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힘이듭니다. 힘이 들어 죽겠습니다. 제겐 참으로 바보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참으로..바보같아 자식이 무얼해야할지 모르게 만드는 바보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정말 고생하셨던 아버지...하지만 IMF이전에 터져나온 부도에 2차부도까지 어린나이에 그 딱지 구경도 했습니다. 이물건은 XX은행의 소유물이므로 함부로 타인에게 양도나 판매를 금함. 그때는 왜그리도 미웠던지. 매일 속으로 욕을욕을 하며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한체 방황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매달 300만원이상의 지출이 꾸준히 나가던 가정이 고스란이 그 생활비가 빚으로 돌아온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철들기에는 너무나 삐둘어져있던 저인지라 무시하고 덤덤한척 살아가려했습니다. 친구들조차 모르게 티조차 내지 않으려고 이제서야 말하지만 친구들은 말하지 않았을뿐 다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힘든시간들은 속속 지나가고 어느순간부턴가 누나와 이런저런 여러사람들과의 대화속에 철든다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그런 나름데로의 부지런한 생활을 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고 많은것을 할수 없었지만 그덕에 더 많은 것을 느꼇고 그를통해 정말 즐겁게 웃는법도 배웠습니다. 이제는 다시 제법 살만하다 싶은순간에 아버지께서 간암이시랍니다. 저는 이제 지구반대편에 공부하겠답시고 와있는데 간암이시랍니다. 친구를 통해 아는 의사분의 소개로 색전술인가 하는 수술을 받으셨지만 아직 다섯차례나 더 그 수술을 견디셔야 한답니다. 오래전부터 장난스레 말해왔었습니다. 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나는 결혼을 빨리 해야해. 아버지랑 어머니 연세차이가 9살차이나 나셔서 제나이 25에 아버지가 내년이면 환갑이 되십니다. 다시금 집안을 일으키려 노력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방학때 아버지 일돕는답시고 공장에 나가 아버지를 도왔던적이 있습니다. 알류미늄 융해로 제작을 하시던 아버지. 그전까지 제기억에는 늘 깔끔한 양복에 사무실에서 열심히 제도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것은 깔끔한 양복도 아니요 그안에 정갈하게 매듭지어진 넥타이도 아닌 기름진 청바지에 화상으로 흉터진 아버지의 손이였습니다. XX아 왔냐...울컥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아버지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로 대신했습니다. 야근까지 하게 되었던날. 아버지가 커다란 융해로 기계에 올라가시고는 열심히 도색작업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 제가 한다고 해도 아버지는 극구 반대십니다. 도색잘못되면 다시 해야한다시며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하는건 도색하러 3층에 안전고리까지 하지 않은체 갖 20살된 제가 하는모습을 보실수는 없으셨나 봅니다. 어리석은 아버집니다. 그 모습을 보는 아들의 고통은 생각해주지 않으십니다. 30여분이 지나서 아버지가 내려오시더니 바닥에 침을 뱉으시는데.. 침에 페인트가 가득합니다. 화학을 전공하는 저인지라. 페인트와 신나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더 잘아는 저이기에 찢어집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군에 가있을때도 제발 그만 하시라 수번 말했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계속 일을 하십니다. 절단에 용접에 궂은일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 집안을 다시 일으켜세운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셨습니다. 이제 다시 예전만큼 산다 싶을때에도 아버지는 끝내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어린 생각으로 추측하나마 아버지는 무언가 다시 이루고 싶으셨던것 같습니다. 자식인제게 무언가 아직도 해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연수를 와서 유학을 시작하면서 아버지께서 일을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누나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냥 맘속으로 이제 아버지도 쉬시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나의 이야기는 가족모두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알아두라고 하며 아버지가 간암이라 하십니다.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 해도 그 치료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그 고통을 저의 아버지가 참아내셔야 한다는거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힘든시간동안 사고로 어금니 3개가 부러지셨는데도 못난 자식새끼 공부시킨다며 미루고 미루셨던 저의 아버지...이제야 비로소 쉬실시간이 되셨는데 이제는 간암이시랍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화부터 났습니다. 그렇게 쉬시라 제발 쉬시라 수도 없이 말씀드렸는데....왜...왜 하며.. 단 한마디셨습니다. 괜찮다. 수술받으면 명만큼 산다고 의사선생이 그러드만.... 펑펑 울었습니다. 곁에서 죽한그릇 제대로 준비해드를수 없는 못난 자식새끼되기 싫다며 당장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면 아니 보실거랍니다. 왔다가 다시가던 한국으로 평생 돌아오던 이번년도에 올생각을 말라십니다. 원래 다시 한국을 한번 가려고 했던 때가 1월이라고 저번에 말씀 드렸던것을 기억하고 계시나 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 천하에 불효자식이라고 모든 주변사람이 비웃어도 좋다며 일년안에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모진말을 한체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몇번 전화통화를 했지만...늘 괜찮다 하십니다. 벌써 7년째 괜찮다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만큼 훌륭한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버지에게 맞는 훌륭한 아들이 될수도 없을것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너무 높은곳에 계시는것 같습니다. 늘 못난 자식이지만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힘이듭니다. 솔직히 힘들어 죽겠습니다.
솔직히 힘이듭니다. 힘이 들어 죽겠습니다.
제겐 참으로 바보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참으로..바보같아 자식이 무얼해야할지
모르게 만드는 바보같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정말 고생하셨던 아버지...하지만 IMF이전에 터져나온 부도에 2차부도까지
어린나이에 그 딱지 구경도 했습니다. 이물건은 XX은행의 소유물이므로 함부로 타인에게
양도나 판매를 금함. 그때는 왜그리도 미웠던지. 매일 속으로 욕을욕을 하며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한체 방황의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매달 300만원이상의 지출이 꾸준히 나가던 가정이 고스란이 그 생활비가
빚으로 돌아온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철들기에는 너무나 삐둘어져있던 저인지라
무시하고 덤덤한척 살아가려했습니다. 친구들조차 모르게 티조차 내지 않으려고
이제서야 말하지만 친구들은 말하지 않았을뿐 다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힘든시간들은 속속 지나가고 어느순간부턴가 누나와 이런저런 여러사람들과의
대화속에 철든다라고 표현하기는 조금 그런 나름데로의 부지런한 생활을 했습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했고 많은것을 할수 없었지만 그덕에 더 많은 것을 느꼇고 그를통해
정말 즐겁게 웃는법도 배웠습니다. 이제는 다시 제법 살만하다 싶은순간에
아버지께서 간암이시랍니다. 저는 이제 지구반대편에 공부하겠답시고 와있는데
간암이시랍니다. 친구를 통해 아는 의사분의 소개로 색전술인가 하는 수술을 받으셨지만
아직 다섯차례나 더 그 수술을 견디셔야 한답니다. 오래전부터 장난스레 말해왔었습니다.
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나는 결혼을 빨리 해야해. 아버지랑 어머니 연세차이가 9살차이나
나셔서 제나이 25에 아버지가 내년이면 환갑이 되십니다. 다시금 집안을 일으키려 노력하시는
아버지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방학때 아버지 일돕는답시고 공장에 나가 아버지를 도왔던적이
있습니다. 알류미늄 융해로 제작을 하시던 아버지. 그전까지 제기억에는 늘 깔끔한 양복에
사무실에서 열심히 제도를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것은 깔끔한 양복도
아니요 그안에 정갈하게 매듭지어진 넥타이도 아닌 기름진 청바지에 화상으로 흉터진 아버지의
손이였습니다. XX아 왔냐...울컥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아버지 저 화장실 다녀올게요로 대신했습니다.
야근까지 하게 되었던날. 아버지가 커다란 융해로 기계에 올라가시고는 열심히 도색작업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 제가 한다고 해도 아버지는 극구 반대십니다. 도색잘못되면 다시 해야한다시며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하는건 도색하러 3층에 안전고리까지 하지 않은체 갖 20살된 제가 하는모습을
보실수는 없으셨나 봅니다. 어리석은 아버집니다. 그 모습을 보는 아들의 고통은
생각해주지 않으십니다. 30여분이 지나서 아버지가 내려오시더니 바닥에 침을 뱉으시는데..
침에 페인트가 가득합니다. 화학을 전공하는 저인지라. 페인트와 신나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더 잘아는 저이기에 찢어집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군에 가있을때도 제발 그만
하시라 수번 말했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계속 일을 하십니다. 절단에 용접에 궂은일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 집안을 다시 일으켜세운건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셨습니다. 이제 다시 예전만큼
산다 싶을때에도 아버지는 끝내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어린 생각으로 추측하나마
아버지는 무언가 다시 이루고 싶으셨던것 같습니다. 자식인제게 무언가 아직도 해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연수를 와서 유학을 시작하면서 아버지께서 일을 그만두셨다는 이야기를 누나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냥 맘속으로 이제 아버지도 쉬시는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나의 이야기는
가족모두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알아두라고 하며 아버지가 간암이라 하십니다. 불치의 병이
아니라고 해도 그 치료의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그 고통을 저의 아버지가
참아내셔야 한다는거에 더 가슴이 아픕니다. 힘든시간동안 사고로 어금니 3개가 부러지셨는데도
못난 자식새끼 공부시킨다며 미루고 미루셨던 저의 아버지...이제야 비로소 쉬실시간이 되셨는데
이제는 간암이시랍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화부터 났습니다. 그렇게 쉬시라 제발
쉬시라 수도 없이 말씀드렸는데....왜...왜 하며..
단 한마디셨습니다. 괜찮다. 수술받으면 명만큼 산다고 의사선생이 그러드만....
펑펑 울었습니다. 곁에서 죽한그릇 제대로 준비해드를수 없는 못난 자식새끼되기 싫다며
당장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면 아니 보실거랍니다. 왔다가 다시가던 한국으로
평생 돌아오던 이번년도에 올생각을 말라십니다. 원래 다시 한국을 한번 가려고 했던 때가
1월이라고 저번에 말씀 드렸던것을 기억하고 계시나 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 천하에 불효자식이라고 모든 주변사람이 비웃어도 좋다며
일년안에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모진말을 한체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몇번 전화통화를 했지만...늘 괜찮다 하십니다. 벌써 7년째 괜찮다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사랑합니다. 저는 아버지만큼 훌륭한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아버지에게 맞는 훌륭한 아들이 될수도 없을것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는 너무 높은곳에 계시는것 같습니다. 늘 못난 자식이지만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