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은 일단 남성과 여성 중 여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무한한 손해를 가져다 주는 사고방식이기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성차별이라고 하면 ‘여성만을’ 권리로부터 배제시킨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차별은 ‘구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 1,2차 산업 시기는 생존을 위한 벌이의 수단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생리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바깥일과 안일의 구분 속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주체적으로 생존보존의 주역을 맡게 되고, 반면 여성이 보조적인 자리를 맡게 됩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로 급변하면서 여성이 더 유리한 직업군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사회로 인해 생겨났던 많은 가치들이 지금과 상충하면서 지금과 같은 논란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생존을 위한 동물이기 때문에 생존권을 지닌 사람이 더 우월한 권력, 아니 우월해 보이는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남성이 좀더 우월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구조가 남성을 더 적합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구분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상이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다 줍니다.
남성은 생존을 위한 이른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무와 부담감을 여성에게는 좋은 남성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을, 또 남성은 가장으로서의 스트레스와 여성은 제약된 공간에서 밖에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는 스트레스를 갖게됩 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 남성은 남성 나름대로의 안이함을 버리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다들 이기적이기 때문에 남성이나 여성 모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상대만 바뀔 것을 주장하고 있지요.
가령 여성은 능력 없어도 기생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은근히 편승하려 하고, 남성은 사회구조에 적합한 - 그런 면에선 우월한 성으로서의 자리를 내어 주고 싶지 않아하지요.
그렇다면 차례로 봅시다.
징병제에 관한 입장은 당연히 성구분에서 시작한 제도이지만 차별을 양상시키는 제도입니다. 또한 자유를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이상한 제도이죠.
중요한 것은 남성은 군대를 감으로서 남성의 삶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피해를 입힙니다. 국가가, 국가의 힘으로 3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남성들은 이런 면에서 매우 큰 해를 입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군대는 그러한 남성들에게 사회에서의 새로운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성들은 군대를 통해 결속하는 면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 하나의 성인으로 자리 매김 합니다.
심리적인 면에서의 구분짓기,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여성과 다르다. 나는 남성이다. 라는 ‘구분짓기’는 각종 사회의 불평등을 양상시킵니다. 여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면제받는 사람이나 공익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에서의 따가운 시선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군대, 아니 징병제는 우리나라의 심한 남녀차별의 근원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것은 남성에게도 막심한 손해
(3년이라는 시간)를 주며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심리적인 배제)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게 징병이 아닌 군대 또한 직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무조건의 최고의 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국가라는 체제와 그 안의 군대라는 체제가 일관성을 가져야 혼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거는 직업이기에 높은 대우와 함께 전문적인 직업의 하나로서 존대를 해주고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위와 같은 손해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존할 수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상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가난하죠. 어쩔 수 없는 징병제, 그렇다면 그것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상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손실을 보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군가산점의 형식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가산점은 어찌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군복무는 당연한 것이고 그로인한 권리를 얻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군복무는 말씀 드렸다시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따라서 둘에게 모두 피해 입을 부분에서의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보상은 이루어져야 하나, 그 보상이 ‘군대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에서의 배제라는 여성의 손해를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군가산점은 한정된 사회 공직에서 또 한번 여성을 배제시킬 수 있으며, 징병제를 더욱더 고착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직장, 평생의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장소에서 3년에 대한 보상을 한다면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닌 생
물적인 요건으로 인해 유리함을 가진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없애는 듯 하면서도 더욱더 심화시키는 제도인 것입니다.
차라리 여성에게도 3년 정도의 국가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무상으로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있는 기간을 (대체군복무) 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 보이며, 좀더 적절한 보상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성희롱의 잣대는 남성과 여성의 잣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에게는 이런 잣대 여성에게는 이런 잣대가 아니고 당사자가 기분이 나빠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행위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는 점이죠.
그냥 개인이 기분이 나쁘면 남자든 여자든 고소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서로가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개념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구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위치의 유리함을 가지고 타인을 희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 여성은 기생충이라는 것은 우리사회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은 자신이 거머쥐고 있는 하나의 권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다른 것을 얻으려 주장한다는 것이죠. 기생하는 편안함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사회참여의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나 그것의 원인을 다짜고짜 여성의 기생충같은 마인드만을 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성들도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우위성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오는 권력의 맛을 알기에 여성 기생충을 양상 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지요.
즉 우리사회는 은근히 남성은 숙주생물이 되길, 여성은 기생충이 되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싫어하면서도 좋아하 는-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회 구조이지요.
사회 구조가 그러하고 그러한 사회구조로 여성이 기생하려고 하고 그러한 기생충같은 마인드는 다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는 악순환을 가지고 옵니다. 여성을 욕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면서 여성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성의 의식개혁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남성 여성이 아닌 개인, 한 인간으로서 자각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녀불평등은,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좋지 않음을 인식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구조를 바꾸도록 노력합시다.
서로가 생존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 만날 때 자신의 자아실현과 독립성, 존중이 이루어지며 타자와 함께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남녀성차별은 모두에게 안좋아 -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비판해보고자 합니다.
성차별은 일단 남성과 여성 중 여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없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무한한 손해를 가져다 주는 사고방식이기에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성차별이라고 하면 ‘여성만을’ 권리로부터 배제시킨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차별은 ‘구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 1,2차 산업 시기는 생존을 위한 벌이의 수단이 여성보다는 남성이 생리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했습니다. 따라서 바깥일과 안일의 구분 속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주체적으로 생존보존의 주역을 맡게 되고, 반면 여성이 보조적인 자리를 맡게 됩니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로 급변하면서 여성이 더 유리한 직업군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사회로 인해 생겨났던 많은 가치들이 지금과 상충하면서 지금과 같은 논란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생존을 위한 동물이기 때문에 생존권을 지닌 사람이 더 우월한 권력, 아니 우월해 보이는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남성이 좀더 우월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구조가 남성을 더 적합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러한 구분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상이한 권리와 의무를 가져다 줍니다.
남성은 생존을 위한 이른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무와 부담감을 여성에게는 좋은 남성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을, 또 남성은 가장으로서의 스트레스와 여성은 제약된 공간에서 밖에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는 스트레스를 갖게됩 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 남성은 남성 나름대로의 안이함을 버리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사람들은 다들 이기적이기 때문에 남성이나 여성 모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상대만 바뀔 것을 주장하고 있지요.
가령 여성은 능력 없어도 기생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은근히 편승하려 하고, 남성은 사회구조에 적합한 - 그런 면에선 우월한 성으로서의 자리를 내어 주고 싶지 않아하지요.
그렇다면 차례로 봅시다.
징병제에 관한 입장은 당연히 성구분에서 시작한 제도이지만 차별을 양상시키는 제도입니다. 또한 자유를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기는 민주주의와 모순되는 이상한 제도이죠.
중요한 것은 남성은 군대를 감으로서 남성의 삶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피해를 입힙니다. 국가가, 국가의 힘으로 3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 그것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남성들은 이런 면에서 매우 큰 해를 입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군대는 그러한 남성들에게 사회에서의 새로운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성들은 군대를 통해 결속하는 면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 하나의 성인으로 자리 매김 합니다.
심리적인 면에서의 구분짓기, 나는 군대를 다녀왔고 여성과 다르다. 나는 남성이다. 라는 ‘구분짓기’는 각종 사회의 불평등을 양상시킵니다.
여성까지 가지 않더라도 면제받는 사람이나 공익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에서의 따가운 시선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군대, 아니 징병제는 우리나라의 심한 남녀차별의 근원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것은 남성에게도 막심한 손해
(3년이라는 시간)를 주며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심리적인 배제)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게 징병이 아닌 군대 또한 직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무조건의 최고의 체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국가라는 체제와 그 안의 군대라는 체제가 일관성을 가져야 혼란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거는 직업이기에 높은 대우와 함께 전문적인 직업의 하나로서 존대를 해주고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위와 같은 손해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존할 수 있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상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가난하죠.
어쩔 수 없는 징병제, 그렇다면 그것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보상은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남성으로 태어나서 손실을 보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군가산점의 형식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가산점은 어찌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군복무는 당연한 것이고 그로인한 권리를 얻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는 제도입니다. 군복무는 말씀 드렸다시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따라서 둘에게 모두 피해 입을 부분에서의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보상은 이루어져야 하나, 그 보상이 ‘군대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에서의 배제라는 여성의 손해를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 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군가산점은 한정된 사회 공직에서 또 한번 여성을 배제시킬 수 있으며, 징병제를 더욱더 고착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직장, 평생의 생존과 결부되어 있는 장소에서 3년에 대한 보상을 한다면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닌 생
물적인 요건으로 인해 유리함을 가진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없애는 듯 하면서도 더욱더 심화시키는 제도인 것입니다.
차라리 여성에게도 3년 정도의 국가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무상으로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있는 기간을 (대체군복무) 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 보이며, 좀더 적절한 보상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성희롱의 잣대는 남성과 여성의 잣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성에게는 이런 잣대 여성에게는 이런 잣대가 아니고 당사자가 기분이 나빠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행위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는 점이죠.
그냥 개인이 기분이 나쁘면 남자든 여자든 고소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서로가 기분나빠하지 않도록 개념을 가지고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구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위치의 유리함을 가지고 타인을 희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나라 여성은 기생충이라는 것은 우리사회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개인은 자신이 거머쥐고 있는 하나의 권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다른 것을 얻으려 주장한다는 것이죠. 기생하는 편안함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사회참여의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나 그것의 원인을 다짜고짜 여성의 기생충같은 마인드만을 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성들도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우위성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것이 가지고 오는 권력의 맛을 알기에 여성 기생충을 양상 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지요.
즉 우리사회는 은근히 남성은 숙주생물이 되길, 여성은 기생충이 되길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싫어하면서도 좋아하 는-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회 구조이지요.
사회 구조가 그러하고 그러한 사회구조로 여성이 기생하려고 하고 그러한 기생충같은 마인드는 다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는 악순환을 가지고 옵니다. 여성을 욕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면서 여성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성의 의식개혁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남성 여성이 아닌 개인, 한 인간으로서 자각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녀불평등은,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좋지 않음을 인식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구조를 바꾸도록 노력합시다.
서로가 생존에 대한 능력을 가지고 남녀가 아닌 인간으로 만날 때 자신의 자아실현과 독립성, 존중이 이루어지며 타자와 함께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