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섯의 작은 평화

이미은200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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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도록,

 

무엇이든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비우고 다시 비우도록.

 

 

 

누구나 이만큼 애쓰지 않은 사람 없어,

 

산 정상에 가까이 오를수록 더욱 급격히 몰아쉬게 되는 호흡을 생각해,

 

네가 가진 손톱 끝의 티끌이 앉은 자리에마저도

 

너에게는 무궁하게 크나큰 행복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잊지마,

 

그것을 잊을 때마다,

 

저를 기억해달라고 그것들이 떼를 쓰느라

 

일부러 너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쉬지말고 나를 일깨워주세요.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 오는 길을

 

소리나는 눈물로 이었습니다.

 

쉬고 있어도 머릿살 틈틈이 떠나지 않는 일상을,

 

의자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발꿈치에도 채이는

 

달력의 꼼꼼한 글씨들을

 

너무 무거워질때까지 쌓아두었다고 후회하면서

 

나는 아주 가벼워지고 싶은 속내를 부끄럼없이 쏟았습니다.

 

 

 

온 가족이 티브이를 보고 있을 내 둥지의 현관을 여는 순간

 

내게로 퍼부어질, 귀가인사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눈들이

 

내 얄팍한 눈꺼풀 위에 한덩이, 두덩이 뭉쳐 있습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오듯이,

 

고단한 하소연을 너무 가둬두었지 싶어 잠시 허락해 놓은 눈물은

 

이별만큼은 얼룩지게 하지 말자고 어거지로 씹어삼켰던 그저께의 눈물을,

 

윗사람만이 해도 좋은 쓰고 찬 말들도 

 

모른척 하자고 미뤄두었던 어제의 눈물을,

 

부모님께는 차마 보여드릴 수 없었지요,

 

이마에 뭐가 그렇게 났니 - 반찬이 유난히 맛있다고 둘러대버린

 

오늘 아침의 눈물을,

 

어디서 찾았는지 속속들이 몰고와 길을 잇고 다시 이었습니다.

 

 

 

한동안, 아니 어제까지, 어쩌면 지금도

 

길은 얼마든지 이어도 좋았습니다.

 

내일도 내 눈을 바라봐줄 아이들을 생각하는 일이 흐뭇하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국어를 읽고 말하는 일이 기꺼우며

 

이렇게 빼곡히 즐거운 보람으로 담은 월급봉투를

 

가족들에게도, 친구 결혼식에도, 나의 치장에도, 은행에도

 

푼푼이 나누어 주는 일이 얼마나 뿌듯했던지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행복해도 괜찮은거냐고, 두려워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감히 나를 이겨낼 용기가 없습니다.

 

여전히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대도

 

눈물이 연해 나고, 매일의 무게가 내 호흡이 다니는 기도를 누르는 것을

 

모른척하기가 너무 겹습니다.  

 

 

 

어쩌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징그럽게 대결해왔던 나의 나,

 

오늘만 견디면 되나요,

 

선생님으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될 수는 있을까요,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견디고 정성을 다하는 크기와는

 

처음부터 무관한 곳이 아니었나요,

 

진실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떠나고 싶어하고,

 

간절히 원할수록 그것은 내게서 멀어지기만 했어요,

 

아니면,

 

내가 모자랐나요, 진실하지 못했나요, 무엇도 간절히 바랬던 적 없었나요,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나는 세상에게 무엇을 원하고,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더냐고,

 

헤아릴 수 없는 원망과 현기증을 토로하면서도

 

사실은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비우면 된다는 것.

 

 

 

토로할 것이 많은 것은 많은 욕심이 소화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해야할 것들을

 

굳이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것.

 

마음의 여백에서 오는 하얀 평화를 스스로

 

한평씩, 한뼘씩 물리쳐 왔기 때문이라는 것.

 

 

 

나를 한 순간도 빠짐없이 지켜봐주세요.

 

나를 한 순간도 잊지않고 비워주세요.

 

언제나 마음에 까닭도 없이 현기증이 나면

 

그새 소화되지 못한 욕심의 불편함을 잊었느냐고,

 

그깟 현기증 한두번 참을 용기도 없다면

 

다만 비워낼 것을 재촉하여 주세요.

 

 

 

나는 어리석습니다.

 

이렇게 길 위에든, 남 모르는 종이 위에든 옹알이 옹알이 내어 놓지 않고는

 

제 마음 한 구석도 이기지 못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서야 죽음도 죽을 수 있었던,

 

나약한

 

사람입니다.

 

겸허하고자 마음을 다스리고 난 직후에도 

 

욕심의 횡포에 자유롭지 못한 한 생명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말아 주세요.

 

내게는 당신의 호흡이 담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나는 눈물로 이어야 할 길이 몇 천리를 간다해도

 

꼭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는, 황금 조각을 나누며 생겨난 인연이기에

 

황폐할 수 밖에 없는, 서로를 대하는 서툰 기술에

 

너무 깊이 아프거나 상심하지 않도록.

 

 

 

어쩔 수 없는, 황금 조각을 얻어야만 숨쉴 수 있는 세상이기에

 

한 틈도 없는, 백과사전처럼 빼곡한 달력 종이에

 

너무 날카롭게 베이는 일이 없도록.

 

 

 

어리석은 나를,

 

나약한 나를,

 

그래도 스스로가 강하고 지혜로운 줄을 믿고

 

소금 한 점의 결정 앞에서도 심장 위에 얹은 손이 떳떳할 수 있도록..

 

 

 

작은 평화의 집을 지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