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를 풀던 강후는 꼬치꼬치 캐묻는 태후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건강한 구리 빛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고, 강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좌절하고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고 사탕발림으로 태후를 위로할 강후가 아니었다.
“태후가 마음을 정리 하는 게 좋겠다.”
태후를 위한 마음에 솔직한 생각을 내뱉은 강후는 말을 던지고 나서도 가슴이 저려왔지만 표정만은 냉혈인 다웠다.
“내가 갖지 못하면 그 인간도 가질 수 없어.”
“못된 것만 배웠구나. 결국 네 이기심에 상처 받는 건 준희야 그걸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그래, 난 이기적이라 내감정만 중요하지 다른 사람 아픈 것까지 신경 못써. 그게 나 서 태후라고.”
집어 삼킬 듯 강렬한 눈빛의 태후는 강후의 충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말만 마치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제기랄, 뭐가 이렇게 복잡한거야. 왜 난 안되는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바이크에 올라타 도로를 질주하던 태후는 처음 준희를 만났던 당구장 앞에 섰다. 건강하고 유난히 검은 준희의 머리카락은 태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일렁이며 하늘거리는 긴 머리카락은 마치 태후를 휘휘 감아 돌며 나에게 오라는 손짓과도 같았었다. 거침없고 차가운 준희 성격은 또 한번 태후를 반하게 만들었고 쉽게 잡히지 않아 더욱 탐을 내고 욕심을 가졌었다. 처음태후의 마음을 설레게 한 준희를 누구에게도 뺏기도 싶지 않았다. 권 승하라면 더더욱 쉽게 놓아주기가 싫었다. 여자를 우습게 알고 숱한 연예인과의 염문이나 스캔들을 수없이 봐왔던지라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고 신뢰 또한 없었다. 담배를 꺼내 물고 준희의 생각에 골몰해 있던 태후는 머리 속을 흩트려 놓는 전화로 인해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열었다.
[오늘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어.]
수화기 너머 경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단한걸 보기라도 한 듯 매우 놀라운 목소리였다.
[권승하 선생이랑 준희의 부적절한 관계가 오늘 확실히 들어났어. 그전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심증만 있었지 물증은 없었잖아. 길 한복판에 차 세워놓고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더라.]
경호의 말에 그제 서야 태후는 자신의 사주(使嗾)로 그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염탄케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 있어?”
태후는 끌어 오르는 질투를 억누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침착하게 물었고, 그새 담배 한가치를 또 물었다.
[청평이야]
“지금 간다.”
태후는 담배를 집어 던지고 바이크를 몰고 청평으로 향했다. 노심초사하며 발만 구르고 있는 것 보다는 승하나 준희의 뒤를 밟아서라도 알아내야 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지만 아직 인정할 단계가 아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부리나케 속력을 내며 달리는 태후의 바이크로 인해 더욱 후덥지근 달아올랐지만 태후의 마음만은 냉각기 마냥 점점 얼어붙어만 갔다. 도로를 질주하는 내내 태후의 눈앞엔 옥상에서 강제로 준희에게 키스를 하던 기억이 태후의 머릿속을 주마등 같이 스쳐 갔다.
‘그래, 그 모습만. 내 기억 속에, 내 두 눈 안에, 내 가슴 안에, 담아두자.’
좀 전보다 더욱 속력이 올라간 태후의 바이크는 앞선 차량을 몇 대나 추월해 나가며, 준희가 있는 곳을 초고속으로 내달렸다.
* * * *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취할 겨를도 없이 수진은 재빠르게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으며 그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렸을 땐 문은 이미 잠가져 있었다. 길 잃은 고양이 마냥 나는 잠시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나를 찾지 않는 승하로 인해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문을 크게 두들겨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에 빠져 있는데, 굵직한 남자의 음성으로 인해 난 그만 생각을 접었다.
“준희씨, 왜 나와 계세요? 파티가 재미가 없나요?”
싱긋 웃으며 상냥하게 물어오는 준석 이었다. 그의 손엔 처음 나에게 권했던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 밖에 서 있는 내 모습에 의아한 눈빛을 자아냈다.
“촌스러워서 쫓겨났어요.”
“?”
“박 수진 인지 뭔지 그 여시 같은 빌어먹을 여자가 절 쫒아 냈다고요.”
무척이나 거친 말을 거리낌 없이 준석을 향해 내 뱉었다. 승하에게 잔뜩 화가 나있는 마음을 나는 준석에게 대신 풀었다. 하지만 준석은 자기가 그런 것처럼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하하. 아, 제가 대신 사과하죠. 수진이가 본래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 그녀석이 승하를 좋아했거든요.”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사리 무분별한 여자가 승하새. 아니 승하씨를 좋아 한다는 사실 자체도 화가 나네요. 몹쓸 여자더군요.”
수진을 비하하며 몰아 부치는 준희에 말에 준석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으며 내 투정을 들어주었고, 자연스레 내게 와인을 또 한번 권했다.
“수진이 제가 많이 혼내 줄게요. 준희씨 그만 화 풀고 좀더 좋은 시간 갖아요.”
“준석씨 한테 화낼 일이 아닌데 친구 잘못 둔 죄니까 저 흉보지 말아요.”
내 말에 준석이 또 한번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와인잔을 들어올려 건배를 청해왔고, 난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 준희씨. 이층에 한번 올라가 볼래요? 제가 그림을 좀 그리는데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준석은 제 말만 마치고 내 손목을 잡고는 바로 이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난 여태껏 날 찾지 않는 승하로 인해 한번 당해 보라는 심보로 준석의 행동에 묵묵히 따라만 갔다. 이층 안은 일층보다는 많이 좁았고, 작은 전시회장을 온 느낌을 들게 하는 아담한 초소형 미술관 같았다.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준석은 신사적인 행동을 취하며 살짝 한족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준석의 모습이 왠지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과다한 친절을 베풀었다.
“준희씨 에게 선물 하나 하고 싶은데. 저에게 딱 십분만 할애해 주시겠어요? 준희씨를 스케치 하고 싶어요.”
“말씀은 감사 하지만 사양 할게요.”
일언지하의 정중한 내 거절에 준석은 많이 상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유 없는 준석의 호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기에 부담을 넘어 거북해진 상태였다. 아무리 승하와 친분이 두터운 친구라 해도 그의 행동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승하가 부탁을 했어요. 준희씨를 도화지에 담고 싶다고.”
마지못해 고백이라도 하는듯한 준석의 씁쓸한 표정에 나는 아차 싶었다. 내 개인적인 기분만 생각하며 준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져 나를 순간 당혹케 만들었다.
“제가 준희씨를 너무 붙잡아 뒀네요. 그만 내려가시겠어요? 다들 기다릴 텐데.”
“아, 아니요. 잠시 모델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십분 안에 담아 주실 거죠?”
아쉬워하는 준석의 말에 나는 스케치를 허락하고 이젤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준석은 내말과 행동에 천진스런 모습을 보이며 좋아했다. 그리고 이젤 앞에 앉은 그의 손놀림은 빠르게 내 모습을 스케치 해 나갔고, 십 분이 채 가기도 전에 난 갑자기 잠이 몰려와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내 마음과 달리 자꾸만 감겨 버리는 통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석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찬물 한잔만 부탁 할게요.”
눈에 힘을 주고 말을 했지만 이번에 혀가 마비가 되는 듯 했다. 말을 해야 하는데 갑작스레 경직 되어버린 혀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 마셔 봐요. 시원할거에요.”
어느새 준석이 물 잔을 내 밀었고,나는 그것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하지만 물을 마셔도 잠이 깨지는 안았다. 내 정신과 육체는 자석의 N극과 N극처럼 서로 붙지 않기 위해 밀어 내기에 바빴다. 붙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하나가 되기 위해 아우성칠수록, 오히려 더욱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날 밀어 넣었고, 그때 준석이 내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귀 가까이 대고 물어오는 준석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쥐고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닿는 감촉이 낭자하게 전해졌다.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지? 와인에 대체 뭘 넣은 거야?”
“이런, 잠이 오는 모양이군요.”
준석은 예상했던 일인 듯 나를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나른하게 밑으로 축 처지고 역시나 생각과 다르게 내 몸은 준석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승하샘 불러 줘요. 그만 가야겠어요.”
“이준희씨. 지금 승하는 여자들 품에 파묻혀서 정신없을 거라고요. 승하는 승하대로 즐기고 준희씨는 나하고 즐기고 화끈하게 이 밤을 불태워 보자고요. 쿡쿡.”
준석은 내말을 흘려듣고 침대위에 나를 눕혔다. 일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애꿎은 잠만 쏟아졌다. 준석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옷을 하나 둘 벗기 시작했다.
“승하와 당신을 갈라놓고 싶어. 그래서 당신을 갖고 싶어.”
“미쳤어. 정신 나갔어.”
점점 기어 들어가는 내말에 준석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날 안고 들어온 방문을 잠갔다. 잠들지 않기 위해 애쓸수록,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애쓸수록, 내 노력이 헛된 것이라고 몹시 비웃듯 서서히 내 정신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원나잇 스탠드[33]
원나잇 스탠드.[제33화]
“뭐.”
“신부가 파혼선언을 했어.”
“대체 왜?”
넥타이를 풀던 강후는 꼬치꼬치 캐묻는 태후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건강한 구리 빛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버렸고, 강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좌절하고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고 사탕발림으로 태후를 위로할 강후가 아니었다.
“태후가 마음을 정리 하는 게 좋겠다.”
태후를 위한 마음에 솔직한 생각을 내뱉은 강후는 말을 던지고 나서도 가슴이 저려왔지만 표정만은 냉혈인 다웠다.
“내가 갖지 못하면 그 인간도 가질 수 없어.”
“못된 것만 배웠구나. 결국 네 이기심에 상처
받는 건 준희야 그걸 알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그래, 난 이기적이라 내감정만 중요하지
다른 사람 아픈 것까지 신경 못써. 그게 나 서 태후라고.”
집어 삼킬 듯 강렬한 눈빛의 태후는 강후의 충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제 말만 마치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제기랄, 뭐가 이렇게 복잡한거야.
왜 난 안되는 거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바이크에 올라타 도로를 질주하던 태후는 처음 준희를 만났던 당구장 앞에 섰다.
건강하고 유난히 검은 준희의 머리카락은 태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일렁이며 하늘거리는 긴 머리카락은 마치 태후를 휘휘 감아 돌며 나에게 오라는 손짓과도 같았었다.
거침없고 차가운 준희 성격은 또 한번 태후를 반하게 만들었고 쉽게 잡히지 않아
더욱 탐을 내고 욕심을 가졌었다.
처음태후의 마음을 설레게 한 준희를 누구에게도 뺏기도 싶지 않았다.
권 승하라면 더더욱 쉽게 놓아주기가 싫었다.
여자를 우습게 알고 숱한 연예인과의 염문이나 스캔들을 수없이 봐왔던지라
더욱 믿음이 가지 않았고 신뢰 또한 없었다.
담배를 꺼내 물고 준희의 생각에 골몰해 있던 태후는 머리 속을 흩트려 놓는 전화로
인해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열었다.
[오늘 아주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어.]
수화기 너머 경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단한걸 보기라도 한 듯 매우 놀라운
목소리였다.
[권승하 선생이랑 준희의 부적절한 관계가
오늘 확실히 들어났어. 그전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심증만 있었지 물증은 없었잖아.
길 한복판에 차 세워놓고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더라.]
경호의 말에 그제 서야 태후는 자신의 사주(使嗾)로 그 둘의 부적절한 관계를
염탄케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디 있어?”
태후는 끌어 오르는 질투를 억누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침착하게 물었고,
그새 담배 한가치를 또 물었다.
[청평이야]
“지금 간다.”
태후는 담배를 집어 던지고 바이크를 몰고 청평으로 향했다.
노심초사하며 발만 구르고 있는 것 보다는 승하나 준희의 뒤를 밟아서라도 알아내야 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들었지만 아직 인정할 단계가 아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는 부리나케 속력을 내며 달리는 태후의 바이크로 인해 더욱
후덥지근 달아올랐지만 태후의 마음만은 냉각기 마냥 점점 얼어붙어만 갔다.
도로를 질주하는 내내 태후의 눈앞엔 옥상에서 강제로 준희에게 키스를 하던 기억이
태후의 머릿속을 주마등 같이 스쳐 갔다.
‘그래,
그 모습만.
내 기억 속에,
내 두 눈 안에,
내 가슴 안에,
담아두자.’
좀 전보다 더욱 속력이 올라간 태후의 바이크는 앞선 차량을 몇 대나 추월해 나가며,
준희가 있는 곳을 초고속으로 내달렸다.
* * * *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취할 겨를도 없이 수진은 재빠르게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으며 그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렸을 땐 문은 이미 잠가져 있었다.
길 잃은 고양이 마냥 나는 잠시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나를 찾지 않는 승하로 인해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문을 크게 두들겨야 하는지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에 빠져 있는데, 굵직한 남자의 음성으로 인해 난 그만 생각을 접었다.
“준희씨, 왜 나와 계세요?
파티가 재미가 없나요?”
싱긋 웃으며 상냥하게 물어오는 준석 이었다.
그의 손엔 처음 나에게 권했던 와인잔이 들려 있었고 밖에 서 있는 내 모습에 의아한
눈빛을 자아냈다.
“촌스러워서 쫓겨났어요.”
“?”
“박 수진 인지 뭔지 그 여시 같은
빌어먹을 여자가 절 쫒아 냈다고요.”
무척이나 거친 말을 거리낌 없이 준석을 향해 내 뱉었다.
승하에게 잔뜩 화가 나있는 마음을 나는 준석에게 대신 풀었다. 하지만 준석은 자기가 그런 것처럼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하하.
아, 제가 대신 사과하죠.
수진이가 본래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 그녀석이 승하를 좋아했거든요.”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사리 무분별한 여자가
승하새. 아니 승하씨를 좋아 한다는 사실
자체도 화가 나네요. 몹쓸 여자더군요.”
수진을 비하하며 몰아 부치는 준희에 말에 준석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만 지으며 내 투정을 들어주었고, 자연스레 내게 와인을 또 한번 권했다.
“수진이 제가 많이 혼내 줄게요.
준희씨 그만 화 풀고 좀더 좋은 시간 갖아요.”
“준석씨 한테 화낼 일이 아닌데 친구 잘못 둔
죄니까 저 흉보지 말아요.”
내 말에 준석이 또 한번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와인잔을 들어올려 건배를 청해왔고, 난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 준희씨. 이층에 한번 올라가 볼래요?
제가 그림을 좀 그리는데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준석은 제 말만 마치고 내 손목을 잡고는 바로 이층을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난 여태껏 날 찾지 않는 승하로 인해 한번 당해 보라는 심보로 준석의 행동에 묵묵히
따라만 갔다.
이층 안은 일층보다는 많이 좁았고, 작은 전시회장을 온 느낌을 들게 하는 아담한
초소형 미술관 같았다.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내 말에 준석은 신사적인 행동을 취하며 살짝 한족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준석의 모습이 왠지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과다한 친절을 베풀었다.
“준희씨 에게 선물 하나 하고 싶은데.
저에게 딱 십분만 할애해 주시겠어요?
준희씨를 스케치 하고 싶어요.”
“말씀은 감사 하지만 사양 할게요.”
일언지하의 정중한 내 거절에 준석은 많이 상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유 없는 준석의 호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기에 부담을 넘어 거북해진 상태였다.
아무리 승하와 친분이 두터운 친구라 해도 그의 행동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승하가 부탁을 했어요.
준희씨를 도화지에 담고 싶다고.”
마지못해 고백이라도 하는듯한 준석의 씁쓸한 표정에 나는 아차 싶었다.
내 개인적인 기분만 생각하며 준석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해져 나를
순간 당혹케 만들었다.
“제가 준희씨를 너무 붙잡아 뒀네요.
그만 내려가시겠어요? 다들 기다릴 텐데.”
“아, 아니요. 잠시 모델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십분 안에 담아 주실 거죠?”
아쉬워하는 준석의 말에 나는 스케치를 허락하고 이젤 앞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준석은 내말과 행동에 천진스런 모습을 보이며 좋아했다.
그리고 이젤 앞에 앉은 그의 손놀림은 빠르게 내 모습을 스케치 해 나갔고,
십 분이 채 가기도 전에 난 갑자기 잠이 몰려와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 했다. 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이기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내 마음과 달리 자꾸만 감겨 버리는 통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석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찬물 한잔만 부탁 할게요.”
눈에 힘을 주고 말을 했지만 이번에 혀가 마비가 되는 듯 했다.
말을 해야 하는데 갑작스레 경직 되어버린 혀는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 마셔 봐요. 시원할거에요.”
어느새 준석이 물 잔을 내 밀었고,나는 그것을 단번에 들이마셨다.
하지만 물을 마셔도 잠이 깨지는 안았다.
내 정신과 육체는 자석의 N극과 N극처럼 서로 붙지 않기 위해 밀어 내기에 바빴다.
붙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하나가 되기 위해 아우성칠수록,
오히려 더욱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날 밀어 넣었고, 그때 준석이 내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요? 어디 안 좋아요?”
귀 가까이 대고 물어오는 준석의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쥐고 목덜미에 그의 입술이
닿는 감촉이 낭자하게 전해졌다.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거지?
와인에 대체 뭘 넣은 거야?”
“이런, 잠이 오는 모양이군요.”
준석은 예상했던 일인 듯 나를 안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나른하게 밑으로 축 처지고 역시나 생각과 다르게 내 몸은 준석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승하샘 불러 줘요. 그만 가야겠어요.”
“이준희씨. 지금 승하는 여자들 품에
파묻혀서 정신없을 거라고요. 승하는
승하대로 즐기고 준희씨는 나하고 즐기고
화끈하게 이 밤을 불태워 보자고요. 쿡쿡.”
준석은 내말을 흘려듣고 침대위에 나를 눕혔다. 일어나기 위해 애썼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애꿎은 잠만 쏟아졌다.
준석은 그런 나를 비웃으며 옷을 하나 둘 벗기 시작했다.
“승하와 당신을 갈라놓고 싶어.
그래서 당신을 갖고 싶어.”
“미쳤어. 정신 나갔어.”
점점 기어 들어가는 내말에 준석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날 안고 들어온 방문을 잠갔다. 잠들지 않기 위해 애쓸수록,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 애쓸수록,
내 노력이 헛된 것이라고 몹시 비웃듯 서서히 내 정신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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