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잇 스탠드[32]

크레이지쑥e2005.05.24
조회1,873

원나잇 스탠드.[제32화]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많은 하객을 향한 혜원의 눈이 바르르 떨려왔다.
어느 한 사람 이라도 걱정하며 말을 붙여오면 금 새 눈물을 쏟아 버릴 것 같은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혜원은 눈물을 곱씹고 삼키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하객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과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결혼식은 거행
되지 않습니다.
오늘 저의 신랑이 될 권 승하군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파혼 했습니다.”

 


순식간에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웅성대며 드라마에나 있을법한 일에
혀를 내두르고 기막혀 했다.
특히 혜원과 승하의 부모님 반응은 천차만별 이었다.
승하의 아버지는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걸었고, 그의 어머닌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혜원의 말은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자리에서 내몰기에 충분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았습니다.”

 


‘웅성웅성.’

 


혜원이 뭐라고 더 말을 하기도 전에 하객들은 하나, 둘 일어나 자리를 떠 버렸다.

 


“죄송해요. 어머님 아버님.”

 


어리둥절해 하는 부모님들을 뒤로하고 그녀도 그곳을 빠져 나와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문을 닫자마자 그녀의 눈 밑에 매달려 있던 하얀 액체가 주르륵 흘러 내렸다.
누가 들을 새라 입을 꽉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는 혜원은 문을 등에 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주체하지 못하여 오열을 터트렸다.
룸 안에 있던 도우미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눈물을
닦아 주거나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는 이는 없었다.

 


‘윤혜원, 훌륭해. 아주 잘했어. 결코 후회는 하지 않아.’

 


혜원이 자신을 던져 이일을 무마 시키지 못했다면 분명 승하나 그의 집안에 큰 피해가 갈 것을 그녀는 불보 듯 훤히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그녀의 아버지 또한 혜원은 보기 싫었다.
비록 승하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파멸의 길로 인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라도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지독한 바보라는 손가락질을 당해도 혜원은 자신의 선택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멈출 기미를 안 보이는 눈물이 이제는 울음소리까지 토해내게 만들었다.
숨 넘어 갈 듯한 혜원의 울음소리가 밖에 들릴 새라 그녀는 이번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끊이지 않는 혜원의 눈물은 그녀의 이성을 집어 삼키고 끝내는 오열 끝에 실신하고 말았다.

 


‘난 미련한 바보에요.
이미 끝나버린 사랑에 목 놓아 울어 버리는 미련한 바보.
오지 않을 사람을, 냉정하게 날 뿌리치고 가버린 사람을
잊지 못하고 더 사랑 하게 된 쓸데없이 미련한 엄청난 바보에요.’

 


*          *          *           *           *

 


여름방학을 하고 어느덧 7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승하는 오늘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쉴새 없이 울려대는 핸드폰은
결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끊임없는 아버지의 전화, 예식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건 혜원이. 매몰찬 승하의 말에도 혜원은 끝내 포기 란걸 할줄 몰랐다.
혜원이와 통화를 끝내고 바로 준석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잊지 않았겠지? 확인 차 전화 걸었다.
저녁8시부터 시작이니까 늦지 않게 와라.
널 위해 특별한 이벤트도 마련해 뒀으니까. 쿡쿡]

 


승하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옷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브라운톤 팬츠에 옅은 베이지 재킷을 걸치고 밝은 옐로그린 타이를 매어 기분을 바꿔보러
노력했지만,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잠시 소파에 앉아 주춤하던 승하는 곧장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날이었다.
우중충 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하루를 소진하고 싶진 않았다.
생각 없이 운전대를 돌린 곳은 다름 아닌 준희의 집 앞이었고,그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어 준희를 불러냈다.
전화를 끊고 곧바로 나온 준희는 청바지에 흰 티 차림 이었지만 정성스레 차려입은 어떤 여자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 이었다.
준희가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자 승하는 더 이상 지체 없이 차를 출발 시켰다.
그녀는 행선지를 묻지 않았고, 승하 또한 어디를 갈지 알려주지 않았다.
한참 달리던 그가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서더니 준희의 손목을 잡고 부띠끄샵 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왜?”

 


영문을 모르는 준희의 질문에 승하는 답하지 않았다.
부띠끄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샵마스타로 보이는 한 여자가 반가운 기색을 하며
다가와 섰고, 승하와는 안면이 있는지 인사도 나누었다.

 


“가든파티.”

 


샵마스타에게 준희를 인도하며 짧게 한마디 내뱉는 승하의 말을 그녀는 눈치껏 알아듣고
준희를 룸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잠시 후 준희가 들어갔던 룸의 문이 열리며 서서히 발을 내딛고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승하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조금씩 심장이 요동을 쳐왔다.
가슴과 쇄골을 그대로 드러내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노란 드레스를 입은 준희는 숨이
막히도록 매력적인 자태였다.
허리라인을 강조하며 부풀어 오른 몸매는 유리알처럼 빛을 발해 한시도 준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매우 훌륭합니다.”

 


“천 쪼가리 하나를 걸쳐도 그렇죠.”

 


샵마스타의 칭찬에 승하는 한 술 더 떠 기분 좋은 마음을 장난기 어린 말과 함께 내 뱉었다. 머리손질까지 마치고 완벽한 차림으로 나선 준희의 모습에 승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그녀와 함께 준석의 별장이 있는 청평 으로 향했다.

 


“승하샘. 어떤 자리야?”

 


“웬만하면 호칭 좀 바꿔. 듣기 거북해.”

 


“어떻게?”

 


“여보, 자기, 당신, 오빠. 많잖아.”

 


들뜬 기분 탓인지, 아니면 애써 무거운 마음을 감추기 위한 노력인지 승하는 평소와 틀리게
운전을 하면서도 장난스런 말과 행동을 보여 준희를 웃게 만들었다.

 


“학교에선 선생님, 둘이 있을 땐 자기,
남들 앞에선 승하씨. 이거 좋다.”

 


준희에게 고개를 돌려 말하는 승하는 긍정의 대답을 강요하며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눌러오고
대답이 없는 태도에 준희의 몸을 살짝 간질이기 시작했다.
꺄르르 웃어대며 양손으로 승하의 손을 뿌리치던 준희는 느닷없는 급정거에 온몸이
승하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바람에 그녀의 가슴이 승하의 손에 받쳐지고,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심장이
뛰어오기도 전에 승하의 입술이 빠르게 준희의 입술을 덮어왔다.
거부할 틈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그로 인해 준희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대답해.”

 


잠시 숨통을 트이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승하가 입술을 포개오고 자연스레 그의 손이
준희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참을 수 없는 듯 격정적이고 거친 키스를 퍼 부었고,승하 가슴에 질러진 불을 꺼버린 건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뒤에 오는 차량 이었다.
하지만 승하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키스에 몰두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그러니까 그만해.”

급기야 준희의 입에서 수긍의 대답이 나왔다.
승하는 그제 서야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잠시 정차했던 차를 힘차게 출발 시켰다.
한 시간을 더 달리고 나서야 그들은 준석의 별장에 도착을 했다.
이미 그의 별장 안 정원은 파티를 즐기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북적댔고, 승하는 준희의
손을 잡고 별장으로 들어섰다.
잔잔한 음악이 정원 안을 가득 메우고, 그들이 그곳을 들어섰을 때 준희는 그 안의 시선을
하나로 모으며 한층 더 그녀의 미모를 돋보이게 했다.

 


“좀 늦었네? 누구시지? 소개 시켜줘야지?”

 


어느새 그들 앞으로 다가와 환한 미소를 짓는 민준이 승하를 향해 묻자 준희는 고개를
살짝 숙여 가벼운 목례를 했다.

 


“아, 준희야, 인사해 친구 서민준이고
민준아 여긴 이 준희. 내 여자야.”

 


내 여자라고 준희를 당당히 소개하는 승하 앞에 이번엔 준석이 다가와 섰다.

 


“나도 소개 좀 받자.”

 


“안녕하세요. 이 준희 라고 합니다.”

 


준석의 출현에 머뭇거리던 승하를 뒤로하고 준희가 먼저 민준과 준석 앞에 나서 인사를 했다.

 


"이 준희씨 반가워요. 김 준석 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 입니다.”

 


준석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준희의 손등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익숙지 않은 스킨십에 준희는 놀란 모습을 감추기 위해 밝게 미소를 보였다.
승하는 준석의 행동에 불만이 일었지만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렸다.

 


“자, 여기 좀 봐주세요.
권 승하가 제일 늦게 온 마지막 손님 입니다.
역시 승하도 연인과 함께 왔네요.
오늘 마음껏 드시고, 즐기다 돌아가세요.”

 


준석의 말에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그는 준희 앞에 와인을 한잔 내밀었다.
역시 미소로 답하며 그것을 받아든 준희는 허전한 기분에 옆을 돌아 봤지만 승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눈동자를 돌려 승하를 찾았지만 그는 민준과 함께 여러 명의 여자들 사이에 끼어 빠져나올
틈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준희도 모르는 새 얼굴색이 바뀌고 속이 뒤틀렸지만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준석이 건네준
와인을 들이켰다.

 


“승하가 재주가 참 좋네요.
준희씨 같은 미인을 애인으로 둔걸 보면.”

 


비아냥거리면서도 예의를 벗어나지 않는 준석의 말이 불쾌하게 들려왔지만 준희는
가볍게 웃어넘기며 등한시 했다.

 


“승하 어떻게 만났어요?”

 


준석의 질문에 준희는 잠시 말문이 막혀왔다.
그와의 첫 대면은 기억하기 싫은 부분의 하나였고 또 알게 된 경위를 준석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이 그때 승하가 준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승하를 둘러싸고 있던 몇몇의 여자도 따라왔다.

 


“승하 애인이라고요? 반가워요.
전 박 수진이에요. 승하 동창이죠.”

 


자신을 박 수진 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준희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해왔지만 눈빛에선
강한 적개심이 타오르는 걸 준희는 놓치지 않았다.

 


“이 준희에요.”

 


수진의 소개에 준희는 거두절미하고 이름만 내 뱉고 수진이 내민 손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런 파티 처음이죠?
촌스런 티가 난다니까!”

 


악수를 거부당한 탓인지 수진은 노골적인 불만을 얼굴과 말투에 그대로 드러냈다.

 


“박 수진! 말이 심하군. 손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접하면 쓰나?”

 


수진의 말을 맞받아 친 건 준석 이었다.
그는 그녀를 향해 차갑게 한마디 내 뱉고는 준희에게 이해와 양해의 눈빛을 보내왔다.

 


“특별 이벤트가 이걸 말한 거였나?
내 여자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지.”

 


누구를 향한 경고인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던 승하가 입을 열었고, 준희에게 손을 내밀어
잡으라는 눈짓을 했다.

 


“달링, 내 옆에만 있어.”

 


한쪽 눈을 감았다 뜨는 짐짓 장난스런 승하의 말에 준희는 알았다는 고갯짓을 하고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고 함께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모든 사람들도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다들 안으로 들어왔다.
실내는 무도회장을 연상 시켰고, 이미 춤을 추고 있는 커플도 더러 있었다.
승하가 춤을 추자는 제의를 해왔지만 아무도 그 둘을 그냥 두지 않았다. 민준을 비롯한 그의 친구들이 다가와 승하와 사업적인 얘기를 했고, 잠시 무료함을 달랠 틈도  없이 좀 전에 마주쳤던 수진을 비롯한 여자 몇이 준희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수진이란 여자는 자연스레 준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승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이런 장소에서 널 보는 게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야. 또 한번 승하
따라 오면 그땐 재미없을 줄 알아.”

 


수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 했지만 그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꾸며진 얼굴 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웃는 얼굴로 협박을 가하는 수진은 방향을 현관 쪽으로 돌리고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기 시작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이 좀 비좁아서,
그래서 네가 꺼져줘야겠다.”

안타까운 목소리가 베어있는 수진의 목소리가 가소롭게 들려왔고, 수진은 준희의 어깨를
살짝 밀쳐내고는 현관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혼자만 들어갔다.

.

.

.

.

.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