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 내삶들..세상엔 나혼자라는 슬픔을 안고사는 내인생

내 인생은 이러하다200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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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이는 올해27입니다 많이도 적지도 않은 나이죠??

27살이 된 지금의 저를보면.. 이루어 놓은것 하나 없고..

꿈도 없고.. 소망하고 바라는 것도 없네요.. 처량하기만 합니다..^^;;

제글를 봐주세요.. 저는 제얘기를 이글로나마 확터놓고 얘기할수

있다는것에 감사합니다..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난 태어난 이후 부터.. 9살떄까지 기억이 나질않는다..

아주 나중에 알게된.. 내어릴적얘기는 이러했다..

 

태어난이후 나의100일이 되던날.. 나의친어머니는 집을나가셨다고 한다..

몇번이나 아버지께서 찾아오면 또나가고 또나가고의 연속으로 지내다..

얼마못가 결국은 아예 찾을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나의 할머니는 "그년이 바람이 난게 틀림없다" 라고 떠들고 다니셨다고 한다..

나의 어머니의 대한 할머니의 말들은 믿을수 없는 ..근거 없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철부지 어릴떈 그냥 믿었지만.. 성인이 된 .. 한아이의 엄마가된 나는 ..

할머니가 했던 엄마의 대한얘기는 믿지않는다.. 거짓말일수도 있을것이다!!

 

어머니의 가출이후 ..

우리아버지께선 어머니랑 이혼하던날 ..나의 출생신고를 하셨다..(호적등본으로 확인)

비극적이지 않을수가 없다.. 출생신고하는날.. 나를 낳아준 내어머니와의 이혼!!

나의 할머니께서 등골이 빠지라 날 엎어 키우셨다.. 그러다가.. 내나이4살되던해..

내인생이 바뀐것이다.. 어둠속으로 갇혀버린것이다..

 

  살아계셨다면 내가가장 사랑했을.. 나의고모 ..아버지의 샛째누이!

   고모는 할머니의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할머니께선 화를내시며 고모를 나무라셨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든건 사실이라.. 아버지와의논끝에 내나이4살되던날..

부산용당에 있는 새빛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들어간 고아원에선 젤 어린나였기에 원장어머니의 사랑을 원장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거기에 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많이 있었다.

 좋은분도 계셨지만 못떈분도 계셨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부터는 선생들에게 많이 맞았다..

 쌀자루에 들어가 묶고서는 숨조차쉴수없는 좁은창고에 나를 가둬두었고..

 심심찬케 매질하는 통에 내몸에 멍안든날이 없었다.. 어느날엔 한선생이 각목으로 날 떄리려고..

   휘두르다 내 이가 깨져버렸고.. 허구헌날 매를맞았다.. 어린아이였음에도.. 사정없이 맞았다..

고아원 원장어머니.아버지께 이를수도 없었다.. 그러고나면 선생들은 더없이 때릴기세로..

 이르면 혼날줄 알라는거다.. 내 이가 깨진것도 넘어져서 그런거라고 선수를 쳤다.!미웠다..정말..

 

  어느덧 내나이 9살이되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눈물로 ..눈치로.. 살아가던중..

학교수업을 끝내고 나와같은 곳에 사는 유일한 친구와 고아원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쯤인가.. 고아원에 다와갈때쯤에.. 건너편에서 "신영아!!" 하곤 외치는 ..

  키큰 남자두명이 나를향해 뛰어온다.. "누구세요??" 그랬더니.. 갑자기 나를 확~

안아올리는게 아닌가! 너무놀래서 "누구신데요?" 그랬더니.. " 난 너의아빠야" 이러시는거다!

  고아원에 있는나는 후원자들이 있다.. 그분들을 아버지..어머니라 부른다.!

 그래서 그중한사람이려니.. 생각을했다.. 나의아버지인줄은.. 나를 세상에 있겠끔 해준 아버지

인줄도 모랐다.. 돈가방 같이 생긴가방을 들고 계셨는데.. 그가방을 여시더니 그시절..

정말 인기 많았던 야광시계를 나의손목에 채워주셨다.  정말 좋았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일주일에 한번씩 토요일마다 찾아오겠노라 하셨다.. 그리고는 친구의 부러움을 받으며 ..

고아원으로 왔다. 그날밤.. 정말이지 많이 맞았다.! 밖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났다는게..

맞는이유였다.. 억울했다.. 내가 뭘안다고 ..떄리는지.. 아프기도 했다.. 그후.. 토요일 약속을 지키러

오신 아버지에게 다시는 오지말라고 했다.. 아저씨떄문에 나고아원에 가서 맞았어요" 그러고는

와버렸다 원장어머니가 나를불렀다. "신영아!아버지 만났어?"  나는 순간놀래서 "네.. 잘못했어요"

그랬더니 원장어머니는 나를 꽉 안아주더니 .. "그러면 엄마한테 말을 하지그랬니.."엄마가 선생님

혼내줄께!" 그러시는거다! 학교밑에서 기다렸던 아버지께 그런말을 했으니 아버진 고아원에 전화를

하셔서는 뭐라뭐라 하신거였다! 원장 어머닌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께  싫은 소릴들어야했다.그선생떄문에.. 그이후 토요일이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학교수업을 끝내고 내려오는데..

나의 아버지께서 나를부르셨다 냉큼 달려갔다 친구와.. 아버진 학교밑 빵집으로 우릴 데리고 가서는

맞있는 빵과 우유를 배불리 먹이셨고.. 가시기전에는 항상 용돈을 하라며 2000원을 주고 가셧다!

그2000원으로 토요일까지 쓰는거였다! 그시절 너무나 큰돈이었다.. 10원짜리 과자.사탕을 먹던시절에.. 2천원이라늬.. 넘좋았다^^소풍을 가는날엔 고아원에서 주는거라곤 김밥한줄..과자한봉지와음료수하나가 전부였다.그런날이면 아버진 검정색봉지에 한가득 과자와음료를사다주셨다!그로부터 할머니도 찾아오시곤 했다 .. 돋보기 할머니다" 하면 나의할머니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날인가..

왠 아주머니가 나를보며 "니가 신영이지?" 그러신다.. "네"그랬더니 나이외에 친구들 3명을 더데리고

중국집으로 갔다 그아주머닌 자기가 나의 엄마라고 했다! 엄마의 모습치곤 따뜻하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먹는 자장면의 맛은 과히 환상적이였다.. 열심히 부지런히 먹고있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나의 어머니라는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때 나를바라보던 그사람의눈빛은

지금까지도 잊을수가 없다.. 그렇게 기쁜날과 슬픈날..아픈날을 겪으면서 어느덧 11살이 되었다!

여름방학을 재미나게 보내고 있을때에 난 또다른 환경을 접하게 된다..

  친구들과 옥상에서 놀고있는데 같이있던 언니가 나에게 와서는 "원장엄마가 찾는다..얼른가바"

얼른 뛰어갔다.. 내아버지와 같이 있는거다.. 원장어머니께선 " 신영아! 이젠아버지와 같이 살거야~

행복하게 잘살아야돼~ 놀러도 자주 와야하고" 그러시면서 나를 끌어안고 우신다.! 나역시 슬펐지만

한편으론 더이상 두들겨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뻣다! 짐을싸고 친구.언니.오빠.동생들에게

그리고 날떄린 선생에게 까지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를 따라갔다! 도착한곳은 조그만한 방한칸이있고

다락이 있고 화장실이 멀리 떨어진 그런 허름한 집이었다 그집에선 자주봤던 할머니와..한번봤던 어머니께서 나를 반겼다.. 그날은 그렇게 잠이들었고 그담날엔 어머니와 목욕탕을 갔다. 온몸에 멍든것을

보시곤 "이게뭐야? 누구이랬어?" 나는 "고아원에서 선생님들한테 맞았어요" 라고 했다 어머니께선 상처나고 멍든 부분을 조심스레 만지면서.."어쩜..어린애를 이지경으로 때릴수가 있어" 이러시면서 안쓰러워 하시는것 처럼 보였다.. 더이상 매를 맞지않는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나인데.. 그기쁜생각이 얼마

가지도 않은채 무너졌다 나의책을 정리하던중 산수책을 보시곤 "이문제 풀어봐" 그러신다! 문제를

풀수 없었던 나에게 책모서리 부분으로 머리를 내려찍는것이다! 아~! 이건또 먼가..내가생각한

행복은 정말 내인생에는 없는듯했다..   얼마후 좁은집에서 이사를하게되었다.. 아버지의 일이 순간에

잘풀려서 더넓은곳으로 이사를 한거였다.. 그이후로 부터는 어머닌 나를 상습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는날이면 덩달아 나까지 초상을 치뤄야만 했다.. 아무이유도 없는채 영문도 모른채 맞아야했다.. 이사온 집에서 얼마되진 않는 곳에 내가 다닐학교가 있었다.. 전학을 해서 그환경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집에가면 이유도 없이 매질을 당했고.. 그것때문에 무서워서 눈치만을 봐야했다

어떤날에는 발가벗겨놓고 나가라며 집밖으로 내보내기도 했고.. 어떤날은 노끈으로 발을묶힌채 사정없이 두들겨 맞기도 했다.. 대들수도 없었고 왜때리는지 이유도 알수없었다.. 그렇게 한해한해를 보내왔다..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너무 잘되어서 4층짜리 건물을 짖고 그건물4층으로 이사를했다!

내방이 있는곳은 복층으로된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거실에 있는 계단을 올라와야만 내이쁜방이있었다

우린 갈수록 돈이 많아졌고 그로인해 갈수록 어머니의 사치도 심해졌다.. 나또한 돈의소중함을 몰랐다

아무리 부자가 되더라도 어머니의 매질은 계속되었다.. 학교친구들이 집에오는날엔 내제삿날이나

다름없었다.. 친구들이 오면 친구앞에선 천사인냥 웃으면서 친구들이 가고나면 왜 친구를 집으로

불러들이냐 하시면서 두들겨 패는거다.. 쉽게 부러지지 않는 플라스틱 종류로만 때렸다.. 손등으로

입술을 때려서 붓고 피가난다.. 내머리통은 샌드백처럼 허구헌날 맞는다.. 머리를 맞을때면.. 그날은

하루왼종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온몸이 고아원에 있을떄보다 더한 멍투성이였다!미웠고 싫었다.. 그렇게 아픈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생이 되었다.. 뭐 중학생이라도 어머니한테는 난 그저 샌드백이었다.. 학교에서 나를이뻐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우리반의 담임을 맡았던 김남선 선생님..

 선생님께선 듣기평가에서 점수가 꽤 좋았던 나에게 "신영아! 니가 라디오좀 가지고 와야겠다~ 듣기평가가 있는데 라디오만 나오는거라도 있으면 카세트를 가지고 와라"그러시는거다 나는 흥쾌히 알았다고 답을했다.. 그날역시 집으로 돌아오는 내발걸음은 무거웠다.. 난 어느순간부터 집에올떈 항상 머리속으로 신경도쓰이고 걱정을 하면서 집으로 온다.. 오늘은 집에가면 어머니가 있을까?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때릴까? 아~ 정말 집에 없었으면 좋겠는데~"라는 걱정을 하면서.. 집에있다면..오늘은 맞을까? 안맞을까? 내머릿속엔 온통 그런생각들 뿐이였다.. 매일같이 걱정을 하면서 신경을쓰면서 눈치를

보면서 나는 너무나 지쳐갔다.. 그다음날에도 라디오를 들고 등교할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라디오 왜들고가는데? 그걸로 뭔짓을할려고?" 못땐짓하고 다니기만 해봐라 패직이뿐다!"딱이러는거다..^^ 참어이가 없었다 나는바로 대꾸했다 "내가 이테이프도 안돌아가는 고장난 카세트로 뭘하겠어요? 이걸로 무슨나쁜짓을 하는데요? 담임선생님이 듣기평가로 가지고 오라셔서 가지고 가는거라구요"첨으로 대들었다..

어머닌 놀란눈으로 날쳐다봤고 그러면서 하는말은 " 어따 눈을치켜들고 대들어? "- -;; 어이가 없었다

난 카세트를 집어던지며 "안들고 가면 되는거죠? . 학교가서 난 뭐라고 해요? "라며 또대들었다..

대들고 집어던지고 .. 안방에 계셨던 아버진 놀라시며 나오셨다.. "왜그러는데?" 무슨일이길래.. 애학교가는데 이라노?" 그러신다.. 어머니를 나무라신다.. 할머니또한 어머니를 나무라신다.. 울면서 학교에 갔고,, 할머니가 카세트를 집어들고 내손에 지어주면서 들고가라하셨다.. 그날 처음으로 대들어봤다

중학생2학년인데두.. 처음이었다.. 그날수업마치고 집에오는길은 내무덤앞에 가는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있으면 들어가서 뭐라고 할지..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할머니도 미웠다.. 난 매일같이

두들겨 맞는데.. 할머닌 그걸 알면서도 매일 밖으로 나가셨다.. 난 할머니께 왜자꾸 나가냐고.. 쫌 나가지말고 나랑 있자고.. 제발부탁이라고.." 할머닌 애원하는 날보며 그랬다.. 한번만 더떄리면 밖에서

아버지를 만나서 얘기를 하라고.. 그말에 난 말이안된다며 어머니랑 있는시간이 더많은데 어떻게

아버지께 말을하냐고.. 무서워서 못한다고.. 더때리면 어쩌냐고.. 그랬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께 맞고사는것 조차도 모르고 계셨다.. 여름이면 맞아서 멍든 곳이 보일까봐 아버지 들어올시간이면 어김없이

더워~죽어도 긴옷을 입으라고하셨다..그말에 얼른 긴옷을 입곤했다.. 어머니에게 맞는것은 고아원에서

맞았을때보다 더많은 매질을 당했다  어느순간 이사람 정말 내어머니 맞을까? 계모가 아닌이상 어쩜

이렇게 떄릴수가 있을까? 정상적으로 자라난 아이도 아니고 어릴적부터 고생만을 한 나에게 친어머니라면 이렇게 때릴수가 있을까? 라는생각이 들면서 나는 내사촌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우리어머니 친어머니 아닌거 아냐?" 언니는 놀란표정으로 "신영아 왜?" 난 "아니..너무 많이때리고 괴롭히니깐~"이랬다

이말이 고모귀에 들어갔고 고모는 어머니에게 신영이 입단속시키라는 말을 했다고한다! 몇일후 고모에게 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너무나 놀랬다 이제껏 한번도 친척집이든 친구집이든 못자게 하고 못가게했던 사람이 어쩐일로? 너무놀랬다.. 기분도 찜찜했다! 그런기분으로 고모집을 향했다..

고모가 나를반겼다 밥을먹고는 가만히 앉아서 나를 본다! 입을연다.."신영아! 지금엄마 새엄마야~"

나는 "뭐?" 고모는 "지금엄마가 널 낳은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야.. 너도 알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셨나보다.. " 난 놀래지도 않았으며 울지도 않았으며 슬프지도 않았다.. 단지 내머릿속에서 맴도는건..

그래서 ... 그래서 ... 날 그토록 미워하고 때리고 쫒아내고 그랬구나.. 친딸이 아니니까...그랬구나..

내생각이 그냥 나온말이 사실인 거구나..그런생각만이 맴돌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했다 .. 집에가서 뭐라고 말을하지? 한숨만 쉬면서 집에도착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반기지도 않았다.. 내방으로 올라가서 생각하거라곤 새엄마라는걸 알았으니

이젠 안때리겠지? 이게 다였다.. 지금생각하면 우습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문제였다 난정말이지 그이후론 때리지 않을꺼라고 생각을했다 그러나 내착각이었다는걸 얼마되지않아 알수있었다.. 새엄마는 변함없이 나를 때렸고 피할려고 했더니 2층계단에서 밀어버리는거다.

무서운 사람이다.. 너무나 아픈거다 '엉엉' 통곡을 하듯울었다 너무 아픈거였다.. 울고있는나에게

오더니 "왜? 니친엄마 보고싶나? 니친엄마 한테 보내줄까? 저 어디에서 잘살고 있다더라.." 이러는거다

참으로 슬프게 울었다 이젠 육체적.정신적 다 충격을 주는것이였다 안떄릴줄 알았던 내 생각에 치를떨었다 매일같이 눈치를 보며 눈칫밥을 먹고 두들겨 맞고 아프다고 울고 슬프다고 울고 .. 지쳤다!

학교에가면 친구들은 항상 물어본다 "어제도 맞았나?" 집에가니깐 엄마있드나?" 이런말들은 등교를하고 친구들과 아침인사를 하듯 이말이 나에겐 인사였다 나의 친구들은 알고있기에.. 맞는것도 많이 봤기에 날 보면서 날위로한다.. 그런위로가 따뜻했다 내가 우는걸 보곤 내친구들은 내마음과 같이 힘들어한다 나의 친구들은 "어쩜 그렇게 두들겨 맞고 하는데 니성격 활발한거 보면 신기하다..내같으면 정신병원 갔을꺼야~ 진짜 너무 무섭다" 이말이야말로 제일 많이 듣던 말이다.. ^^;;  시간이 흘러 흘러~

중학교 졸업식을 하는날 아빠의 모습만이 보였다.. 나의 키만한 곰인형을 사가지고 오셨다

"엄마는요?" 하고 묻는나의 말에 아버진" 안온단다.. 에이!" 그러신다 싸우셨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는것 보단 안오는게 더 기분이 좋았다.. 나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다들 4층집에 살면서

안해본것 없이 하고싶은거 갖고 싶은거 다가져보고 행복해했지만 그속에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제외하고 행복해 하는사람들을 보니 미웠지만. 내인생이니 그냥묻어두었다

고등학생이 될무렵 .. 새엄마의 폭행과 폭언을 더이상은 참을수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몸에 상처는 나으면 없어지고 지워지겠지만 내가슴에 남은 상처는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17살무렵 이제까지 내가 받아왔던

서글픈 폭행과 힘들었던 일들을 노트에 적었다 아버지가 먼저 발견하길 바라면서 짐을쌋고.. 집을나왔다 거의 2주일만에 아버지께 잡혔다 그 잠깐동안에 달라진 내모습에 아버진 놀라셨고 다들놀랬다

난 그놀라는 표정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출을 반복해왔고 그야말로 타락해갔다..

내가 사랑하는 둘쨰고모의 사고소식을 듣고도 난 가지않았다 모르고 있었을땐 둘째고모가 너무좋았다

그런데 고모로인해 고아원에 보내졌단걸 알고난후 고모가 미웠다 그래서 가지않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들은말은.. 둘째고모의 사망소식! 충격에서 벗어날수없었다 그동안에 앓았던 병이

고모의 목숨을 앗아가버린거다.. 슬픔에 빠져있었던 나는 너무나 고모에게 잘못을했다는 생각을했다

고모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세상 분이 아니라도 난 고모를 너무 사랑한다. 고모가 돌아가시고난 이후

우리집은 그야말로 무너져갔다 한마디로 쫄딱 망한것이다 새엄마..아버지 할머니 나 식구들은 뿔뿔히

흩어져 살아야만했다 할머니와 내가 있는집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빚쟁이들이 찾아와 난리였고

집에있던 가구들이며 돈이될만한 것들은 다가지고 갔다 매일같이 우는할머니를 달래주는것도 내몫이었고 제삿날이면 오지않고 돈도 주지않았던 아버지 .새엄마를 대신해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일을해야만 했던 나는 할머니께 고스란히 그돈을 주어야했다 지긋지긋했다 난 부산을 떳다

 

  도착은 서울이었다 아버지께 말을하고 왔다 일자리를 잡고 일을했다

오랜만에 막내고모에게 전화를했더니 새엄마가 임신을했다고 한다. 기가막혔다

돈한푼없이 남의집에 얹혀살면서 임신이라니..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속으로 생각하길 "그래 니자식낳아서 키워봐라 내가 그자식한테 어떻게 하는지 두고보자"

그랬다 세월이 점점 지나면서 애기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는 가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4~5년가까이 살고있는데 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자리잡고 집도 얻고 아버지도 이제 왠만큼

일이 풀리니.. 내려오라는거다 첨엔 싫다고 했다 그냥 멀리 떨어져서 사는게 나을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 서울로 오셨다 나를 데리고 가신다면서.. 트럭을 가지고 오신거다

반강제적으로 따라내려왔다 그동안에 내가 모았던 돈이500이었다 내려와서 아버지께 주었다

그리곤 아버진 미용학원이라도 다니라고 했고 난 알겠노라고 했으며 미용학원을 다녔다

동생이 5살쯤일꺼다 너무나 잘생긴 사내아이.. 배는다르지만 씨가 같은 내동생.. 그토록이나

미워하고 분노했었는데 그놈 웃는걸 보니 "누나"~누나" 이말에 난 웃지않을수가 없었고 이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렇게나마 살아온건 그놈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버진 엄마가 많이 변했다고 했지만 ..아니였다

나또한 고생도 많이 했으니 많이 변했을꺼란 기대를 했지만 역시 아니였다

다커서 성인이 된나를 때리진 못하고 나에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지않고 있는통에

배가고픈데도 밥을먹질 못했다 어릴때에 눈치밥을 고스란히 옮겨온듯.. 그랬으며 동생이"누나야~"

부르면서 내방으로 올려고 하면 새엄마는 "누나방에 가지마"라며 소리를 질러댄다.. 그 목소리에

놀란 동생은 울고.. 새엄만 왜우느냐고 5살어린애를 때린다.. 한심한 여자..

학원동기들과 술자리를 했다 난 술에 취했다 집으로 가는길에 아버지를 만났고

나는 아버지께 대들었다 " 왜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왔어요? 그냥 내버려두지~ 나 고아원에서 나온거

정말 후회해요 태어날때부터 지금껏 부모의 사랑이 먼지도 몰랐고 지금도 몰라요.. 이렇게 사랑받고싶은 나를 때리고 구박하고 상처많은 나에게 더큰 상처를 왜 줘요? 이럴려고 나 거기서 데리고 나왔어요?

아버지가 그냥 내버려 뒀다면 나 거기서 다른친구처럼 자격증이라도 딸수있는데 아버지때문에 나 완전 인생꼬였어요" 이러면서 대들었다 술이취해 횡설수설하는 내뺨을 내리쳤다 아픔도 몰랐다..

  그담날 아버진 방으로 들어온다.. 일어나서 앉았다 아버진 나를보며 "아빤 너만생각하면 가슴이시리다" 신영아~ 많이 아프드냐? 떄린거 정말 미안하다.. "그러신다 마음이 찡 했다..

 

한참 커서 결혼을 했고 한 가정을 가졌다

부유하지 않았던 친정에선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고 결혼식비용이며

집장만이며 모든것을 남편이 했다 집을 사서 신혼집을 꾸민다는말에 아버진 좋아하셨다

신랑은 서울에서 사업을하기에 나또한 서울로 왔다

부자인 신랑은 자수성가에 성공한사람이며 돈이많았다.. 19살부터 알았던 신랑이었기에

정말 사랑보다는 믿음으로 정으로 결혼을 했던거다

부자사위를 둔 새엄마는 무진장 좋아했고 또한 나에게도 상냥했다

홈쇼핑을 보면서 "신영아 9번채널봐라 .. 뭐광고하는데 괜찬네" 하신다..

어머니 저거 필요하세요?" 말이떨어지기 무섭게.. "아..있으면 잘쓰일것 같애서"

사줬다.. 처음이기에 그뒤론 습관적으로 전화를 했고 사달라는 요구를 했다.

안사줄수는 없었다 늦둥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새엄마인데 새엄마말이면

꼼짝을 못하는 분인데 안사주면 .. 그서운함이 아버지께 다른 화로 돌아갈꺼라는걸 난 잘알고 있기에

그냥 사주었다 신랑역시 사드리라고 .. 하기에 사주었지만 내가 좋아서 사준건 아니였다.

그저 아버지 할머니께 잘해드리라는 생각으로 그랬던거다 매일같이 나이드신 할머니 구박하고

뒤에서 할머니 욕하고 정말 많이 들었고 봤기에 결혼해서 사는 나로써도 걱정이었다

멀리있기에 자주할머니를 찾아갈수도 없었고 너무나 안쓰러웠다. 늙으신모습을보니 더그랬다

 

 

 결혼생활하는중 아이가 생겼다

어리둥절했다 부모사랑못받아본 내가 자식에게 사랑을 줄수있을까?

어떻게 하는것이 자식에대한 사랑인걸까?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세상밖으로 나왔고 이쁘게 자랐다

 

더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부부는 이혼이라는 난관에 서게되었고

슬프게 이혼을 했다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났고 난 위자료 10원없이 나와야했다

이혼을 하고 1년이 넘는듯하다 아버지와는 간혹연락을 한다만은..

새엄마는 전화한통없다 이혼하기전엔 우리사위~ 가식적인게 눈에보이면서도 나에게

잘할려고 애쓰는모습을 보여준 그분이.. 이제는 이런내가 부끄럽다고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한다

그힘에 아버지도 어쩌질 못한다 너무 싫고 너무 밉고 너무 화가난다

점을 보러가면 항상 듣던말이 생각난다 "넌 부모덕볼생각 말고 살아야해! 부모랑은 되도록 멀리떨어져살아! 그저 니가 노력해서 니힘으로만 살아야하는 그런운세야" 딱 맞는말이다 내주제에 무슨부모복이겟나.. 지금 나는 혼자 살고있고 좀있으면 사랑하는 아들이 나에게 온다

나처럼 불행하게는 키우지 않을꺼라 다짐을했지만 약속을했지만 지키지 못한 내가 밉다

친엄마에 대해선 아는것이 없다 고작 이름석자.. 예전에는 한번쯤은 만나고 싶다..보고싶고 그리웠지만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생각이 전혀 나질않는다 지금껏 나를 칮지않는 것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나로인해 잘살고 있는 친엄마 입장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않다.

 

세상에 혼자인 느낌 ...

너무나 외롭지만 이것이 내인생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는것을..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의 불행이 제일 커보인다고 한다.

나도 그런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힘든사람들도 많을것이나..

왠걸 나또한 내상처가 깊게 느껴진다..

 

 새엄마가 나에게 했던 폭행과 폭언들은..

세상을 등지는 날까지 내목숨 다하는 날까지 잊을수 없을것이다

아니 어쩌면.. 죽어서도 그 한은 풀지 못한채 괴로워할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연에 많은 고통을 겪어 글로써 표현을하자니.. 어렵기는 어렵다..^^;;

책으로 지금껏의 인생을 적는다면 시리즈는 될것이다 아직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는데..

난 거의 반은넘게 산것같은 느낌이 든다

외롭고 힘들어도 의지할때가 없어 서글픈 인생을 계속 살아간다해도.. 이건 내운명이기에...

참고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가보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주신 신께 전혀 감사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냥 이대로 눈을 감고싶다.. 하루를 보내고 잠을잘떄면 내일은 눈뜨지 말자..이대로

그냥 푹 쉬자.. 하는 마음뿐이다.. 사는거 정말 .. 힘든일이다..

 

제얘기가 너무나 길었죠? 어느부분은 헷갈리는 것도 있을테구요..^^
워낙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안되네요..^^;;

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제인생 신세한탄하고자 이렇게 씁니다..

위로의 말남겨주시면.. 감사히 잘받을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