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robo200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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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영주는 조용히 가방을 챙겼다.  교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영주를 부르신다.

영주는 알수없는 실낱같은 미소를 입꼬리에 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교를 나설 때 영주는 햇살이 유난히 따갑다고 느꼈다.

마지막이리라...  영주는 떨리는 입술로 애써 미소를 띄었다.

버스에서 내다 본 바깥 세상은 평화롭기만 했다.

아무도 영주의 세상을 알지 못하듯..  그렇게 서로 다른 세상에 서 있었다.

 

이미 아버진 모든 준비를 끝내놓으신 뒤였다.

딸아이를 많이도 기다리신 듯 영주의 손을 잡으신 뒤에야 긴 숨을 내쉬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영주도 참았던 눈물을 그제야 풀어놓았다.  서럽게.. 서글프게..

그렇게 마음의 끈을 겨우겨우 잡은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신 아버진 무엇을 찾으시는지 알아듣기 힘든 말씀을 하신다.

한손엔 그녀의 오라비 손을, 또 한 손엔 그녀의 손을 잡으신 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시려는지 힘겹게 입술을 여신다.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녀 그리고 그 오라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인다.

' 알아요.. 아빠.. 아빠 맘 알아요.  그러니 힘든데 너무 애쓰지 마세요.

 아빠 많이 사랑하는거.. 아시죠? '

딸아이의 마음을 아셨을까?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 모습에 그녀 가슴은 또 한번 무너져 내린다.

아버지의 작아진 가슴에 그녀는 머리를 묻었다.

 

 

" 아빠~ "

여덟살 어린 딸아이가 늙은 아버지 목을 감으며 업어 달란다.

여덟살 아이치고는 덩치도 큰 딸아이를 기쁘게 업으시고 도란도란 옛날 얘기며,

구수한 노랫자락을 풀어놓으신다.

 

" 아빠 나 오늘 또 빵점 받았어요.  잘했죠, 아빠? "

" 그랬어?  아이고 이쁜 우리 딸, 또 빵점 받아왔구나..

  잘했네~ 이쁜 내 새끼.. "

 

멋모르고 빵점을 자랑하는 딸아이를 칭찬하시며 얼굴 가득 행복을 머금으신다.

어린 딸아이 영주는 빵점을 백점인양 알고 자랐다.

행여나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땐 입을 쭉 내밀고 풀이 죽어 대문을 들어서기 일쑤였다.

 

햇살이 유난히 따가운 날이면 딸아인 아버질 따라 나섰다.

긴 낚시대를 드리우고 담배에 불을 붙이시며 간간이 웃어 보이시는 아버지 곁에서

딸아인 사랑을 받아먹으며 행복을 알았다.  행복을 배웠다.

 

" 아빠, 난 커서 예쁜 수녀님이 될래요. "

" 왜? "

" 수녀님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 사랑하고.. 또 수녀님이 되면 아빠랑 평생 같이 살아야지.. 평생~ "

" 하하하 고녀석~ 수녀님 되면 아빠랑 같이 못 사는데.."

 

딸아이 얘기에 크게 웃으시는 아버지 모습에 딸아인 그저 행복했다.

그 행복했던 시간들......

 

 

"아..."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붉은 눈이 자꾸만 그녀의 시야를 가린다.

" 아빠... "

그녀는 아빠의 핏기 없는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 미안하구나... "

처음으로 딸아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다니..

그녀가 듣고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었으리라..

평생 보여주셨던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싶었던 것이리라..

 

딸아인 말이 없었다.  아버지 손을 놓지 않은 채..

그 끈을 놓지 않은 채 .. 

 

하지만 이미 아버진 그 끈을 놓으신 뒤였다.

영주는 그제야 아버지 얼굴에 피어나는 평온을 보았다.

병마의 손길이 아버지의 육신을 갈갈이 찢을때 그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아버지 얼굴에서

이젠 평온 외에 어떤 것도 찾아볼수 없었다. 

이제는 그녀 차례였다.

이제는 그녀가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다. 

 

영주는 이미 혼을 떠나보낸 아버지 육신을 보며 그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음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듣고 계시겠지..

영주는 그렇게 못다한 얘길, 못 다한 사랑을 드리고 있었다.

 

" 아빠.. 이제 편안하신가요.. 이제 아프지 않으세요?

  전 아직 수녀님도 못되었고 제힘으로 벌어 아빠 용돈도 한번 못드렸는데..

  뭐가 그리 급하셨어요?  이곳의 삶이 아빤 그리도 힘겨우셨나요? 

  아빠 이제 편히 쉬세요.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그리고 이제 아빠 떠나보낼래요. 

  좋은 곳에 가셔서 이 곳에서 받았던 상처, 삶의 무게 모두 씻으시고 편히 쉬세요. 

  제 곁엔 계실 수 없지만.. 아빠 늘 지켜봐 주실테죠? 

  아버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가시더라...

 

검은 리본 사이로 걸린

슬픈 미소 한 자락

 

하얀 백합 아래에 머문

슬픈 육신

 

그렇게 가시더라..

슬프게 웃으시며 그렇게 가시더라.

 

남겨진 사랑

그만큼 더 아파하며

그렇게 가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