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그린다.

어이쿠2005.06.15
조회244

난 요즘 겨울이 그립다.

아침에 눈을 뜰때면 이마를 살짝 스치는
한기에 아침이 왔음을 알게되고,

이불을 끌어올리고 몸을 웅크리며
잠의 달콤함에 다시 취할때쯤
날아오는 밥주걱에 학교갈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곤 했다.


꼬물락꼬물락 교복을 쳉겨입고
두꺼운 외투에 머플러까지 목에 두르고 나면
그 위세도 당당하게 거리로 나선다.

겨울의 아침이란 어떤가.

밤세내린 눈들이 세상을 한꺼풀 덮어버려서
거리는 온통 담백한 무채색 일색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에
한차례 부르르 떨고 나면 어느세 눈앞은
입김으로 부옇게 흐려진다.

걷는 내내 거리는 분주하다.

같이 아침운동을 하는 노부부, 색색의 더플코트
아래로 치맛자락을 날리며 깔깔대는 여고생들,
프렌치코트 한장으로는 역부족인 추위에
종종걸음으로 걷는 아저씨들.

바알갛게 상기된 볼과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너무 이쁜 아가씨들.

다들 거리에 남은 지난 밤의 여운을
걷어내고도 남을 만큼 활기차다.

아직 밟지 않은 보송보송한 눈만을 골라밟으며
학교에 도착하면 어느때와 같이 난 머플러를 풀러
2번 곱게 접어 베고 잠이든다.
최고다. 머플러 베게.
흡습성과 통기성이 뛰어나서 침도 바로바로 흡수
해버리고 얼굴에 자국도 안남는다. ( >0<)b

한참을 잠에 취해서 뒤척이다, 문득 눈을
뜨면 창문 넘어로 천천히 흩날리는 눈이 보인다.

하늘도 온통 회색빛이어서 그사이로 흩날리는
하얀눈은 약간의 한기와 함께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눈이 내리는게 아니라 내가 떠오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 즈음이면
따뜻한 스팀의 기운이 다시 눈꺼풀을 누르고
결국 다시 잠이 든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언제 잤냐는 듯이 번쩍 눈을 뜨고 어느세 손에는
수저가 들려있다.
밥이 나를 먹는건지 내가 밥을 먹는건지
그릇과 밥의 구분이 지어질때 쯤 이면 이미 우리는
밖으로 달려나간다.

Soccer~! In Snow!

는......열혈 청년들에게 맞겨두기로 하고.

우리는 항상 그렇듯이 건물사이의 작은
정자에 자리를 차지하고 눕는다.

얼기설기 엮인 마른 덩쿨사이로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져 얼굴에, 그리고 목덜미에 닿는다.

섬찟섬찟 기분좋은 감촉에 저절로 눈이 감기고
그렇게 그곳에서 잠들어...

감기에 걸린다. -_-


코를 훌쩍이며 걷는 하교길이지만 그래도
이미 학교수업을 끝낸 우리를 막을자는 없었다.


담벼락위로 길게 쌓인 눈을 한꺼번에 걷어내서
뿌리기.

눈덩이를 피하다가 장렬하게 넘어지기.

자동차 유리에 얼어붙은 눈에다 손가락으로
글씨쓰기.(00븅신,00변태 등등)

가위바위보 해서 진사람이 무등태워서 고드름
따기, 그리고 그걸로 칼싸움하기.

언덕길에서 미끄럼 타기,그러다가 자빠지기.

결국 집에 도착할때 쯤이면 거의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옷을 갈아입고 뛰어나간다.

근처의 빗자루 하나를 들쳐메고 향하는 곳은
그녀의 집앞의 작은 공원.

헉헉거리며 입김을 뿌리며 달려가보면
이미 친구놈들은 도착해서 난리를 치고있었다.

아악 눈밟지마!!!!!!!!!!!!!


나의 처절한 비명은 당연히 무시되고
또다시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들 얼굴이 버얼겋게 상기되 머리에서
눈이 뚝뚝 떨어질때 쯤되면 이미 공원은
온통 발자국이며 눈덩이들로 어지럽혀져 있기 마련이다.

이런~! 뷁쩗떫뺅뀄쩝뀄떩!!!!!!!!!

빗자루로 공원의 눈을 고르고 나니
이미 해는 지기 시작한다.

난리났다 -_-


다들 마음이 급해져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야! 철자가 틀렸잖아!!!

새퀴가! 그냥 한글로해!!

아악~! 영어시간에 처자지 말라니까!!!

얌마! 거기 밟지마!!! 발자국! 발자국!!!!

끄아아아아아!!! 빨리 쓸어!! 다시 메꿔!! 메꿔!


근처 가로등이 모두 켜져 흰눈이 어스름하게
보일때가되서야 작업이 끝났다.

다들 젖은 장갑은 모두 벋어던진체로 불쌍한
어린양마냥 근처에 쪼그려서 바들바들 떨고있다.

오직 한사람 만이 뿌듯한 표정으로 눈위에
세겨진 글자를 보며 실실 웃음을 흘린다.

나머지 녀석들 모두 감각없는 손가락으로 힘들게
담배를 피워문다.

눈내린 공원은 너무나 조용해서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도 치직치직하고 낮게 울린다.
일렬로 주욱 앉아서 눈위에 글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각자들의 생각에 빠져있다.

좋구나...눈덮인 공원이라는건.


드디어 녀석이 그녀의방 창문아래에 선다.

담배를 비벼끄고 일어나 가로등 불빛이 비치지
않는 한켠에 선다.

녀석이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소근소근
낮게 들리고 곧이어 그녀의 방 창문이 열린다.

놀라는 표정,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는게
보인다.

녀석은 두팔을 번쩍 치켜들며
동네가 떠나가라 외친다.

당황하는 표정, 하지만 웃는 얼굴로 그녀가 손을
흔든다.

녀석 좋아서 죽는다. 다시한번 외친다.


주변 아파트의 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집에도 불이켜지고 놀란 그녀방의
불이 꺼진다.

그리고 경비아저씨가 달려오는게 보였다. -_-

빗자루를 내던지고 다같이 미친듯이
뛰었다.
뛰는 내내 녀석은 아직도 입가에서 웃음이
떠날줄을 모른다.

결국 모두 바보같이 웃으면서 이리저리 도망쳤다.



겨우겨우 안잡히고 집까지 도망왔다.

자려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니
가슴한켠이 아주 조금 쓰렸다.



다음날 아침 여지없이 날아온 밥주걱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마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으며 보통다니던
길에서 약간 돌아서, 그러니까 얼마전까지
자주 다니던 길로 등교했다.

글자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슬그머니 뜨기시작하는 햇빛에 약간씩 녹기시작한
눈이 세겨진 글씨를 더욱 또렸하게 보여줬다.


그나저나....

그녀가 눈치 쳈을지는 모르겠다.

Love가 Rove로 세겨져 있는걸. 으하하하하하

뭐 그정도는 봐줘라. 내가 부리는 마지막 심술이었다.


우리의 감기를 담보로 했던 이밴트가 효과가 있었는지
는 장담할수 없지만 아무튼 그둘은 연인이 되었다.

물론 안되면 뺨이 세대지만 잘되서 술이 세번이었음
은 당연히 이야기다.

오늘 아침에 운동가면서 보니 어떤 우라질리스트가
내차에다가 손가락으로
'아잉~! 오빠 살살 몰아'
라고 써놨길레 울컥하는 마음가짐으로 운동하다가
문득 겨울이 그립기도 하고 몇가지 일이 생각나서.
끄적거려봤다.

뭐 항상 그렇든,

지나간 계절과 사랑은 항상 아름답기 마련이라니,

겨울이 오면 다시 여름을 그리겠지만 말이다.