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족의 계약]31부

다일리아200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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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장

황태자 수업


황태자가 됐다고 바로 왕이 되는 건 아니다. 현왕에게 언제 직위를 물려받아도 문제가 없도록 황태자 수업이라는 걸 받게 되어 있었다. 내 경우는 공주지만 예쩐부터 황태자 수업으로 불렸기에 편한 대로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이 수업은 선생을 앉혀놓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맡아 나라 일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이다. 덕분에 나는 노는 건 꿈도 못 꾸고 꼼짝없이 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나는 라디폰 공작가를 찾아갔다. 주된 이유는 국왕의 허락이 떨어져 공작가에 머물고 있는 페리오와 루시아에게 알려주기 위해서기도 했고, 루시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전에는 수고가 많았어”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로튼과의 일도 그렇고, 르미엘 왕자님의 일도 그렇고..”

루시아가 말끝을 흐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내 말에 페리오와 루시아는 더욱더 송구스러워했다.


“솔직히 도움이 된 적은 별루 없었지만 앞으로 잘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을 궁전 마법사로 추천했으니 잘해봐”

“방금 뭐라고 했소?”

“네?”

“궁전마법사로 추천했다고 했다. 다른 궁전 마법사들하고 사이가 껄끄럽겠지만 능력만 있다면 다 되는 세상이니 열심히 하도록.”


페리오와 루시아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동안 라디폰 공작이 입을 열었다


“용케 허락을 받아내셨군요”

“죽을 뻔한 걸 구해줬으니 당연하지. 게다가 나도 흑마법사니 흑마법사라 안 된다는 말도 못하고, 신전도 저번 일로 한 수 접어주는 입장이니 거절할 명분이 없을걸.”

“저, 정말이세요? 저희들은 흑마법사인데.,,,”


한참 후에야 루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언제나 담담한모습을 유지하던 그녀와 페리오가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감사합니다. 정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페리오와 루시아는 갑자기 내게 몸을 숙이며 말했다

두 사람이 감격의 여운에 젖어 있는 동안 나는 루시를 돌아보았다


“루시, 잠깐 산책 좀하겠어?”

내가 할 말이 있음을 눈치챈 루시는 순순히 일어섰다.


“정체가뭐야?”

“꼭 말해야 합니까?”

루시가 곤란한 듯 난색을 표했지만 나는 말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마리엔 님은 이미 제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다크 엘프입니다”

다크 엘프라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 서슴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떤 것이 설명이 된다. 엘프가 빛의 자식이라면 다크 엘프는 어둠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 또한있었다. 루시에게서는 다크 엘프 특유의 검은 피부와 뾰족한 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둥근 귀에 와 닿은 의혹에 찬 내 시선을 느낀 루시는 옷 속에 손을 넣고 목걸이를 끄집어냈다.


“이 목걸이에는 변신 능력이 있습니다”

루시는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며 이유를 밝혔다.


“이 목걸이는 이트라 초대 왕이 마신에게 받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내 얼굴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마르케스 님이 아무리 할 일이 없으시다지만 인간에게 이런거나 만들어주려고?

“그거 거짓말이다”

“물론 그렇겠죠. 제 생각에는 마리엔 님의 동족 중 한 분이 만드신게 아닐까 합니다. 마족에게 모습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일테니까요. 지금의 마리엔 님처럼 말입니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변신한 게아니야. 계약 때문에 잠시 이 몸을 쓰고 있는 것 뿐이다”

“계약? 무슨 계약이시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루시가 공손히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쾌해졌다. 마족도 아닌 것이 마족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계약에 대해 묻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말해야 되지?”

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루시가 움찔했다.

“말씀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무슨 계약인지는 모르나 무사히 끝내시기를 바랍니다”

“흥, 벌써 끝냈다,”

“그럼 이제 마계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안가”

내가 다시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루시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알겠다는 듯 집게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아~. 인간계에서 놀다 가시려는 거군요. 여러분들이 가끔 놀러온다는 이야기를 할아버님께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런 할 일 없는 마족으로 보이나? 이미 다른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나는 음산하고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 번째 계약으로 놀지도 못하게 됐는데 내가 그런 모습으로 비쳐진다는 건 용납할 수없었다.

그러자 루시는 눈치 빠르게 재빨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내가 마족이란 걸 알게 된 후 루시의 능청맞음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생겨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계약이 끄났다면 마리엔의 몸은 사라지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겠군요”

“이번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 몸이 더 유리해”

왕이 되라는 계약을 쉽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 몸으 f사용하는게 편했다. 새로 왕이 되어 유지하는 것보다는 원래 있던 왕이르 f이어가는게 더쉽다.


루시는 알아닸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고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의 질문은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질문할 것이 떨어진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하나 분명한 건 그의 태도가 예쩐과 비교해보면 많이 정중해졌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택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던 탓이다.


“제가 그와 약속했던 것은 석판을 파괴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로튼 씨가 가지고 있던 석판이 그와 함께 사라져버렸으니 .....혹시 그때의 여파로 봉인이 약해졌다든가 해서 티몬이 다시 깨어날 수도 있습니까?”

“그렇진 않아”

“혹시 로튼 씨가 그때 석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게 불안하면 석판을 내게 넘겨. 이 몸이 보관하고 있으면 누가 덤벼들든 끄덕도 없으니까. 어차피 석판을 파괴하려는 건 그가 깨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거잖아”

“마리엔 님은 같은 마족인데도 티몬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으십니까?”

“없어”

“그런놈, 내가 알게 뭐야”



 

 

 

 

 

제 22 장

 

 

 

인간의 마음

 

 

 

 

최근 나는 한가지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바로 마법학교 설립, 놀고 있는 루시와 옵스크리티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잇으니 효율적이고ㅡ 마법이 취약한 페드인 왕국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으니 진취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발상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몇 가지 장애물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흑마법사들이 선생을 한다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일 게 분명한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흑마법사 선생은 학생들을 마족에게 바치거나 인체 실험하는 존재로 치부할 것이라는 무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두 번째 정책추진과정. 처음 문제야 페리오와 루시아가 그런 대로 잘해주고 있고,  내가 있으니 큰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달랐다.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봤어야 알지. 잠정적인 반대자들이 찍소리도 못할 완벽한 계획을 세워야 하건만 그게 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펜을 들었따 놓았다 하던 나는 도서관으로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나는 사앙히 예민해져있었다.  마족과 인간들의 본질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너무 짧은 기간에 일어나서인지는 모른다. 아니면 머리아픈 정책 관련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좀 된듯하다. 다른일에 몰두하다가도 나는 번뜩 정신이 들어 뒤를 휙 돌아보곤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돌린다.

 

지금도 뒤통수가 근질근질한 것이 자꾸 뒤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암살자인가? 하지만 최근 궁궐 경비는 비둘기라도 한 마리 날아들면 의심의 눈초리부터 날리고 볼 정도인데 암살자가 들어 올수 있을까 싶다. 암살자라고 가정한다면 소심하면서 신중하고 현명한 자군, 누군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한번 끌어내 볼까?

 

모종의 계획을 짠 나는 발걸음을 궁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대로 주방으로 직행한 나는 활짝 웃으며 주방장에게 달려갔다

 

"공주님 여기는 어인 일이시옵니까?"

"갑자기 소풍이 가고 싶어져서 그러는데 도시락 좀 만들어 주겠어?"

"소풍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실례가 아니라면 어디로 가시려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주방장은 캐롤에게 내 험담을  많이 들었는지 소풍이라는 말에 바짝 긴장했다.

 

"정원에 나가서 먹을 거야. 가끔은 이런 식으로 기분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아아~그러셨군요 .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방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해"

 

주방을 나온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노크소리가 들리며 주방장이 들어왔다. 그의손에 들린 도식락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왓다. 시녀들이 도시락을 들고 따라오려 했으나 나는 직접 들고 홀로 나섰다.

 

오로지 혼자 정원으로 들어간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서있는 곳은 따사로운 햇살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곳이었다. 팔을 활짝 펼친 나무 아래로 들어가자 나무잎들이 햇살을 막아주었다. 잠시 그대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내려뜨렸다. 그리고 도시락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간단히 샌드위치 같은 것만 넣어주지 칠면조 다리는 왜 넣은거야? 잠시 칠면조 다리를 바라보던 나는 샌드위치를 하나 꺼냈다.

 

도시락에 들어 있는 음식을 적당량 먹은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햇살에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마법이 걸려있다. 때문에 이런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햇살을쐬고 있노라면 절로 졸음이 몰려온다.  나는 도시락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무에 등을 기댔다.

 

 

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갔다. 언제까지나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다.

에릭과 세린에게는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냐는 차원의 문제였지만 나에게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다. 고민의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로열 기사단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저마다 최대한 예를 갖춰인사했따. 그리고 그중에는 에릭과 세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손짓으로 불러 훈련장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따라왔다.

 

"흠흠. 내가 오늘 온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에릭과 세린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우선은.,,,,음.....그러니까 말이지... 두사람 모두 나에게 고마운 존재라는건 말해두겠어"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하려다 쑥스러워서 고마운 존재로 말을 바꾸었다. 에릭과 세린은 내가 난데없이 찾아와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된 것임은 작은 동작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에릭은 눈썹이 꿈틀거렸고, 세린은 미소가 없었다.

 

다시한번 헛 기침을 한 나는 긴장은 되지만 그걸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겪었던 경험담을 천천히 들려주었다. 예전에 내 창이 마음에 든다며 한 존재가 끈덕지게 따라붙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친구가 될수도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내 것을 뺏길 수는 없는일. 나는 그녀석이 탐욕스러운 눈으로 창을 집고 튀려하자 바로 근처에 있던 의자를 들어 후려갈겼다. 그 후는 뻔했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예시가 틀린 것 같은데"

"뭐? 어째서?"

"물건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야. 단순히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것과는 달라"

 

세린과 에릭의 말을 수긍하기 힘들었다

 

"비슷하잖아. 물건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이랑 비슷하구만 뭘 그래. 아무튼 나는 너희들과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러니까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

"싫다면?"

"같은 생각이라면?"

 

내 머릿속에서 적색 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떠올렸던 방향과 상황이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인데...."

"이해했어. 그래서?"

 

물론 막을 수는 없어따. 에릭이 내 말을 자르고 나섰다.

 

"기다려"

낮은 목소리에서 은은한 기운을 느껴졌다. 에릭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런 이유로 어떻게 납득하지? 사이가 어긋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지?"

"만약 그럴 거였다면 벌써 예전에 틀어졌지"

세린의 말에 나는 고개르 ㄹ돌렸다.

 

"내가 말했었지? 어떤 순간에라도 나는 네친구라고. 에릭에게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이런식으로 도망가지마"

세린의 말에 나는 궁금했다. 그런 걸 행복이라고 할수있나?

 

두 사람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내 마음을 말해보라는 듯이. 그때였다.바람과는 다른 뭔가가 온기르 ㄹ빼앗아갔다.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던 공기 중에 커다란 눈동자가 생겨 나를 째려보는 느낌이었다. 시선이 느껴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찌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창이 강한 바람에 부딪쳐 날아가 버렸다. 창을 쥐고 있떤 손바닥도 찢어졌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 앞쪽에서 느껴졌던 시선이 갑자기 뒤쪽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에서 느껴졌다.

 

"마리엔"

 

에릭과 세린이 다급히 불렀지만 나는 주변을 경계하기에 바빴다. 족므이라도 경계를 늦추면 차가운 금속이 목을 뚫고 지나갈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 느낌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

 

기운을 놓쳐버린 나는 지표하나 없는 사막에 혼자 떨어진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빙글 빙글 돌며 주위를 살펴보았따. 뭐였지? 방금? 한순간 소름이 끼쳤는데. 하지만 에릭과 세린은 나처럼 심하게 느낀 것 같지는 않았다. 강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흩어지는 연기만 남기고 사라진 기운을 찾기위해 나는 한참동안이나 서 있었다. 꼭 쥐어진 손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땅을 적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