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전초전)

瓚禧2005.04.30
조회3,084

 

        30개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클럽 중앙자리에 한 여자가 앉아있었다. 여자는 위태로워보였다. 기다랗게 자라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칼은 여자의 한쪽 손에 의해 헝클어 진지 오래였다. 여자는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 간간히 신경질 적으로 머리칼을 긁적였다. 다들 쌍쌍 혹은 무리지어 앉아있는 클럽 안에서 여자는 동떨어진 존재가 된지 오래였다. 음악에 따라 여자는 가끔 고개를 까딱이며 다른 한손으로 양주병을 들었다. 이미 취해 눈동자마저 흐릿하게 풀린 그녀는 작은 양주잔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반쯤 남은 양주병 입구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무슨 인생이 이 따위야. 젠장. 빌어먹을!”


신애의 작은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신애는 다시 기계적으로 양주병을 들어올렸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녜요?”



신애는 초점 없는 눈으로 상대편을 올려다보았다. 흐릿한 상대편을 더 자세히 보려  미간을 찌푸렸다. 신애가 자세히 보려 애를 쓸수록 상대편의 얼굴은 더욱 흐려질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귀여워 보였는지 상대편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슨 힘든 일 있어요?”



남자는 신애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자신의 자리였던 마냥 앉았다. 맨 정신이었다면 따지고 들었을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에게라도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거리며 떠들고 싶었다. 자존심 강한 그녀로써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신애는 자신이 밀쳐놓았던 작은 양주잔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술을 넘칠 듯 찰랑이게 담은 신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그 놈을 죽이고 싶어. 이러려고 사랑한 게 아닌데, 이러려고 마음을 준 게 아닌데.”

“남자친구가 바람 폈어요?”


남자는 말 안 해도 알겠다는 말투로 읊조렸다. 신애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힘없이 고개만 까닥였다. 그리곤 다시 양주병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럼 이렇게 혼자 속상해 하지 말고 헤어져요!”



남자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다. 남자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신애는 피식 웃었다.



“헤어질 수 있었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지.”

“그렇게 사랑해요?”

“글쎄. 억울해서라도 그만 둘 수가 없어.”

“뭐가 그리 억울한데요?”

“내 모든 것을 그 녀석에게 바친 10년이란 세월이 억울해서라도 그만 둘 수가 없어.”

“사랑하는 거겠지. 아니면 집착이던지.”



줄곧 존댓말로 응하던 그가 웃으며 말했다. 툭 한마디 던진 그 말에 신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에 겨운 표정으로 그녀는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다가 이내 자신도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참을성 있게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분노와 이해의 표정을 넘나들던 신애는 단념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요. 어쩜 이렇게 미련이 남는 것 자체가 집착이고, 사랑일지도 모르겠네요.”

“쉽게 인정하는군.”



남자는 신애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대했다. 쉽사리 남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신애였지만 앞에 있는 남자에게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술을 들이켠 다음 빈 술잔을 신애 앞에 내려놓았다. 신애 손에 쥐어있던 술병을 빼앗아 넘치지 않을 정도로 찰랑거리게 술을 따랐다.



“마셔. 술로 잠깐이라도 잊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깐. 포기할 수 없다면, 잊는 수밖에 없잖아.”



신애가 앞에 놓인 술잔을 조심히 들어올렸다. 마치 처음 술을 입에 대는 사람처럼 조심성 있게 술잔을 입술로 가지고 갔다. 그때 누군가 신애의 술잔을 신경질 적으로 빼앗았다. 신애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엔 얼굴 가득 조소를 머금고 있는 남자가 신애를 멸시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진한 화장을 한 갓 20살이 넘어 보이는 여자가 그와  같이 그녀를 멸시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신애는 그의 얼굴을 보던 그 순간부터 얼굴에 초조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처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버렸다.


“우현씨......”

“뭐야? 온갖 순진한 척은 다 하더니 뒤로는 호박씨 까고 있었던 거야?”


우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신애를 매도하고 있었다. 신애의 앞에 앉은 남자는 그 상황을 보더니 걸터앉았던 의자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그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방관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절대 끼어들 생각이 없어보였다. 신애는 도와달라는 뜻으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포즈를 취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은 신애뿐이었다. 우현의 오해에 신애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신애를 우현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볼 뿐이었다.



“다른 남자를 만날 거면 헤어진 다음에 만나던지! 뭐하는 짓이야? 헤어지기는 싫고, 다른 남자는 만나고 싶다는 뜻인가?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군. 너란 여자란 말이야.”



우현은 신애에게 비꼬듯 말했다. 신애는 우현을 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현의 팔이 감싸져 있는 화장이 진한 여자의 허리에 시선이 멈춰있었다.



“그동안 즐거웠다. 구질거리지 말고 쿨하게 헤어지자.”


신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을 통보하고 걸어가는 우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우현의 옆에서 다정스레 걸어가는 여자의 허리에는 처음부터 하나인 듯이 우현의 팔이 걸려져 있었다. 멍하니 우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신애에게 그가 말했다.



“안 잡아?”



그의 말에 신애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리곤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오지 않아. 내가 붙잡는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다고. 나랑 헤어질 구실만 찾던 사람이야. 기회는 이때다 싶었겠지. 지금 내가 변명한다고 해도 들어줄 그가 아니야.”



신애의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가득 채웠다.




“미련……. 생길 텐데.”

“아마도.”




신애는 그가 따라준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신애의 말에 그가 말했다.



“사람을 잊는 데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최고야.”

“질렸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맞춰주는 일말이야. 1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해서 그런지 이젠 싫어.”

“모든 여자들이 그렇지는 않아. 그리고 네 남자친구, 아니지. 이젠 옛 남자친구인가? 그가 너에게 맞춰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걸.”

“.............”

“네가 좋아서 맞춰 준거잖아.”

“우현과 똑같이 말하는군. ‘네가 좋아서 맞춰 준거잖아.’ 쳇.”


신애는 그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하며 말했다. 그가 한 이야기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부하고 싶었고, 인정하기 싫었던 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생판 처음 보는 남이 정리시켜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신애는 머릿속 쓰레기통이 말끔히 비워진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잊고 싶어도 다시 시작하기엔 늦은 나이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거야.”

“누굴 만날 주변머리도 안돼.”

“근데 저 바람둥이 자식은 어떻게 만난거야?”

“초등학교 동창이야.”

“쿡. 주변머리만 되면 사귀고?”

“그럼. 그렇게 해서 저 녀석이 잊혀진다면, 당연히!”

“상황종료. 게임오버. 나랑 사귀자! 잘 부탁 한다.”



넉살스럽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그를 신애는 멀뚱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신애의 손을 들어올려 억지로 자신의 손과 악수를 시키는 그였다.



“왜 아무 말도 없어?”


그가 신애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신애의 눈이 스르륵 감기는가 싶더니 그대로 테이블 위에 고개를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