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10]

크레이지쑥e2005.05.17
조회2,954

원나잇 스탠드.[제10화]

 

창 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벚꽃 잎이 우르르 떨어진다. 비록, 작은 꽃잎이지만
그들의 위력은 상당히 커 보이는 벚꽃. 살짝 열려진 창문 틈 사이로 벚꽃의 달콤한
내음이 내 코 끝을 간지럽히고, 자극한다.
벚꽃의 꽃비는 한겨울의 내리는 흰 눈 만큼이나 운치 있어 보인다.
한참을 넋 나간 듯 창밖에 열중하던 내 시선을 돌린 것은 예고 없이 내 책상에 떨어진 하얀 분필 이었다.

 

“이 준희! 너희 담임선생님이 부르는구나.
학생과로 가봐! 그리고 다음부터 수업시간에
딴 짓 하려거든 아예 들어오지 말고.”

 

수학 선생님이 딴청부린 내 행동에 화가 난 듯 힘주어 말을 했다.
난,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교실 문을 열고 학생과로 향했다.


똑똑똑.


무엇 때문에 호출을 했을지 뻔했기에, 그 어떤 긴장감도 의문도 갖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들어 섰을때, 승하는 팔짱을 끼고, 내가 그랬던 것과 같이 창밖의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었다.
학생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그는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준희, 앉아.”

 

나에게 앉으라는 행동을 취한 승하는 여전히 팔짱을 낀채로 벽에 기대어 다리를
꼬아섰다.  난, 그런 승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승하 옆에 서서 나도 벽에 등을 기댄다. 내가 의자에 앉지 않고, 승하의 행동을 따라하자, 그가 벽에서 등을 떼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이 준희, 앉으라고 했지”

 

난, 그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앞에 가까이 있는 그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와이셔츠 단추를 한 개, 두 개 천천히 풀어 내린다.


“선생님! 내가 지금 뭐하려는지 알아?”

 

그의 귀 가까이 대고, 작고 부드럽고도 달콤하게 속삭였다.
마른침을 한번 삼키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유 혹.”

 

“빙 고.”

 

헛기침을 한 뒤, 쇠 된 소리로 승하가 말했다.
난, 승하의 말에 흡족해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까치발을 하고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내 얼굴을 들이 밀었다.

 

“안 넘어 올수 있어? 후훗.”

 

몸을  뒤로 빼내려는 승하의 어깨를 잡고 내가 물었다. 나를 살짝 밀쳐내는 그의 행동에 개의치 않고, 다시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입술 위에 내 입술을 포갠다.
그리고 그의 손을 내 가슴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 내 목을 두르게 했다.
그의 이성은 나를 밀쳐내야 한다고 아우성치지만, 그의 본능은 쉽게 나를 받아들인다.
그가 입을 열고, 스스로 나를 끌어 당겼을 때 난 유유히 그의 품에서 빠져 나가려 했지만. 이미 내 입술에, 내 향기에 도취(陶醉)된 그는 날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좀더, 깊게 좀더 안으로 파고들었고,
그때. 누군가 학생과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 선생님. 왜. 왜. 이러세요. 흑흑.”

 

“권선생! 지. 지금.”

 

교장 선생님 이었다. 예상치 못한 교장 선생님의 출현에 나는 흐믓해 했지만,
승하의 얼굴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구겨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버릴까?’

‘눈물을 보이고 뛰쳐나갈까?’

그 짧은 시간에도 내 머리 속엔 온갖 상념이 들어섰고, 강제로 당한 여인의 모습을 좀더 각인시키기 위해 파르를 온몸을 떨고, 잔뜩 겁먹은 아이 같은 눈망울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몸을 밀쳐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식으로라도 그리 했어야만 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교장 선생님의 부름을 흘려버리고 옥상으로 올라간 나는 통쾌한 복수의 쾌재를 불렀다.
뛰쳐나가는 나의 뒷모습에서 당신들은 눈물과 여자의 수치심을 보았겠지만,
난 간만에 소리 내어 커다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하하.
.......하하하.”

 

마음껏 제껴 웃었다. 그런데, 그런데, 젠장.
통쾌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러운지. 말로형용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짓누른다. 웃고 있지만, 억지웃음이다.
분명 세상을 손아귀에 거머쥔 것처럼 통쾌한 순간이지만 왜 이리 씁쓸한 것일까.
그로 인해 내 위신이 실추 되고, 추락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존재가 변질 되거나,
무(無)가 된 건 아니다. 그저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바보 같은 변명일 뿐이겠지.
이런, 거짓 따위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내 마음 한구석을 메아리치며 멤 돈다.

 

“훗. 수업시간에 옥상은 위험지역이지
특히나, 너 같은 애한테는 더더욱.”

 

빈정대는 남자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옥상에는 왼손에 붕대를 감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다가 멈춰버리는 태후가 있었다.
난, 태후의 말에 아무런 말없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태후에게 까딱 거렸다.
태후는 피식. 웃더니 이내 앞으로 왔고, 난 태후의 윗 교복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가 봐.”

 

한참을 멍하니 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 한 채 쳐다보는 태후에게 툭 던진 한 마디였다.

 

“명령하는 말투, 건방진 행동 거슬린다고 얘기 했을텐데.
네가 잘 모르나 본데, 태후라는 사람 무섭거든?
얼굴하나 믿고 깝치지 말아, 너 같은 애
데리고 노는 건 이깟 담배 피우는 일보다도 쉬우니까.”

 

“후. 훗.”

 

태후 앞에서 팔짱을 끼고 담배를 피던 나는 연기 한 모금을 폐 속 깊이 들이 마셨다가, 힘껏 태후 얼굴에 뿜어댔다.

 

“후후. 그래?
그럼, 너라는 사람 얼마나 무서운지 볼까?”

 

조롱하는 내 말투에, 태후는 화를 꾹꾹 눌러 참는 듯, 두 주먹을 꽉 진 모습이 나에게
그렇게 말한다.

 

“여러 말 필요 없고,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지.”

 

태후가 말을 마치고, 나에게서 담배를 빼앗아 바닥에 내팽겨 치고는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난데없이 키스를 해온다. 태후의 입술이 내 윗입술을 살짝 깨물고,
강압적으로 내 입을 열었다.
순간적인 태후의 행동에 잠시 멍해있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태후를 힘껏 밀치고 태후의 몸에서 떨어졌다.

 

‘쫘 악.’

 

“이런 거였니? 그런 거라면 잘못 짚었어.”

 

‘쫘 악.’

 

“객기로 한번은 봐준다.”

 

‘쫘 악.’

 

“다시 한번 내 몸에 손대는 날 이오면 죽여 버릴 거야.”


‘쫘 악.’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명심해.”

 

그리고 다시 한번 태후얼굴에 손을 들어 올렸을 땐, 태후가 먼저  내 손목을 잡고 나를 강하게 벽 쪽으로 밀쳐낸다.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며 화를 눌러 참던 태후가 나를 자신의 양팔 안에 가두고, 별안간 벽에 주먹을 내 질렀다.

 

‘퍽.’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 내 인내심도 이제 바닥났어!”

 

붕대를 감은 왼손은 내 오른쪽 어깨를 감싸고 태후의 오른손에선 붉은 피가 떨어졌다.
나를 벽 쪽에 밀쳐둔 그대로 붕대를 감은 그 손이 내 양손을 잡아 올리고, 한쪽 다리로 내배를 꽉 눌러 오더니 아까와는 달리 가벼운 키스를 해왔다.
내배를 누른 통증은 태후의 또 한번의 기습 키스로 인해 느낄 수조차 없었다.

 

“잘못 짚은게 아니란 걸 보여주지.”

 

참새들이 서로 부리를 부딪치며 가볍게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살짝 입술만 맞대는 가벼운 키스를 했다.

 

“객기가 아니란 것도 보여 줄게.”

 

강한 남성다움을 표현하듯, 그리고 자신의 화를 표출하듯,
내 입술전체를 거칠게 덮어왔다.

 

“다시 한번 내 얼굴에 손 올리면 이걸로 안 끝내.”

 

좀 전보다 감각적인 내 입술 정면에서 키스 하며, 또 내입이 완전히 맞닿도록 세게 접촉시켜왔다.

 

“하나도 빠짐없이 명심해, 오늘은 여기 까지야. 후후.”

 

마지막을 예고하고 좀 더 깊은 딥키스를 하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태후가 남기고 가버린 것은.
어느 새 내 등을 받치고 있는 벽면에 채워진 태후 혈흔의 잔영이었다.
거기서부터 태후가 사라진 문 앞까지 태후가 걸어간 흔적에 남은 핏자국을 보고, 내배의 통증과 더불어 머리도 조금씩 아파온다. 그리고 난 ‘털썩’바닥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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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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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