학생을 번갈아 하다보니 금방 7월10일이 되더군요.. 이때 부자집 아해들은 엄마, 아빠 덕을 보았지만 저는 난생 처음 15만원(그때 등록금 20만원)을 손에 쥐고 준비기간 2일 복장은 교련복에(학생 티를 내야 하니까) 수영복 및 각자 지참 5일분 쌀과 고등어 통조림(그때는 꽁치가 더 쌌음)을 준비물로 하고 청량리역에 집결하였음. 그때는 왜 기타하고 야전(야외전축)은 꼭 가져갔는지 모르겠어요...
12시간 후(기차에서 하도 노래 불러서 목이 쉬었슴-그때는 학생들이 꽤 인정받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시끄럽다고 욕도 안 먹었음) 경포대에 내려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머금은 채 속초해수욕장에 텐트 3개동 설치.. 물론 감자 고등어통조림 국에 막소주 대병(그때 그렇게 큰소주 첨 봤음-정종인줄 알았음)이 너댓개... 사실 저는 살면서 하늘의 별이 그렇게 밝고 맑은 줄 몰랐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내 눈으로 별동 별이 마구 쏟아졌어요.. 또 하나 그때까지(나중에 군대가서 고쳤지만) 업드려 자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다음날 아침 얼굴에는 모두 모래 범벅이 되었죠.. 그 후 오후 4-5시에는 철수 다음 해수욕장으로 이동, 하조대는 그때 해수욕장이 아니었어요. 육군 휴양소가 되어서 멀지 감치 텐트 치고 주간에만 놀았어요. 밤엔 간첩으로 몰리니까. 텐트에서 노래, 술, 포카로 보내고... 그렇다고 그땐 왜 여학생들 보면 어색하고 창피해서 요즈음 말로 작업 할 줄도 몰랐어요.... 그때 김수철(가수)하고 친하게 지낸 기타리스트, 바이올린전공, 고교 응원단 기수 등 우리말로 물건을 제가 모았기 때문에 여학생들께 인기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잘 몰랐어요.. 술과 친구가 다 인줄만 알고....
그때 저는 사회인 야구 동호회에 있었어요..... 참고로 저는 예전에 국내 최초 리틀야구 출신이거든요... 아이구 이야기하다보니 별소릴 다하네........................
어찌되었든 간에 겨우 경포대에서 2박하고 나서야 구멍가게 집 여학생에게 김치 얻어 먹을수 있었어요. 삼척 후진 해수욕장에서 텐트 나이트(지금은 그렇게 부르지만 그때는 술 팔고 아무나 노래 부르게 스테이지 만들어 놓고 돈 내야 하는 스타일이었음)에서 친구들 모두 조금 노래가 되어서 인기가 있어 다음날 아침, 점심 먹을 때까지 반찬 걱정을 덜었죠. ㅎㅎ
10일 만에 포항역에 다다랐는데 (그간의 우여곡절은 글로 표현하면 영화 시나리오니까 중략) 배는 고프고 돈은 떨어져서 역 광장에서 서성이다가 제가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3000원으로 점심을 해결. 그것도 12명이................
얼마 전 포항 출장 길에 일부러 역을 들렀는데 포장마차가 없더군요.......... 포장마차에서 홍합을 안주로 1대접에 1000원하더군요, 그런데 국물이 한 양동이가 있어요. 그래서 3000원에 전부사서 촌놈들 모두 국물로 배를 채웠죠......... 전 지금도 포장마차에 가면 반드시 홍합 국물을 요구합니다..
이젠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가야하는데 버스비가 모자라는 겁니다..... 가위바위보 3명 탈락...
3명은 걸어서 오되 모든 짐은 버스 타는 친구에게 맡기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도착해 보니
30-40분 걸린다는 걸음조가 2시간이 되어도 안 오는 겁니다. 이유인 즉 지나가는 여학생마다 차비 빌려 볼 거라고 하다보니 시내를 통과해서 여학생 따라 헤메고 다닌 거죠... 참 재주도 없었지만 요즈음과는 분위기가 틀리죠. 그 이야기는 그 날 밤 안주로 해서 잘 마셨죠.. 그때 여학생에게 제일 말못하던 인간이 결혼은 제일 먼저 했어요.. 그 놈이요. 대학생 아들이 졸업예정이요... 참 술살 돈이 어디 있었냐고요? 치사하데요.. 차비는 없어도 빌어먹기 대회를 해보니 다들 돈 나오데요... 그렇다고 요즘처럼 CD기에서 돈 찾나요? 돈이 있을만한 엉큼한 녀석을 완전히 빌어먹게 대표선수로 만들면 모자사이에서 양말에서든 다 나오데요... 치사한 놈들 2명...
자 이제 서울로 귀환만 남았는데 방법은 2가지 고속버스와 기차,
정말 모자라데요.. 그간 먹은 술값만 엄청나니까요...... 6명 기차, 6명 고속버스로 편을 갈랐죠.. 고속버스는 빠른 대신 비싸고, 기차는 다음날 오후까지 지겨우니까요.... 지금 호주로 이민간 녀석이 표 파는 아가씨에게 매달려서 반값에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새까만 얼굴에 삐뚤어진 교련 모자-그 당시 포항은 해병대 교육대가 있어서 겁났어요..
바다, 바다내음, 파도, 햇살, 모래, 맑은 달, 초롱초롱 별빛, 잡은 조개탕, 시골완행버스, 삶에 찌든 현지사람들,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빛들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안잊네요...
여행이야기
기억에 남는 여행이야기
하나 : 1976년 여름, 동해안 첫 여행(엄마, 아버지 품을 떠나서)
저는 오래 동안 동경해 온 일이 있었죠. 장기 여행이요! 사실 막내가 되어서(육남매 중 막내임) 그때까지 부모 곁을 떠나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모았죠. 그러나 그때는 학생이 매우 가난했죠. 그래서 4월 어느날 술집에서 작전계획을 짰어요. 방학은 7월이니 5,6,7월 3개월 간 저축 방법을 논의했죠. 주제는 동해안 속초(그때는 속초이상 잘 안 올라갔음, 그래서 고성의 전망대도 없었음)에서 포항까지 11박12일 여행..........
저는 별로 그 당시나 지금이나 돈버는 재주도 없어서 친구 여동생들을 과외하기로 친구와 손을 잡고 그 다음주부터 시작했는데 선생과 학생을 번갈아 하다보니 금방 7월10일이 되더군요.. 이때 부자집 아해들은 엄마, 아빠 덕을 보았지만 저는 난생 처음 15만원(그때 등록금 20만원)을 손에 쥐고 준비기간 2일 복장은 교련복에(학생 티를 내야 하니까) 수영복 및 각자 지참 5일분 쌀과 고등어 통조림(그때는 꽁치가 더 쌌음)을 준비물로 하고 청량리역에 집결하였음. 그때는 왜 기타하고 야전(야외전축)은 꼭 가져갔는지 모르겠어요...
12시간 후(기차에서 하도 노래 불러서 목이 쉬었슴-그때는 학생들이 꽤 인정받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시끄럽다고 욕도 안 먹었음) 경포대에 내려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머금은 채 속초해수욕장에 텐트 3개동 설치.. 물론 감자 고등어통조림 국에 막소주 대병(그때 그렇게 큰소주 첨 봤음-정종인줄 알았음)이 너댓개... 사실 저는 살면서 하늘의 별이 그렇게 밝고 맑은 줄 몰랐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내 눈으로 별동 별이 마구 쏟아졌어요.. 또 하나 그때까지(나중에 군대가서 고쳤지만) 업드려 자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다음날 아침 얼굴에는 모두 모래 범벅이 되었죠.. 그 후 오후 4-5시에는 철수 다음 해수욕장으로 이동, 하조대는 그때 해수욕장이 아니었어요. 육군 휴양소가 되어서 멀지 감치 텐트 치고 주간에만 놀았어요. 밤엔 간첩으로 몰리니까. 텐트에서 노래, 술, 포카로 보내고... 그렇다고 그땐 왜 여학생들 보면 어색하고 창피해서 요즈음 말로 작업 할 줄도 몰랐어요.... 그때 김수철(가수)하고 친하게 지낸 기타리스트, 바이올린전공, 고교 응원단 기수 등 우리말로 물건을 제가 모았기 때문에 여학생들께 인기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잘 몰랐어요.. 술과 친구가 다 인줄만 알고....
그때 저는 사회인 야구 동호회에 있었어요..... 참고로 저는 예전에 국내 최초 리틀야구 출신이거든요... 아이구 이야기하다보니 별소릴 다하네........................
어찌되었든 간에 겨우 경포대에서 2박하고 나서야 구멍가게 집 여학생에게 김치 얻어 먹을수 있었어요. 삼척 후진 해수욕장에서 텐트 나이트(지금은 그렇게 부르지만 그때는 술 팔고 아무나 노래 부르게 스테이지 만들어 놓고 돈 내야 하는 스타일이었음)에서 친구들 모두 조금 노래가 되어서 인기가 있어 다음날 아침, 점심 먹을 때까지 반찬 걱정을 덜었죠. ㅎㅎ
10일 만에 포항역에 다다랐는데 (그간의 우여곡절은 글로 표현하면 영화 시나리오니까 중략) 배는 고프고 돈은 떨어져서 역 광장에서 서성이다가 제가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3000원으로 점심을 해결. 그것도 12명이................
얼마 전 포항 출장 길에 일부러 역을 들렀는데 포장마차가 없더군요.......... 포장마차에서 홍합을 안주로 1대접에 1000원하더군요, 그런데 국물이 한 양동이가 있어요. 그래서 3000원에 전부사서 촌놈들 모두 국물로 배를 채웠죠......... 전 지금도 포장마차에 가면 반드시 홍합 국물을 요구합니다..
이젠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가야하는데 버스비가 모자라는 겁니다..... 가위바위보 3명 탈락...
3명은 걸어서 오되 모든 짐은 버스 타는 친구에게 맡기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도착해 보니
30-40분 걸린다는 걸음조가 2시간이 되어도 안 오는 겁니다. 이유인 즉 지나가는 여학생마다 차비 빌려 볼 거라고 하다보니 시내를 통과해서 여학생 따라 헤메고 다닌 거죠... 참 재주도 없었지만 요즈음과는 분위기가 틀리죠. 그 이야기는 그 날 밤 안주로 해서 잘 마셨죠.. 그때 여학생에게 제일 말못하던 인간이 결혼은 제일 먼저 했어요.. 그 놈이요. 대학생 아들이 졸업예정이요... 참 술살 돈이 어디 있었냐고요? 치사하데요.. 차비는 없어도 빌어먹기 대회를 해보니 다들 돈 나오데요... 그렇다고 요즘처럼 CD기에서 돈 찾나요? 돈이 있을만한 엉큼한 녀석을 완전히 빌어먹게 대표선수로 만들면 모자사이에서 양말에서든 다 나오데요... 치사한 놈들 2명...
자 이제 서울로 귀환만 남았는데 방법은 2가지 고속버스와 기차,
정말 모자라데요.. 그간 먹은 술값만 엄청나니까요...... 6명 기차, 6명 고속버스로 편을 갈랐죠.. 고속버스는 빠른 대신 비싸고, 기차는 다음날 오후까지 지겨우니까요.... 지금 호주로 이민간 녀석이 표 파는 아가씨에게 매달려서 반값에 고속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새까만 얼굴에 삐뚤어진 교련 모자-그 당시 포항은 해병대 교육대가 있어서 겁났어요..
바다, 바다내음, 파도, 햇살, 모래, 맑은 달, 초롱초롱 별빛, 잡은 조개탕, 시골완행버스, 삶에 찌든 현지사람들, 초롱초롱한 아이들 눈빛들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안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