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김관수200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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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동창회 동창회좋은 벗은 가장 가까운 친척이란 격언도 있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친구가 없으면 세계는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남겼다.
누가 이런 말에 반대 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유대 가운데 가장 가까운 것은 물론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사이, 한 핏줄을 이어 받은 형제 자매사이일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가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간격은 역시 있는 법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간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령 부부사이는 일심동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부부사이에도 지켜야할 예절은 있는 법이고, 그 예절을 지키다보면 선의에서 이긴 하나 피해야 할 것 감추어야 할 것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일정한 간격을 피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사이도 역시 그렇다. 부모로서는 지켜야 할 위신과 체통이 있고 자식으로서는 자신을 굽히고 죽여서라도 지켜야할 도리가 있는 법이고 보면 그 사이 역시 물샐틈없이 메워져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한 단계 더 먼 형제자매 사이라면 부부사이나 부모와 자식사이 보다 더 넓은 간격이 존재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순수한 우정이란 이러한 틈새를 메워주는 더 없이 소중한 삶의 접착제이다. 친구 앞에서는 한없이 기고만장해도 좋고, 마음놓고 나약해져도 좋다. 친구간에는 그것이 흉허물이 될 수 없고, 진정한 친구라면 그것을 두고 손가락질하지는 않는다. 참으로 친구사이에는 부부사이에도 없는 또 다른 그 무엇이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 시절의 친구가 그리워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젊음 다운 자신만만함으로 해서 우정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또 제각기 삶을 개척하기에도 바쁜 시기여서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끝의 윤곽을 들러내기 시작하면 비로소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고, 그 지난날의 저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게 된다.
동창회의 참석인원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속적인 의미의 성공을 했건 안 했건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 우리 삶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외로움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을 저절로 찾게 만드는 것이다. 삶의 허무감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생활 속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떨쳐버리고, 정서적 안정감을 누릴 수 있는 모임으로는 동창회 이상 가는 것이 없다. 모 학자는 ''나이가 들수록 동창회 참석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동창회가 준 가족집단과 같은 관계로 구성돼 과거 전통사회가 담당했던 혈연집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학문적 해석이야 어떻든 참석동기가 순수하다면야 동창회의 긍정적 기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동창회가 그렇게 순수한 동기에서만 꾸려지고 있는 않은데 있다. 조직에는 규칙과 함께 윤리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 윤리는 오로지 우정과 추억을 나누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모작가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린 시절의 친구란 화로에 숨겨둔 밑불과 같다. 재를 헤치면 이렇다 할 빛도 열도 없는 듯이 미미하게 드러나지만, 호오 입김을 불다보면 발갛게 불씨가 살아난다. 주름지고 윤곽이 허물어진 나이든 얼굴이 사라지고 어린 날의 영롱한 눈빛과 목소리, 맑은 표정들이 되살아난다. 오래 묵은 친구는 육친과도 같고 오래된 사이란 오래 묵은 술처럼 향기롭고 부드럽게 취하게 한다.''
그 영롱한 눈빛과 목소리, 맑은 표정들은 바로 자신의 잃어버린 얼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얼굴들과 소주잔이라도 앞에 놓고 옛날을 회상하려하면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 간 듯한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우리들은 동창회에서 세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고 동창회를 참다운 ''마음의 고향''으로 가꿔가야한다.
하지만 나는 동창회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면서도 참석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동창들과 너무 나이 차가 크게 나 보이도록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살, 훌쩍 벗겨져버린 대머리 때문이다.
주위에 종업원들이 스승과 제자사이로 오해를 하고 반말하는 동창들을 힐끗힐끗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이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매무새를 고치고 중절모라도 쓰고서라도 마음의 고향 동창회에 꼭 참석해보리라 마음속으로부터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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