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남과 B녀가 인터넷에서 영어공부를 매개로 만났다. A남은 실력은 되지 않지만 어렵게 공부하는 B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A남도 그렇게 공부할때 주위에서 도움을 받은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A남과 B녀는 그렇게 영어공부에 관해 진지하게 얘기도 나누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공부를 했다. 어느날 B녀가 수시로 A남과 핸드폰으로 영어에 대해 얘기하다, 갑자기 이런 문자를 보냈다. '우리 서로 삶에 대해 얘기도 나누는 친구해요.' A남은 별다른 생각없이 응했다. 그뒤로 그녀는 영어공부 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관해 주로 얘기 했고, A남도 나름대로 도움을 줄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도중 뜬금 없이 그녀는 A남에게 이성으로 자신을 넘보지 말라는 얘기를 넌지시 했다.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물론 A남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A남은 그 황당함과 그녀의 이상한(?) 걱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이미 애인 있으며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B녀의 태도가 돌변했다. 삶의 진지한 얘기는 애인과 나누라는 둥, 이러다 오해 사면 어쩔려고 그러냐, 면서 자신을 피하는 것이었다. A남은 처음부터 자신의 애인에게 숨긴것도 없으며, 부끄러운 짓을 한것도 없는데, B녀의 이해 할 수 없는 태도에 또다시 적지않게 당황했다. A남은 생각했다, 그렇담, 삶의 진지한 얘기는 애인과만 나눠야 한다, 결론은 그는 평생 다른 사람과는 그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이 나온다. 물론 그것은 그말을 한 B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에서 사람들의 이중적인 소유의 개념이 나온다. B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오로지 독점하고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다는 식이다. 이미 그녀는 A남을 남과 나누기 싫은 소유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B녀 같은 부류들은 자신들은 남들을 잘 배려하고 이해하고 스스로는 홀로서려고 애쓰는 사람이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이 얼마나 무섭고 섬뜩한 일인가.(더우기 B녀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런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으로 많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과 입맛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을 아주 무참하게 밞아 버린다. 왜냐면 자신이 먼저 상처받고 다칠까봐서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행복한지 난 묻고 싶다. 아마 그네들은 평생을 가도 그 것이 죄악인지도 모르고 살것이 분명하다. 그저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과 몸은 흙과 같아서 처음에는 유연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굳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그 유연함을 잃으므로 결국 잘 못 굳어진 부분을 고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A남과 B녀
A남과 B녀가 인터넷에서 영어공부를 매개로 만났다.
A남은 실력은 되지 않지만 어렵게 공부하는 B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왜냐하면 A남도 그렇게 공부할때 주위에서 도움을 받은것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A남과 B녀는 그렇게 영어공부에 관해 진지하게 얘기도 나누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공부를 했다. 어느날 B녀가 수시로 A남과 핸드폰으로 영어에 대해 얘기하다, 갑자기 이런 문자를 보냈다. '우리 서로 삶에 대해 얘기도 나누는 친구해요.' A남은 별다른 생각없이 응했다. 그뒤로 그녀는 영어공부 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관해 주로 얘기 했고, A남도 나름대로 도움을 줄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도중 뜬금 없이 그녀는 A남에게 이성으로 자신을 넘보지 말라는 얘기를 넌지시 했다.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물론 A남은 당황스러웠다. 그는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A남은 그 황당함과 그녀의 이상한(?) 걱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이미 애인 있으며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자 B녀의 태도가 돌변했다. 삶의 진지한 얘기는 애인과 나누라는 둥, 이러다 오해 사면 어쩔려고 그러냐, 면서 자신을 피하는 것이었다. A남은 처음부터 자신의 애인에게 숨긴것도 없으며, 부끄러운 짓을 한것도 없는데, B녀의 이해 할 수 없는 태도에 또다시 적지않게 당황했다. A남은 생각했다, 그렇담, 삶의 진지한 얘기는 애인과만 나눠야 한다, 결론은 그는 평생 다른 사람과는 그런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이 나온다. 물론 그것은 그말을 한 B녀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여기에서 사람들의 이중적인 소유의 개념이 나온다.
B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오로지 독점하고 소유하지 못하는 것은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다는 식이다.
이미 그녀는 A남을 남과 나누기 싫은 소유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B녀 같은 부류들은 자신들은 남들을 잘 배려하고 이해하고 스스로는 홀로서려고 애쓰는 사람이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이 얼마나 무섭고 섬뜩한 일인가.(더우기 B녀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런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는 참으로 많다.
자신의 생각과 방식과 입맛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을 아주 무참하게 밞아 버린다. 왜냐면 자신이 먼저 상처받고 다칠까봐서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행복한지 난 묻고 싶다. 아마 그네들은 평생을 가도 그 것이 죄악인지도 모르고 살것이 분명하다. 그저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마음과 몸은 흙과 같아서 처음에는 유연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굳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그 유연함을 잃으므로 결국 잘 못 굳어진 부분을 고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