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의 계약]외전

다일리아200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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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세린의 이야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세상은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 진득한 수액 냄새 때문인지 향긋한 나뭇잎 내음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시야의 변화 때문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뭇잎과 공존하는 이 시계를 좋아한다

 

우연히 순찰을 돌다 발견해낸 이 나무는 나만의 휴식처다. 호소라도 하듯 양팔을 하늘을 뻗고 있는 나뭇가지에는 나뭇잎들이 무성해 아래에서는 좀처럼 내 모습을 볼 수없다.. 에릭 녀석은 매번 연습을 빼먹는다고 인상을 찌푸리지만 내 맘을 이해하는지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하긴 그 녀석은 그러는 편이 더 어울릴지.

 

 

게다가 마리엔 공주는 정원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 크게 염려될 일은없었다.

그 후 오랜만에 나무를 찾아갔따. 그동안은 마리엔공주가 쓰러지는 바람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고, 나 자신도 왕궁 경비 일로 바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절대 올 리 없다고 여겼던 마리엔 공주에게 들키고 말았따

그녀가 알아챘다기보다는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해 들킨 것이었지만. 처음 대화를 나눠본 마리엔공주는 생각처럼 오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좀 영악하긴 했지만.

 

마리엔 공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항상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됐으니 말이다. 나가기 싫어하는 에릭을 억지로 끌고 축제의 거리로 나와보니  아주 눈에 익은 사람이 눈에 띄었다. 워낙 눈에 띄는 자리에 있었으니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도 없었다.

 

"저요! 내가 할게요!"

더 이상 참가자가 나오지 않는 말싸움 대회에서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마리엔 공주. 에릭은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리며 그런 그녀를 잡으려 했찌만 나는 이를 말렸다. 이미 너무주목을 받아 지금 끌어내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잘못하면 공주의 신분이 알려질 수도 있는일. 솔직히 마리엔 공주가 어떻게 대처할지 보고싶다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리고 마리엔 공주는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예상대로 승자는 그녀가 되었다. 울상이 된 사회자에게서 거금을 받아 낸 그녀는 의기양양한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그녀의 눈은 우리 앞도 스쳐 지나갔다.

 

우리를 본 마리엔 공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딴청을 부리기도 했지만 에릭의 협박에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과연 오늘이 처음 나온 거며 말싸움 대회도 엉겁결에 참여하게 됐다는 말이 정말인지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마리엔  공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축제 구경을 하고싶고, 나와 에릭의 말을 잘 들을 테니 궁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 조금 전 일로 공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렇게 하는것도 괜찮겠따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에릭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곤란한걸. 에릭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자기 의견을 굽히는 일이 없는데.

 

다음 순간 나는 에릭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리엔공주는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에릭의  팔을 붙들고 늘어졌다. 귀찮은걸 싫어하는 에릭에게 여자가 달라붙는 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떨어지지 않는 마리엔 공주 덕에 에릭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얼굴로 우리를 따라나선 그녀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걸 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평범한 음식을 봐도 싱긋 웃는다. 마술이나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러다 여전히 멀뚱한 에릭에게 '뭐 저런 무뚝뚝한 인간이 있지?'하는 시선을 보냈다

 

"마리엔 님, 에릭은 원래 이렇습니다. 저 녀석이 관심이 있는 건 오로지 검뿐이죠. 평소에는 저렇게 맹하다가도 검만 잡으면 사람이 변하거든요. 그리고 옆에 이렇게 근사한 남자가 있으니 저런 무뚝뚝한 놈에게는 신경 끄셔도 됩니다"

 

얼마 봐도 마리엔 공주는 농도 웃으며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가벼운 말을 건넸다.

"잠깐.! 남자라니? 세린, 남자였어?"

 

외모 덕에 처음 얼마동안은 헷갈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듯 완벽하게 성별을 착각한 사람은 없었다.

 

동시에상당히 엉뚱한 사람이었다. 솜사탕을 보고 솜으로 사탕을 어떻게 만드냐고 물은것도 상상도

못한 반응이엇다 심지어 웬만한 일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에릭 마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에 "이제 우리는 공범이야, 그거알지" 라는 말만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를 순진하다고 여겼을것이다.

 

그리고 거리에서 다시 마리엔 공주를 보게 되었다. 축제가 끝난 어느 날의 오후였따. 경계하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여자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후드까지 뒤집어 쓰고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왠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한참을 봐도 정체를 알 수가없었다. 만약 그때 그녀가 입을 열지 않았따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후후후.좋았어"

저 웃음소리.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몰래 그녀의 뒤를 밟았다

 

"헤라 아줌마, 꼬치 다섯개요"

후드를 젖힌 후 꼬치를 파는 중년의 여자에게 아는척하는 사람은 아무리봐도 마리엔 공주였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궁궐을 빠져 나오는거지? 에릭이 봤따면  경비병들은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되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리엔 공주는 도저희 공주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속도로 꼬치를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음료수를 파는 상인이 당연하다는 듯 음료수를 건네주는 걸로 봐서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했다.

 

나는 고민했다. 지금 이라도 궁으로 돌아가라고 할까? 하지만 공범 운운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돌아가라고요? 날 축제에 끌어들였던 세린경이 할말이 아니군요' 라고 말해준 후 유유히 사라질 것같았다.

 

"잘먹었어요, 헤라아줌마. 그럼 다음에 또올께요"

다음에 또온다고? 그러나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마리엔 공주가 자리를 옮겨 다시 그녀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녀는 거리 구경이 그리도 신기 한지 한시도 눈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돌아다니던 그녀가 발을 멈춘 곳은 다름아닌 광장이었다.

그곳에는 마침 유랑극단이 간이 무대를 설치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오호~ 이게 말로만 듣던 유랑극단이렸다"

"맞습니다. 제크 유랑극단이라고 약간은 유명하죠"

마리엔 공주가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유랑극단은 처음이신 모양이지요?"

"네. 아버지가 소심해서 좀처럼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잖아요"

소심한 아버지라면 설마 국왕 폐하?

 

"그러시군요. 그럼 재미있게 구경하다 가십시오. [용사레안]을 연극할 예정이거든요. 너무 유명한 이야기라 내용은 아시겠군요. 하긴 애들도 다 아는 거니까"

 

그럴리 없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가까운 곳에 있떤 나는 마리엔 공주의 눈썹이 꿈틀거린 걸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당연하죠"

......모르고 있군. 하지만 유랑극단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무대 쪽이 소란해지더니 한 남자가 황급히 달려왔다

 

"단장님! 큰일낫습니다. 제시카가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서 출현을 못하게 됐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마왕 레이지는 이번 연극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란 말이다!  도대체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지금 복통을 일으키는 거야? 다름 사람들은 어때?"

 

"다들 역할이 있어서 곤란합니다. 남는 사람은 체구가 큰 남자들이라 도저희 여마왕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유랑극단의 단장과 단원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옆에서 이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엔 공주가 나섰다

 

"마왕 레이지요? 그거라면 아주 잘 알고 있는데!"

 

하지만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졋다. 작은 유랑극단에서 사람이 부족 할때 단원이 아닌 사람을 불러 대역을 시키는 경우는 흔했다.

하지만 [용사 레안]에서 마왕 레이지는 제법 비중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지 단장은 마리엔 공주에게 대사를 알려주고 시험해보았다.

 

"나는 이성의 주인 마왕 레이지.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너희들은 누구냐? 죽음을 그렇게도 원하는가?"

 

순간 나는 흠짓했다. 내가 있는 곳까지 전해오는 위압감. 마리엔 공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곳을 보던 내가 깜박 뒤를 돌아볼 정도로 강렬한 느낌. 이정도 존재감이라면 마왕 연기는 식은 죽 먹기다. 게다가 마왕 레이지는 마지막 부분에만 나오기에 대사도 네마디 뿐이다. 그리고 그 대사는 너무도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공연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 마땅한 사람은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던 단장은 마리엔 공주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연극의 막이 올랐다. 배우들의 무르익은 연기로 연극은 착착 진행되었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용사 레안과 그의 동료들이 마왕 레이지와 마지막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나는 이 성의 주인 마왕 레이지.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너희들은 누구냐? 죽음을 그렇게도 원하는가?"

"나는 레안이다. 너를, 너를 죽이러 왔다"

 

용사 역을 맡은 사람이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극중에서 레이지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때는 레이지가 마왕인 줄 몰랐다가 후에 이렇게 적으로 만나게 되는 비극적인 사랑이었다

 

"불법 침입자 주제에 누가 누굴 죽인다는거냐? 한번 죽어봐야 정신 차리겠냐?"

그때서야 나는 생각났다. 참, 마리엔 공주는 용사 레안의 내용을 모르지. 워낙 위압감 있는 연기를 해서 잊고 있엇따. 유랑극단 사람도 그 연기에 깜빡 속아 나머지 대사를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진짜 같어야 말이지.

 

여기서는 슬픈 목소리로 "레이이군" 이라고 해야하는데. 단원들 모두 당황했지만 프로답게 곧 연기에 몰두했다.

 

"그래도 난 널 죽여야 돼"

다행이 말은 연결되는군. 하지만 마리엔 공주는.........

 

"오호, 네놈이 아주 죽여달라고 비는구나"

여기서는 "다시 만날 줄은 몰랐어."다. 나는 입술이 씰룩이는 걸 간신히 참았다.

 

"이건  운명이야. 우리들이 어쩔 수없는. 내 칼을 받아라"

"꼭 힘도 없는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잔말 말고 덤벼"

 

이곳은 "미안하군"이라고 말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었다. 하지만 마리엔 공주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정말로 살기를 뿜어대서 단원들이 굳게 만들 정도로. 때마침 미리 장치되었던 연막이 터졌다. 원래라면 레안의 검기가 난무하는 부분.  하지만 마리엔 공주는 장식용으로 들고 있던 삼지창을 휘둘러 단원들의 발목을 쳤다. 워낙 좁은 무대였기에 단원들은 그만 무대 아래로 떨어져버렸다

 

"이 레이지 님을 상대하려면 아직 천 년은 멀었다. 오홋홋호~!"

 

연막 안에서 마리엔 공주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비극적인 사랑이었떤 주제는 마왕 부활로 바뀌고 말았다. 그모습을 보며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부터였다. 마리엔 공주를 보면 즐거워지기 시작한 것은.

마리엔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돼버렸다. 레리이나 여왕의 청으로 스피린을 여행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랬다. 뻔뻔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 짓밟는 걸 우습게 알지만 미워할 수는 없다. 가끔 그녀가 보이는 이질적인 행동도 악해서라기보다는 아직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듯했다.

 

그 큰눈망울이 나를 볼 때마다 나는 웃음 지었다. 처음에는 그냥 즐거웠다. 마리엔의 엉둥한 행동이 쾌활한 행동이 . 하지만 그 줄거움의 이유가 변했다. 마리엔이 가만히 있어도 즈겁게 되었다.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가끔 세린은 여자같으니까 내가 이상한 사람들한테서 지켜줄게, 라고 말하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내가 소중해서 한 말이 아니라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기에.

 

 

 

 

 

 

재밌게 읽으셨어요? ㅎㅎㅎ

이제 이 이야기도 점점 끝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