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너희가 동부를 아느냐 - 도우베야짓 생환기

투덜이2005.05.04
조회751

들개와 맞닥뜨렸을 때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이 바로 도망가는 거다.   제아무리

칼 루이스라도 다리 4개 가진 놈들을 어찌 달리기로, 것두 걔들 홈 그라운드인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산길에서 이기냐고요….

 

그래도 내가 살아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멀리서 자기 양치기 개가 흥분해

뛰어가는걸 본 어떤 쿠르드족 아줌마가 개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돌맹이를 마구 던져,  

날 그 개들 사이에서 구해 준 덕이다. 

 

거의 2m 근처까지 달려왔던 개 들이 아줌마 돌 팔매질에 약간 주춤 하고 서더니

그 자리에서 서서 앞 뒤에서 내게 무섭게 짖어댔다..… 정말 등골이 서늘해 지면서

다시 산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그냥 계속 내려가야 하나, 돌아 가더라도 가다 이번엔

양치기 개가 아니라 들개를 만나면 어쩌나, 정말 그 짧은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이암은 아마 내가 제 아무리 간댕이가 부었어도 들개가 출몰하는 산길을 혼자

걸어 내려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거 같은데, 내가 생각보다 기억력이 나쁘단 건

몰랐나 부다.  암튼, 앞으로 40분 가량을 더 공포에 떨며 들개가 출몰하는 새벽 산길을

내려가야 하는데 어쩌랴…  일단, 길가에 실해 보이는 짱돌은 보이는 대로 줏어 양손에

꽉 쥐고, 부들부들 떨면서 좌우 앞뒤를 살피며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으니 한가지 장점은 있었다.  뭐가 어디 숨어 있다 튀어나올

걱정은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다만, 멀리서 개가 나타나 달려오기 시작하면 그 쪽으로

가지고 있는 짱돌을 계속 던져대기만 하면 된다.   말은 쉽지만 사실, 태어나서 그렇게

후둘 후둘 떨어 본 게 24살 때 방콕에서 이후로 첨이지 싶다…

 

그 산길을 다 내려올 때 까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들개가 두 번 더 출현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는데,  순진한 들개들이었기에 망정이지, 독한 놈 들이었음 내 형편없는

짱돌 던지기 실력을 감안할 때 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거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산을 다 내려와 시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으찌나 반갑던지…

드디어 살았단 생각이 들었다…

 

반(VAN)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고 곰곰이 생각 해 보니, 아마 사이암도 다른 많은 쿠르드족

사람들처럼 글을 못 읽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오지에 사는 사람치고 그렇게 깨이기

쉽지 않은데, 글을 못 잃으면서 그런 원대한 꿈을 가지고 많은 일 들을 벌릴 수 있다니

사이암은 여러모로 놀라운 친구가 아닌가 싶다… 

 

참, 사이암이 저녁을 먹으면서 조심스럽게 자기가 결혼 하자면 할래냐고 묻는다. 

내가 예의 바른 애라면 뭐 예의를 갖춰 정중히 거절 했겠지만 내 성격이 원래 아니면 아닌기라…  

사이암의 말에 너무나 간단하게  “NO” 했더니 쫌 섭섭했나 부다….  지도 딴엔 그 동네

킹카 인데..  ㅋ.ㅋ.ㅋ   대신, 사이암이 구상하는 쿠르드족 전통마을을 짓는데 한 2-3년

정도 걸릴 거라고 해서 네가 마을을 완성하면 나중에 다시 한번 오겠다고 했더니 내 집을

한 채 마련 해 놓겠다고 꼭 오란다. ㅋ.ㅋ.ㅋ.   그때까지 날 기억은 할까 ???

 

내가 사이암에게 남겨놓고 온 메모는 누군가 사이암에게 읽어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