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서 드르륵 하는 소리가 계속나서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피곤하고, 온몸이 개운하지 못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전 11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드르륵하는 소리는 삐삐의 진동소리였다. 아직 잠이 덜깬 상태에서 삐삐를 보았다. 5개의 메시지와 번호가 들어와 있었다. 번호를 보니 모두 최선생님의 번호였다. 그 번호를 보니 갑자기 잠이 확 깼다. 8282라고 계속 찍혀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은미 생각이 났다.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애써 그 생각들을 지우며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먼저 직접 최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최선생님이 받았다.
"선생님, 저 일한인데요... 제가 자는라고 삐삐에 일찍 답신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일한씨도 아직 모르고 계시군요. 정말 끔찍한 일이 발생했어요.. 휴... 제 잘못일지도 모르죠... 은미가 오늘 새벽에 자살했답니다. 자기 방에서 몸을 던졌데요.. 끔찍하게도... 오늘 오전 10시에 은미를 만나기로 해서 갔는데, 은미 집은 비어있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집앞에 모여있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은미가 자살했다는 거예요. 제기랄! 어제 만났을 때 이럴 줄 알았어야 하는데.... 지금 제일병원 영안실에 있답니다. 저도 병원일 좀 매듭짓고 가 볼 생각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일한씨 듣고 있어요? 일한씨!"
난 충격으로 최선생님의 전화를 끝까지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은미가 죽다니... 머리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렇게 무서워서, 그렇게 살고 싶어서, 나에게 구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결국 은미를 위해서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은미에게 아무 것도 못 해준 것이다. 나는 대충 상복으로 가라입고 제일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영안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참담했다. 어머니는 아직 정신을 추스릴수 없으신지, 영안실에 나오시지 못하셨다. 은미 아버지만이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은미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불쌍한 자식.... 병원을 나오다가 은미 친적 분 같은 분이 은미가 죽던 상황에 대해 얘 기하는 것을 들었다.
"...글세, 새벽에 은미 비명소리에 다들 깼다는 거야.. 그 애 방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 방으로 갔데... 하지만, 방문을 꼭 잠겨있었고... 방안에서 은미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대.. '제발이야... 나를 그만 놔둬.... 알았어.... 죽을테니 나 곁을 떠나줘.... 제발....' 그리곤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은미가 자기 방에서 뛰어내렸대.. 그 애 정신이 좀 이상해졌나 봐... 불쌍하지... 그런데, 그 애 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은미가 남긴 유서 내용이 었대..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믿고 공부하라고 괴롭혀 자살한다는 내용 이었다는 거야... 은미 엄마는 쓰러질 수 밖에 없지 뭐.... 쯧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가지 확신을 가졌다. 그 존재가 뭔지도 모르고, 그 존재 이유가 왠지도 모르겠지만, 은미 스 스로 자살한 것은 분명히 그 뭔가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귀신이나 유령을 믿기 싫었다. 은미는 내가 죽인 것 같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애타게 도움을 청했던 아이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고, 죽음을 당 하게 하다니.... 좌절과 분노, 죄책감 등이 마음속에서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단지 은미를 그렇게 만든 그 무엇에 대한 강한 분노와 복수심만 느껴졌 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또 어떤 불쌍한 아이가 공포에 떨다가 죽어가는지도 몰랐다. 영안실을 나서자 마자, 나는 복수의 준비를 했다. 5분만에 준비를 마치고, 한강에 가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가을 한강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많은 사람이 산책을 하고 한가로운 가을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빼어물고 은미와 관련된 일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배워온 논리와 과학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발생했고 나는 그 비극을 막아야 할 것 같았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준비물을 들고 일어섰다. 지금쯤 일어나서 그곳에 도착하면 적당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곳에 다가갈수록 공포와 함께 격렬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신나를 들고 문제의 스티커 사진기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 모든 악몽은 시작된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전날 밤과 다름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분노가 내 감정을 지배하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나는 장막을 젓히고 화면을 바라보고 섰다. 징그러운 괴물을 내려치는 기분으로, 망치를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그 화면을 내려쳤다. 불꽃이 튀기며 화면이 깨졌다. 통쾌했다. 몇번을 내려쳐 스티커 사진기를 박살냈다. 파편이 튀겨 손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리는 것에는 전혀 게의치 않았다. 어깨가 아플 때까지 내려치고, 망치를 내려놨다. 그리고 준비한 신나를 기계 주변에 뿌렸다. 사유재산 파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신나 한통을 다 뿌린 후,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과 10 분전만 해도 말짱하던 라이터가 불이 붙지 않았다. 한참을 해봐도 불이 붙지 않았다. 이상했다. 뭔가가 방해하는 것 같았다. 구멍가게로 들어가 라이터를 하나 사올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이 기계를 불태운 범인이요 하는 멍청한 짓 같았다. 라이터를 집어 던지고,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쳤다. 순간 불꽃이 튀어 신나에 붙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스티커 사진기 를 활활 태웠다. 어디선가 여자 아이의 비명 소리인지 불이 붙는 소리인지 구분 안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게의치 않았다. 오히려 비병소리로 생각하니 겁 이 나기는커녕 더욱 통괘해졌다. 나는 한참을 붙타는 기계를 바라 보았다. 주머니에서 그 기분나쁜 아이의 확대된 사진을 꺼내 불길속으로 던졌다. 속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해졌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울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면서 발길을 돌렸다. 모든 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폭음을 했다. 술에 만취해 어떻해서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없었다. 다음 날, 한승이 형의 전화에 잠이 깼다.
"일한아, 들어봐.. 오늘 작업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네가 맡기고 간 두장의 스티커 사진 있잖아.. 아침에 와보니, 그 사진들이 둘다 하얗게 변해있었어.. 어제 밤까지 선명하던 사진들이 백지처럼 변한 거야.. 이상해서 그 사진을 스캔해서 보관했던 컴퓨터를 켜봤어. 그런데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거야. 전원에는 이상이 없어 본채를 분해 해보니, 이게 왠일이니.. 하드가 원인도 알 수 없이 새까맣게 타 있는거야. 결국 그 밝혀낼 수 없는 사진은 영원히 사라진거야... 아무도 모르게...."
은미의 자살이 있은지 한달 반쯤 지난 어느날이었다. 지영이를 만나러 가다가, 우연히 그 스티커 사진기가 있던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동안 어느새 은미의 일들을 거의 잊었는데, 그 앞을 지나게 되니 모든 것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그 짓다만 건물은 끔직했던 사건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이, 어 느새 새 건물로 탈바꿈해 있었다. 누군가가 그 건물을 인수해 새 건물로 말끔이 단장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불태워버렸던 문제의 사진기는 깨 끗이 치워져 있었다. 천천히 그 새 건물앞을 지나가는데, 화려한 간판아래로 많은 여학생들이 어느 한 가게에 바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가게인가 간판을 자세히 보다가, 놀라서 움찔했다. 간판에 <스티커 사진 - PHOTO SHOP>이라고 써있었다. 가게안을 살펴 보니 스티커 사진기를 여러대 모아둔 곳이었다. 괜히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여학생들이 흥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게에서 나왔다. 우연히 그 애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 었다.
"얘.. 이것봐. 정말 나왔어. 소문이 맞나봐... 참 신기하다..." "얘는 신기하다니.. 난 무섭다. 얘...."
그러고는 내 앞을 지나다가 실수인지 우연인지 들고 있던 스티커 사진 을 한 장 떨어뜨렸다. 나는 몸을 구부려 사진을 집어들었다. 새로 나온 종류인지, 내가 알고 있던 스티커 사진보다는 2배는 커보였다. 무심코 그 사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앗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 로 충격을 받았다. 온 몸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그 사진에는 앞에서 얘기하던 두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아이 뒷 배경으로 희미하나마 일곱 명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은미와 자살한 친구애들과 그리고 그 끔직한 아이가 기분나쁜 미 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하우스오브왁스>무서운이야기-마지막편...
책상 위에서 드르륵 하는 소리가 계속나서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피곤하고, 온몸이 개운하지 못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전 11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드르륵하는 소리는 삐삐의 진동소리였다.
아직 잠이 덜깬 상태에서 삐삐를 보았다. 5개의 메시지와 번호가 들어와
있었다. 번호를 보니 모두 최선생님의 번호였다.
그 번호를 보니 갑자기 잠이 확 깼다.
8282라고 계속 찍혀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은미 생각이 났다. 온갖 불길한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애써 그
생각들을 지우며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먼저 직접 최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최선생님이 받았다.
"선생님, 저 일한인데요...
제가 자는라고 삐삐에 일찍 답신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일한씨도 아직 모르고 계시군요.
정말 끔찍한 일이 발생했어요..
휴... 제 잘못일지도 모르죠...
은미가 오늘 새벽에 자살했답니다.
자기 방에서 몸을 던졌데요.. 끔찍하게도...
오늘 오전 10시에 은미를 만나기로 해서 갔는데, 은미 집은 비어있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집앞에 모여있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은미가 자살했다는 거예요.
제기랄! 어제 만났을 때 이럴 줄 알았어야 하는데....
지금 제일병원 영안실에 있답니다.
저도 병원일 좀 매듭짓고 가 볼 생각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일한씨 듣고 있어요? 일한씨!"
난 충격으로 최선생님의 전화를 끝까지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은미가 죽다니...
머리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렇게 무서워서, 그렇게 살고 싶어서, 나에게 구해달라고 했는데...
나는 결국 은미를 위해서 해 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은미에게 아무 것도 못 해준 것이다.
나는 대충 상복으로 가라입고 제일 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영안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참담했다.
어머니는 아직 정신을 추스릴수 없으신지, 영안실에 나오시지 못하셨다.
은미 아버지만이 억지로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은미를 보니 눈물이 나왔다.
불쌍한 자식....
병원을 나오다가 은미 친적 분 같은 분이 은미가 죽던 상황에 대해 얘
기하는 것을 들었다.
"...글세, 새벽에 은미 비명소리에 다들 깼다는 거야..
그 애 방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 방으로 갔데...
하지만, 방문을 꼭 잠겨있었고...
방안에서 은미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대..
'제발이야... 나를 그만 놔둬....
알았어.... 죽을테니 나 곁을 떠나줘....
제발....'
그리곤 창문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은미가 자기 방에서 뛰어내렸대..
그 애 정신이 좀 이상해졌나 봐...
불쌍하지...
그런데, 그 애 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은 은미가 남긴 유서 내용이
었대.. 엄마가 자기 말을 안 믿고 공부하라고 괴롭혀 자살한다는 내용
이었다는 거야...
은미 엄마는 쓰러질 수 밖에 없지 뭐....
쯧쯔...."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한가지 확신을 가졌다.
그 존재가 뭔지도 모르고, 그 존재 이유가 왠지도 모르겠지만, 은미 스
스로 자살한 것은 분명히 그 뭔가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귀신이나 유령을 믿기 싫었다.
은미는 내가 죽인 것 같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애타게 도움을 청했던 아이에게 아무 것도 못해주고, 죽음을 당
하게 하다니....
좌절과 분노, 죄책감 등이 마음속에서 복잡하게 엉켜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단지 은미를 그렇게 만든 그 무엇에 대한 강한 분노와 복수심만 느껴졌
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또 어떤 불쌍한 아이가 공포에 떨다가 죽어가는지도 몰랐다.
영안실을 나서자 마자, 나는 복수의 준비를 했다.
5분만에 준비를 마치고, 한강에 가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가을 한강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많은 사람이 산책을 하고 한가로운 가을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담배를 빼어물고 은미와 관련된 일들을 생각해봤다.
내가 배워온 논리와 과학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발생했고 나는 그 비극을 막아야 할 것 같았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준비물을 들고 일어섰다.
지금쯤 일어나서 그곳에 도착하면 적당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곳에 다가갈수록 공포와 함께 격렬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한 손에는 망치를, 한 손에는 신나를 들고 문제의 스티커 사진기 앞에
섰다. 여기서부터 모든 악몽은 시작된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전날 밤과 다름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분노가 내 감정을 지배하자, 두려움은 사라졌다.
나는 장막을 젓히고 화면을 바라보고 섰다.
징그러운 괴물을 내려치는 기분으로, 망치를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그
화면을 내려쳤다. 불꽃이 튀기며 화면이 깨졌다.
통쾌했다.
몇번을 내려쳐 스티커 사진기를 박살냈다.
파편이 튀겨 손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리는 것에는 전혀 게의치 않았다.
어깨가 아플 때까지 내려치고, 망치를 내려놨다.
그리고 준비한 신나를 기계 주변에 뿌렸다.
사유재산 파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지만,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신나 한통을 다 뿌린 후,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라이터를 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과 10
분전만 해도 말짱하던 라이터가 불이 붙지 않았다.
한참을 해봐도 불이 붙지 않았다.
이상했다. 뭔가가 방해하는 것 같았다.
구멍가게로 들어가 라이터를 하나 사올까 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이
기계를 불태운 범인이요 하는 멍청한 짓 같았다.
라이터를 집어 던지고,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쳤다.
순간 불꽃이 튀어 신나에 붙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스티커 사진기
를 활활 태웠다.
어디선가 여자 아이의 비명 소리인지 불이 붙는 소리인지 구분 안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게의치 않았다. 오히려 비병소리로 생각하니 겁
이 나기는커녕 더욱 통괘해졌다.
나는 한참을 붙타는 기계를 바라 보았다.
주머니에서 그 기분나쁜 아이의 확대된 사진을 꺼내 불길속으로 던졌다.
속이 시원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허탈해졌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지울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면서 발길을 돌렸다.
모든 것을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러 폭음을 했다.
술에 만취해 어떻해서 집에 들어갔는지 기억이 없었다.
다음 날, 한승이 형의 전화에 잠이 깼다.
"일한아, 들어봐..
오늘 작업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네가 맡기고 간 두장의 스티커 사진 있잖아..
아침에 와보니, 그 사진들이 둘다 하얗게 변해있었어..
어제 밤까지 선명하던 사진들이 백지처럼 변한 거야..
이상해서 그 사진을 스캔해서 보관했던 컴퓨터를 켜봤어.
그런데 컴퓨터가 켜지지 않는거야. 전원에는 이상이 없어 본채를 분해
해보니, 이게 왠일이니..
하드가 원인도 알 수 없이 새까맣게 타 있는거야.
결국 그 밝혀낼 수 없는 사진은 영원히 사라진거야...
아무도 모르게...."
은미의 자살이 있은지 한달 반쯤 지난 어느날이었다.
지영이를 만나러 가다가, 우연히 그 스티커 사진기가 있던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동안 어느새 은미의 일들을 거의 잊었는데, 그 앞을 지나게
되니 모든 것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그 짓다만 건물은 끔직했던 사건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듯이, 어
느새 새 건물로 탈바꿈해 있었다. 누군가가 그 건물을 인수해 새 건물로
말끔이 단장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불태워버렸던 문제의 사진기는 깨
끗이 치워져 있었다.
천천히 그 새 건물앞을 지나가는데, 화려한 간판아래로 많은 여학생들이
어느 한 가게에 바글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슨 가게인가 간판을 자세히 보다가, 놀라서 움찔했다.
간판에 <스티커 사진 - PHOTO SHOP>이라고 써있었다.
가게안을 살펴 보니 스티커 사진기를 여러대 모아둔 곳이었다.
괜히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멈추었던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여학생들이 흥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게에서 나왔다. 우연히 그 애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
었다.
"얘.. 이것봐.
정말 나왔어. 소문이 맞나봐...
참 신기하다..."
"얘는 신기하다니..
난 무섭다. 얘...."
그러고는 내 앞을 지나다가 실수인지 우연인지 들고 있던 스티커 사진
을 한 장 떨어뜨렸다. 나는 몸을 구부려 사진을 집어들었다. 새로 나온
종류인지, 내가 알고 있던 스티커 사진보다는 2배는 커보였다.
무심코 그 사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앗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
로 충격을 받았다. 온 몸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그 사진에는 앞에서 얘기하던 두 아이가 밝은 표정으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아이 뒷 배경으로 희미하나마 일곱 명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은미와 자살한 친구애들과 그리고 그 끔직한 아이가 기분나쁜 미
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