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분홍빛의 꽃잎 몇 장이 날아 들어왔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고 도망가는 미풍이 사라지자 그 꽃잎들은 탁자 위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벌서 꽃비의 계절이구나. 꽃비의 계절은 피엔 나무의 꽃잎이 지는 일주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꽃잎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이 꽃비의 계절과 황태자 즉위식이 겹쳐 자연의 축복을 받는다는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 덕분에 수도 내 사람들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공주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생각에 빠져 눈앞의 존재들의 대해 잊고 잇던 나는 라디폰 공작의 말에 퍼뜩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라디폰 공작과 티스몬 백작 , 카엔시스, 루시, 옵스크리티의 두장로, 와 이야기를 나누고잇었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
"하긴 곧 정식으로 후계자로 발표되실 테니 생각이 많으실겁니다"
티스몬 백작은 껄껄거리며 말했다.
"마리엔이 여왕이 된다니. 정말 놀랍네요. 앗, 앞으로는 마리엔이라고 이름을 부르면 안 되겠군요."
"별로 상관은 없어"
루시의 웃음기 어린말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루시라면 내가 여왕이 되든 마왕이 되든 상관하지 않고 이름을 부를 것 같다. 사실 정말로 상관도 없었다.
"잡담도 좋지만 왕비 패거리에 대한 처리를 먼저 생각해보지?"
내말에 라디폰 공작들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공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죽여야지"
내가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자 카엔시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왕비만은 내가 여왕이 될때까지 살려둘 생각이야"
죽음이라는 편한 탈출구를 마련해줄 생각은없다
"그럼 귀족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모조리 쓸어버리면 안되나?"
라디폰 공작이나 티스몬 백작이 뭐라고 할지는 알고 잇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예상되로 였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 상당수의 귀족들이 사라집니다. 그들이 맡아왔떤 직무를 맡을 사람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그럼 대전에서 끝까지 왕비 편을 들었떤 인간들부터 쓸어내도록. 그런 인간들은 써먹을 데도 없으니
까"
"알겠습니다!"
라디폰 공작과 티스몬 백작이 입을 맞춰 말하자 나는 이번에는 루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시는 당분간 라디폰공작 저택에서 머물러"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혼자 떨어져서 로튼 씨 일행과 부딪히는 것보다 그 편이 안전하니까요. 사실 계속 여행만 해 휴식도 필요했던 참이고 말입니다"
"저도 얼마 동안은 프란시아 대신관이 있는 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카엔시스의 말에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군. 나는 신전에서 남은 두 석판을 보관하겠다고 할줄 알았는데, 평화를 위하네 신의 뜻이네 어쩌네 하면서 말이야"
"서, 설마 그럴리가요"
카엔시스의 태도에 나는 그런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전 이야기가 나오자 페리오와 루시아의 표정이 좋지못했다. 그리고 내가 성녀와 관계를 가지는 것도 불안한 눈치였다. 내가 여왕이 되고 난 후 신전 쪽에 붙어 자기들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걸지도 모른다.
향기를 품은 분홍빛 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 사이로 하얀 꼬리를 물고 올라가 터지는 폭죽들이 보였다.
"마리엔 공주님 ,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이 날을 기뻐하고 있는 겁니다"
옆에 서 있던 캐롤이 열려 있는 발코니를 통해 보이는 모습에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기쁘지 않으세요?"
"그런건 아니지만 별로 실감이 안나서"
"전 또 뭐라고. 이제 준비를 하시고 밖으로 나가면 싫어도 실감하시게 될 겁니다"
글세. 실감을 한다 해도 그녀들처럼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인간의 왕위는 나에게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이아니다.
"이 옷좀 보세요. 이 날을 위해 아렌테 최고의 장인이 만든 드레스라네요. 정말 아름답죠?"
한 시녀가 황금빛 드레스를 보기 쉽도록 높이 쳐들었다
"그 장인 말로는 황금빛은 군주에 어울리는 영광을 , 은색은 변하지 않고 순수를 나타내는 거랍니다. 목걸이의 푸른색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 지혜를 자기시길 바란다는 의미래요. 그리고 붉은색은 공주
님이 빨리 사랑하는 분을 찾기를 바란다는 뜻이랍니다. 정말 멋있지요?"
캐롤은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면서 황홀한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어쩌나. 난 그 드레스를 입을 생각이없는데.
"난 이걸 입을 거야"
나는 미리 침대에 위에 올려놓았떤 옷을 집어 들어보였다.
"네엣?"!!
"정말이세요?!!"
"장난이시죠?!!"
그러나 나는 한 마디로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진심이야"
"하지만 그 옷은......."
"위에 망토를 걸치니까 상관없어"
나는 캐롤의 말을 자르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쩔수 없군요. 저 옷으로 입혀드리도록 해라"
"정말 괜찮은가요? 시녀장님?"
"귀족들도 잔뜩 모이고 , 즉위식이 끝난 후에는 시내로 나갈 텐데. 저 옷은 여라가지로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공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무슨 수가 있겠느냐?"
캐롤의 말에 시녀들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그리고 아쉬운 눈으로 황금빛 드레스를 쳐다보았다.그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이 옷이 겉으로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것이다
하지만 다행이 망토를 걸치자 안의 옷은 모두 가려졌다
나는 궁전의 넓은 앞뜰을 가득 메운 수많은 하객들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치장을 한 그들이 장식품처럼 좌우로 늘어서서 이 장소를 화려하게 꾸며싿.
이 넓은 공간을 감싸듯이 자란 주위의 나무에도 황금빛 휘장이 감겨 있었다.
나는 융단을 , 그리고 꽃잎을 밟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내가 이 위를 걷도록 도아준 사람들의 모습이, 이 위를 걷고자 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라이언 왕자 , 르미엘왕자. 데미나 공주의 모습도 들어왔다
눈으로 들어오는 여러개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내가 단 앞에 당도하자 그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국왕의 왼편에 서있던 프란시아 대신관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세르마의 문양이 새겨진 황금빛 성배가 들려 있었따
그안에 담긴 투명한 물이 언뜻 보였다. 프린시아 대신관이 그 잔을 앞으로 내밀자 나는 한쪽 무릎을 끓었다. 고개를 숙인 내 머리 위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흩어졌다. 신관의 축복이었다. 나는 이 물방울이 단순한 빗방울이라고 상상했다. 신관의 축복이라 생각하면 가만히 맞고 있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 공주 전하, 황금빛 성배의 주인으로서 장차 페드인 왕국을 이어나갈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날이 있으니 기쁨과 슬픔의 날. 운명은 하루는 그 대를 기쁘게 하고, 하루는 그대를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순간에도 비 뿌리는 구름처럼 자비를 베풀 것을 맹세합니까?"
"망세합니다"
"방금 전의 맹세를 영광의 신 제르마 님 앞에서 다시 맹세하실수 있습니까?"
"네, 맹세합니다"
그 순간 조금전 진지하게 했떤 맹세는 모두 무로 돌아갔다. 제르마에게 하는 맹세가 장난 내지 거짓말로 격하되는것은 당연한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프란시아 대신관은 자신이 서 있떤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이번에는 카엔시스가 걸어왔다
신관복을 입구 있는 카엔시스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이런게 성녀로서의 카엔시스 모습인가.
"이 세상의 즐거움과 영광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낮과 밤이 되풀이 되는 한 계속되옵소서.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신 신의 손으로 완성된 뜻이니 우러러 받들어 찬양할지어다"
신관의 축복에 이어 성녀의 축복까지 받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복이 터진 일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만은 없었다. 어째서 왕실의 일에 신전이 끼어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 엄숙한 의식이 끝나자 카엔시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프스터 국왕이 옥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걸어갔다.
"후계자의 검을 받도록 하여라"
"지금 이순간 제1공주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을 나의 후계자로 선포한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여러 개의 폭죽이 기다란 꼬리를 단 채 올라왔다. 물론 그 폭죽은 성 밖에서 터진것이다.국왕의 선언에 흥분한 귀족들이 내지르는 소리도 한데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뒤쪽에 늘어서 있던 시종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뜰의 가장자리로는 하얀 식탁보가 덮인 긴 식탁들이 놓여졌다.곧 있으면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할터. 의례가 끝나자 여러 귀족들과 이 행사에 참여한 레이만 왕자가 내게 다가오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멈춰라"
(다음편에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
외전1
에릭의 이야기
몇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넨 숲에서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곳에 묶여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 계속되는 고문. 그로 인해 시간 관념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다만 기억하는건 세린이 나간건 몇칠 전이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들이 날 살려줄 생각이 없다는것. 날 미끼로 이용한다는 것. 죽는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나로 인해 내가 알고 있떤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두렵다. 특히 그녀는.
의식이 있을 때면 언제나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자. 웃고있는 모습, 부루퉁해서 토라진 모습. 화내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든 파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에릭'
환청처럼 귓가를 때리는 소리. 부질없는 미련과 이기심으로 얼룩져 들리는 그 목소리.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그녀가 와줬으면 하는 비겁한 이기심이 든다.
차라히 그녀가 내게 마리엔이 아닌 마리엔 공주로만 남아있었다면....그럼 세린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될 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괴로워할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그녀의 미소도 볼수 없었겠지.
부질없는 생각. 과연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건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 궁이 시끄럽다. 몇칠 전에 마리엔 공주가 독을 마시고 쓰러진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다시 살아났다. 팡세를 마시고 깨어난 자는 없었다. 설령 깨어나도 백치가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마리엔 공주는 기억을 잃은 것을 제외하면지극히 정상이라고했따
그리고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럴수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이블로와 함께 마리엔 공주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무척이나 재미있따는 듯이. 그러고 보니 마리엔 공주의 교육을 담당한 후 저런 일이 부쩍 많아진 것 같군. 내 머릿속에 마리엔 공주가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마리엔 공주를 보게 된 건 건국을 기념하기 위한 궁전 무도회가 열렸을 때다.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곳. 그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검을 쥐고 싶은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계속 이어지는 귀족들의 이야기와 아부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심어주었다
그때 웃는 얼굴로 가득 찬 무도회에서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 최초의 사람은 바로 마리엔 공주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마리엔공주님?"
"지금까지는 잘 지냈어요. 그러는 공작은 어떤가요?"
'지금까지는'이라. 그럼 지금은 별로란 건가. 마리엔 공주는 간간이 인상을 쓰며 탐탁지 않다는 표현을했다. 그녀가 나를 보는 시선 또한 아버지를 향한 짜증난다는 시선과 별반다르지 않았따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위아래로 홅어보았따. 이런 식으로 대놓고 관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귀족들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군.
"아앗! 설마 페드인 왕국 제일의 검사라는 그 에릭? 로열 기시라는 그사람?"
마리엔 공주는 집게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놀라워했다.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위 도한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금기사항이라는걸 모르는 모양이다. 크게 상관은없지만. 내가 짤막하게 긍정의 대답을 하자 마리엔 공주는 미심쩍은 눈으로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마리엔 공주와의 대면은 끝나고, 그 후 무도회는 더이상 참가하지 않아 그녀를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다
만약 내가 세린의 제안의 따라 축제의 거리에 나가지 않앗다면 아마 그녀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나와 세린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보게되었다.어째서 마리엔 공주가 밖에 나와 잇는걸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일이 커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접근하려 했떤 나는 세린이 팔을 잡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멈춰섰다.
게다가 이미 말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마리엔 공주는 아주 적극적으로 말싸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렸으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이건 말싸움 대회다. 정면으로 인신공격은 할수없지만 상대의 험단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대회다. 설마 모욕당했따고 군대를 이끌고 오지는 않겠지만 불안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공주가 군대를 이끌고 올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상대를 농락하고 있는것은 마리엔 공주였으므로.
마침내 승리를 따내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관중들을 들러보던 그녀는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처음으로 귀엽게 느껴졌다. 마리엔 공주는 축제에 나온 것이 오늘이 처음이며,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역시 우연히 시합에 참가하게 되엇다고 주장했다. 거짓말. 다른 건 몰라도 튀지 않은 옷을 미리 준비해서 입었다는 것만 봐도 그게 거짓말 이라는건 알수 있었다
"마리엔 님, 그 시합 다 봤습니다. 정말 놀랍더군요"
이미 알고 있따는 세린의 말에 마리엔 공주의 표정이 변했다. 순진하게 웃던 얼굴은 금세 부루퉁하게 부운 얼굴로 바뀌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애교섞인 목소리로 어린아이가 하는것 마냥 조르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이번 한 번만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
그후 마리엔 공주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축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천진해 보이는 모습이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 뜻밖의 모습을 본 건 그후 였다. 한참 동안 축제를 구경하고 다니다 세린이 갑자기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가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솜사탕이었다
"이런 축제에서는 역시 솜사탕이 최고죠. 한번드셔보십시오"
세린이 건네는 솜사탕을 마리엔 공주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말했다
"뭐? 솜을 먹어? 솜으로 어떻게 사탕을 만들지? 연금술사가 만든건가? 이거 먹고 부작용없어?"
그녀는 바로 입에 대지않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했다. 그모습에 나와 세린은 조금 전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임을 알수 있엇다
진지하게 솜사탕을 관찰하는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시종일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소녀가 오만하기로 유명한 마리엔 공주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공범이야 . 그거알지?"
만약 우리가 오늘 일을 발설하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협박. 아마 나와 세린이 자신을 꼬드겼다고 하겠지. 그랬나. 마리엔 공주가 그렇게 떼를 썼떤 이유는 축제 구경보다는 우리와의 동행에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축제의 거리에서 마리엔 공주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밤중에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또 궁전을 바져 나온 걸까? 경비가 그렇게 허술했나? 내일 가면 다시 한번 순찰을 돌아봐야겠군.
결국 나는 의도하지 않게 또다시 마리엔 공주와 동행하게 되엇따. 이밤중에 공주 혼자 돌려보낼수는없었다. 그리고 순순히 돌아갈 거엿으면 몰래 빠져나오지도 않았겠지.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스스로 돌아가고자 할때까지 함께 다니다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것.
마리엔 공주는 내가 함께 가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지만 나라고 하고 싶어 하는일은아니다.
그날 나는 그녀의 의외의 면모를 또보게되었다
인형하나 사려고 설전을 벌이더니 주인 몰래 인형에 흠집을 내 키어코 가격을 깍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가? 그에대한 대답이 ' 재미있잖아' 였기에 마리엔 공주를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리해진다. 무기를 볼때, 능숙하게 말씨름을 할 때 공주답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뜻밖의 곳에서 엉뚱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잇따는 생각만 들었다. 관심이 없었엇따. 때문에 가끔 들리는 소문만이 내가 아는 그녀의 전부였다. 고집 세고 사악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소문이 날정도는 아니였다. 호기심 왕성하고 잘 웃는 그런여자였다. 마리엔공주는.
그런 그녀가 공주에서 마리엔으로 바뀐 것은 레리이니 여왕의 요청으로 스피린을 방문할 때였다. 그녀가 본격적인 여행 전에 말을 낮추라고 햇을 때 놀랍긴 햇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마리엔. 마리엔. 그때는 단순히 공주의 한때 장난이라 여겼다. 다시 페드인 왕국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마리엔공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적어도 스피린 에서만은 공주가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고 사람패기 좋아하고 신관과 대놓고 싸우고 다른사람 골려먹기를 취미로 알고 무엇보다 자기 멋대로인 말괄량이 뿐이였다.
자기 멋대로. 그래. 그녀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는 공주도 없겠지. 그때도 그랬었다. 본비조에서 그녀는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리엔의 실력은 알지만 걱정이 되었다. 각자 흩어져서 시간이 흘러도 해가 서산너머에 걸려도 노을이 져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본비조에 들어오면서 스친 집시 일행이 떠올랐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집시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외곽 지역의 버려진광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
버려진 광장과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떤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 앉아 한 집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마리엔이 보였다. 그집시가 아무것도 없는 쟁반에서 토끼를 만들어 내자 마리엔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발했다. 다른 데는 빠삭하면서 왜 저런 속임수에 감탄하는건지.
"마리엔!"
"에릭?"
"여기서 뭐 하는거지?"
"마술 구경"
죄책감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은 그 목소리에 나는 한손으로 이 마를 짚었다
"지금 몇시지?"
"그야. 어? 언제 해가 졌지?"
"미안. 조금만 보고 가려고 햇는데 이사람이 토끼랑 꽃을 꺼내자나. 신기해서 말이지"
"당장 내려와"
마리엔이 한참 변명 중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걱정하고 있을 테고, 그들 앞에서 또 똑같은 말을 할테네 나중에 들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갈게요, 아저씨 그럼 토끼 많이 꺼내세요"
저바보. 그건 몇마리를 반복해서 꺼내는 것뿐이야
"이봐, 아가씨 앞을보라고!"
"에엣?"
"저멍청이가!!"
게단을 서둘러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면 어덯게 해?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마리엔의 앞으로 뛰어갔따
두근.
"오, 나이스 타이밍, 역시 에릭이야, 금방와서 받아주네"
마리엔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를 재빨리 밀어냈다.
"화났어, 에릭? 미안하다니까. 시간이 이렇게 간 줄은 몰랐어. 그만 화풀어. 남자가 그정도로 화를 내면 여자들이 안 따른단 말이야"
그때부터 였는지 모른다. 마리엔을 의식하게 된 것. 아니 그녀에 대한 감정을 의식하게 된 건. 자꾸 그녀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마리엔을 쫓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세린.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 해왔떤 친우. 운명의 장난이란 잔인하다.
지금도 마리엔을 보고있다. 비록 머릿속에 그려진 흐릿한 환영일망정. 그러나 흐르는 마음은 아무리 막아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처럼. 처음 마리엔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을 때처럼.
"너 버림받았군"
그가 마지막으로 비웃으며 남기고 간 말이 맴돌았다. 그래도 세린은 무사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에릭!"
흩어졌던 의식이 다시 모였다. 꿈일까? 환상? 하지만 마리엔의 손길이 느껴진다.
"왜...왔지.....?"
오지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가슴이 따듯해진다. 그녀를 보면 미련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차마 그럴수 없었다. 마리엔은 이제 어떻데 돌아가지? 내가 힘들게 만든건가?
그리고 불현듯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것이 마리엔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라도. 이기적인 소망을 품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마족의 계약]28부
제19장
황태자 즉위식
바람을 타고 분홍빛의 꽃잎 몇 장이 날아 들어왔다.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고 도망가는 미풍이 사라지자 그 꽃잎들은 탁자 위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벌서 꽃비의 계절이구나. 꽃비의 계절은 피엔 나무의 꽃잎이 지는 일주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꽃잎들이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이 꽃비의 계절과 황태자 즉위식이 겹쳐 자연의 축복을 받는다는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 덕분에 수도 내 사람들은 굉장히 들떠 있었다.
"공주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생각에 빠져 눈앞의 존재들의 대해 잊고 잇던 나는 라디폰 공작의 말에 퍼뜩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라디폰 공작과 티스몬 백작 , 카엔시스, 루시, 옵스크리티의 두장로, 와 이야기를 나누고잇었다.
"그냥, 여러가지 생각"
"하긴 곧 정식으로 후계자로 발표되실 테니 생각이 많으실겁니다"
티스몬 백작은 껄껄거리며 말했다.
"마리엔이 여왕이 된다니. 정말 놀랍네요. 앗, 앞으로는 마리엔이라고 이름을 부르면 안 되겠군요."
"별로 상관은 없어"
루시의 웃음기 어린말에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루시라면 내가 여왕이 되든 마왕이 되든 상관하지 않고 이름을 부를 것 같다. 사실 정말로 상관도 없었다.
"잡담도 좋지만 왕비 패거리에 대한 처리를 먼저 생각해보지?"
내말에 라디폰 공작들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공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죽여야지"
내가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자 카엔시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왕비만은 내가 여왕이 될때까지 살려둘 생각이야"
죽음이라는 편한 탈출구를 마련해줄 생각은없다
"그럼 귀족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모조리 쓸어버리면 안되나?"
라디폰 공작이나 티스몬 백작이 뭐라고 할지는 알고 잇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예상되로 였다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 상당수의 귀족들이 사라집니다. 그들이 맡아왔떤 직무를 맡을 사람이 부족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그럼 대전에서 끝까지 왕비 편을 들었떤 인간들부터 쓸어내도록. 그런 인간들은 써먹을 데도 없으니
까"
"알겠습니다!"
라디폰 공작과 티스몬 백작이 입을 맞춰 말하자 나는 이번에는 루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시는 당분간 라디폰공작 저택에서 머물러"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혼자 떨어져서 로튼 씨 일행과 부딪히는 것보다 그 편이 안전하니까요. 사실 계속 여행만 해 휴식도 필요했던 참이고 말입니다"
"저도 얼마 동안은 프란시아 대신관이 있는 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카엔시스의 말에 나는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군. 나는 신전에서 남은 두 석판을 보관하겠다고 할줄 알았는데, 평화를 위하네 신의 뜻이네 어쩌네 하면서 말이야"
"서, 설마 그럴리가요"
카엔시스의 태도에 나는 그런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신전 이야기가 나오자 페리오와 루시아의 표정이 좋지못했다. 그리고 내가 성녀와 관계를 가지는 것도 불안한 눈치였다. 내가 여왕이 되고 난 후 신전 쪽에 붙어 자기들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는 걸지도 모른다.
향기를 품은 분홍빛 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그 사이로 하얀 꼬리를 물고 올라가 터지는 폭죽들이 보였다.
"마리엔 공주님 ,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이 날을 기뻐하고 있는 겁니다"
옆에 서 있던 캐롤이 열려 있는 발코니를 통해 보이는 모습에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기쁘지 않으세요?"
"그런건 아니지만 별로 실감이 안나서"
"전 또 뭐라고. 이제 준비를 하시고 밖으로 나가면 싫어도 실감하시게 될 겁니다"
글세. 실감을 한다 해도 그녀들처럼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인간의 왕위는 나에게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이아니다.
"이 옷좀 보세요. 이 날을 위해 아렌테 최고의 장인이 만든 드레스라네요. 정말 아름답죠?"
한 시녀가 황금빛 드레스를 보기 쉽도록 높이 쳐들었다
"그 장인 말로는 황금빛은 군주에 어울리는 영광을 , 은색은 변하지 않고 순수를 나타내는 거랍니다. 목걸이의 푸른색은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는 지혜를 자기시길 바란다는 의미래요. 그리고 붉은색은 공주
님이 빨리 사랑하는 분을 찾기를 바란다는 뜻이랍니다. 정말 멋있지요?"
캐롤은 묻지도 않은 설명을 하면서 황홀한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어쩌나. 난 그 드레스를 입을 생각이없는데.
"난 이걸 입을 거야"
나는 미리 침대에 위에 올려놓았떤 옷을 집어 들어보였다.
"네엣?"!!
"정말이세요?!!"
"장난이시죠?!!"
그러나 나는 한 마디로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진심이야"
"하지만 그 옷은......."
"위에 망토를 걸치니까 상관없어"
나는 캐롤의 말을 자르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쩔수 없군요. 저 옷으로 입혀드리도록 해라"
"정말 괜찮은가요? 시녀장님?"
"귀족들도 잔뜩 모이고 , 즉위식이 끝난 후에는 시내로 나갈 텐데. 저 옷은 여라가지로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공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무슨 수가 있겠느냐?"
캐롤의 말에 시녀들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그리고 아쉬운 눈으로 황금빛 드레스를 쳐다보았다.그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이 옷이 겉으로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것이다
하지만 다행이 망토를 걸치자 안의 옷은 모두 가려졌다
나는 궁전의 넓은 앞뜰을 가득 메운 수많은 하객들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치장을 한 그들이 장식품처럼 좌우로 늘어서서 이 장소를 화려하게 꾸며싿.
이 넓은 공간을 감싸듯이 자란 주위의 나무에도 황금빛 휘장이 감겨 있었다.
나는 융단을 , 그리고 꽃잎을 밟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동안 내가 이 위를 걷도록 도아준 사람들의 모습이, 이 위를 걷고자 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라이언 왕자 , 르미엘왕자. 데미나 공주의 모습도 들어왔다
눈으로 들어오는 여러개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마침내 내가 단 앞에 당도하자 그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국왕의 왼편에 서있던 프란시아 대신관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세르마의 문양이 새겨진 황금빛 성배가 들려 있었따
그안에 담긴 투명한 물이 언뜻 보였다. 프린시아 대신관이 그 잔을 앞으로 내밀자 나는 한쪽 무릎을 끓었다. 고개를 숙인 내 머리 위로 차가운 물방울들이 흩어졌다. 신관의 축복이었다. 나는 이 물방울이 단순한 빗방울이라고 상상했다. 신관의 축복이라 생각하면 가만히 맞고 있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 공주 전하, 황금빛 성배의 주인으로서 장차 페드인 왕국을 이어나갈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날이 있으니 기쁨과 슬픔의 날. 운명은 하루는 그 대를 기쁘게 하고, 하루는 그대를 괴롭게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순간에도 비 뿌리는 구름처럼 자비를 베풀 것을 맹세합니까?"
"망세합니다"
"방금 전의 맹세를 영광의 신 제르마 님 앞에서 다시 맹세하실수 있습니까?"
"네, 맹세합니다"
그 순간 조금전 진지하게 했떤 맹세는 모두 무로 돌아갔다. 제르마에게 하는 맹세가 장난 내지 거짓말로 격하되는것은 당연한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프란시아 대신관은 자신이 서 있떤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이번에는 카엔시스가 걸어왔다
신관복을 입구 있는 카엔시스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이런게 성녀로서의 카엔시스 모습인가.
"이 세상의 즐거움과 영광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낮과 밤이 되풀이 되는 한 계속되옵소서.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신 신의 손으로 완성된 뜻이니 우러러 받들어 찬양할지어다"
신관의 축복에 이어 성녀의 축복까지 받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복이 터진 일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만은 없었다. 어째서 왕실의 일에 신전이 끼어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이 엄숙한 의식이 끝나자 카엔시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프스터 국왕이 옥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게 걸어갔다.
"후계자의 검을 받도록 하여라"
"지금 이순간 제1공주 마리엔 오페나 드간 페드인을 나의 후계자로 선포한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여러 개의 폭죽이 기다란 꼬리를 단 채 올라왔다. 물론 그 폭죽은 성 밖에서 터진것이다.국왕의 선언에 흥분한 귀족들이 내지르는 소리도 한데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뒤쪽에 늘어서 있던 시종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뜰의 가장자리로는 하얀 식탁보가 덮인 긴 식탁들이 놓여졌다.곧 있으면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할터. 의례가 끝나자 여러 귀족들과 이 행사에 참여한 레이만 왕자가 내게 다가오려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멈춰라"
(다음편에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
외전1
에릭의 이야기
몇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넨 숲에서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곳에 묶여 있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 계속되는 고문. 그로 인해 시간 관념이 무너진 지 오래였다. 다만 기억하는건 세린이 나간건 몇칠 전이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들이 날 살려줄 생각이 없다는것. 날 미끼로 이용한다는 것. 죽는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나로 인해 내가 알고 있떤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두렵다. 특히 그녀는.
의식이 있을 때면 언제나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자. 웃고있는 모습, 부루퉁해서 토라진 모습. 화내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든 파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에릭'
환청처럼 귓가를 때리는 소리. 부질없는 미련과 이기심으로 얼룩져 들리는 그 목소리.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그녀가 와줬으면 하는 비겁한 이기심이 든다.
차라히 그녀가 내게 마리엔이 아닌 마리엔 공주로만 남아있었다면....그럼 세린과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될 일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괴로워할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그녀의 미소도 볼수 없었겠지.
부질없는 생각. 과연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건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 궁이 시끄럽다. 몇칠 전에 마리엔 공주가 독을 마시고 쓰러진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다시 살아났다. 팡세를 마시고 깨어난 자는 없었다. 설령 깨어나도 백치가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마리엔 공주는 기억을 잃은 것을 제외하면지극히 정상이라고했따
그리고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럴수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이블로와 함께 마리엔 공주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무척이나 재미있따는 듯이. 그러고 보니 마리엔 공주의 교육을 담당한 후 저런 일이 부쩍 많아진 것 같군. 내 머릿속에 마리엔 공주가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마리엔 공주를 보게 된 건 건국을 기념하기 위한 궁전 무도회가 열렸을 때다.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곳. 그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검을 쥐고 싶은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계속 이어지는 귀족들의 이야기와 아부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심어주었다
그때 웃는 얼굴로 가득 찬 무도회에서 찡그린 얼굴을 보여준 최초의 사람은 바로 마리엔 공주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마리엔공주님?"
"지금까지는 잘 지냈어요. 그러는 공작은 어떤가요?"
'지금까지는'이라. 그럼 지금은 별로란 건가. 마리엔 공주는 간간이 인상을 쓰며 탐탁지 않다는 표현을했다. 그녀가 나를 보는 시선 또한 아버지를 향한 짜증난다는 시선과 별반다르지 않았따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위아래로 홅어보았따. 이런 식으로 대놓고 관찰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귀족들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군.
"아앗! 설마 페드인 왕국 제일의 검사라는 그 에릭? 로열 기시라는 그사람?"
마리엔 공주는 집게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키며 놀라워했다.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위 도한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금기사항이라는걸 모르는 모양이다. 크게 상관은없지만. 내가 짤막하게 긍정의 대답을 하자 마리엔 공주는 미심쩍은 눈으로 다시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마리엔 공주와의 대면은 끝나고, 그 후 무도회는 더이상 참가하지 않아 그녀를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었다
만약 내가 세린의 제안의 따라 축제의 거리에 나가지 않앗다면 아마 그녀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나와 세린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보게되었다.어째서 마리엔 공주가 밖에 나와 잇는걸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일이 커진다. 하지만 그녀에게 접근하려 했떤 나는 세린이 팔을 잡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멈춰섰다.
게다가 이미 말리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마리엔 공주는 아주 적극적으로 말싸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손을 들어버렸으니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이건 말싸움 대회다. 정면으로 인신공격은 할수없지만 상대의 험단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대회다. 설마 모욕당했따고 군대를 이끌고 오지는 않겠지만 불안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공주가 군대를 이끌고 올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상대를 농락하고 있는것은 마리엔 공주였으므로.
마침내 승리를 따내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관중들을 들러보던 그녀는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이 처음으로 귀엽게 느껴졌다. 마리엔 공주는 축제에 나온 것이 오늘이 처음이며,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역시 우연히 시합에 참가하게 되엇다고 주장했다. 거짓말. 다른 건 몰라도 튀지 않은 옷을 미리 준비해서 입었다는 것만 봐도 그게 거짓말 이라는건 알수 있었다
"마리엔 님, 그 시합 다 봤습니다. 정말 놀랍더군요"
이미 알고 있따는 세린의 말에 마리엔 공주의 표정이 변했다. 순진하게 웃던 얼굴은 금세 부루퉁하게 부운 얼굴로 바뀌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애교섞인 목소리로 어린아이가 하는것 마냥 조르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이번 한 번만 축제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
그후 마리엔 공주는 우리를 따라다니며 축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천진해 보이는 모습이 의외였지만 그보다 더 뜻밖의 모습을 본 건 그후 였다. 한참 동안 축제를 구경하고 다니다 세린이 갑자기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그가 들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솜사탕이었다
"이런 축제에서는 역시 솜사탕이 최고죠. 한번드셔보십시오"
세린이 건네는 솜사탕을 마리엔 공주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말했다
"뭐? 솜을 먹어? 솜으로 어떻게 사탕을 만들지? 연금술사가 만든건가? 이거 먹고 부작용없어?"
그녀는 바로 입에 대지않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했다. 그모습에 나와 세린은 조금 전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임을 알수 있엇다
진지하게 솜사탕을 관찰하는 그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시종일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소녀가 오만하기로 유명한 마리엔 공주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천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공범이야 . 그거알지?"
만약 우리가 오늘 일을 발설하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협박. 아마 나와 세린이 자신을 꼬드겼다고 하겠지. 그랬나. 마리엔 공주가 그렇게 떼를 썼떤 이유는 축제 구경보다는 우리와의 동행에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축제의 거리에서 마리엔 공주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밤중에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또 궁전을 바져 나온 걸까? 경비가 그렇게 허술했나? 내일 가면 다시 한번 순찰을 돌아봐야겠군.
결국 나는 의도하지 않게 또다시 마리엔 공주와 동행하게 되엇따. 이밤중에 공주 혼자 돌려보낼수는없었다. 그리고 순순히 돌아갈 거엿으면 몰래 빠져나오지도 않았겠지.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가 스스로 돌아가고자 할때까지 함께 다니다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것.
마리엔 공주는 내가 함께 가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지만 나라고 하고 싶어 하는일은아니다.
그날 나는 그녀의 의외의 면모를 또보게되었다
인형하나 사려고 설전을 벌이더니 주인 몰래 인형에 흠집을 내 키어코 가격을 깍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가? 그에대한 대답이 ' 재미있잖아' 였기에 마리엔 공주를 더욱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예리해진다. 무기를 볼때, 능숙하게 말씨름을 할 때 공주답지 않은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뜻밖의 곳에서 엉뚱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잇따는 생각만 들었다. 관심이 없었엇따. 때문에 가끔 들리는 소문만이 내가 아는 그녀의 전부였다. 고집 세고 사악한 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소문이 날정도는 아니였다. 호기심 왕성하고 잘 웃는 그런여자였다. 마리엔공주는.
그런 그녀가 공주에서 마리엔으로 바뀐 것은 레리이니 여왕의 요청으로 스피린을 방문할 때였다. 그녀가 본격적인 여행 전에 말을 낮추라고 햇을 때 놀랍긴 햇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마리엔. 마리엔. 그때는 단순히 공주의 한때 장난이라 여겼다. 다시 페드인 왕국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마리엔공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적어도 스피린 에서만은 공주가 아니었다. 놀기 좋아하고 사람패기 좋아하고 신관과 대놓고 싸우고 다른사람 골려먹기를 취미로 알고 무엇보다 자기 멋대로인 말괄량이 뿐이였다.
자기 멋대로. 그래. 그녀처럼 마음대로 행동하는 공주도 없겠지. 그때도 그랬었다. 본비조에서 그녀는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리엔의 실력은 알지만 걱정이 되었다. 각자 흩어져서 시간이 흘러도 해가 서산너머에 걸려도 노을이 져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본비조에 들어오면서 스친 집시 일행이 떠올랐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집시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외곽 지역의 버려진광장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
버려진 광장과 이어져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떤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바닥에 앉아 한 집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마리엔이 보였다. 그집시가 아무것도 없는 쟁반에서 토끼를 만들어 내자 마리엔은 다시 한번 감탄사를 발했다. 다른 데는 빠삭하면서 왜 저런 속임수에 감탄하는건지.
"마리엔!"
"에릭?"
"여기서 뭐 하는거지?"
"마술 구경"
죄책감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은 그 목소리에 나는 한손으로 이 마를 짚었다
"지금 몇시지?"
"그야. 어? 언제 해가 졌지?"
"미안. 조금만 보고 가려고 햇는데 이사람이 토끼랑 꽃을 꺼내자나. 신기해서 말이지"
"당장 내려와"
마리엔이 한참 변명 중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걱정하고 있을 테고, 그들 앞에서 또 똑같은 말을 할테네 나중에 들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갈게요, 아저씨 그럼 토끼 많이 꺼내세요"
저바보. 그건 몇마리를 반복해서 꺼내는 것뿐이야
"이봐, 아가씨 앞을보라고!"
"에엣?"
"저멍청이가!!"
게단을 서둘러 내려오면서 뒤를 돌아보면 어덯게 해?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마리엔의 앞으로 뛰어갔따
두근.
"오, 나이스 타이밍, 역시 에릭이야, 금방와서 받아주네"
마리엔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를 재빨리 밀어냈다.
"화났어, 에릭? 미안하다니까. 시간이 이렇게 간 줄은 몰랐어. 그만 화풀어. 남자가 그정도로 화를 내면 여자들이 안 따른단 말이야"
그때부터 였는지 모른다. 마리엔을 의식하게 된 것. 아니 그녀에 대한 감정을 의식하게 된 건. 자꾸 그녀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마리엔을 쫓는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세린.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 해왔떤 친우. 운명의 장난이란 잔인하다.
지금도 마리엔을 보고있다. 비록 머릿속에 그려진 흐릿한 환영일망정. 그러나 흐르는 마음은 아무리 막아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처럼. 처음 마리엔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을 때처럼.
"너 버림받았군"
그가 마지막으로 비웃으며 남기고 간 말이 맴돌았다. 그래도 세린은 무사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에릭!"
흩어졌던 의식이 다시 모였다. 꿈일까? 환상? 하지만 마리엔의 손길이 느껴진다.
"왜...왔지.....?"
오지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가슴이 따듯해진다. 그녀를 보면 미련없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차마 그럴수 없었다. 마리엔은 이제 어떻데 돌아가지? 내가 힘들게 만든건가?
그리고 불현듯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것이 마리엔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라도. 이기적인 소망을 품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그래도 만약 내게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말하고싶다.
재밌게 읽으셨어요?
이따가는 세린의 이야기 외전을 올릴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