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56)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2011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혀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영철 축구협회 홍보국장은 “(정 회장이) 과거에는 피파 회장직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면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피파에서 봉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6일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피파 회장 선거와 관련해 “주변에서 권유하고 있고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라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정 회장은 1994년부터 13년째 아시아축구연맹(AFC)을 대표하는 피파 부회장을 맡으면서 국제축구계 인물들과 폭넓은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레나르트 요한손 피파 부회장,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 겸 피파 부회장, 2006 독일월드컵조직위원장을 맡았던 프란츠 베켄바워 등 국제 축구계의 거물들과 친분이 두텁다. 또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와 성공적 대회운영으로 지명도가 커졌다. 현대가인 현대자동차가 피파의 공식후원사이며, 세계 최대 조선소 가운데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회장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배경을 중시하는 피파 무대에서 정 회장의 입지를 두텁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축구의 권력 정점인 피파 회장직 도전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장애는 5월 피파 총회(취리히)에서 3선 연임이 확실한 제프 블라터 현 피파 회장과의 관계다. 2002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피파 총회에서 블라터 회장은 정몽준-요한손-하야투가 연대해 내세운 하야투 후보와 대결을 펼쳤다. 블라터 회장은 당시 피파 재정부실 문제 등으로 정 회장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하야투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고, 당선되자마자 자신을 공격했던 젠 루피넨 사무총장을 가차없이 경질시키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정 회장과의 관계도 썩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블라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프랑스 축구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지난달 요한손을 제치고 유럽축구연맹 회장에 당선된 것도 블라터의 지원이 큰 작용을 했다. 207개 회원국 대의원이 투표하는 2011년 선거에서 블라터 회장의 입김은 더욱 셀 것이다. 더욱이 피파 내부의 민주주의나 재정 투명성 등의 이슈가 현재 흑자재정인 피파 재무구조에서 선거용 이슈로 작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정 회장의 축구협회 회장 임기가 2009년 1월 끝나는 점도 약점이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바람몰이를 믿는 것 같다. 정 회장은 1993년 축구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협회의 재정규모를 확대시키는 등 괄목할 성장을 이뤄냈다.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2002 한-일월드컵을 유치하는 추진력을 보였고, 월드컵 4강 진입 등으로 한국축구의 대외적 위상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정몽준 축구협회장 2011년 FIFA 회장 선거 출마 밝혀
정몽준(56)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2011년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출마의사를 밝혀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영철 축구협회 홍보국장은 “(정 회장이) 과거에는 피파 회장직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면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피파에서 봉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6일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1년 피파 회장 선거와 관련해 “주변에서 권유하고 있고 봉사하고 싶은 생각”이라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정 회장은 1994년부터 13년째 아시아축구연맹(AFC)을 대표하는 피파 부회장을 맡으면서 국제축구계 인물들과 폭넓은 교류를 유지하고 있다. 레나르트 요한손 피파 부회장, 이사 하야투 아프리카축구연맹 회장 겸 피파 부회장, 2006 독일월드컵조직위원장을 맡았던 프란츠 베켄바워 등 국제 축구계의 거물들과 친분이 두텁다. 또 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와 성공적 대회운영으로 지명도가 커졌다. 현대가인 현대자동차가 피파의 공식후원사이며, 세계 최대 조선소 가운데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회장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점도 배경을 중시하는 피파 무대에서 정 회장의 입지를 두텁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축구의 권력 정점인 피파 회장직 도전은 쉽지 않다. 가장 큰 장애는 5월 피파 총회(취리히)에서 3선 연임이 확실한 제프 블라터 현 피파 회장과의 관계다. 2002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피파 총회에서 블라터 회장은 정몽준-요한손-하야투가 연대해 내세운 하야투 후보와 대결을 펼쳤다. 블라터 회장은 당시 피파 재정부실 문제 등으로 정 회장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하야투 후보를 압도적으로 눌렀고, 당선되자마자 자신을 공격했던 젠 루피넨 사무총장을 가차없이 경질시키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정 회장과의 관계도 썩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블라터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프랑스 축구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지난달 요한손을 제치고 유럽축구연맹 회장에 당선된 것도 블라터의 지원이 큰 작용을 했다. 207개 회원국 대의원이 투표하는 2011년 선거에서 블라터 회장의 입김은 더욱 셀 것이다. 더욱이 피파 내부의 민주주의나 재정 투명성 등의 이슈가 현재 흑자재정인 피파 재무구조에서 선거용 이슈로 작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정 회장의 축구협회 회장 임기가 2009년 1월 끝나는 점도 약점이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특유의 추진력과 바람몰이를 믿는 것 같다. 정 회장은 1993년 축구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축구협회의 재정규모를 확대시키는 등 괄목할 성장을 이뤄냈다. 일본보다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2002 한-일월드컵을 유치하는 추진력을 보였고, 월드컵 4강 진입 등으로 한국축구의 대외적 위상을 높인 것도 사실이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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