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그녀 {#2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 처럼}

이야기 상자200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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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민수의 결혼식을 망쳐버리려는 계획을 성공시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와 은주가 입원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창백한 얼굴에 환의 까지 입고 있는 은주의 불쌍한 모습을 보자 요나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 그런 놈이 뭐가 좋다고 목숨까지 버리려고 해."
 하지만 그녀의 질타에도 은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요즘 너무 탈진한데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많이 쉬여야 한다고 하더라."
 은주의 엄마의 얼굴도 50대가 아닌 60대로 보일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어머니. 저희가 있을 테니까 좀 쉬시다가 들어오세요."
 "아니다. 우리 은주가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 크다. 후∼."
 어머니의 어깨가 눈물이 나도록 지쳐 보였고, 죄책감으로 무거워 축 쳐져 보였다.
 "내가 그 놈을 사윗감으로 찍지만 않았다면 우리 은주가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흑흑."
 요나는 보지 않아도 하루종일 울었을 것은 은주 어머니가 울음을 터트리자 그녀의 야윈 몸을 끌어안았다.
 
 어머니의 만류로 그녀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연락할게."
 마음 한 쪽은 무거웠지만 삼 년 만에 돌아온 집에 인상을 쓰면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그녀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웃자."
 집안으로 들어가자 요나가 기억하는 시절부터 그녀의 집안 일을 돌봐주는 도우미 이모와 할머니가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와라. 이제야 들어오다니 야박한 것."
 요나는 할머니의 노쇠해진 몸을 보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 만큼 더 크게 웃었다.
 "아이. 할머니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지 알죠."
 할머닌 그녀의 애교에 눈을 흘기셨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공항에도 나오지 말라고 하더니 비행기가 도착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오다니."
 "죄송해요.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생겼었거든요. 무지 피곤하네요."
 "그런데 머리 꼴이 그게 뭐냐?"
 할머니와 향미 이모의 시선은 요나의 폭탄 머리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
 "왜요. 저 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그 놈을 잊을 때도 되지 않았니?"
 "그 놈 잊은 지 오래 됐어요. 저도 한번쯤은 스타일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변화 좀 줘봤어요."
 변화라는 말에 할머니의 인상은 점점 더 찌푸려졌다. 평상시 얼굴에 주름이 진다며 크게 웃지도 않던 할머니였다.
 "저 짐 좀 풀고 내려올게요."
 "조금만 있다가 올라가라 너에게 소개시킬 사람이 있으니까."
 "누가 와 계세요?"
 요나는 속으로는 제발 할머니가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려는 것이 아니길 바랬다. 그녀가 외국에 나간 건 다른 세상을 보면 좋지 않은 일들은 잊어버릴 것 같아서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뚜쟁이 역할을 자청하기 시작하지면서 조건 좋고 어디를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남자들을 소개 시켜준다며 요나를 한시도 가만히 놓아두지 않을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하숙하기로 했다."
 "하숙이요? 우리 집이 그 정도로 어려웠나요?"
 할머니는 요나의 썰렁한 농담에 다시 한번 눈을 흘겼다.
 "우리 회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이지. 호텔에서 사는 것 보다 집이 더 편하지 않겠니. 지금 자기가 쓸 방을 보고 있으니 조금 있으면 내려 올 거다. 그 사람을 보고 나서 짐을 풀어도 늦지 않아."
 그녀는 할머니가 남자를 소개시킬 것 같지는 않아 마음을 놓고 그 사람이 일층으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내려오나 보구나."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지만 청력하나는 아직도 젊은 사람들 못지 않았다.
 "내가 말한 손녀가 조금 전에 도착했다네."
 "어! 당신은 공항에서 만난 사람이지요."
 요나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가진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를 다시 만나면 좋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뜻하지 않는 시간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만나니 뭐라고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보아서 반가웠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요나는 기죽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달갑게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예의 상 가늘지만 강한 손을 그녀의 손을 향해 내밀었다. 이 남자의 손은 눈 길 만큼이나 딱딱했지만 따뜻했다.
 "네. 전 김유신이라고 합니다."
 김유신? 신라의 장군?
 남자는 정말 그 시대에 태어나 갑옷을 있고 말을 타고 있었더라면 그 누구보다 위엄 있고, 강해 보이는 장군이 되었을 거라는 것에 요나는 자신의 모든 걸 걸어도 좋았다.
 "반갑습니다. 전 나요나예요."
 둘 다 이름이 다른 사람보다 튀는 건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둘이 본적이 있는 게냐?"
 "네. 제가 이분 카터에 쾅하고 부딪쳐 버렸거든요. 아 참 그런데 컴퓨터는 괜찮나요?"
 "네."
 이 남자는 정말이지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칠칠치 못한 것. 내가 뭐라고 그랬니 여자는 항상 조신해야 한다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요나는 오른 손을 눈썹까지 올리고 장난스러운 경례를 했다.
 "올라가서 정리 좀 하고 내려올게요. 조금 있다 봬요."
 그를 만나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지만 할머니의 말을 새겨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는 별로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했는데, 더 망치고 싶지 않았다.

 유신은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도 그랬지만 몇 시간 전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결혼식장에 유신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미안하네, 우리 손녀가 전에는 정말 요조숙녀였는데, 그 일이 생긴 후로는 좀 요상스럽게 변했거든."
 "괜찮습니다."
 유신은 정말 상관없었다. 노부인이 말하는 그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다면 어떻게 변했든지 간에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으니까.
 "자네가 출근 할 때 우리 요나도 함께 출근시킬 생각이네."
 그 말에 그는 그녀가 좀더 얌전한 성격 이였으면 하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였다.
 "어느 부서로 말입니까?"
 "디자인 실이 어떨까 생각하네. 요즘 공부는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그림에 소질이 많은 아이니까."
 "그림에 소질이 많은 것과 디자인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노부인은 그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보류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확고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요나가 잘 해내리라 믿네. 한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아이라네."
 유신은 다른 방향으로 틀어보기로 했다.
 "하려고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자유롭게 생활하고 들어왔을 텐데요."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할걸세. 그러니 요나가 회사에 들어가거든 좋은 지도 부탁하네."
 "네."
 
 "할머니 왜 보자고 하셨어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요나는 할머니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할머니의 등을 살며시 안았다.
 "그리운 우리 할머니 냄새."
 이제 요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할머니와 이모뿐이었다. 요나의 엄마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나서 이모의 품에서 자랐고, 그런 이모할머니는 요나에게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얘가 네 부모 제사 때도 들어오지를 않아."
 "할머니 미안해요. 그래도 그 날은 나도 약소하게 상 차려서 인사 올렸어요. 제사상도 한번씩 변화를 줘야하지 않겠어요."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 하는 구나. 앉아라 할말이 있어서 불렀다."
 "제가 그 장군... 아니지 유신이라는 사람에게 꼬리라도 칠까봐 교육시키시려고 부르셨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요나의 마음속은 자신이 내 뱉은 말과는 반대였다.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 꼬리치고 싶은 여우의 욕구가 스물 스물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할머니에게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었다.
 "다른 사람 이름가지고 놀리기에는 네 이름도 특이하지 않니. 그런 건 애당초 걱정하지도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너도 김사장이 출근할 때 같이 하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거다."
 요나의 표정이 집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웃음을 잃었다.
 "할머니 전 회사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거 잘 아시면서."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다들 맞추어 사는 게 세상살이다. 이번에 디자인 실에 입사해라. 그래서 신상품 전시회에 입상을 해."
 할머니의 요구는 무리한 거였지만 그녀의 얼굴을 확고해 보였다.
 "할머니 그건 무리라는 거 알고 있잖아요. 입사한다고 쳐도 전 의상디자인하고는 거리가 전혀 멀어요."
 "입상하지 못하면 이 집은 김사장에게 줄 테니 그런 줄 알고 나가봐라."
 이렇게는 나갈 수 없었다. 요나가 아는 할머니는 이런 일방적인 통보를 한 적이 없는 생각이 드넓은 분이었다.
 "이 집을 그 사람에게 주다니요. 할머니 이 집은 우리 부모님 추억이 있는 집이잖아요."
 할머니는 이제 요나와 눈길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네게 방황하는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지 않니. 이제 나도 늙었다."
 "방황이라뇨? 전 이미 정리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너하고 다니는 꼬락서니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쉽게 나온단 말이니? 난 말 다했으니 가서 쉬어라."
 요나는 할머니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할머니의 방문을 닫는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줄기가 조용히 흘러 내려 그녀의 두 볼을 적시였다.
 "쳇. 왜 눈물이 나는 거야. 그까지 것 하면 되는 거 잖아."
 할머니가 저렇게 변한 건 이층에 있는 그 김유신 장군 때문일 꺼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집을 그 인간에게 덥석 주신다는 말을 하시겠어.
 차라리 그림을 그리라면 백장이라도 그리겠지만 디자인으로 입상을 하라는 것은 무리였다.   할머니가 운영하시다가 명회 회장으로 있는 회사는 일년에 한번 직원들과 외부에서 공모한 디자인을 가지고 그 공모전에 입상한 디자인을 상품화하고 패션쇼를 하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도 알아주었고, 일부 해외 바이어들도 눈독을 들이는 행사였다. 그런 행사에서 그녀가 단번에 입상을 한다는 건, 별을 따는 것 보다 무리라는 건 할머니만 빼고 세상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벌써 자는 거야."
 그가 자고 있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녀는 그 딴건 상관하지 말자고 양심을 밀치고 있었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도록 문을 두드렸지만 방안에서는 인기척도 들리지 않자 요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안으로 돌진했다.
 "잠깐 나하고....."
 "잠깐 기다려요."
 유신은 머리를 감다 말았는지 짧은 머리에는 하얀 거품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고, 막 수건을 두르려는 몸은 확실히 알몸이었다.
 "엄마야∼."
 요나는 다시 방문밖에 서 있었다.
 "바보, 왜 샤워한다는 생각은 못한 거야."
 
 유신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요나라는 저 요상한 아가씨를 쫓아가서 한 소리를 해 주어야 할지 아니면 다시 샤워를 하러 갈지 고민하다가 후자를 택했다.
 머리에 막 샴푸를 하려고 손에 짠 순간부터 누군가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통에 나온 그는 수건으로 알몸을 가리기도 전에 요나가 쳐들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에는 요조숙녀였다고, 절대 믿을 수 없어. 완전 천방지축에 안하무인이잖아."
 그 안하무인이 지우의 인생을 구해주었지만 그의 인생은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 까 몸서리가 쳐졌다.
 

 

 

요나는 피곤에 지쳐 잠은 들었지만 아침이 되자 유신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앞 뒤 가리지 않고 쳐들어갔지만 그의 전라를 보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의 그런 모습 때문에 꿈자리도 뒤숭숭할 정도로 요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미술 대에 다니면서 누드는 당연히 그려봤지만 유신처럼 완벽한 남자의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그때 만약 유신이 모델로 친구들과 요나의 이젤 앞에 섰다면 그들은 스케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냈을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유신의 몸매는 예술이었다.
 어제 밤에 왜 유신의 방을 찾아갔는지 잠시 잊을 정도로 그녀는 그의 몸매에 현혹되어 있었다.
 "아 참! 집 이야기하러 갔었지."
 그녀는 빠른 속도로 준비를 맞추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언제나 이른 시간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계셨고 오랜만에 아침상에 가족말고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요나는 일부러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인사를 했다.
 "일어났구나. 오늘부터 출근해라."
 할머니는 한치의 여유도 없이 요나를 밀어붙일 생각이 확실한 것 같았다.
 "할머니 오늘은 무리예요. 은주가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거기에 가봐야 하거든요. 내일부터 나가면 안될까요?"
 국을 뜨던 할머니의 손이 중간에 멈췄다.
 "은주라면 너희 사인방 중에 하나 아니냐. 그 애가 왜 입원 한 거냐?"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요."
 "어제 그래서 늦은 거구나."
 할머니에게 못할 말이 없는 그녀였지만 유신이 있는데서 은주의 사생활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럼 내일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해라."
 "감사합니다."
 조용한 가운데서 식사를 끝내고 유신이 이층으로 올라가자 요나 역시 그를 따라 올라갔다.
 "할 말이 있어요."
 "어제 쳐들어온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가보군요."
 요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하고 있었다.
 완전히 보라색 양배추처럼 보이는 군.
 "나,난 어제 아무것도 못 봤어요."
 "누가 뭐라고 했나."
 유신은 그녀가 복도 한 가운데서 당황하는 걸 놓아두고 방으로 들어갔고, 요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쪽도 잘 알다시피 내 실력에 단 한번에 공모전에 입상한다는 건 개미허리가 없어지는 것 보다 더 희박하다는 걸 잘 알죠."
 "알지."
 아무리 내가 실력이 없기로 서니 단 한번에 긍정을 하나. 정말 하느님이 너무 바쁘셨나봐.
 유신이 넥타이를 매다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는 걸 보니 이번에도 그녀는 입을 쉬지 않은 모양이었다.
 "으흠."
 모른 척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할머니랑 한 약속 표면상으로만 지켜주면 안될까요. 내가 꼭 돈 벌어서 갚을 께요."
 유신은 요나가 무슨 말을 하는 줄 몰랐지만 노부인이 요나에게 건 조건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게는 못하겠는걸."
 "뭐,뭐예요. 꼭 그래야겠어요."
 "그래."
 무슨 조건인지는 모르지만 노부인이 결정한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꼭 전기 맞은 양배추 머리를 한 이 버르장머리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여자와 노부인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도 싫었다.
 "아니 왜 꼬박꼬박 반말이에요."
 "남의 방에 함 부러 쳐들어오는 사람한테 꼭 존댓말을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이제 좀 나가지. 병원에 가봐야 한다면서."
 요나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씩씩거리고 있었지만 유신은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요. 독불 장군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구요."
 독불장군이라는 말에 유신의 표정을 전쟁을 앞 둔 장수처럼 표정이 차가워 졌지만 요나 꽁지에 불이 붙은 망아지 마냥 그의 방에서 재빨리 나와버려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지가 잘랐으면 얼마나 잘랐다고, 퉁기는 거야. 알았어 내가 공모전에 입상하면 될 꺼 아니야. 내가 아니 꼬아서도 장려상이라도 꼭 받는다. 힉."
 요나는 그의 방문 앞에서 중얼거리다가 그가 손잡이를 돌리자 재빨리 그녀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아무래도 집 문제는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요나는 은주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3년 동안 운전하지 않았을 거 아니야."
 그녀가 문간 서랍에서 차 키를 꺼내어 들자 향미 이모가 우선 말리려고 들었다.
 "괜찮아요. 내가 워낙에 한 운전하잖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세요. 그리고 할머니한테는 비밀인 거 아시죠. 다녀올게요."
 향미 이모의 말대로 3년 동안 운전할 기회가 없었지만 그녀만의 타고난 감각으로 복잡한 도심을 자연스럽게 운전해 나갔다.
 "나요나 아직 쓸만하군. 그런데 언제 이렇게 차가 많이 늘어났지."
 운전에 자신 있었지만 요나는 도로를 가득 메우는 각가지 종류의 차를 보자 운전하고 나온걸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버스나 지하철 타는 건데 그랬나봐."
 간신히 교통체증을 이겨내고 은주가 입원에 있는 병원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한시간이나 지나 있었고, 그 시간만큼 요나도 지쳐있었다.
 "아이고 피곤해라. 그 인간만 아니었어도 잠을 푹 잘 수 있었는데."
 어제도 맞아 본 냄새였지만, 오늘 역시 병원 특유의 냄새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서 보니 은주는 의식을 찾아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지만 잿빛 얼굴색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바보 같은 계집애."
 "미안해."
 은주의 힘없고 생기 없는 목소리에 요나는 눈물이 날것만 같아 눈을 깜박거려야만 했다.
 "나 한테 뭐가 미안해. 네 엄마한테 미안해야지."
 "그런데 요나야. 나 아이가 진줄 정말 몰랐어. 아이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은주의 눈에서 물줄기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알아. 나도 알아. 네 잘못이 아니야. 은주야. 그러니까 너무 오랫동안 마음 아파하지마."
 그들은 서로를 껴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떨어놓으며 마음껏 울었다.
 "민수씨…, 신혼여행 갔겠지."
 "아니."
 요나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은주에게 말을 해야할지 말지 망설였지만 은주가 먼저 민수의 이름을 거론한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아니라니?"
 "사실은 나하고 채원이 인경이 하고 가서 깽판 놓아버렸어."
 "왜 그랬어."
 요나는 은주의 눈빛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자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의 결혼식을 망쳐버린 요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너에게 상처 준 사람이야! 그런데 뭐가 더 정이 남아서 그래. 그런다고 그 남자가 너한테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눈물이 겨우 말랐던 은주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이자 요나는 미안한 마음에 은주의 손을 잡았다.
 "알아..... 그런데 나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나봐. 그 사람이 처음부터 나에게 마음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그 사람을 잡으려고 내가 먼저 다가섰어.... 나 왜 이렇게 바보 같니."
 "..."
 요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 그저 은주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조용히 닦아주었다.
 "사람들이 그러잖아. 사랑은 주는 거라고.... 그래서 난 민수씨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어. 나만 그 사람을 많이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될 거라고 믿었어... 그런데 그게 그 사람은 너무 답답하고 싫었데."
 "아무리 답답하고 싫었다고 해도 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적어도 너와 헤어질 생각이었고, 다른 사람과 결혼 할 생각이었다면 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요나는 은주나 겨우 진정을 하고 잠이 들자 병원에서 나왔다.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자 요나는 드라이브를 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생길 일도 없을 정도로 귀국하자마자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바쁘고 정신 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한 가족을 이루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는 중이었다. 그녀 역시 3년 전 일이 틀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적어도 아이가 둘이 딸린 주부가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국을 떠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사는 모습은 변한 것이 없었다.
 사랑이 이처럼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은주가 하는 사람은 너무 외롭고 힘든 것이어서 요나의 마음까지 무겁게 만들었다.
 처음에 요나도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한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변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랑은 메아리였다.
 메아리는 외친 것 보다 더 많은 소리를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아주 많은 사랑은 돌려 받지 못하더라도 메아리처럼 울리고 또 울려서 상대방이 알고 그 상대방에게서 사랑이 반올림되어 돌아오는 것이 최소한의 상처를 받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피~~ 어차피 결혼하면 다 똑같지. 사랑 받고 결혼한 거나 사랑을 주고 결혼을 한 거나 잘살고 못사는 건 노력과 정이니까. 에이 모르겠다. 사는 게 왜 갈수록 더 어렵냐?"

 사랑은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뼈에 사묻치는 이별보다 더.
짜증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요나는 아무도 대답해 주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점심시간을 훌쩍 뛰어 넘었다는 걸 배꼽 시계가 알려주어서야 알게된 요나는 차를 다시 집으로 몰았다. 혼자 먹는 건 이제 너무 많이 해서 지겨운데다가 친구들에게 찾아가기에는 시간이 지나버려 집에 가서 향미 이모라도 앞에 앉혀 놓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녀왔습니다. 어!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오셨어요?"
 "그게 질문이라고 하는거냐? 너! 지금까지 어디서 뭐하다가 온 거냐. 무슨 생각으로 차를 가지고 나 간 거야."
 요나가 미처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할머니와 향미 이모 그리고 유신까지 그녀를 마중(?)나왔고, 할머니는 요나의 얼굴을 보자 마자 소리를 고래고래 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의 건강상에 전혀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은주 만나고 나서 그냥 바람 좀 쐬었어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이럴 땐 모른 척 하는 게 약이었다.
 "무슨 일이라니 한국에 들어와서 지리에 익숙하기도 전에 운전을 하러 나간 일이 잘한 일이라는 거냐. 너 때문에 김 사장도 중요한 약속까지 취소하고 집에 들어 왔잖니?"
 할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의 뒤에 서서 요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걱정은커녕 짜증의 눈빛만이 가득 차 있었고, 가능하다면 이 자리에서 요나를 요절내고 싶어하는 감정이 확연히 들어 나 보였다.
 "어머, 정말요! 미안해서 어쩌나. 정말 죄송해요."
 "전 괜찮습니다. 회장님. 손녀 따님이 무사히 들어왔으니 이제 노여움을 푸시지요."
 날 완전히 무시하네.
 "난 좀 쉬어야겠네. 고생했네 김사장."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잘못이 무엇인지 새록새록 느껴졌다.
 "할머니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이제 그만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니."
 그 말에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요나는 가지고 싶어도 양보해야 하고 싸우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그런 예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 받아."
 할머니가 들어가자 마자 유신이 뭔가를 그녀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고, 요나는 던지듯이 내미는 그의 모션에 흠칫 놀라 두 손에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이게 뭐예요?"
 "열어보면 알 거야. 난 회사 간다."
 유신이 그녀에게 주고 간 것은 핸드폰이었다. 절대로 알고 샀을 리는 없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핏빛자주색을 띤 핸드폰이었다.
 "널 3년 동안 보지 않아서 좋았는데, 그래도 독불장군이 준거니까 예뻐 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그녀는 가방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주방으로 향했다.
 "이모 나 배고파요. 밥 좀 주세요."
 "미안해. 사모님이 이렇게 일찍 들어오실 줄은 몰랐어."
 향미 이모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니에요. 제 잘못인걸요. 그래도 미안하다고 생각되면 제 밥 친구 좀 해주세요. 혼자 먹는 건 이제 신물이 나서요."
 비행기 공포증이 있는 향미 이모는 기회가 있어도 해외에 단 한번도 나가 본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싫어하는 걸 알게된 할머니는 배를 태워서라도 보내 주고 싶었지만 향미 이모는 배 멀미도 심하게 하는 타입이었기에, 요나가 밥알이 튀기면서 해주는 다른 나라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고, 요나는 다른 생각들은 다 잊어버리려고 입을 쉬지 않고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