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제19편] 거울에 비친 모습에 매우 만족한 듯 오른손 엄지를 들어 보이는 유빈은 겉옷을 걸치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오빠, 준희 계집애 뒤꽁무니 좀 그만 따라다녀 도대체 왜 그렇게 그 계집애한테 앵겨붙는 거야?” “김 유연 말이 지나쳐. 동생이라도 안 봐주니까 말 가려서해 준희 너무 못 살게 굴지 말고.” “훗. 웃겨 그런다고 그 계집애가 오빠 알아줘? 걔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고 헛물켜는 거 불쌍해서 충고해 주는데 뭐라고?” 씩씩거리며 신발을 신는 유빈의 앞을 가로 막는 유연의 어깨를 툭 치고 밖으로 나왔다. 밝은 햇살에 절로 인상을 구기던 유빈은 피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헛물켜는 거라 내가 모를리 있겠니?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그래서 내 마음 고백 못하고 혼자 고이 간직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 마음을 들켜서 준희가 내게서 멀어 질까봐. 준희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평생 이렇게 곁에서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이, 마음을 얻어 사랑의 결실을 맺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지켜만 보는 벙어리 사랑을 하겠어. 이게 내 사랑 방식이니까.’ 씁쓸한 웃음과 함께 속으로 내 뱉는 그 말을 끝으로 유빈은 더 이상 준희에 대한 감정을 왈가왈부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준희에 대한 사랑은 소모성 짙은 것이 아니었기에. 언제든 준희가 사랑을 한다면 기꺼이 응원해 주고 힘을 불어 넣어줄 자세를 갖춰 한층 성숙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준희와 같은 나이지만 유난히 예의없고,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또한 없는 동생 유연이 오늘따라 더욱 철부지로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정체 없이 뻥 뚫린 길이 유빈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약속장소에 도착 한 뒤 시계를 보는 유빈의 앞에 언제 왔는지 윤희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늘 기다리게 하네.” “항상 5분전에 오는데 뭐.” 차에서 내리며 미안한 마음에 내 뱉는 유빈에 말에 윤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웅장한 숲길로 들어섰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안에는 마치 중세시대 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거대한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 하고, 맛과 가격 면 에서도 품질이 최고라는 찬사가 비일비재 했으며 매스컴도 많이 탔던 장소였다. 그곳을 오늘 유빈이 준희의 생일을 맞아 최고급 VIP석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마음 같아선 통째로 빌리고 싶었어. 그런데 워낙 비싸야지. VIP자리 잡는데도 피 튀기는 전쟁을 치뤘 거든.” “오빠 이정도면 훌륭해. 최고다.” 아쉬움이 베어 나오는 유빈의 말에 윤희는 동조하지 않고 엄지를 치켜 올려 그의 기분을 한껏 부풀려 주었다. 윤희의 행동에 유빈은 씨익 웃으며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을 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이 들어선 그곳의 실내는 단아 하면서도 고풍스럽고, 화려함 또한 빠지지 않았다. 룸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자 커다란 창문을 통해 6월의 푸른 녹음과, 시원한 분수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 끝내준다.” 연실 감탄사를 내 뱉으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윤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모습에 유빈이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오빠, 준희도 좋아하겠다. 두 시간 후면 수업이 끝날 텐데. 오빠 친구한테는 확실히 말 해뒀지? 혹시라도 준희가 눈치 채면 김샌단 말이야 절대 눈치 못하게 연기 잘 하라고 해.” “걱정마, 오빠만 믿어.” “하하하. 우리 서프라이즈파티에 놀라고 감격할 준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오빠, 우린 어서 준비하자고. 시간이 없어.” 윤희의 말에 유빈도 흐믓 해 하며 룸 안의 곳곳에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준희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활짝 웃는 그 모습을 기대하며. * * * * “G: Give O: Only L: Love F: Frist & Last. 이 준희. 너에게.” ‘넌 감정도 없어. 바늘로 찌르면 피도 안 나올 거야. 너의 심장은 얼음보다도 더 차갑고 시려.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활활 타오르는 화산 에서도 녹지 않는 아주 강한 얼음이지. 옆에 있으면 한기가 느껴져 시베리아보다 더 추워 그런 네가 사랑 이란 걸 알겠어? 어림도 없는 일이지.’ 태후의 뜻밖의 고백에 예전에 윤희가 내게 던졌던 말들과 함께 내 가슴에 미미한 떨림이 찾아 들었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이런 감정이 낯설고 멀게 느껴졌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내 몸이 보이는 반응을. 금새 술렁거려진 교실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웃긴 건 그 와중에 난 태후가 아닌 승하의 반응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승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태후를 주시 했고, 말을 내 뱉은 태후는 느믈 거리며 승하의 눈길을 마주 하고 있었다. “훗. 태후의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였어. 멋있는 말이구나. 하루 한명씩 하는 걸로 하자. 이제 그만 수업하자.” “에이. 선생님 이것도 고백인데 준희의 대답도 들어야 하지 않아요?” “맞아요.” 승하의 말에 경호를 비롯해 여럿 남학생들이 내 대답을 강요했다. 그리고 승하의 미간이 좁혀지고, 얼굴 표정이 싸해 지는 걸 난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이 준희. 할 말 있음 해도 좋아.” 마지못해 말을 내 뱉은 승하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서고는 칠판에 영문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고, 모두의 시선은 나에게로 돌려졌다. “후후. 나쁘진 않은데. 서태후. 지켜볼게. 그리고 대답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내 말에 실망스럽다는 듯 남자애들이 야유를 보내 왔고,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그 순간 나는 뒤를 돌아선 승하가 칠판에 영어로 적어놓은 그 글을 보았다. 아무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승하는 혼자 써내려가다 고개를 설레 흔들고 지우개로 박박 지웠지만, 난보고 말았다. 나에게 던진 승하의 진심을. ‘I am always watchig you (난, 늘 지켜보고 있지만) but that takes liberty myself eventhough (항상 내 진심은 왜곡 되 버리지) i will take care of you (그래도 계속 지켜 볼 거야.)’ 태후가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 미소에 나 역시 저절로 미소가 번졌고, 어느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승하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리고 그의 뒤를 따라 태후도 여려 무리와 어울려 나갔다. 저번처럼 반에 남겨 진건 나를 비롯해 여자애들뿐. 하지만 전과 틀리게 문을 잠그거나 나를 둘러싸지 않았고, 모두 분주히 가방을 들고 재빠르게 나갔다. 오늘은 내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 운동장 중간쯤 갔을 때 남자애 하나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섰다. “태후가 옥상에서 기다려. 지금당장 널 데려가지 않으면 내가 작살나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같이 옥상으로 가자. 응?” 울먹이며 애원하는 그 애의 말에 난 피식 웃어버리고 그 애의 뒤를 따라 순순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옥상에 들어 섰을 땐 태후가 아닌 혜미와 그녀의 패거리가 날 맞이했다. “왜, 태후가 아니라 실망했니?” 날 쏘아보는 혜미의 눈초리에 난 웃음이 나왔고, 저만치 은주라는 애가 주저앉아 훌쩍 거리고 있었다. 빈번히 발생하는 혜미의 유치한 짓거리에 오늘은 짜증이 밀려왔다. “이 준희 쟤 보이지? 저건 그냥 맛 배기야. 우리 태후를 넘본 댓가치곤 이건 너무 약하지.” 울고 있는 은주를 가르치는 혜미의 기세가 등등했다. 덩달아 혜미의 패거리까지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혜미의 고개 짓과 함께 여렷이 몰려 은주의 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은주는 비명도 지르지 않은 채 그 애들의 발길질을 움츠려 고스란히 맞고만 있었다. “쿡, 저건 약과지. 넌 저년보다 더 배로 맞아야 하니까. 내 눈에 거슬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그래? 똑똑히 보여줘 봐. 어떻게 할 건데, 와 궁금하다.” “어디 잠시 후에도 그딴 말이 네년 입에서 나오나 보자. 야 잡아.” 빈정대는 내말에 혜미는 패거리들에게 명령을 했고, 그중 제일 덩치가 있는 두 명이 다가와 내 양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혜미가 내게 달려들어 손과 발을 뻗었을 때 내 발이 먼저 혜미의 배를 꾹 눌러 찼다. 뒤로 나 뒹굴 은 혜미를 부축하기 위해 내 옆에 있던 덩치들이 달려갔고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넘어진 혜미를 일으켜 세우며 혜미의 얼굴에 주먹을 강타했다. “앞으로 나에게 도전을 하려면 혼자서 와. 비겁하게 여럿 끌고 와서 망신당하지 말고, 아니 이따위 실력으론 어림없지 좀더 키우고 와라. 애송이 상대는 늘 지루하거든.” “씨발 이년이 미쳤나?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 아주 우습게 아네.” 혜미의 옆에 붙어있던 덩치 한 애가 뒤에서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난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그 덩치에게도 발길질을 하고 똑같이 얼굴을 올려붙여 주었다. “개기려면 확실히 개겨. 어설펐다간 먼저 죽는 수가 있어. 오늘은 이쯤 하자. 하지만 다음엔 준비 많이 해와.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거니까.”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애들은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고, 그녀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옥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어느 순간 내 뒤를 따라온 혜미가 공중에서 나를 힘껏 밀어 버렸다. 열개가 조금 넘는 계단 밑으로 내 몸이 붕 떳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어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은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어느덧 바닥에 눕혀진 내게 모여든 혜미와 혜미 패거리들이 희미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이 조금씩 감겨오고 환청이 들리는가 싶더니 혜미의 또렷한 마지막 말이 내 청각을 자극했다. “가위.” . . . . . con.
원나잇 스탠드[19]
원나잇 스탠드.[제19편]
거울에 비친 모습에 매우 만족한 듯 오른손 엄지를 들어 보이는 유빈은
겉옷을 걸치고 방문을 열고 나섰다.
“오빠, 준희 계집애 뒤꽁무니 좀 그만 따라다녀
도대체 왜 그렇게 그 계집애한테 앵겨붙는 거야?”
“김 유연 말이 지나쳐. 동생이라도 안 봐주니까
말 가려서해 준희 너무 못 살게 굴지 말고.”
“훗. 웃겨 그런다고 그 계집애가 오빠 알아줘?
걔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고 헛물켜는 거 불쌍해서
충고해 주는데 뭐라고?”
씩씩거리며 신발을 신는 유빈의 앞을 가로 막는 유연의 어깨를 툭 치고 밖으로
나왔다. 밝은 햇살에 절로 인상을 구기던 유빈은 피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헛물켜는 거라 내가 모를리 있겠니?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그래서 내 마음 고백 못하고 혼자 고이 간직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 마음을 들켜서 준희가 내게서 멀어 질까봐.
준희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평생 이렇게 곁에서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난 만족해.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이,
마음을 얻어 사랑의 결실을 맺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지켜만 보는 벙어리 사랑을 하겠어. 이게 내 사랑 방식이니까.’
씁쓸한 웃음과 함께 속으로 내 뱉는 그 말을 끝으로 유빈은 더 이상 준희에 대한
감정을 왈가왈부 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다.
준희에 대한 사랑은 소모성 짙은 것이 아니었기에. 언제든 준희가 사랑을 한다면
기꺼이 응원해 주고 힘을 불어 넣어줄 자세를 갖춰 한층 성숙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준희와 같은 나이지만 유난히 예의없고, 상대를 생각하는 배려또한 없는 동생 유연이 오늘따라 더욱 철부지로 보였다.
평소와 다르게 정체 없이 뻥 뚫린 길이 유빈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고,
약속장소에 도착 한 뒤 시계를 보는 유빈의 앞에 언제 왔는지 윤희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늘 기다리게 하네.”
“항상 5분전에 오는데 뭐.”
차에서 내리며 미안한 마음에 내 뱉는 유빈에 말에 윤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웅장한 숲길로 들어섰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안에는 마치 중세시대 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거대한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전통을 자랑 하고, 맛과 가격 면 에서도 품질이 최고라는 찬사가
비일비재 했으며 매스컴도 많이 탔던 장소였다.
그곳을 오늘 유빈이 준희의 생일을 맞아 최고급 VIP석으로 예약을 해 두었다.
“마음 같아선 통째로 빌리고 싶었어.
그런데 워낙 비싸야지. VIP자리 잡는데도
피 튀기는 전쟁을 치뤘 거든.”
“오빠 이정도면 훌륭해. 최고다.”
아쉬움이 베어 나오는 유빈의 말에 윤희는 동조하지 않고 엄지를 치켜 올려
그의 기분을 한껏 부풀려 주었다.
윤희의 행동에 유빈은 씨익 웃으며 어서 들어가자고 재촉을 했다.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그들이 들어선 그곳의 실내는 단아 하면서도 고풍스럽고,
화려함 또한 빠지지 않았다. 룸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자 커다란 창문을 통해 6월의
푸른 녹음과, 시원한 분수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와. 끝내준다.”
연실 감탄사를 내 뱉으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던 윤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그
모습에 유빈이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오빠, 준희도 좋아하겠다.
두 시간 후면 수업이 끝날 텐데. 오빠 친구한테는
확실히 말 해뒀지? 혹시라도 준희가 눈치 채면
김샌단 말이야 절대 눈치 못하게 연기 잘 하라고 해.”
“걱정마, 오빠만 믿어.”
“하하하. 우리 서프라이즈파티에 놀라고 감격할
준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된다.
오빠, 우린 어서 준비하자고. 시간이 없어.”
윤희의 말에 유빈도 흐믓 해 하며 룸 안의 곳곳에 장식을 하기 시작했다.
어서 빨리 준희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활짝 웃는 그 모습을 기대하며.
* * * *
“G: Give
O: Only
L: Love
F: Frist & Last.
이 준희. 너에게.”
‘넌 감정도 없어. 바늘로 찌르면 피도 안 나올 거야.
너의 심장은 얼음보다도 더 차갑고 시려.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활활 타오르는 화산 에서도 녹지
않는 아주 강한 얼음이지. 옆에 있으면 한기가 느껴져
시베리아보다 더 추워 그런 네가 사랑 이란 걸 알겠어?
어림도 없는 일이지.’
태후의 뜻밖의 고백에 예전에 윤희가 내게 던졌던 말들과 함께 내 가슴에 미미한
떨림이 찾아 들었다. 아직 느껴보지 못한 이런 감정이 낯설고 멀게 느껴졌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내 몸이 보이는 반응을.
금새 술렁거려진 교실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시장 통을 방불케 했다.
웃긴 건 그 와중에 난 태후가 아닌 승하의 반응을 먼저 살피고 있었다.
승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태후를 주시 했고, 말을 내 뱉은 태후는 느믈 거리며
승하의 눈길을 마주 하고 있었다.
“훗. 태후의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였어.
멋있는 말이구나. 하루 한명씩 하는 걸로 하자.
이제 그만 수업하자.”
“에이. 선생님 이것도 고백인데 준희의 대답도
들어야 하지 않아요?”
“맞아요.”
승하의 말에 경호를 비롯해 여럿 남학생들이 내 대답을 강요했다.
그리고 승하의 미간이 좁혀지고, 얼굴 표정이 싸해 지는 걸 난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이 준희. 할 말 있음 해도 좋아.”
마지못해 말을 내 뱉은 승하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서고는 칠판에 영문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고, 모두의 시선은 나에게로 돌려졌다.
“후후. 나쁘진 않은데. 서태후. 지켜볼게.
그리고 대답해도 늦지 않을 거야 그렇지?”
내 말에 실망스럽다는 듯 남자애들이 야유를 보내 왔고,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그 순간 나는 뒤를 돌아선 승하가 칠판에 영어로 적어놓은 그 글을 보았다.
아무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승하는 혼자 써내려가다 고개를 설레 흔들고 지우개로 박박 지웠지만, 난보고 말았다. 나에게 던진 승하의 진심을.
‘I am always watchig you
(난, 늘 지켜보고 있지만)
but that takes liberty myself eventhough
(항상 내 진심은 왜곡 되 버리지)
i will take care of you
(그래도 계속 지켜 볼 거야.)’
태후가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 미소에 나 역시 저절로 미소가 번졌고, 어느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승하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리고 그의 뒤를 따라 태후도 여려 무리와 어울려 나갔다. 저번처럼 반에 남겨 진건 나를 비롯해 여자애들뿐.
하지만 전과 틀리게 문을 잠그거나 나를 둘러싸지 않았고, 모두 분주히 가방을 들고 재빠르게 나갔다.
오늘은 내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 운동장 중간쯤 갔을 때
남자애 하나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섰다.
“태후가 옥상에서 기다려.
지금당장 널 데려가지 않으면
내가 작살나니까 아무 말 하지
말고 같이 옥상으로 가자. 응?”
울먹이며 애원하는 그 애의 말에 난 피식 웃어버리고 그 애의 뒤를 따라 순순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옥상에 들어 섰을 땐 태후가 아닌 혜미와 그녀의 패거리가 날 맞이했다.
“왜, 태후가 아니라 실망했니?”
날 쏘아보는 혜미의 눈초리에 난 웃음이 나왔고, 저만치 은주라는 애가 주저앉아 훌쩍 거리고 있었다. 빈번히 발생하는 혜미의 유치한 짓거리에 오늘은 짜증이 밀려왔다.
“이 준희 쟤 보이지?
저건 그냥 맛 배기야. 우리 태후를
넘본 댓가치곤 이건 너무 약하지.”
울고 있는 은주를 가르치는 혜미의 기세가 등등했다.
덩달아 혜미의 패거리까지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혜미의 고개 짓과 함께 여렷이 몰려 은주의 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은주는 비명도 지르지 않은 채 그 애들의 발길질을 움츠려 고스란히 맞고만 있었다.
“쿡, 저건 약과지. 넌 저년보다 더 배로
맞아야 하니까. 내 눈에 거슬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어.”
“그래? 똑똑히 보여줘 봐.
어떻게 할 건데, 와 궁금하다.”
“어디 잠시 후에도 그딴 말이 네년 입에서
나오나 보자. 야 잡아.”
빈정대는 내말에 혜미는 패거리들에게 명령을 했고, 그중 제일 덩치가 있는 두 명이 다가와 내 양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혜미가 내게 달려들어 손과 발을 뻗었을 때 내 발이 먼저 혜미의 배를 꾹
눌러 찼다. 뒤로 나 뒹굴 은 혜미를 부축하기 위해 내 옆에 있던 덩치들이 달려갔고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넘어진 혜미를 일으켜 세우며 혜미의 얼굴에 주먹을
강타했다.
“앞으로 나에게 도전을 하려면 혼자서 와.
비겁하게 여럿 끌고 와서 망신당하지 말고,
아니 이따위 실력으론 어림없지 좀더
키우고 와라. 애송이 상대는 늘 지루하거든.”
“씨발 이년이 미쳤나?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 아주
우습게 아네.”
혜미의 옆에 붙어있던 덩치 한 애가 뒤에서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난 오른쪽으로 살짝 돌아 그 덩치에게도 발길질을 하고 똑같이 얼굴을 올려붙여
주었다.
“개기려면 확실히 개겨. 어설펐다간 먼저 죽는 수가 있어.
오늘은 이쯤 하자. 하지만 다음엔 준비 많이 해와.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거니까.”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애들은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고, 그녀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옥상에서 내려가기 위해 계단에 발을 디뎠는데, 어느 순간 내 뒤를 따라온 혜미가 공중에서 나를 힘껏 밀어 버렸다.
열개가 조금 넘는 계단 밑으로 내 몸이 붕 떳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어떤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은주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어느덧
바닥에 눕혀진 내게 모여든 혜미와 혜미 패거리들이 희미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눈이 조금씩 감겨오고 환청이 들리는가 싶더니 혜미의 또렷한 마지막
말이 내 청각을 자극했다.
“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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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