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절정

백승권2005.05.18
조회2,090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2005년 5월 13일은 우리가 만난지 16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위의 평범해 보이는 한문장이 얼마나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있다. 날 욕하지마라. 시작의 글은 내몫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대의 선택이기에. 지금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면 당신은 이 글을 안본셈이 되는 것이다. 경고는 끝났다.     감정놀음이라는게 참 우습다. 사랑을 한다는 거. 점점 유치해지고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충실해가며 이것저것 가릴 것 같지만 실체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리에 포함된 나는 지금 거대한 실험군이 되어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있는 기분이다.   얼마나 대단하게 사랑하느냐. 얼마나 고정된 관념과 편견들을 부숴가며 심장의 핑크색을   유지하느냐 얼마나 처음의 뜨거움을 간직한채 같은 길을 가느냐   손을 놓지 않는냐   시선을 떼지 않느냐 진심을 잃지 않느냐 등 이외에도 수많은 물음들을 제기할 수 있는   이런 진정성들에 대해 직접 그 한계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무슨 과학 실험같다고? 난 수학에는 머저리 수준이었지만 그나마 한글은 읽을 줄 알았기에   당당히 문과를 선택했다. 사실 과학이나 생물같은 땀구멍 하나까지 고배율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이런 것들 별로 안좋아한다. 사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작된 것들이 훨씬   많다고 믿기에. 암튼 별 미친놈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스스로의 감정의 농도의 변화에   대해 실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 붉은 색이, 그 높게 치솟은 체온이, 그 뗄 줄 모르는 시선이   그 편지가, 그 약속들이, 그 속삭임과 웃음들이, 떨림과 선물들이 얼마나 스스럼없이   절정의 고도를 유지할 수 있나 알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건 최근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처음부처 사랑이란 감정에 불을 붙이는 인간들은 사실상 존재가치가   없다. 사설 같지만 사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자 근본적인 것은 진심이기에. 어쨌든.   사귄지 5년. 이정도면 감정의 순환루트는 한바퀴 돌았겠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이제   반복되고 반복되는 감정의 고리들과 습관처럼 익숙해진 제스츄어들이 서로의 일상을   더이상 떨림이 아닌 평범함과 당연함의 먼지들로 채우겠지. 처음의 그 숨이 막힐듯한   감정의 역류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말그대로 늘 그자리에서 당연히 있는 존재가 되어   어찌되던 아무렇지도 않은 무감각한 주변 것들의 일부가 되겠지 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모던락들의 가사들은 읊조리듯 이런 내용들을 쏟아내가며 익숙해진 사랑의 허무함과   슬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수없이 물어오곤 했으니까. 나조차도 귀에 꽃고 살아가며    과연 이런 기분과 우울함, 당연한듯하다가 엄습해오는 허무함들이 나와 우리 주위를   맴돌까봐 자못 두려웠었다 정말 그런날이 오면 어쩌나 해서. 그땐 우린 어찌되나 해서.   그러나 어쩌랴. 강산의 절반정도가 제모습을 잃었을만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모되지 않음을. 그 빛남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햇볕에게 미안하게 시리.   여전히 일주일에 한번꼴로 겨우 보는 지겨울 수 없는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서 유영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아쉬움과 그 안타까운, 이젠 단어로도 자아내기 버겨운 그 수많은   겹겹의 상처와 만신창이로 범벅된 그을린 가슴깊음이 이렇게 이렇게 마주하는 절정의   반가움과 눈물겨운 웃음을 잃지 않게 만들었나보다.   특별한 날이었을까. 그냥 먼저와서 20분정도 기다린 것 뿐인데. 2층에 있었고 전화를   받았다.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기다렸고 좀 더 계획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옷차림을 조금 아쉬워 하며 익숙한 얼굴이 가까워져 오기를 초조해하며   세고 있었다. 어서 어서 보여달라고.   멀리 보이는 익숙한 키 익숙한 옷차림 익숙한 얼굴 익숙한 헤어스타일 익숙해서   익숙해서.. 너무 좋은 너무 반가운 너무.. 정말이지..너무 감격스런.    0.5미터 앞까지 가까워졌을때 난 말을 잃었다. 준비하지도 않은 인사였지만 이미 눈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두근대고 있었다. 심장소리는 어느새 들리지도 않고. 니가 바로   이유가 된 순간. 모든 것의 답. 내가 꿈을 꾸고 내가 숨을 쉬어야 하며 내가 살아있어야   할. 처음이자 아직 그 끄트머리가 보이지도 않는 마지막의 이름. '행복'이란 단어가   초라해 보였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100여개국의 감탄사 정도는 알아두는 건데.   초등학교 6학년때 만화책에서 봤던 오랜만에 만난 두남녀가 보자마자 와락 껴안고   한참을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가득 연출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때 그 만화의   한컷보다 엑스트라들이 훨씬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아마 서슴치 않고 자행했다간   정장을 입은 보안담당인들이 달려들어 곤봉으로 제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아줌마들의 눈치와 수근거림에 벌집이 되거나. 마음으로만 터질듯 채워져 있을 뿐.   겪어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너무 감정과 감성에 휩싸이다보면 다음 행동에 대해 잊는   법이다. 역시나 나도 멍하니 어쩔 줄을 몰라했던거 같다. 기억이 혼미하다. 정신 나갈   정도로 좋았었다는 거 밖에.   언어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법. 내가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지금의 기분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저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이처럼 버벅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제 처음   만났고 지금 이 기분이 이전에 느꼈던 것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설명해봤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런 상태. 지난 5월 13일 두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얼마나 오래 만났건 얼마나 많이 사랑을 말했건 중요한건 셀수 있는 날짜등의 수치가   아니라 쓰고 그리고 말할 수 있는 보여지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여전한   새로움이었다. 이런것들을 당연한듯 소유하고 있는 것은 죄악이겠지. 만끽하길. 감정의   처절한 노예가 되어.   아주 오래만에 글에 고백을 담았고 행간에 진심을 실어 보았다. 난 지금도 진행중이다.   끝나지 않을 때까지 놀래 볼 작정이기에. 맘껏 웃어주길. 손가락질 하고 절망의 단어들을   던지는데 주저말아주길. 그대가 원하건 바라지 않건 그 이상을 넘어 행복해질 것이다.   한계의 날을 계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시간을 초로 따지는 것보다 더 어려움이 될 일.   영원을 채울 것이다, 온통 한사람 이름으로. Thanks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