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쇠말뚝의 비밀

임이록200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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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캄캄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가슴에 쇠말뚝이 박힌 채 헐떡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쇠잔한 모습으로 쓰러질 듯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뭔가를 말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내를 바라보던 강용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내는 강검산 할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아직도 이 땅 어딘가에
박혀있을 저주의 쇠말뚝을 찾아내야 한다며 일 년 전 집을 나섰던 하영수 선생이었다.
10년 전,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일본이 이 땅에 박았던
수백 개의 쇠말뚝을 앞장서 뽑아냈던 인물이었다.

  “선생님!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강용은 어이가 없었다.
일 년 전에 집을 나가 지금까지 묘연했던 선생이 가슴에 말뚝이
박힌 채 자신 앞에 나타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슴에 박힌 이 말뚝을…뽑아다오.”

선생은 강용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너무 아파…제발…이 말뚝을 뽑아다오.”

  “알겠습니다, 선생님. 아프시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가슴에 박힌 말뚝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하선생님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드리는 건 쇠말뚝을 뽑아드리는 일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강용은 쇠말뚝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힘주어 뽑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쇠말뚝을 뽑는 자는 내가 용서치 않겠다!”

천둥소리보다 더 무겁고 강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강용은 깜짝 놀라 쇠말뚝에서 손을 놓았다.

  “그 말뚝을 뽑는다면 너를 지옥불 속으로 빠트릴 것이다!”

이번에는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 전체에서 쏟아지듯 울려왔다.

  “거짓말이다! 저 악마의 소릴 듣지 말고 어서 이 쇠말뚝을 뽑아다오, 어서!”

하선생은 고통을 참아내며 강용에게 명령했다.
그에 하영수 선생의 말은 그 어느 것도 우선했다.
자신에게 역술과 풍수를 직접 가르친 은사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셨기 때문이었다.

강용은 재빨리 선생의 가슴에 박힌 쇠말뚝을 잡았다. 그리고 힘있게 뽑아냈다.
순간 벼락같은 붉은 빛이 그를 때렸다. 아니, 그 어떤 힘이 붉은 빛을 동반하며 그를 때렸다.

  ―퍼억!

실로 엄청난 힘이었다.
강용의 몸은 하늘로 솟구쳤다.
하늘은 온통 붉은 빛이 되었다.
그 붉은 빛은 순간 불꽃으로 바뀌었다.

강용의 몸은 불바다 속에 있었다. 하선생님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불바다 속으로 빨려들고 있는 강용을 구해낼 수 없었다.

―아! 강용의 몸이 불에 타기 시작했다.
강용은 너무 뜨거워 자지러질 듯 소리쳤다.
그리고 번쩍, 눈을 떴다.

꿈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헉. 헉.

강용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현실처럼 생생했던 꿈이었기에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잠시 숨을 골랐다.

  ―선생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선생님은 일 년 전 강검산 할아버지의 일기내용을 읽고 땅을 치지 않으셨던가!
강용은 선생이 집을 나서기 전 자신에게 들려준 말을 떠올렸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부터 우리 한반도의 지세를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이
땅에 저주의 쇠말뚝을 박기 시작했다.
그 후 일제시대에 이르러 수백 개의 쇠말뚝을 박은 것이다.

처음 쇠말뚝이 발견된 것은 1980년, 학이 날개를 감싸고 앉은
형국이라 하여 부르게 된 무학산이었다.
1984년에는 삼각산 백운대에서 15개의 쇠말뚝을 뽑아냈고
노적봉의 진혈(眞穴)에서 7개를 뽑았다.

너도 잘 알고 있듯이 1993년에는 속리산 문장대 대왕암 아래에 박혀있던
8개의 쇠말뚝을 제거했다.
그 뿐 아니라 한반도 심장이라 부르는 경복궁의 강령전 교태전 등을 헐어내고
놈들이 구멍을 뚫어 석회석을 부어 만든 쇠말뚝 두 개도 조선총독부를 헐어낸
1997년도에 제거했다.

그러나 우리 몸에 깊숙이 박힌 가시도 뽑아내고 나며 후유증을 앓게 되듯 우리나라도
심장에 박힌 마지막 쇠말뚝이 제거되면서 IMF라는 경제환란을 맞게 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2002년 월드컵축구에서 4강신화를 창조해 내며 경제가 부흥되고
한반도의 기가 완전히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2003년의 우리나라는 어떠냐? 경제의 어려움이 다시 시작되면서
우리 한반도의 정기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오늘 강검산 선생이 쓴 일기를 읽으면서 왜 이 땅의
기가 다시 가라앉고 있는지 그 사실을 짐작했다.

한반도의 머리인 백두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은, 조선총독부 아래
두 개의 말뚝을 박았던 것처럼 또 다른 중요 혈맥 몇 개에 박은 쇠말뚝을
우리가 발견할 수 없도록 교묘히 은폐시켰을 것이라는 거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리와 팔에 단 한 개의 가시라도 깊숙이 박혀 있어
찾아내지 못한다면 마음 놓고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이런 이치와 같다고 본다.
나는 이처럼 은폐되어 있을 쇠말뚝을 꼭 찾아내겠다.
지혜가 황급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빠! 무슨 일 있는 거야?”

  “으응~ 꿈을 꿨어. 하선생님 꿈을…….”

  “아빠 꿈을? 꿈이 무서웠어? 어떤 꿈인데 그렇게 비명을 지른 거야?”

지혜는 내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내며 더욱 놀란다.

  “어머! 이 식은땀 좀 봐. 세상에 잠옷까지 젖었네, 도대체 어떤 꿈이야, 응? 오빠.”

  “선생님이 괴한들에게 쫓기는 꿈인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나.”

강용은 꿈을 사실대로 말해 줄 수 없었다.
아무리 꿈이래도 마음 약한 지혜에게는 충격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위험했던 꿈은 아니지?”

지혜는 내 잠옷을 벗기고 등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오빠, 샤워 해야겠다. 수건으로 닦기만 해서는 안 되겠어.”

귀여운 얼굴을 내 턱에 바짝 디밀며 말하는 지혜의 모습이 예뻐 보였다.

  “괜찮네, 이사람아.”

강용은 지혜의 등을 떼밀어 방문 밖으로 내보냈다.

  “으응~ 싫어, 오빠하고 같이 있을 거야.”

그녀는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가끔 부리던 모습이라 강용은 그녀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해줬다.

  “우리 공주님, 오빠가 잠을 깨워 미안해.”

순간 지혜의 두 팔이 그를 감싸왔다. 그리고 지혜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되는 거야?” 

지혜의 숨결이 가빠졌다.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그의 가슴을 후벼 판다.
강용은 황급히 지혜를 밀치며 일어섰다.

  “내 나이도 이제 스물두 살이란 말야! 우리가 피라도 섞인 남매라면 모르겠어.
   오빤 언제까지 나를 어린애 취급할건데? 오빠도 나를 사랑하고 있잖아!”

지혜의 흐느끼는 소리를 뒤로 하고 강용은 침실을 빠져 나왔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그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강용은 베란다 문을 열고 밤하늘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 지혜를 부탁한다.”

얼마 전, 쇠말뚝을 찾겠다며 집을 나선 선생님의 얼굴이 흐릿한 달 속에서 웃고 계셨다.

  ―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인구 140만의 도시 교토(京都). 동, 북, 서쪽에 걸쳐 산지로 둘러쌓인 분지에 형성된
교토는 한반도 등 대륙에서 건너간 귀화인(歸化人)들에 의해 일찍 개발된 고도(古都)이다.
이 도시는 서기 794년, 헤이안경(平安京) 수도로 조영(造營)되어 헤이안시대를 열며
국정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하지만 막부(幕府)시대를 거쳐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는 정치중심이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겨짐에 따라 형식상의 수도로 전락했다.

그 후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도쿄가 일본의 수도로 자리 잡게 되자
지방의 문화도시로 전락했다.

산업은 전통공업과 상업, 관광업이 발달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견직물과 염색을 들 수 있다.
그 밖에도 전통식품을 생산하는 식품공업이 유명하며 무로마치정(室町) 일대에는 전국 최대의
견직물 도매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고도답게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사찰과 신사가 수없이 운집해 있으며, 옛 왕궁과
도쿠가와가(德川家)의 재경기관인 니조성(二條城)이 있다. 그 니조성을 지나 북쪽으로 오르면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다카노강(高野川)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일본 전통 저택이
한 채 자리 잡고 있다.

이 대저택은 한일합병 당시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 박는 사건을 지휘했고, 그 후 장군으로
승진하여 남태평양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전범(戰犯) 이토 히토시가 살던 곳으로
지금은 그의 아들과 종손 이토 히데오가 살고 있다.

넓은 정원을 돌아 뒤뜰에는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화사한 벚꽃이 만연해 있었다.
산들 부는 봄바람이 벚꽃 향에 취해 춤을 춘다. 온통 하얗게 뒤덮인 뒤뜰의 정원이
눈 덮인 듯 아름답다.

그 벚꽃나무 사이로 한 사내가 칼춤을 추고 있었다.
날선 칼의 섬광(閃光)이 시샘하듯 봄바람을 갈랐다.
저택기둥 옆에서 주춤이며 칼춤을 넋 나간 듯 바라보고 있는 또한 사내가 있다.
이 집안의 모든 일을 맡아보는 집사 기요하라였다.

그는 주인이신 이토 히사요시 회장의 전언을 고하는 걸 잊은 채 칼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히데오 도련님! 우아하게 추고 있는 칼춤이 너무 아름다워 집사는 목구멍에서 말을 토해내지
못하고 입만 벌렸다.

칼춤을 추던 사내가 인기척에 손동작을 멈춘다. 봄바람에 실려 하늘을
날던 벚꽃 잎이 네 조각으로 쪼개지며 허공에서 너울댄다.
이토 히토시의 종손 히데오는 자신의 칼을 서서히 칼집에 밀어 넣으며 집사를 돌아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찾고 계십니다.”

집사는 히데오 앞에서 늘 움츠렸다.
이제 이십육 세의 젊은 히데오, 범상치 않은 풍모가 흘러 넘쳤다.
이토 히사요시 노인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살기마저 그는 느끼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본 미남자로 뭇여성의 마음을 들뜨게 한 이토히데오는 검술의 달인(達人)이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조부의 손에서 자란 이토 가문의 종손(宗孫)이자 자랑이었다.

넓은 대청에 올라선 히데오는 할아버지 히사요시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느냐?”

히사요시의 두꺼운 일자 입에서 결연한 음성이 터졌다. 순간 히데오의 눈썹이 씰룩였다.

  “증조부님께서 말씀하셨던 날로부터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인 줄 압니다만…….”

  “그렇다! 태평양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으신 나의 아버지 이토 이토시
   어른의 유언을 받든 날로부터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1946년 4월,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꼭 8개월째 되던 날, 이토 히토시는 7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아들 히사요시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자신이 죽은 날로부터 만50년이 되는 날 자신이 남긴 유지를 적은 유시를 우물
속에서 꺼내 개봉하라는 유언이었다.

  “너는 오늘밤 집안의 종손으로서 증조부의 유지를 받들어 그분께서 밀봉하여
   우물 속에 넣어두신 유시를 개봉하라!!”

  “하잇!”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무거움이었다.
히데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 밖으로 물러났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조석의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산들 부는 바람에도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대저택의 뒤뜰, 히데오는 우물 속에서 방금 꺼낸 옥으로 만든 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옥함 중앙에 새겨놓은 이토 가문의 문양이 달빛을 받아 선명하다.

― 이 속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궁금한 생각에 당장이라도 옥함을 깨고
싶지만 선조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이 몸을 씻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집사는 우물 옆에 미리 준비한 나무로 된 전통목욕통 속에 우물물을 채워 넣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냉수욕을 하던 도련님이었기에 찬기만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온천물을
섞어가며 온도를 조절하는 듯 했다.

히데오는 벅찬 감동을 억누르며 기모노를 서서히 벗는다.
―나 히데오는 감히 선조이신 이토 히토시님의 유시를 받들게 되었다.
그 속에서 어떤 내용의 유지가 하명되더라도 목숨을 걸고 받들 것이다.
히데오는 결연한 모습으로 목욕통 속에 자신의 몸을 넣었다.

  “나오코를 불러주시오.”

  “알겠습니다, 도련님.”

집사는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저택의 모퉁이에서 기모노 차림의
여자가 얼굴에 홍조를 띄며 총총이 걸어온다.
벚꽃 향과 달빛에 어울리는 청초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히데오의 옆으로 다가와 큰절을 올리고는 이내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통 속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는다.
그리곤 근육으로 뭉친 돌처럼 탄탄한 사내의 몸을 씻기 시작했다.

― 아! 히데오상, 나오코는 꿈에 그리던 사내,
히데오의 몸이 자신의 손에 닿자 전율하듯 바르르 떤다.

심장이 요동쳐, 손을 움직여 히데오의 몸을 닦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 손을 살며시 잡아준 건 히데오의 억센 손이었다.
순간 나오코의 몸에 전류가 흘렀다. 심장은 더욱 뛰어올랐다.

  “나오코, 더 예뻐졌구나.”

히데오의 굵은 목소리가 나오코의 가슴을 팠다.

  “도…련님은 더욱 늠름해 지셨어요.”

  “내가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줄곧 네 생각을 했지, 세라복을 입은 예쁘고
   발랄한 네 모습만을 떠올렸다.”

  “저…저두요.”

  “넌 단발머리 소녀였는데, 벌써 이렇게 여물어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가졌구나.”

히데오의 손끝이 나오코의 젖무덤을 스치고 지나간다.

  ― 아! 그녀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나오코도 사내를 느낄 때가 되었구나!”

  “도…련님.”

나오코는 집사의 딸이었다. 어린 아이 때부터 히데오를 친오빠처럼 따랐고
히데오도 나오코를 동생처럼 아껴주었다.

나오코가 사내를 느낄 무렵 히데오는 영국으로 떠났고 그녀는 긴긴
밤을 히데오 생각으로 보내야 했다.
며칠 전 히데오가 돌아왔지만 나오코는 먼발치에서 히데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오코는 떨리는 손으로 히데오의 몸을 씻어 내렸다.

― 히데오가 나를 찾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언제인가, 히데오가 운동을 마치고 이 우물가에서 등목을 했을 때 히데오의
등에 물을 끼얹어 주고, 그 몸의 물방울 하나하나 정성스레 닦던 일이 생각났다.
― 그날 밤, 나는 행복에 젖어 한잠도 자지 못하고 날을 새우지 않았던가!

히데오의 손길이 나오코의 어깨 위에 얹혀졌다.
그리고 서서히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오코의 옹다문 작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며 벌어졌다.
히데오의 부드러운 손끝이 그녀의 옷깃을 밀어내며 터질 것 같은 젖무덤을 어루만진다.
나오코의 심장은 천둥처럼 요동치며 뜨겁게 타올랐다.

벌겋게 달아오른 감정을 애써 감추려고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온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이대로…이대로 히데오의 넓은 가슴에 눕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 나오코도 사내를 느낄 때가 되었구나.’ 히데오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성숙해진 몸을 느낀 대로 한 말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을 원한다는 말일까, 나오코는 히데오의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막 그의 넓은 등 위에 붙이려는 순간 히데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됐다, 나오코!”

무심한 히데오는 애절한 나오코의 마음을 알지 못한 듯 조용히 일어선다.
나오코는 황급히 기모노를 챙겨 히데오에게 내밀었다.
기모노를 입은 히데오는 말없이 미소를 지은 후 옥함을 집어 가슴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서재가 있는 별채로 걸음을 옮겼다.

나오코는 그의 미소에서 끈끈한 사랑을 읽었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후끈 달아올랐던 자신의 감정을 쓸어내리며 믿음직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히데오의 서재, 양쪽 벽에는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고 안벽에는 일본장군의 상징인
장군도가 걸려 있다.

서재의 중앙 다다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히데오가 앞에 놓인 옥함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 유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무른다.
그러나 우리 이토 가문 가솔들은 그 유시내용을 우리 가문의 명예를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히데오는 조용히 망치를 들어 올렸다.

― 나에게 닥쳐올 운명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난 두려움 없이 맞이할 겁니다.
히데오의 망치든 손이 허공을 가르며 옥함을 향했다.

  “퍼억―”

50년 진공상태로 밀봉됐던 함이 깨어졌다.
히데오는 바짝 긴장하며 깨어진 옥함 속을 내려본다.
그것은 대나무를 쪼개 끈으로 엮은 죽찰이었다.

― 저 죽찰에 증조부의 유지가 적혀 있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히데오는 한참동안 끈으로 묶여 있는 죽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죽찰을 집어 든다.
그리고 천천히 죽찰을 감고 있는 끈을 풀었다. 죽찰 안쪽으로 또박또박
흘려 쓴 유지가 히데오의 눈으로 들어왔다.

 「나, 이토 히토시는 통한의 심정으로 후손들에게 이 글을 남긴다.
  우리 일본은 임진왜란부터 시작하여 수백 년 동안 수만 명의 목숨을 바쳐가며 조선을 두드렸고,
  1910년   8월 22일 드디어 조선을 우리 손아귀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조선을 합병시킨
  것은, 그들의 무능함보다는 그 당시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
  끼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당쟁만을 일삼게 된 시기를 우리가 잘 노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함으로 조선을 어렵지 않게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지세(地勢)는 풍수지리적으로 정기가 맑고 힘이 차서 수많은 인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운을 토해내는 형국이다.
 
  또한 반도는 호랑이 형세를 하고 있어 우리가 인재 출현을 막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일본열도를
  박차 부스러뜨릴 수 있는 엄청난 기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3대통감이셨던 데라우찌 각하께서는 당시 경비대장이었던 나를 은밀히 불러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하는 날, 호랑이 머리로 예측되는 백두산 천지에 저주의 쇠말뚝을
  박도록 지시하셨다.
 
  또한 한반도의 옆구리와 정강이와 발을 찾아 쇠말뚝을 박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각하께서는 조선의 심장부에 구멍을 깊이 파고 석회석을 부어 기둥을 만든 뒤 조선총독부를
  지어 올리도록 한 것이다.
 
  그 덕으로 한반도의 인재들은 나라를 버리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으며 더 이상 새로운
  인재가 생산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 후 우린 조선인들에게 일본말을 가르쳤고 창씨를 개명시켜 우리 황국신민이 되도록 은덕을
  베풀었다.
 
  하지만 천황폐하를 모시던 최측근 지도자들이 거대한 용 미국을 건드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게 우리에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역사를 남기는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

  천황폐하의 무조건 항복으로 조선은 독립됐고, 우린 입술을 깨물며 조선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임진왜란 때부터 박아놓은 저주의 쇠말뚝으로 인해 조선은 크게 부흥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조선은 대한민국으로 국호를 바꾸어 정부를 세운다고 법석을 떨고 있다.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흐를지 장담할 수 없는 법, 만약 대한민국이 일본을 앞지를 만큼 국력이
  부흥된다면 이 유시를 개봉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내가 죽은 날로부터 50년이 되는 날 내
  유시를 개봉하여 유지를 받들라!」

히데오는 여기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참으로 엄청난 내용이 아닌가! 히데오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박은 쇠말뚝이 뽑히기 시작한다면 한국은 부흥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개의 쇠말뚝이라도 중심혈에 쇠말뚝이 박혀있는 한 호랑이는 일본을 박차고 포효하지 못할 것이다. 막아라! 더 이상 쇠말뚝을 뽑아내지 못하도록 우리 집안의 명예를 걸고 대 일본의 영광을 위해 한국의 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내가 직접 박은 쇠말뚝은 머리에 한 개, 옆구리에 두 개, 종아리에 두 개, 모두 다섯 개다. 그 중 한 개라도 찾아내어 은폐시켜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발설치 말고 은밀히 행해야 할 것이다. 조국 일본의 명예를 위해!」

  선조의 유시 내용을 읽으며 히데오는 경악으로 떨고 있었다. 국운이 흔들릴 엄청난 내용이 아닌가!
  10년 전, 한국에서는 6개월에 걸쳐 일제가 박았다는 쇠말뚝사건이 화재가 되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쇠말뚝 제거작업을 벌였고 수백 개의 쇠말뚝을 뽑아냈다는 뉴스를 들었다.
  또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냈으며, 일제가 당시의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파헤쳐 비난하는 뉴스로 세계가 떠들썩했고, 우리 일본 수상이 직접 사과하는 기자회견까지 가졌었다.
  그런데 증조부님의 유지대로라면 아직도 중요 혈맥에 몇 개의 쇠말뚝이 박혀 있는 것이다.
  히데오의 심장은 천둥치듯 뛰어 올랐다. 그의 머리에는 한반도의 혈맥에 박힌 쇠말뚝이 뽑히는 날, 포효하며 뛰어오르는 호랑이의 뒷발에 일본 열도가 차여 바스러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 안돼! 히데오는 짧은 신음을 토해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고 등줄기까지 젖어들었다.

  “저, 히데오는 증조부님의 유지를 받들어 극비리에 한반도에 박힌 쇠말뚝을 뽑아내지 못하도록 지켜내겠습니다!”

  며칠 후, 한국의 백두산 천지에서 일본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쇠말뚝을 박아놓고 천황신께 제사 지내는 장면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증조부님의 유지내용이 사실이란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